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어느 날, 김혜영이 김혜영을 인터뷰하다.

 

김¯ 매일 아침에 아주 짧은 명상을 하잖아요. 저건 그냥 더 자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짧게요. 그때 무슨 생각을 하나요?

혜영¯ 원래 명상은 자신의 코끝 숨결에 집중하는 거라고 하잖아요. 저는 아마추어라서 그런지 잘 안되더라고요. 대부분 오늘은 또 무엇을 해야 죄책감이 덜해질까 생각해요.

 

김¯ 죄책감으로 시작하는 하루인가요?

혜영¯ 네. 대부분 어제 할 일을 다 못 끝내서 오늘로 미룬 상황이거든요. 목표를 세울 때 저를 너무 과대평가해요. 그런데 죄책감 뒤에 설렘이 있어요. 어쨌거나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오늘이니까요.

 

김¯ 어떤 일을 사랑하나요.

혜영¯ 미지근하게 뭔가를 주는 일이요. 그림이 그래요. 너무 강렬하지 않고 잔잔하게 여운을 줬으면 좋겠어요. 오래 볼 수 있게요. 그리는 것 말고도 요새는 말하고 듣는 데에 관심이 생겼어요.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은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게 하잖아요. 생각으로 한 번 한 걸 말하면서 또 한 번. 들으면서 다시 한 번.

 

김¯ 그러한 관심이 새로 그리고자 하는 것들에 영향을 주었나요?

혜영¯ 네. 자신을 작가로 정의한 지 오래된 건 아니지만 주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그렸어요. 그런데 이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해요.

 

김¯ 그 처음과 끝은 본인의 이야기고요. 계기가 있나요?

혜영¯ 처음 시작은 소중한 사람들 때문이에요. 주변에 우울증을 가진 친구들이 몇 있었는데, 상담을 받거나 병원에 가는 등 각자의 방법으로 이겨내고 있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저는 제 목덜미를 만졌어요. 그다음엔 먼 곳을 보거나 친구를 껴안고 함께 울었어요. 상대방이 이런 이야기를 제게 해주면서 얼마만큼의 위로를 바랄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친구가 먼 산을 보며 이야기하면 저도 어딘가 먼 곳을 봤어요. 눈시울이 붉어지는 친구는 안아줬어요. 그 후에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자신을 돌보는 그 애들에 대해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할 때 친구들의 마음을 생각했어요. 분명히 자기를 가엽게 여기길 바라면서 한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말하는 것이 가지는 힘이 얼마나 큰지 궁금해지더라고요.

 

<노래하는 꼬리>라는 아름다운 그림책이 있어요. 작은 마을에 사는 소년과 동네 사람들이 나오는데, 얼마나 작은가 하면 마을 이름보다도 작은 마을이래요. 그곳에 사는 소년한테 어느 날 긴 꼬리가 생겨요. 노래하는 꼬리요. 다정한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길고 긴 꼬리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논하는 장면을 가장 좋아해요.

 

그들은 소년의 꼬리를 떼어주기 위해 줄지어 잡아당기다가 마을을 벗어나게 돼요. 꼬리가 정말 길거든요. 그렇게 새롭고 넓고 낯선 곳으로 그들의 세계가 확장돼요. 마을 사람들이 작은 마을을 벗어난 경험을 통해 얻은 게 뭐였을지 궁금해요. 소년의 꼬리를 보며 나의 꼬리에 대해 생각했어요. 애를 써도 없어지지 않고 아무도 안 봤으면 하는 나의 꼬리.
책 속의 소년 이반은 작은 마을에 혼자 남아요. 그리고 긴 여행 끝에 돌아온 마을 사람들을 기쁘게 맞이해요. 내용에는 없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 이반에게 그들이 들려줄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지 상상해보게 돼요.

저도 그런 매개가 되어 누군가와 말하고 듣는 경험을 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제가 가진 꼬리에도 분명 변화가 생길 거라고 믿어요.

 

김¯ 혜영 님이 가진 꼬리는 무엇일까요?

혜영¯ 처음 꼬리가 생긴 이반은 그걸 없애고 싶어 해요. 그런데 마음처럼 되지 않죠. 그런 점에서 저한테는 제 아픈 부위를 남에게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이 그것이에요. 그런데 이반의 꼬리는 결국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깃거리를 주는 소중한 존재로 거듭나잖아요. 제 꼬리도 그렇게 되길 바라요. 제가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모으는 과정에서 변화할 수 있길.

