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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진 일을 하신다고 하셨죠. 혜영 님의 카메라에는 무엇이 담기나요?

혜영¯ 프리랜서로 일을 하는 것 외에 개인적인 작업에서는 주로 인물 사진을 찍어요. 지금 진행하는 개인 프로젝트는 제가 만든 특정 캐릭터 안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담아내는 거예요. 가발을 씌우고 분장도 해요.

 

김¯ 참여자는 미리 섭외하시나요?

혜영¯ 아니요. 그냥 길거리에서 부탁을 드려요.

 

김¯ 즉흥적이라니. 내용이 궁금해져요.

혜영¯ SNS 속 사람들이 비슷해 보일 때가 있었어요. 획일화된 것들에 대한 답답함이 생겼고 해소하고 싶어 거리로 나갔어요. 스튜디오에 카메라와 조명을 세팅해두고 밖으로 나가 섭외를 해요. 그리곤 정해둔 모습으로 분장시켜 사람들을 모두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요. 그런데 오히려 얼굴이 잘 보이더라고요.

 

김¯ 블랙코미디 같아요! 기획하신 의도대로 잘 진행되었나요?

혜영¯ 비슷한 것들에 대한 피로감이 확실히 해결이 되었어요. 모두 다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거잖아요. 근데 우린 다 다르거든요.

 

김¯ 길거리에서 섭외를 하는 데에 어려움은 없어요?

혜영¯ 다들 안 해주실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80명 정도 찍었어요.

 

김¯ 완성이 되면 꼭 다시 보고 싶어요. 독립출판물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고요. 개인 작업 외에 프리랜서로 일하시는 건 어떠세요?

혜영¯ 그전에는 회사에 다녔어요. 그 안에서 배우는 것들이 좋았지만 그만큼 힘들더라고요. 혼자 해내야 하는 게 많아졌지만, 지금이 더 좋아요. 프리랜서로서 안정적인 길을 만들면서 개인 작업을 이어나가고 싶어요. 그걸 놓치지 않는 게 제일 우선이에요.

 

김¯ 프로젝트 작업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 방식으로 하잖아요. 제가 지금 그렇듯이. 상업적인 일들은 상대방의 요구에 따라야 하고요. 마음가짐이 다르신가요?

혜영¯ 완전히 다르기는 한데 둘 다 쾌감이 있어요. 각각의 시간에 적당한 에너지를 쓰려고 노력해요. 아침부터 낮까지는 일하고 밤에는 제 작업을 해요. 아침에 일하면 밥값을 했다는 뿌듯함이 느껴져요. 개인 작업을 할 때는 매번 뿌듯하지는 못해도 살아있음을 느끼고요.

 

김¯ 살아있음을 느끼기! 저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프로젝트에 참여해주신 분들께도 선물 같은 하루일 것 같지만 혜영 님이 얻는 게 더 많았을 것 같아요.

혜영¯ 제가 2017년부터 우울감이 심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랑 대화하는 게 귀찮았거든요. 싫은 게 아니라 귀찮더라고요. 그런데 이 작업을 할 때는 욕망이 생겨요. 오늘치의 일을 해내야 욕심을 채울 수 있으니까요. 작업 초반에 생각한 답답함도 해소가 되었고,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도 전체적으로 나아졌어요.

 

2__

김¯ 오늘 저를 만나서 어렴풋이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할 거 같다 생각하신 게 있으세요?

혜영¯ 너무 우울한 얘기를 할까 봐 걱정했어요.

 

김¯ 상관없어요! 기분 좋은 얘기만 하는 것도 이상하죠.

혜영¯ 요즘은 특히 주변에 우울한 친구들이 많거든요. 만나면 긍정적인 이야기가 잘 안 나와요. 그러다 보면 지치고요. 오늘도 혹시 그럴까 봐 걱정했어요.

 

김¯ 지치세요?

