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산책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곳을 찾았는데, 그러고 보니 공통점이 많은 두 곳이네요. 동네서점 혹은 독립서점 1세대이기도 하고, 각각 한 번의 이사를 거쳐 새로운 장소에 소담히 자리하고 있죠. 땡스북스와 유어마인드입니다 :-)

 

이전에는 층고가 높고 환하고 개방적인 느낌이었던 두 서점이 좀 더 아늑하고 책에 집중하기에 좋은 분위기로 바뀐 후 발걸음을 더 자주 하게 됐어요. 공간만이 아니라 큐레이션이나 전시 같은 운영도 함께 변화한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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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스북스에서는 2월 25일 비올레타 로피즈 그림책 역자 북토크가 예정되어 있었죠. 코로나19 사태로 부득이 연기하면서(*4월 중 날짜는 추후 공지 예정) 아쉬운 마음을 안고 산책하러 다녀왔어요.

 

특정 책방의 소개로 알게 된 책은 되도록 그곳에서 사는 방향으로 몸-마음을 움직입니다. 땡스북스 계정에 “천천히 수를 놓으며 변화하는 그들의 모습을 따라 조금은 막막하고 불안했던 매일에 예쁘고 단단한 수를 놓을 수 있길 바랍니다”라는 소개글과 함께 올라온 <실로 놀라운 일>(김래현)을 보고는, 자수 배우는 만화라니, 실로 놀라워하며 꼭 가서 사야겠다 마음먹은 바 있고(공교롭게도(?) 유어마인드에서 나온 책이었는데 말이죠. 땡스북스 피드가 이틀 빨랐던가요.) 기쁘게 집어들었어요.

 

그리고 ‘도시, 선’ 같이 타기,라는 흥미로운 전시에 빠져들고 만 저의 손엔 어느새 <도쿄, 13개의 선>(임소라)이 함께 들려 있었습니다. 카운터에 책을 내밀자 점장님이 임소라 작가의 글이 정말 흥미진진하다고 귀띔해주셔서 냉큼 읽어보았지요. 3박 4일 동안 도쿄에서 지하철 13개 노선을 타고 온 기록,이라고 하면 어떤 책을 기대하실까요? 저는 역과 동네, 그러니까 여행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크나큰 착각이었죠. 한 노선의 기점에서 종점까지 가는 동안 저자의 시선은 내내 타고 내리는 사람들에게 꽂혀 있습니다. 지하철만 타면 모든 사람이 다 밉고 싫어지는 통에 이동이 스트레스인 저에게 이 책과 함께한 지하철 타기의 경험은 조금 경이롭기까지 했습니다. 왜지? 왜 애틋해지지? 지하철 타고 내리는 사람들 왜 사랑스럽게 느껴지지? 저자가 지닌 시선의 힘이었을까요. 특별히 다정한 것 같지는 않은데, 건조한 관찰기에서 어째서인지 타인을 대하는 성숙한 태도란 이런 것일까 배우게 됩니다. 읽는 동안 작은 웃음도 자주 터뜨렸군요. 기분 탓일 테지만, 앞으로는 지하철을 미워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을 것만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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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마인드는 일러스트레이터 한요, 박혜미 작가의 팝업 전시 소식에 매우 반가워하며 다녀왔습니다. 지난해 나온 드로잉북 중 하나를 꼽아보라면 이실장은 <어떤 날 수목원>(한요)을, 저는 <사적인 계절>(박혜미)을 내놓을 거예요. 그러니 가지 않고 배길 수 있나요. 박혜미 작가님의 <동경>을 전시로 만나볼 수 있어 크게 기뻤고 작업 도구들 중 아주 짧아진 몽당 색연필에 눈이 길게 머물렀습니다. 한요 작가님의 <베란다 베란다> 콜라주 작업물도 너무나 아름다웠고, 작업 노트는 통째 옮기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 그림은 방도가 없으니 문장 몇 구절만 전해봅니다. 빨갛게 칠해진 나무 그림 아래 이런 고민이 적혀 있었어요.

“나는 그리면서 이따금,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지겨울 때 그런 생각이 드는지, 관습적으로 그리고 있을 때 드는 건지. 뭔가 더 멋진 걸 하고 싶은 욕망인 건지.”

이 전시도 그런 고민의 연장선에 있을까요. 그림 스타일도 이야기 방식도 다른 두 작가의 작업물이 스스로의 작품 속에 머무르지 않고, 해체되고 서로 포개지면서 더 자유롭고 멋진 결과물로 새롭게 탄생한 것 같아요.

 

전시를 찬찬히 둘러보고 책들이 놓인 공간으로 이동하자 누운 책들의 커버 위로 빛이 쏟아집니다. 마스크를 쓰고 손수건을 들고서도 코로나 걱정을 잠시 뒤로한 채, 책을 골랐어요. 오후의 소묘에서 재출간을 도모하는 <동경>(박혜미)을, 악보를 선물해준 친구에게 답장하려 악보에 그려진 그림 <저녁>(휘리)을, 같은 작가의 <연필로 그리는 초록>을, 모자 뜨기의 장인에게 선물하려 엘과 몬스타의 <너의 모자>를, 빛을 선물해준 친구에게 보내려 12개의 구획으로 나뉜 커다란 창과 창밖으로 빛이 넘실대는 풍경이 아름답게 그려진 <8>(이해선)을 샀습니다. 어떤 산 책은 실패하기도 합니다. 선물하기엔 적절치 않은 글이 조그맣게 숨어 있었어요. 하지만 마음에 깊게 들어온 한 장면을 제가 오래 지니게 되겠지요.

 

“구겨진 은박지처럼 반짝이던 오후”(박혜미 <동경>)였습니다.

 

 

 

 

* ‘소소한 산-책’ 코너에서 독자 투고를 받습니다. 제 걸음이 미처 닿지 못한 곳들의 이야기도 전하고 싶어요. 분량 제한은 없습니다. 짧아도 좋고요. 자유롭게 여러분의 산-책 이야기 들려주세요. 해당 메일(letter@sewmew.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된 분께는 오후의 소묘에서 제작한 노트 세트와 신간을 보내드립니다. 소중한 원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소소한 산-책’은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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