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영

 

새벽 바다를 보러 갔다. 해 뜰 무렵의 바다를 보고 싶어서 겨우 눈곱만 떼고 서쪽으로 향했다. 차는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심을 벗어났고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검푸른 하늘 아래 벌판만이 광막했다. 불어오는 바람에서 달고 짠 맛이 났다. 오랜만에 느끼는 고요한 기분 속에서 생각보다 가까운 이곳을 자주 찾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리운 마음 열두 달을 모아 일여 년 만에 보러 간 바다였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을 시간. 푸르스름한 새벽안개 속에서 부드럽게 들락날락하는 파도를 바라보다 문득 맨발로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발을 벗어 손에 들고 시시각각 다른 빛깔로 변해가는 하늘을 보며 파도의 끝자락을 따라 걸었다. 물 섞은 군청색 같던 하늘 한쪽 구석이 그새 희미하게 밝아오려 하고 있었다. 파도가 복숭아뼈 언저리에서 차올랐다 빠지며 내가 남긴 발자국을 부지런히 지워내는 동안 나는 모음으로 가득한 노래를 불렀다.

 

오오오 오 오오-

스르륵, 쏴아.

 

우우우 우 우우-

스르륵, 철썩.

 

물가에서는 소리가 먼 데까지 간다. 소리가 물을 타고 멀리 나아가서일까. 바다를 이루는 무수한 물방울에 음을 실어 멀리 보내는 상상을 하며 입술을 둥글게 모아 소리를 냈다. 원을 그리며 멀어지는 소리 사이로 파도가 쉼 없이 들어오고 사라졌다. 파도는 육지로 빠르게 밀어닥친 후 느리고 신중한 몸짓으로 바다로 빠져나가길 반복했고 그 비대칭적인 리듬을 따라 내 호흡도 덩달아 길어졌다.

요가에서는 숨을 내쉬는 일이 들이쉬는 일보다 중요하다. 잘 내쉬면 자연스럽게 잘 들이쉬게 되기 때문이다. 끝까지 제대로 뱉어내 텅 비워진 자리에 비로소 신선한 공기가 들어온다고 믿는다. 긴 날숨에 집중해 수련한 날이면 가슴께에서 깔딱깔딱하던 숨이 어김없이 배꼽까지 깊어져 있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밀려오는 파도처럼, 잘릴 듯 잘리지 않고 불어오는 바람처럼 길고 규칙적인 숨이다.

긴 숨은 노래할 때도 중요하다. 일상적으로 이끌어 가던 숨의 박자를 끊고 새로운 리듬으로 호흡하는 일이 노래의 본질이라고, 근거 없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유독 숨을 길고 오래 뱉어야 하는 노래들을 좋아하는 탓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노래란 조금 다른 식으로 뱉는 한숨이다.

몸에도 창문이 있다면 나는 할 수 있는 한 활짝 열어둔 채 해변을 걸었다. 노래를 하면서 탁한 공기를 게워내고 소금기 가득한 푸른 공기를 넉넉히 들였다. 파도 소리에 맞추어 몸속 깊이 쌓인 침전물을 긴 날숨에 실어 보냈다. 언젠가는 나도 좋은 것을 내보내고 싶다.

다행히 좋은 것이 내 안에 없어도 좋은 가사들은 많아서 어느 정도 가능하다. 가사가 멋진 이유는 평범한 단어, 몇 줄의 쉬운 문장으로 길고 어려운 글로도 해내기 어려운 일을 해내기 때문이다. 아마 그것은 말에 음을 얹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근사한 일일 것이다. 멋진 가사들 덕분에 살면서 힘든 순간들을 뭉개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이야기처럼, 좋은 가사는 몇 번이나 다시 읽고 또 따라 부르게 된다.

 

 

Prout’s Neck, Breaking Wave | Winslow Homer [출처]

 

 

비 내리는 유월 저녁, 작은 책방에서 열린 시 낭독회에 간 적이 있다. 우산을 쓰고 도착한 그곳엔 이미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일찌감치 와 있었다. 벽을 따라 빼곡히 늘어선 책장은 어둠 속에 모습을 감추고, 조도가 낮은 주황색 조명이 와인과 치즈, 빵으로 가득한 테이블 위를 비추었다. 우리는 테이블 주위로 둘, 셋 혹은 넷씩 둘러앉아 직접 낭독을 하거나 남이 낭독하는 걸 들었다.

 

그대가 내게 불러주던 그 노래를

나 언제나 듣고 있으리니*

 

사람의 목소리는 폐로부터 나온 공기가 성대의 막을 진동시키면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언가를 말할 때마다 아주 작게라도 떨리게 되어 있다. 스스로 떨리지 않고는 말할 수 없다. 모든 말, 모든 노래는 한 존재를 울리고서야 나온다.

