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영

 

해 질 무렵 삼청동에 갔다. 날이 좋아 걷다 보니 광화문에서 시작한 산책이 길어졌다.

산책을 좋아한다. 풍경의 변화 속에서 생각이야 제멋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고 그저 몸을 움직여 나아가는 일을 즐긴다. 그것은 무언가로 깊이 빠져들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빠져나오는 일, 일어나는 생각을 알아차리고 또 그 생각에서 풀려나는 일이라는 점에서 명상과도 닮았다.

 

거리에 옅은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가파르게 솟은 언덕 너머로 저녁노을이 섞여들고, 비탈 아래 빼곡히 들어선 가게 하나둘씩 불을 밝혔다. 나는 곧 파스타 가게 오른편으로 난 좁다란 계단, 경사는 심하지만 언덕 위 동네로 올라가는 지름길을 찾아냈다. 아래로 구멍이 숭숭 뚫린 철제 계단을 난간에 의지해 위태롭게 올랐다.

‘북촌 한옥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유명세를 탄 이후 관광객으로 조용할 날 없는 곳이지만 그날은 고즈넉한 가운데 저녁밥 짓는 기운만이 감돌았다. 각자의 마당을 품고 늘어선 한옥들이 문을 닫아걸고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마다 사연 있는 집들이 어스름 속에서 자신을 지워갔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면 그게 어디든 나름의 규칙이 있는 법이다. 가파른 언덕 위 아름다운 한옥마을도 예외는 아니다. 쓰레기는 어디에 내어놓는지, 무슨 요일에 수거해 가는지. 담배는 어디서 피우는 게 좋은지. 주차는 어떻게 하는지. 눈 쌓인 골목은 어디까지 쓸면 되는지.

이른바 생활의 규칙이다. 외부인은 모르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이라면 알아야 하는 규칙.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여러 규칙 덕분에 이곳도 그럭저럭 유지된다. 사연이야 집집마다 있겠지만 이를테면 음식물 쓰레기는 아무튼지 감나무 옆 전봇대 밑에, 매주 화∙목∙일요일 일몰 이후 내어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규칙이 있어서 제각기 엉망진창인 삶도 겉으로는 그럭저럭 굴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아무리 슬프고 화나는 날에도 초록 불에 길을 건너고, 같은 시간에 가게를 열고, 수업을 하고, 범인을 잡고, 마감일에 맞춰 원고를 보낸다. 하지만 무표정하게 재깍재깍 돌아가는 일들 뒤에 숨겨진 진짜 표정은 어떨까. 간혹 울먹이고 자주 허둥대는, 불안과 환희가 동시에 깃든 얼굴. 그 기이하고 익숙한 표정.

 

Houses at Murnau, Vasily Kandinsky [출처]

 

하늘은 이제 완연히 붉은색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멀리 서쪽으로 북악산 능선을 따라 점점이 불이 켜지고 언덕 아래 건물들이 어둠에 잠기는 광경을 보면서 나는 조금 쓸쓸하고 황홀해졌다.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뚱땅뚱땅

 

동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은 피아노 학원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여느 동네마다 있을 법한 흔한 피아노 학원인데도 언덕의 고도 때문인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풍경 때문인지 모든 게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우리의 어설픈 꼬마 연주자는 틀리는 부분에선 어김없이 틀리고 자신 있는 부분에서는 냅다 속도가 빨라졌다. 피아노 학원에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치게 되는 하농이며 체르니 같은 곡이었다. 옛날 생각이 나서 설핏 웃음이 나왔다.

포도송이에 웬 포도알을 그렇게 많이 그려주는지. 곡마다 알알이 열린 포도송이를 정말로 다 채운 적은 물론 거의 없었다. 거짓말로 그어 가면서도 겁은 많아서 선에 주의를 기울였다. 일정한 두께로 속도감 있게 그어진 선들은 거짓으로 한꺼번에 그었음을 들통나게 할 테니까.

그래도 나는 대체로 시킨 일은 곧잘 하는 편이었다. 자수성가한 베이비부머 세대 부모 밑에서 장녀로 자라자면 어느 정도 모범생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치열하게는 하지 않았지만, 아홉 살이 무언가를 치열하게 한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정복해가는 기쁨은 몰랐지만 즐기는 법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피아노를 치며 보냈던 일요일 오후를 기억한다. 내가 치는 곡은 거의 정해져 있었다. 앞표지가 다 떨어지려 하는 <피아노 소곡집>에서 익숙한 페이지를 자신 있게 펴고 악보대에 세운다.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도록 고무줄로 고정한다. 먼저 <즐거운 나의 집> <알로하 오에> <산타 루치아>를 신나게 친다. 그리고 좋아하지만 끝까지 치지는 못하는 <은파>를 절반까지만 쳐본다. 떠듬떠듬하는 내 연주에 내가 지루해질 때쯤 <월광>의 쉬운 부분만 골라 치며 감성에 젖은 채로 그날의 연주를 마무리한다.