혜영¯ 네. 소진되는 느낌이 나요. 우울함이 대수인 거 같은 느낌이 살짝 들면서.. 지나가는 감정일 수도 있는데 그걸 붙잡는 느낌도 들어요.

 

김¯ 우울하거나 슬플 때요. 저는 종종 당장에 일어난 일이 아닌데도 나중의 슬픔까지 끌고 오게 돼요. ‘아 슬프다’. 이렇게 끝나면 되는데 ‘이대로라면 이런 결과가 나오겠지. 그럼 더 슬플 거야’ 이렇게요. 이제는 최소한 그러지는 말자 생각했어요. 당장의 슬픔만 실컷 슬퍼하려고요.

혜영¯ 지금 이야기 들으면서 우리의 차이점을 발견했어요. 슬프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저는 슬프지는 않아요. 불안하고 화나고 우울한데, 슬픈 건 아니에요.

 

김¯ 신기하다. 저는 우울하진 않지만 자주 슬프거든요. 혜영 님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혜영¯ 말하자면 긴데 저는 2014년도 세월호 참사 때 기사들을 보면서 계속 울었어요. 너무 사무치더라고요. 그 후에 지나가겠지 싶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안고 가야겠다고 생각하다가 19년도에 병원에 갔어요.

김¯ 오래 갔네요?

혜영¯ 네. 진단명을 받고 약을 먹어볼까 싶더라고요. 저한테 온 증상이 기억력에 관한 거래요. 지금은 기억을 정말 못해요. 친구들이랑 방금 대화를 해놓고 그게 생각이 안 나요. 1년 동안 약을 먹으면서 치료하는데 기억력은 가장 늦게 회복이 될 거라고 했어요. 결국 해결하지 못하고 끝이 났고요. 그래서 이것도 안고 가야 하는구나 생각해요. 사실 지금도 어떤 이야기 하셨는지 기억이 잘 안 나요.

 

김¯ 기억해봐야지 생각을 하셔도 자연스레 잊히는 건가요?

혜영¯ 음 모르겠어요. 그냥 기억이 안 나요.

 

김¯ 스트레스를 받으세요?

혜영¯ 네. 그래도 심할 정도는 아니고 생활 스트레스 정도가 됐어요.

 

김¯ 세월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제가 대학교 4학년 때였나. 학교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첫차로 집에 돌아가던 길이였어요. 광화문에서 환승을 하려고 앉아 있었는데 새벽의 차갑고 뿌연 안개 속 도시가 새삼 낯설더라고요. 너무 회색이어서요. 불 켜진 곳이 없나 싶어서 주위를 살피다가 광화문 광장의 노란 리본 모양 구조물이 빛나고 있는 걸 한참 바라본 기억이 나요. 소중한 게 너무 쉽게 사라진 걸 보고 나니까 이런 나의 일상은 무슨 의미인가 싶었어요.

혜영¯ 방금 말씀하신 감정을 제가 똑같이 느꼈던 것 같아요.

 

김¯ 오래가죠.

혜영¯ 네. 오래가더라고요.

 

김¯ 뭘 할 수 있는지 몰라서 유가족분들께서 볼 수 있는 전광판에 문자 메시지를 자주 보냈어요. 당시에도, 지금도 그저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아요. 잊지 않았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그분들께 힘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그 서비스가 종료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제가 보냈던 문자들을 쭉 보고 마지막으로 보낸 후에 모두 삭제를 했어요. 상징적으로 남겨진 걸 떠나서 스스로 진짜 잊지 말자 다짐하면서.

 

(잠시 말이 없다)

 

김¯ 기억에 대해 말하고 있었죠. 반대로 잊고 싶은 것도 있지 않으세요?

혜영¯ 그렇죠.

 

김¯ 잊혀서 좋은 일은 자연스레 잊히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제 경우엔 그게 어려울 때는 아예 기억을 왜곡시킬 때도 있어요.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익숙해지더라고요. 힘든 일에 한해서요.