 

김¯ 혼자만 아파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디에서부터 왔을까요?

혜영¯ 제 어릴 적 기억은 모두 작은 슈퍼 집에서 시작돼요. 슈퍼 안쪽 문을 열면 부엌과 화장실, 그리고 방이 하나 있는 작은 집에서 살았어요. 여섯 살 때 생일선물로 받은 커다란 공주의 집에도 방이 하나여서 세상 사람들이 사는 다른 집들도 대부분 이런 모습일 거라 생각했어요. 우리 집은 게다가 슈퍼까지 있으니 퍽 멋있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 아빠가 주차장과 방 사이의 벽을 허물고 주차장을 방으로 만들었어요. 더 큰 하나의 방이 있는 집이 된 거죠. 부모님께 혼나고 나면 숨을 공간이 없어서 장롱이랑 바닥 사이의 작은 틈에 얼굴을 처박고 울었어요.

 

김¯ 비참하고도 자존심이 센 여섯 살이네요.

혜영¯ 그렇죠. 그래서 더 혼날 일이 많았어요. 고개를 박고 울면서도 엉덩이를 가족들에게 보여야 한다는 사실이 아주 억울했던 기억이 나요. 그 후에도 제가 불편한 상황에 있는 모습을 남한테 보여주는 게 너무 싫었어요.

 

김¯ 작은 기억에서부터 그래왔군요. 집에 대한 기억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혜영¯ 아빠는 대개 슈퍼 카운터에 앉아계셨어요. 아이스크림 훔치는 동네 애들을 몇 번이나 놓칠 만큼 깊게 잠을 잤고, 엄마는 남은 회사 일을 처리하거나 부엌일을 했어요. 오빠랑 저는 방에서 티비를 보거나 엎드려서 낙서했던 기억이 있어요. 제게 집은 가족들이 어떤 감정으로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한눈에 보이는 공간이었어요.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얼마 후에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왔어요. 슈퍼 집의 방만 했던 공간이 제게 생겼죠. 그런데 더 이상 가족들이 무얼 하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는 없게 되었어요.

 

김¯ 그 점이 아쉬웠던 것처럼 들려요.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이 생긴 게 어린 시절에 어떤 영향이 있었을까요.

혜영¯ 혼자서도 할 게 많아서 마냥 아쉽지는 않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게 뭔지 조금씩 알아가던 때였거든요. 그 무렵에는 도넛 모양의 나무 책상이랑 휙휙 돌아가는 의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동그랗게 뚫린 책상 한가운데에 들어가서 얕지만 아주 여러 가지인 취미 생활들을 늘어놓고 싶었죠. 그때 제 관심사가 줄에 구슬을 끼워 조잡한 액세서리를 만들거나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자르고 붙이는 그런 것들이었어요. 보기에는 그럴듯한데 손에 끼우면 따가운 비즈 반지 같은 거요.

 

김¯ 비즈 공예가 유행을 했었죠.

혜영¯ 맞아요. 저는 용돈 모아서 책도 사고 했었어요. 책에 나와 있는 것 중 가장 쉬운 걸 만들어서 보여주면 엄마는 꼭 벌건 광대를 올리며 웃으셨어요. 아빠는 ‘우리 딸은 뭔가 될 거 같다’고 말해줬고요. 근데 사실 저희 아빠 말은 신빙성이 없어요. 제가 한 달 남짓 한 짧은 기간 동안 발레를 배웠다 치면 김 발레, 글쓰기 학원에 다니면 김 작가라고 불렀거든요. 저는 그런 사소한 칭찬들로 자라고 있었어요. 그런데 나이 차이가 거의 안 나는 친오빠가 매번 100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왔어요. 저는 신발주머니에 대충 넣어 온 한자 외우기 왕 상장이 다였는데.

 

김¯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나요?

