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영

 

“안내 말씀드립니다. 전력 공급 방식 변경으로 객실 안 일부 전등이 소등되며, 냉난방 장치가 잠시 정지되오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열차가 덜커덩거리며 일순간 속력을 줄였다. 불 꺼지는 소리와 함께 객실에 어둠이 깔렸다. 모두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천천히 열차 굴러가는 소리가 공기를 채웠다. 창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핀조명처럼 사람들의 옆모습을 환하게 비추었다. 낯선 이의 한쪽 뺨에 내려앉은 온기를 생각하며 나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지하철의 좌석 배치에 불만을 품은 적이 여러 번이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일렬로 앉혀 서로 마주 보게 하다니. 물론 나도 안다. 좌석을 한 줄로 가장자리에 붙임으로써 중앙에 넓은 공간이 확보되고 덕분에 많은 인원이 탑승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간 잔인한 처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삼십 분 이상씩 모르는 사람과 마주 보고 있는 일은 꽤 고역이다. 모르는 사람을 정면으로 빤히 쳐다보는 건 실례니까. 나는 지하철만 타면 죄지은 사람처럼 아래만 본다. 눈도 피곤하고 목도 뻐근해서 어쩌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지만 그러다 앞사람과 눈이라도 마주칠 때의 어색함이란. 나는 곧바로 후회하며 다시 아래로 시선을 꽂는다.

 

Photo by Sabri Tuzcu on Unsplash

 

버스는 다르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버스에서는 사람들이 마주 보지 않고 같은 방향을 보고 앉는다. 모두 각자의 조망권을 확보한다. 다 같이 평화롭게 차창 밖 풍경을 누린다. 누군가의 뒷덜미에 시선을 두어도 죄스럽지 않다. 급하지 않으면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버스를 타는 이유다.

버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는 맨 뒷줄 양 끝의 구석자리다. 뒷바퀴 바로 위에 위치하다 보니 다른 좌석보다 삼십 센티 정도 높아서 앉으면 버스 안팎의 풍경이 훤하다. 수많은 사람이 타고 내리는 버스지만 구석자리라 아지트처럼 아늑하다. 그 안온한 자리에 앉아 나는 아무 죄책감도 없이 사람들의 옆모습과 뒷모습을 본다.

무심히 창밖을 보는 사람. 지나치는 정류장을 예의주시하는 사람.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 사람. 누군가와 통화하는 사람. 한 정거장 전부터 지갑을 꺼내는 사람. 딴짓을 하다가 허둥지둥 하차 태그를 찍는 사람. 졸다가 차창에 머리를 박으며 화들짝 깨는 사람. 옆 사람 어깨에 기대어 자는 사람. 짐이 무척 많은 사람. 맨몸으로 탄 사람. 타자마자 앉는 사람. 빈 좌석이 있는데도 서서 가는 사람.

 

평일 오후의 버스는 한적한 도로를 가로지른다. 조금씩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머리칼이 흩날린다. 버스가 빌딩 숲 사이를 빠져나가며 햇살이 사람들의 눈가와 뺨, 목과 어깨를 핀조명처럼 훑고 지나간다. 그리하여 그들의 옆모습과 뒷모습이 이야기를 흘린다.

앞모습과 달리 미처 가다듬지 못한 옆모습과 뒷모습은 무방비 상태다. 깊거나 얇게 패인 눈가. 튀어나온 광대. 살짝 벌리거나 꽉 다문 입술. 중력이 끝내 만든 주름. 어깨로부터 등으로 떨어지는 둥근 선. 그런 것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궁금해진다. 그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중인지. 무엇을 믿으며 사는지. 겪어본 중에 가장 큰 절망은 무엇인지.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자신보다 아끼는 사람을 만났는지. 그 사랑은 여전히 유효한지.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한 적도 있는지. 복수나 용서 같은 걸 해봤는지.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데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진짜 이야기는 관자놀이에, 귓바퀴에, 머리칼 끝에 있다. 또는 호흡에 따라 오르내리는 등의 움직임에, 불편감에 못 이겨 자꾸만 고쳐 앉는 자세 속에 있다. 진짜 이야기는 정면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옆이나 뒤에서 비스듬히 볼 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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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버스였다. 당시 사귀던 남자 친구를 만나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하고 약속 장소인 명동으로 가던 참이었다. 주말 저녁 시간이라면 응당 지하철을 타야 할 것을, 기어코 버스를 탔다가 늦어버리고 말았다. 주차장 같은 도로 위에서 버스가 거북이마냥 기어갔다. 시간을 확인할 때마다 조바심이 커졌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이유가 그뿐만은 아니었다. 그저께 남자 친구와 크게 싸운 후 얼굴을 보는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화해하는 날까지 시간 약속을 어기는 여자친구라니. 게다가 나는 아직 그날의 싸움에 대해 할 말이 많은데. 이대로라면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을 텐데. 한시바삐 내리고 싶은 마음에 약속 장소에 가까워질수록 목이 빠져라 도로를 살폈다.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은 만나기로 한 빌딩 앞을 조금 지나쳐서 있었다. 신호란 신호마다 모조리 멈춰 서던 버스 위에서 입이 바싹바싹 말라가던 중 빌딩이 멀리 모습을 드러냈다. 하차 버튼을 누르고 싶어서 나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엉덩이를 들썩였다. 카드 지갑은 벌써 세 정거장 전부터 손에 쥐고 있었다. 튀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차창 너머로 빌딩 앞에 서 있는 남자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그저께 싸울 때와 다르게 평온해 보였다. 크게 기쁜 일도 괴로운 일도 없는 주말이 주는 평온함이었다. 그런데 뭔가 낯설었다. 컬이 살짝 풀린 머리칼 아래에 자리한 눈매, 가만히 한곳을 응시하는 그 눈길에 내가 익숙하게 여기는 그의 다정함이 빠져 있었다. 말하자면 차가운 평온함. 내 앞에서 보여주는 평온함과는 다른 종류의 평온함이었다. 보는 사람이 없을 때 무심결에 흘리는 모습이었다.