혜영¯ 좋은 기억이든 안 좋은 기억이든 한 번씩 스치기는 해요. 그래서 ‘기억력이 예전에는 좋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런 단순한 문장은 아니에요. 기억이 떠오르는 깊이가 좀 달라진 거 같아요. 막이 하나 씌워진 느낌이에요. 누군가 질문을 하면 그 상황에 대한 긴장감이 있는 건지, 아니면 정말 기억이 못하는 건지 헷갈리기도 해요.

 

김¯ 저도 누가 질문했을 때 들으면서도 잊어버린 적 많아요. 공적인 자리에서도 다른 생각을 하다가 질문 파악을 못 해요.

혜영¯ 저도 다른 생각이 많은 건가? 계속 원인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김¯ 이유를요?

혜영¯ 네. 이유를. 언젠간 알 수도 있겠죠?

 

김¯ 찾고 싶으세요?

혜영¯ 네. 이런 거 찾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김¯ 다행이네요.

혜영¯ 네. 그나마 즐길 수 있는 구멍이 있더라고요. 너무 상심해 있는 거보다 일단 즐기면서 작업에 이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3__

김¯ 처음에 들려주신 작업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웠어요. 혜영 님의 다른 작업도 궁금해요.

혜영¯ 음. 졸업작품을 할 때는 요즘 같은 데이터 다량 시대에 모방과 영감을 구분할 수 없는 시대가 되지 않았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모방과 영감이라는 각자의 단어를 분해해서 모 씨 성을 가진 영감님이랑 방 씨 성을 가진 영감님을 찾았어요. 웃긴 게 제가 휴학을 했을 때 작업 구상을 하면서 시골 사진관에서 일했어요. 그런데 근처에 모 씨와 방 씨 집성촌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빠 차를 얻어타고 가서 섭외하고 주상절리 비슷한 곳에 모셔서 같이 막걸리 마시고 춤이나 추자 했죠. 그리고 그걸 사진으로 기록했어요.

 

김¯ 진짜 너무 뿌듯하셨을 거 같아요. 그렇게 상황이 딱딱 맞을 때 희열이 느껴지잖아요.

혜영¯ 너무나 그렇죠.

 

김¯ 저는 이제야 남들로 시선을 돌렸거든요. 첫 인터뷰할 때는 오늘보다 걱정이 더 많았어요. 시간이 금이잖아요. 이 시간을 다른 일에 쓸 수도 있는데 저한테 쓰시는 거니까.

혜영¯ 저도 얼마 전까지 반대 입장이어서 이 마음을 알 거 같아요.

 

김¯ 음!

혜영¯ 근데 상대방은 사실 별생각이 없어요.

 

김¯ 재밌다는 생각만 해주셔도 감사할 것 같아요.

혜영¯ 재밌어요. 노력해주시는 모습도 좋고요.

 

김¯ 휴. 저는 대화하는 게 너무 좋아요.

혜영¯ 그래서 지금 너무 다행이에요. 저는 말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인터뷰에 참여하는 자체가 너무 웃겼어요. 말하는 거 안 좋아하는데 왜 한다고 했지?

 

김¯ 그런 마음이 드셨는데 왜 제게 시간을 내주셨을까요?

혜영¯ 강박인 거 같아서요. 말을 못 한다고 생각하는 거요.

 

김¯ 이겨내 보고 싶은 마음인가요?

혜영¯ 아니요. 이겨내고자 하는 태도는 스스로 부담이고 ‘그냥 해보자’예요. 이 상황에 나를 놓아보자, 어떻게 하나보자 이런 마음이에요.

 

김¯ 어떻게 하신 거 같으세요?

혜영¯ 꽤 했네? 정도로 생각하면서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김¯ (웃는다) 요즘 소중한 건 뭐예요?