 

Painting with Green Center, Vasily Kandinsky [출처]

 

요는 자신 없고 골치 아픈 곡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원에서야 치기 싫은 곡도 억지로 쳐야 하지만 일요일 오후까지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나의 아홉 살 인생은 그럴 수 있었다. 치기 싫은 곡은 외면하면서, 안 치고도 친 척하면서. 좋아하는 곡만 자신 있게 치면서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의 꼬마 연주자도 학원이 끝나면 집에 가서 엄마가 차려주는 저녁을 먹고 피아노 같은 건 까맣게 잊고 푹 잠들 것이다. 그러기를 바란다. 낮에 자꾸 틀렸던 부분이 꿈에서까지 그를 괴롭히지는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홉 살의 인생과 같고 또 다른 어른의 인생에 관해 생각해본다. 하기 싫은 일이라도 결국은 해야 하고, 안 하고도 한 척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어른의 인생은 아홉 살의 인생과 다르다. 한편 곤란한 일은 나 몰라라 얼렁뚱땅 넘어가는가 하면, 사소한 성공에 대해서도 말이 빨라지는 어른의 얼굴에서는 영락없는 아홉 살짜리 꼬마 연주자를 본다.

그 어른은 소심하면서도 허풍이 심하고, 고약한 버릇을 가지고도 자신감이 있다. 다만 낮이면 당당한 표정도 밤이면 실패에 이를 갈며 수치심에 얼룩진다는 점에서 아홉 살로 살아가는 데 결정적으로 실패한다. 그는 대체로 푹 자지 못한다. 취약한 긍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의 일그러진 얼굴. 나의 얼굴이자 가까운 이들의 얼굴이다.

 

Nocturne: Blue and Gold—Southampton Water, James McNeill Whistler [출처]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밤이 깊었으나 개의치 않고 북악산 남동쪽 기슭에 위치한 삼청공원으로 향했다. 먼저 올랐던 철제 계단과는 또 다른 느낌의 나무 계단을 오르며 산행 아닌 산행을 했다. 사람 사는 곳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불빛도 점차로 약해지고 멀어졌다. 흰 달빛이 환해도 어둠을 밝혀주진 못했다. 검푸른 잎사귀의 움직임을 느끼며 나는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올라가는 일에는 어떤 공통된 기대가 담겨 있다. 그 기대란 오르는 방향에 따라, 높이에 따라 계속해서 달라질 풍경을 마주하는 일이다. 뒤로 돌아볼 때마다 달라지고 또 넓어지는 풍경 속에서 지나온 것들이 작아져 간다.

한 이십 분쯤 오른 후 돌아본 풍경 속에서 도시의 야경이 작은 웅덩이처럼 둥글게 고여 있었다. 적막한 우주에 홀로 떨어져 나와 지구를 보는 게 이런 느낌일까. 내가 아는 도시가 멀리서 소리 없이 반짝였다.

날마다 저 야경의 한 부분을 이루며 복작거렸을 내 삶이 낯설게 느껴졌다. 수선스럽고 지지부진한 삶이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기도 했다. 익숙한 풍경이 달리 보이는 일은 산책 중에 자주 있는 일이다.

어쩐지 그곳에서 일어나는 아비규환이 평소처럼 환멸스럽지 않았다. 우리를 웃기고 울리는 흔해 빠진 레퍼토리가, 눈물 콧물 쏙 빠지게 하는 신파극이 안쓰럽고 어여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낮까지만 해도 내가 속해 있던 그곳이 오래된 장난감처럼 귀엽고 소중해서 나는 한참을 바라봤다.

 

그만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문득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간혹 울먹이고 자주 허둥대는, 불안과 환희가 동시에 깃든 얼굴. 묘하게 일그러진 그 기이하고 익숙한 표정이 그리웠다. 내 것이면서 당신의 것이기도 한 애증의 얼굴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내려가면 소심한 당신이 큰 소리로 얘기하는 허풍을 잘 들어봐야지. 멀쩡해 보이는 표정 뒤에 당신이 숨긴 간밤의 얼룩을 잘 들여다봐야지. 마음이 바빴다.

 

거의 다 내려와서 뒤를 돌아봤다. 밤하늘과 분간이 안 되게 깜깜한 산의 초입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언젠가 미움이 너무 커져서 어찌할 줄 모를 순간에 다시 올라올 것이다.

그게 언제일까. 나는 아득한 기분을 느끼며 도시의 불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음의 지도’는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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