혜영¯ 음. 아니요. 저는 저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었어요. 포기할 건 하고 재밌는 거만 하자. 근데 제가 많이 산만하고 집중력까지 없어서 끈기 있게 할 수 있는 게 몇 없더라고요. 생각은 많으면서. 개미굴처럼 많은 생각의 방을 만들었어요. 근데 또 기억력까지 안 좋아서 그걸 다 까먹을 거 같은 거예요. 그게 너무 아까워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김¯ 끈기 있게 할 수 있는 게 생겼네요.

혜영¯ 네. 그래서 누가 취미나 특기를 물어보면 낙서라고 대답했다가 조금 바보 같아서 그림 그리기라고 정정해서 말했어요.

 

김¯ 그때부터 그림과 함께였네요. 어떤 걸 그리나요?

혜영¯ 공간이 생긴 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을 수 있으니 많이 울기도 하고 생각도 많이 했어요. 생각이 많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고민도 많잖아요. 그걸 머릿 속에 나열하자니 연상되는 이미지가 너무 많은 거예요. 진이 빠질 만큼. 그래서 마무리로는 꼭 아무것도 없는 빈터를 떠올렸어요.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새로운 관계를 맺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즐거웠지만, 어느 순간 많은 소리가 소음으로 느껴지더라고요. 그럴 때는 저도 모르게 마음속 공간으로 회피를 했죠. 남들이 보면 ‘얘 또 멍때리네’ 했겠지만.

 

혼자서 생각을 할 때 집을 떠올리거든요. 외딴 바닷가의 집이요. 시끄러운 마음이 파도 소리에 묻히면 어떨까 상상하곤 해요.

 

그리고 그림 앞에 서 있는 관객도 분명 그만의 어려움이 있을 거예요. 내가 쉬고 싶고, 혼자 있고 싶은 이 그림 속 공간을 그들에게 주고 싶어요. 모두 너무 무리 말고 조금이라도 쉬어요. 그런 의미를 가진 그림들을 그려요.

 

김¯ 아침에는 어설픈 명상으로 시작을 하는데요. 하루 마무리에 하는 게 있나요?

혜영¯ 엄마랑 밤에 기도를 한 지 15년이 넘었어요. 정말로 매일 해요. 기독교라고 말은 못 하겠지만 엄마가 하자고 해서 했어요. 저희 이모가 신실한 기독교 신자신데, 동생한테 매일 저녁에 기도해보자 했고 엄마는 그렇게 했어요. 우리는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하는 사람이랑 감사와 바라는 것에 대해 기도하는 역할로 나눠 격일로 번갈아 가면서 해요. 교회에는 나가지 않으니까 그냥 저희 식으로 하는 거예요. 가끔 오늘은 엄마가 기도할 차례야! 라고 티격태격해요. 주기도문, 사도신경은 입에 붙어서 별 생각 없이 욀 수 있거든요. 그런데 기도는 생각하면서 말을 해야 하니까 가끔 좀 귀찮아서요. 그래도 10년을 넘게 하다 보니까 제 패턴도 만들어졌어요. 일단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씩씩하게 해낼 수 있도록 기도해요. 다음은 우리 네 가족 항상 안부 묻고 웃으며 지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고요. 그리고는 바로 떠난 사람들에 대해 말해요. 이것도 입에 붙을 정도로 외웠어요.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 또 할아버지. 그 뒤에는 반려동물들, 우리 곁에 잠시라도 있었던 주변인들, 친구의 어머니와 할머니, 식당 했을 때 자주 오셨던 단골 아주머니, 마음이 쓰였던 연예인들 등이 천국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요. 그런 다음엔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 아픈 사람에 대해 생각해요. 그들이 아프지 않게 도와달라고 말해요. 이렇게 15년간 해왔는데도 저는 기독교라고 말하고 다니지는 않아요. 엄마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저는 그냥 마음 편하려고 하는 거거든요. 그래도 하루 마무리에 소중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서 그게 좋아요.

 

제가 애니메이션 중에 <코코>를 제일 좋아하거든요. 멕시코 사후세계가 그렇게도 매력적이에요. 세상에 남아있는 사람이 떠나간 사람에 대해 기억만 해주면 그 안에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거든요. 하지만 반대로 잊히는 사람은 그곳에서 한 번 더 죽어야 해요. 가루처럼 사라지거든요. 그걸 보고 생각했어요. 내가 계속 잘 기억하고 있으니까 다들 괜찮게 지내고 있겠지. 나중에 올라가서(?) 만나면 내가 그렇게나 열심히 생각했다고! 하고 조금 생색도 내고 싶어요.

