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영

 

오후 여섯 시,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다. 낮 동안 밀폐된 채 달구어진 집은 그야말로 찜통이다. 땀으로 불쾌해진 운동화를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거실 창문을 있는 대로 활짝 열었다. 더운 바람이 느리게 불어와 투명한 열기를 조금씩 흐트러뜨리는 시간. 여름이 또 하루만큼 저물고 있었다.

병원에서부터 걸어오느라 땀에 절은 옷을 벗고 속옷 차림으로 거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끈적한 등허리 밑으로 서늘한 기운을 느끼며 뱅글뱅글 정신없이 돌아가는 아이보리색 천장을 맥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속이 울렁거려 눈을 질끈 감고 옆으로 돌아누웠다.

나는 어지러움을 견디며 내 병에 관해 생각했다. 내 병은 신체의 균형을 담당하는 귓속의 돌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자리를 이탈해 멋대로 굴러다녀서 생긴 거라고, 의사가 말했다. 때문에 바로 서 있거나 누워 있을 때조차 나는 내 몸이 기울어져 있거나 회전하고 있는 듯 생각되었다. 아니다. 내가 아니라 세상이 기울어져 있거나 회전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중심을 잡고 단단히 서 있고 싶은 내 의지와 달리 세상은 좌우로 흔들리거나 회전하면서 쉬지 않고 요동쳤다. 왜곡된 그 광경이 그간 내가 겪어온 세상과 어쩌면 더 흡사해서 나는 눈을 감은 채로 쓰게 웃었다.

잘 살려고 애쓰다 걸린 병이었다. 나의 이십 대는 연이어 덮쳐오는 집채만 한 파도였고 몸과 마음의 지형을 모두 바꾼 끝에 여러 군데 잔해를 남기고 지나갔다. 나는 어딘지 진 것 같은 기분 속에서 칠여 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무연고의 지방 소도시로 내려왔다. 이십 대가 끝나기 두 해 전 일이었다.

저녁 아홉 시면 막차를 걱정해야 하는 이곳에서 종종 서울의 밤을 떠올렸다.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 활기차게 달리는 버스의 하얀 불빛을, 새벽을 가르고 진입하는 지하철의 쇳소리를 나의 자랑처럼 여겼던 날들. 겁도 없이 수다한 새벽을 건너뛰는 동안 나의 병은 그 소란한 흰빛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나 보다. 대도시의 피로한 생기를 닮은 내 병은 그러므로 조용한 법이 없다. 커다란 전광판이 설치된 8차선 도로 한가운데 있는 듯 낮은 소리로 지직거리고 높은 소리로 삐-이거리며, 마침내 그 모든 소음이 웅웅대는 소리로 뭉그러져 한데 섞여들면 나는 현기증으로 눈을 감고 약한 구역감을 견뎠다. 침을 삼켜도 해소되지 않는 먹먹함과 마음처럼 가누어지지 않는 몸 때문에 나는 자주 물속 깊이 잠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집을 벗어날 수 없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고 자연스레 집의 구석구석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알면 알수록 참을 수 없게 되는 것은 사람이나 집이나 마찬가지인 걸까. 서울서 내려와 새로 구한 집은 정체 모를 때로 손 닿는 모든 곳이 찐득찐득했다. 도무지 때가 낄 만한 곳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곳까지 꼼꼼하게 더러웠다. 세월의 때였다. 그러나 세심하게 매만져서 생긴 멋들어진 손때가 아니다. 방치해서 생긴 때, 피로와 무신경함, 얼마간의 체념이 합쳐서 만들어낸 기분 나쁜 때였다.

나는 한동안 청소하느라 바빴다. 우리가 남의 인생을 쉽게 판단하듯, 남이 만든 때였으므로 쉽게 욕하고 탓하면서. 하지만 인간이란 결국에는 적응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설령 더러움이라 할지라도 그렇다. 다만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어쩔 도리가 없기에 나는 이 모든 얼룩에 익숙해지길, 견딜 만해지길 기다리며 되는 대로 청소했다. 그중 부엌 청소는 유독 힘들었다. 시차를 두고 겹겹이 쌓인 기름때가 아무리 닦아도 잘 닦이지 않았다.

청소를 해도 티가 나지 않는 집에서 엄마를 생각했다. 내 유년의 기억 속 엄마는 매일 걸레질을 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거꾸로 한 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반원을 그리며 먼지를 몰아냈다. 벌게진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녀가 몰아내던 것이 단지 먼지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하루만 걸러도 티가 나는 것, 한눈팔기 무섭게 쌓여드는 것, 덮쳐오는 것. 그래서 기도하고 항복하는 자세로 수행하듯 매일같이 훔쳐내야만 하는 무언가가, 엄마를 자꾸만 무릎 꿇게 하는 무언가가 어린 나를 옥죄었다.