 

Photo by 13on on Unsplash

 

가볍게 다문 입.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은 눈. 하나 풀어놓은 남방 단추. 걷어 올린 카디건 소매.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 나의 특별한 남자 친구이기 전에 21세기를 살고 있는 평범한 이십 대 남자인 그가 서울 시내 한 빌딩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도 고민이 있을 것이다. 여자 친구에게도 말 못 할 고민이 있는지도 모른다. 연락 문제나 말버릇 같은 연인 관계에서 생기는 사소한 문제 말고도 사회 진출을 앞둔 이십 대 청년으로 가지는 압박감, 부모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 쌓여가는 학자금 대출로 인한 답답함 같은 것들. 그 외에도 여자 친구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어떤 일들도 있을지 모른다. 마주 보고 싸우던 날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멀리 보이는 그의 옆모습에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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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모습을 믿지 않는다. 앞모습에는 투명한 유리 같은 게 있어서 우리가 그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걸 방해한다. 종종 눈이 그런 유리가 된다. 눈동자를 통해 상대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를 보는 내 모습만 발견할 때도 적지 않다. 이해는 요원하기만 하고 영원히 상대를 알 수 없을 거라는 절망이 우릴 회의로 몰아넣는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와 마주 보고 있으면 왠지 방어적으로 굴게 되는 것 같다. 내 입장을 똑바로 밝혀야만 할 것 같다. 혹은 반대로 상대의 입장에 무조건 동의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나를 향해 상대가 친 공을 그대로 되받아치거나 되받아치지 않거나 할 수밖에 없는 게임 같다.
스쿼시는 다르다. 테니스와 다르게 스쿼시에서는 마주 보고 플레이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벽을 보고 친다. 한 사람이 벽을 향해 서브한다. 날아간 공이 벽에 맞아 튕겨 나온다. 다른 한 사람은 튕겨 나오는 공의 각도를 보고 몸을 움직여 받아낸다. 두 사람이 다양한 각도를 이루며 공을 주고받는다. 오가는 공 사이에 어떤 자리가 생긴다. 대화라면 그것은 질문의 자리일 것이다.

 

Photo by Ilario Piatti on Unsplash

 

경복궁 담장을 따라 늘어선 나무의 수종은 은행나무다. 봄이면 연한 연둣빛으로, 가을이면 노랗게 물드는 그 나무들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는 카페가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이제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곳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종종 초대했었다. 풍경이 아름다워서 좋았고 커피가 맛있어서 좋았고 선곡이 탁월해서 좋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창밖을 보고 나란히 앉을 수 있는 바 테이블이었다.

마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었다. 사랑하는 이들과 바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궁궐 담장을 따라 줄지어 선 은행나무를 보며 대화하곤 했다. 이야기는 창밖을 향해 던져지고 그 이야기가 궁궐 담장에 맞아 튕겨 나올 동안 내 안에서 질문이 자라났다. 그 안온한 각도 속에서 내 생각은 더 적게 하고 상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나란히 앉아 서로를 향해 떠나는 모험 같다. 스스로를 잃어버리기 위해 떠나는 모험이다.

 

히터도 에어컨도 필요 없는 계절이 오면 나는 버스를 타고 모험을 떠난다. 맨 뒷줄 구석, 그 안온한 자리에 앉아 핀조명 같은 햇살 아래 드러나는 이야기를 기다린다. 당신이 흘리는 이야기를 붙잡고 당신의 옆이나 뒤를 통해 들어간다. 그 안에서 나를 잃어버리고 싶다. 그 속에 오래 살고 싶다.

 

 

 

‘마음의 지도’는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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