 

김¯ 나에 대해 생각하다가 남에 대해 생각을 하며 끝나는 거네요.

혜영¯ 맞아요. 저는 다른 예술 작품을 향유할 때 조금이라도 저를 대입해서 감상 할 수 있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지금까지는 나는 이런 일을 겪었고 이런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이야기해 주는 걸 좋아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타인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제가 누군가를 만나 그려진 그림이 전시되거나 혹은 출판물로 세상에 나왔을 때 이걸 본 또 다른 평범한 이가 들려줄 이야기들이요. 하나의 그림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쌓일 수 있을지 궁금하거든요. 모두 다른 삶에서 나오는 것들이 폭을 넓혀 줄 것 같아요. 나도 이런 적이, 이런 감정이 있었는데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김¯ 그 안에서 특별히 주의하고 있는 부분이 있나요?

혜영¯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분명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이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이야기 속에서 누군가가 상처받거나 너무 소외당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잘 만들어 보고 싶어요.

 

김¯ 자 그럼 팔을 X자로 만들어 자신을 안아줍시다.

혜영¯ 그럽시다.

 

김¯ 몇 번 두드려도 줍시다. 잘했다. 잘한다. 잘 해낼 거다.

혜영¯ 그럽시다. 잘해봅시다.

 

 

물결이 내는 소리_91cmx91cm_광목에 채색, 유채_2021

 

 

#1

물에 잠긴 듯한 날을 보낸다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날씨 좋던 평일 오후에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길 끝에 있는 정신과 의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대기 의자에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고, 또 한편으론 나만 이런 건 아니구나 싶었다고도 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살짝 쳐다봤다. 그 눈빛의 의미를 알 것 같아서 이렇게 말했다.

 

“나도 몰랐는데 마음이 아플 때도 약을 정말 잘 먹어줘야 한대. 마음이 너무 아파서 몸까지 아프게 돼버리는 경우가 있다더라고. 이 이야기를 해준 친구는 학교 가는 길에 그냥 차에 치여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대. 사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놀라지 않은 척을 할 수가 없었어. 나는 그 친구를 잘 몰랐고, 나는 나조차도 잘 모르니까. 그런데 너는 길을 잘 건너서 병원으로 갔구나.”

 

그리고 친구 손등에 내 손을 올려 몇 번 두드렸다.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섣불리 공감한다고, 이해한다고 할 수가 없어서 미지근하게나마 마음을 전했다.

“넌 평소엔 독불장군 같으면서 이럴 때 보면 참 따듯하더라.”라는 말로 대화가 끝났다.

 

#2

며칠 뒤 엄마와 나, 큰삼촌, 작은삼촌 넷이서 산소에 다녀왔다.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에 나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계신다. 매일 밤 중얼거리는 기도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분들이다. 남선과 복실이라 쓰인 비석의 패인 부분을 만져보다가 맨 아래 구석에 있는 내 이름 혜영에 시선을 오래 두었다.

 

돌아가는 길 작은 바닷가 앞에 차를 세웠다.

오랜만에 엄마 아빠를 만나고 온 세 남매의 소리, 동네 꼬마들 소리, 해안도로의 빠른 자동차 소리 같은 것들이 가득했다. 찰박찰박 쏴아 쏴아 하는 파도 소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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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너무 사소해서 잘 안 하게 되는 말들이 있다. 별거 아니라는 말로 넘겨버리는 말. 그렇게 담아둔 말을 나는 공책 한켠에 마구 휘갈긴다. 언제나 한 글자 위에 다음 글자를 겹쳐 써서 결국은 아무도 알아 볼 수 없는 까만 네모만 남는 식이다. 모래가 종이라면 까만 네모를 만들지 않고 파도에 쓸려 가게 둘 텐데,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모래 위를 자꾸만 씻어내는 물결에 시선이 옮겨간다.

 

물결이 내는 소리는 조용하다. 주의를 기울여 조용함을 듣는 것은 다정하게 관심을 가지는 것과 같다. 사소하지만 분명하게 있는 이야기들을 만나고 싶다.

 

 

 

‘김혜영의 혜영들’은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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