 

Photo by Denny Müller on Unsplash

 

폭염주의보가 내렸던 그날은 아빠의 대학원 졸업식이었다. 다섯 식구가 아빠 차를 타고 대학교로 향했다. 큰아들 졸업식이라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시골에서 올라오셨다. 마흔 줄에 들어선 아빠가 졸업 가운을 입고 학사모를 쓰고 나타났다. 쓸데없이 꽃 같은 거 사지 말라던 아빠 말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쓰였던지 엄마가 그사이 어디선가 꽃다발을 사 와 아빠에게 건넸다.

“하나, 둘, 셋!”

우리 삼 남매는 차례로 아빠 옆에 붙어 서서 사진을 찍었다. 엄마가 사진 기사가 되었다. 뒤이어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빠 앙편에 섰다. 양복 차림에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와 하얀 한복을 입은 할머니의 반쯤 지워진 분홍색 립스틱이 지금도 기억난다. 이제 와 생각하니 시골이 아닌 곳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뵌 게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시골서 농사짓고, 소 키우고, 장 서는 곳마다 돌아다니며 물건 팔고, 남의 집 배관 고쳐주며 키운 장남이 대학원을 졸업하는 날이었다. 자식 중 제일 가방끈 긴 장남. 그래도 자식 중엔 제일 성공한 장남. 그에게는 아직 돈 들어갈 일 한참 남은 자식이 셋이나 있었다.

그날 찍은 사진은 작은 액자에 넣어져 우리집 거실장 레이스 덮개 위에 한동안 세워져 있었다. 그러므로 아마 내 기억이 정확할 것이다. 너무 오래 터뜨려지고 있는 카메라 플래시 앞에 서 있는 듯 어색하고 피로한 대낮이었다. 그늘 하나 없는 새파란 잔디 위에서 무섭게 내리꽂는 여름 햇살을 정수리로 받아내며, 불편한 옷과 구두 속에서 그날 우리는 더위와 의무감으로 지쳐 있었다. 피할 길 없는 더위와 우글대는 인파 가운데 나는 다만 모든 게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식구 중 누구도 크게 기뻐하거나 감격스러워하지 않았다.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사진 속 아빠는 여느 때처럼 무덤덤하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진짜는 따로 있다는 듯.

지나치게 현실적인 그 사진이 나는 늘 부담스러웠다. 사진은 내가 외면하고픈 무언가를 상기시켜 주는 것 같았다. 삶에 뒤통수 맞지 않으려면 아주 가끔 찾아오는 이런 반짝이는 순간에 마음을 뺏겨선 안 된다고. 삶은 대체로 그보다 지루하며 모든 걸 내어놓으면 작은 것 하나를 겨우 지킬 수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Stacks of Wheat (End of Summer), Claude Monet [출처]

 

우리 가족은 그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은 후 거실에 모기장을 치고 함께 모여 잤다. 아빠가 미풍으로 조정한 선풍기 고개를 동생들과 나의 발치께로 수그러뜨렸다. 행여나 자다가 선풍기 바람에 질식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함이다. 아무리 더워도 얇은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는 것도 잊지 않고 강조했다. 다음 날 배앓이로 고생하지 않으려면 아빠 말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여름마다 반복되는 아빠의 이런 레퍼토리에는 어떠한 타협도 없다. 만약 우리가 더워서 선풍기 고개를 얼굴 쪽으로 올리려고 한다면 단호한 표정으로 안 된다고 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잠결에 이불을 걷어찬다면 몇 번이고 다시 이불을 덮어줄 것이다. 그것은 선택지가 하나뿐인 사람의 몸짓이다. 너희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기필코 잘 살아야만 한다는 단 하나의 선택지 앞에서 대놓고 매달리는 사람의 몸짓이다.

밤이 되어도 식지 않는 열기에 막내가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칭얼대기 시작했다. 엄마가 옆으로 돌아눕더니 한 손으로는 땀에 절어 머리카락이 들러붙은 막내의 이마를 쓸어 넘기고 다른 한 손으로는 천천히 부채질을 하며 중얼중얼 자장가를 불렀다.

자장자장

자장자장

삶 앞에서 자꾸만 을이 되고, 그래서 견딜 수밖에 없는 일이 많아지면 우리는 자주 중얼거린다. 뻔히 보이는 불행 앞에서도 ‘괜찮을 거다’ ‘별일 없을 거다’ 부질없이 중얼거린다.

엄마의 낮고 단조로운 중얼거림 위로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밤을 채웠다. 커다란 모기장이 선풍기 고개를 따라 어둠 속에서 울렁거렸다. 끈적한 다리에 징그럽게 엉겨드는 이불을 인내하며 나는 옆으로 돌아누워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고 견뎠다. 쉬이 잠들지 못하는 이 밤을,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열대야를, 질척대고 지루한 모든 것을 견뎠다.