혜영¯ 최근에는 저 자신이요. 저는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고 살펴보면서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요. 관찰하다 보면 결국 나를 보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것도 좋지만 오로지 나를 돌보고 살피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어요. 이제 서울 생활은 잠시 미뤄두고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가요. 나를 위해서 어디가 좋을지 생각하다가 선택을 했어요. 그게 첫 선택이에요.

 

막, 막_91x91cm_광목에 채색,유채_2021

 

어릴 때 학교 앞에서 공짜 영화표를 받아 팀 버튼 감독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보러 갔다. 그때가 5학년이었는데 겁도 없이 대절 버스를 타고 문화회관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영화에 대해 말하자면 그저 좋았다. 온통 초콜릿 세상인 그 영화는 눈보라 치는 날 아늑한 집 안에서 주인공 찰리의 가족들과 공장의 주인인 윌리가 저녁 식사를 하는 장면으로 막이 내렸다. 행복한 결말을 본 사람 특유의 따듯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으나 나와 친구가 맞닥뜨린 현실은 눈보라 치고 어두우며 심지어 낯선 길이었다. 주머니엔 땡전 한 푼도 없었다. 집에 돌아갈 길이 막막했다. 사람이 위기에 처하거나 가난해지면 아이큐가 조금 떨어진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때 우리가 그랬다.

우리는 진눈깨비에 젖은 앞머리를 넘기며 무작정 걸었다. 친구는 얇은 보라색 점퍼를 여미며 울었다. 울면서 걷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간한테는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온대. 그러니까 우리는 괜찮을 거야’라고. 인터넷 세상에서 어렴풋이 본 말이었다. 열두 살 내가 할 수 있는 위로 중에는 제일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고 잠깐은 덜 추운 것 같았다. 나는 스스로가 멋지다는 생각이 들면 볼이 좀 뜨거워지곤 했다.

고등학생 때 갑자기 그 문화회관이 어디였을까 궁금했다. 그제야 궁금한 것도 이상하지만 어딘지 찾지는 않았다. 중요한 건 뿌연 눈보라 치는 길 끝에 나의 집이 있다는 거였다.

 

오늘 만난 혜영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지금은 어느 정도 믿지 않지만 어릴 때는 ‘내게 힘든 일이 생겨도 버틸 수 있으니 생겼겠지’와 같은 생각의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게 이런 기억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냐고 물었다. 인터뷰에 참여한 자신을 어색해하던 그의 긴장을 풀어주려 해본 이야기였는데 그림과 이어지는 질문을 받으니 당황스러웠다. 잠시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친구를 위로하는 법, 나 자신을 좋아하는 법 같은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까, 그때 느낀 걸 다시 떠올려 본다고. 그렇게 만들어진 감정들로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고.

 

이렇게 말하면서 새삼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이다. 살아오며 얻은 많은 것들이 다 무언가가 되고 있다고. 오랜 우울감에 말하는 게 귀찮아져 버린 그는 내 앞에 온 자신이 ‘어떻게 하나 보자’라는 마음을 가지고 왔댔다. 앞서 설명해준 두 개의 작업 이야기가 떠올라서 웃음이 났다. 그는 어떤 인물들에게 상황을 쥐여주고 그걸 바라봤다. 오늘 그의 어떤 인물은 자기 자신이었다.

 

내가 가진 슬픔과 그가 가진 우울의 뭔지 모를 간극 속에서 기억 위에 막이 생긴 것 같다는 혜영의 말이 떠올랐다. 뿌연 안개와도 같은 기억의 깊이 속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들이 그를 작업을 놓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만든 것 같았다.

 

이 글을 쓰고 나니 어쩐지 볼이 뜨겁다. 이제 나는 이달 치의 안개 낀 그림을 그릴 것이다. 안개를 그리는 건 처음이라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나 보자.

 

 

*인터뷰이가 되어줄 혜영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mhaengm@naver.com

 

‘김혜영의 혜영들’은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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