그날 밤 나는 잠자리에 누워 우리가 만들어낸 떨림과 울림이 책방 안에 갇히지 않고 문틈으로 회절回折되거나 유리창 너머로 굴절되면서 먼 데로 퍼져나가는 상상을 했다. 물결을 닮은 그것이 한 존재로부터 퍼져나가 그곳에 앉아 있던 모두를 감응시키고, 주황색 전등을 깜빡이게 하고, 잔 속의 와인을 찰랑이게 하고, 그러고도 더 멀리 퍼져나가 아무도 가본 적 없는 해변에 닿는 상상을, 우리가 한 시간 넘게 소리 내어 읽은 그 많은 단어와 문장이 파도가 되어 밀려오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끝내 지구를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소리는 공기를 매질로 하는 파동이므로 공기가 없는 우주에는 소리도 없다. 적막하고 광활한 우주에서 노래가 울려 퍼지는 이곳은 푸르고 둥근 별. 무인도에 버려진 라디오처럼, 언제까지고 울려 퍼지는 노래에는 특정한 수신자가 없다. 그것은 어딘지 무해한 광경이다.

또한 더없이 애틋한 광경이다. 말하고 노래하는 일. 보드랍고 말랑한 입술을 모아 음을 싣는 일.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시시한 일이면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결국 모든 것인 일이다.

 

 

Equivalent | Alfred Stieglitz [출처]

 

 

어느 해 여름에는 그런 광경 속에 있기도 했다.

너와 나는 새벽에 높은 곳에 올라 함께 바람을 맞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어렸고 모든 게 불확실한 시절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하고 싶은 일도, 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도무지 스스로를 믿을 수 없어서, 우리는 웃자란 풀처럼 지나가는 바람에도 쉬이 흔들리곤 했다.

못난 나는 그럴수록 강한 척을 했다. 나는 강하고 싶은데 약하고, 독립적이고 싶지만 기대고도 싶고, 위로를 받으면 자존심이 상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되고 싶은 사람을 연기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네가 떨리는 목소리로 간직해온 마음을 고백했을 때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 크게 놀랐다.

어떻게 불안한 가운데서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고작 자기 자신도 믿지 못하면서 다른 누군가를 덜컥 믿어버리는지. 세상이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 이를테면 사랑이니 용기니 하는 것들 우리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지. 그건 마치 가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닮았다. 무한하고 무모한 마음, 외면하고 싶을 만큼 벅찬 마음이다.

너의 평범한 고백의 문장은 여전히 나를 울린다. 아무것도 아닌 문장을 지금도 가끔 곱씹어 본다. 스스로도 잘 믿기지 않아서 자꾸 복기하는 이야기, 자꾸만 다시 해보고 싶은 이야기, 한 번으로는 안 되는 이야기의 특성이다. 뻔하고 유치한 사랑 노래가 무수히 많은데도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이유다.

시간이 많이 흐른 어느 날 텅 빈 거리에서 네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본 적이 있다.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성격 좋은 사람인 양 능글맞게 군 날. 쓸데없이 빙글빙글 웃어 보인 날. 집에 곧장 들어가기 어려워서 먼 길을 택해 오래 걸어도 잠이 잘 오지 않는 날. 그런 날 나는 작게 네 이름을 말해본다. 우리 조금 덜 영리하던 시절 속 네 이름을 부르면 나도 네 옆에 있던 그 날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

 

무언가를 호명할 때 일어나는 일을 안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바다’ 혹은 ‘엄마’라고 소리 내어 말하면 그것이 두둥실 내 앞에 떠오르고 그러면 나는 그것을 만지고 싶다. 두 팔 크게 벌려 안고 싶다. 뛰어들고 싶다.

붉게 터오는 하늘 아래 눈꺼풀처럼 소록소록 감겨오는 파도를 보며, 나는 이제 ‘잠’이라고 소리 내어 말해본다. 그러면 내 마음은 별안간 애틋해지고 아직 자고 있을 이름 모를 이들의 숙면을 아무 이유 없이 소망한다. 그들의 평안한 밤과 새벽을, 길고 고른 숨을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무모하게 믿고 싶다. 노래 가사처럼 좋은 것이 내 안에서도 드물게 생겨난다는 사실, 그 무해한 마음이 단지 무언가를 작게 소리 내어 말하는 일로 가능해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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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프레베르Jacques Prévert, 「낙엽Les Feuilles Mortes」 [본문으로]

 

 

 

‘마음의 지도’는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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