 

Violet and Silver – The Deep Sea, James McNeill Whistler [출처]

 

견디는 것, 그것은 여름의 특성이다. 무자비한 열기 속에서 우리는 그저 바짝 엎드려 견딜 뿐이다. 지쳐서, 늘어져서, 흘러내려서 바닥에 엎드린 채 더위에 질식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밤새 삐걱대며 고개를 좌우로 젓는 선풍기 옆에서 혹은 느리게 불어오는 더운 바람 아래에서.

그렇게 해서 우리는 여름마다 지루함을 목도한다. 단풍이나 눈보라, 꽃망울로 우리의 눈을 현혹하던 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생을 장식하고 있던 것들이 여름의 열기에 녹아내리고 나면, 마침내 생의 볼품없는 몸뚱어리가 드러난다. 오래되어 삭고 누렇게 된,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거실장 위 레이스 덮개처럼. 오래되었으나 오래되기만 한 것, 의미도 역사성도 없는 것. 더는 아무 감탄도 불러일으키지 못하지만, 딱히 버릴 이유도 찾지 못하는 조악한 장식품 같은 것. 무엇도 아니나 무엇인 척 애썼던 흔적, 애썼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아닌 것.

여름에는 삶의 많은 것들이 발각된다. 아빠의 졸업식 사진에 찍힌 우리의 지루함과 피로함이 그렇다. 맛있게 담가졌다며 엄마가 환한 얼굴로 꺼내온 물김치 국물에 떠다니는 밥풀이, 날마다 산더미처럼 쌓이는 쉰내 나는 빨랫감이 그렇다. 한여름, 아스팔트 위에서는 오물이 끓어오르고 더위를 이기지 못한 집들이 대문과 창문을 열어젖힌다. 초라한 세간이 열린 틈으로 드러나고 천장과 바닥에 밴 처지와 형편의 냄새를 더는 숨길 수가 없다. 그러나 호들갑 떨 것 없다. 조용히 오래 앓아온 질병처럼 무엇도 금방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매년 여름 계곡에 갔다. 산속 응달,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은 검고 차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평평한 돌 위에 자리를 잡고 수박과 참외를 깎아 먹으며 더위를 피했다. 다슬기를 잡고 동글동글한 자갈을 줍기도 하며 잠시나마 더위를 잊었다. 하지만 속지 말자. 시원해지려고 산속까지 찾아온 그들, 충분히 몸이 식기도 전에 온기를 찾아 나설 테니. 그 욕망을 뻔히 예견했다는 듯이 산속 깊은 곳까지 진을 친 식당이며 장사꾼들의 호객 행위에 우리는 눈을 흘기다가도 기꺼이 응답한다. 더위를 피하러 간 곳에서 또다시 속을 데운다. 닭이나 생선을 푹 삶아 소금을 찍어 먹고 또 쌀밥 위에 얹어 먹는다. 맨손으로 살을 발라 제 자식 입속에 넣어준다. 벌린 입으로 정신없이 뜨끈한 국물을 속으로 내려보낸다. 찬 것과 더운 것을 쉬지 않고 오가며 여름을 보낸다. 살려고, 잘 살려고, 이 여름을 견디고 살아남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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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뭘 하려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멍하니 서 있다가 냉동실에서 얼음 하나를 꺼냈다. 빈속에 생 얼음을 와작와작 깨물어 먹으며 어둠 속에 서 있다가 지루함을 몰아내려 라디오를 켰다. 오랜만에 켠 라디오가 주파수를 못 잡고 지직거렸다. 버튼을 좌우로 아무리 돌려보아도 성가시게 섞여드는 잡음이 내 귀에서 나는 것인지 라디오에서 나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워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어느 쪽이든 완벽히 깨끗해질 순 없을 것이다. 지지직 소리가 커지며 가까워지고 작아지며 멀어지길 반복했다. 파도가 모래를 훔치는 소리를 닮아서 나는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여름이 여름이기만 하던 시절도 있었다. 바다를 보면 마냥 뛰어들고 싶었고, 사루비아나 버찌를 따 먹으며 붉거나 검푸른 입술로 동네 아이들과 몰려다니던 시절. 마음껏 바라고 욕심내던 시절.

기름때 낀 싱크대 위로 작게 난 창 밖에선 하늘이 붉게 타오르고, 나는 체념하는 편을 택했다. 아무리 닦아도 어떤 얼룩은 지울 수 없으니까, 다소간 얼룩진 마음으로 견디고 버티며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이제 안다. 다행히 견디는 일이 예전보다 쉬워진 것은 이제껏 모든 여름이 끝장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언젠가 끝난다. 이 여름도 조만간 끝장이 나버릴 것이다. 잘만 버틴다면 이번 여름도 내가 바다를 가보기도 전에 끝장날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바다를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여름을 견디겠다. 나는 이제 무엇도 기대하지 않는다. 라디오를 껐다.

 

 

‘마음의 지도’는 [월간소묘 : 레터]에 2020년 10월까지 연재되었으며, 추후 단행본으로 출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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