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산 책들/

 

3월엔 조금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까 했는데 아직 조심해야 할 때네요. 부러 찾기보다 겸사겸사의 산책으로 가능한 적은 발걸음을 옮겼어요. 2월의 산책과 겹치기도 합니다. 지난달에 독립서점 1세대로 새로운 장소에 자리한 두 책방을 소개했는데, 이번엔 신촌에서 망원으로 장소를 옮긴 책방을 소개해요. 제가 무척 아끼는 장소랍니다. 짐작하시는 분들도 있겠지요 :)

 

올봄 4주년을 맞은 이후북스는 신촌 터줏대감이었다가 지난 연말 망원으로 이사했어요. 신촌점은 아늑한 사랑방 같았다면 망원점은 규모가 훨씬 커졌답니다. 클래스 룸이 따로 있고 전시 공간도 마련되어 있고요. 널찍한 서가에는 기성 출판물이 30%, 독립출판물이 70% 정도의 비중으로 채워져 있어요. 많은 서점이 새로 생기고 또 그만큼 사라지는 때에 4년을 한결같이 운영하며 책과 사람의 접점을 넓혀온 황부농, 상냥이 두 사장님의 힘에 놀라요. 저도 친구와 작은 서점을 1년 남짓 운영했었고 이후북스 두 사장님께 조언을 구한 바 있어요. 저는 그 일을 그만두었지만 이후북스는 이렇게 4주년을 맞았네요. 축하드립니다 :)

 

/이후북스/

 

지난해 [월간 소묘] 시즌 1에서 4월의 책으로 이내 작가의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를 소개했었어요. 이후북스에서 운영하는 출판사 이후진프레스에서 나온 책이지요. 주로 독립출판물 중에서 눈에 띄는 보석 같은 책들을 선별해 펴내고 있어요. 이후진프레스에서는 지금까지 6종의 책이 나왔고 저는 그중 한 권의 책만 없었답니다. 그 책을 카운터에 내밀자, 부농 사장님이 ‘이 책 있지 않으세요?’ 묻는데 그만 부끄러워졌어요. 그 안에서 맞닥뜨리게 될 내용이 두려워 계속 피하고 있었거든요. 현직 경찰관 일기인 원도 작가의 <경찰관속으로>입니다. 프롤로그에서 원도 작가는 “한 사람 속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세상은 그 이야기에 도무지 관심이 없더라”라고 이야기해요. 제가 그 세상이었겠지요. 어떤 큰 사건이 터질 때에만 뉴스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소비하는 세상, 그마저도 괴롭다고 눈 돌리고 마는 세상. 그 세상사람, 저와 당신, 우리들 너머에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어제 사람이 죽어서 인구가 한 명 줄어버린 관내를 오늘 아무렇지 않게 순찰해야 하는 직업,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떨어져나온 탓에 그 누구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직업, 그게 경찰관이더라.” 그리고 그 경찰관은 이렇게도 이야기해요. “한 명의 인생을 망치는 건 한 사람으로 족하지만, 그 망가진 인생을 구원하는 건 수많은 사람의 힘이 필요한 일이야.” 더는 눈 돌려서는 안 된다고 저에게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책, 많은 분들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두 사장님이 입을 모아 추천한 책, 폴 매달렸니의 <난 슬플 땐 봉춤을 춰>를 샀고요. 그 밤 후루룩 다 읽었습니다. 이렇게 재밌어도 되나요. “일반인(여기서는 근력운동을 정기적으로 하지 않는 30대 중반 여성을 일반인이라고 칭하자)보다도 근력이 없”어 폴에서 0.1초 만에 떨어졌던(전가요?) 저자가 1년 반 폴댄스를 하면서 조카들을 붕붕그네(?) 태워주고 버스에 서서 양손으로 카톡을 하며 사랑받는 쨈병 오프너(?!)가 되고 무엇보다 대상화에서 자유로워진 몸을 만끽하게 되는 즐겁지만 빡센(!) 이야기예요. 전체적으로 유쾌하고 웃긴데 폴처럼 중심을 잡아주는 문장들이 눈길을 끕니다. “내 몸을 내 팀으로 인식하고, 더 이상 타인의 시선에 맞춰 학대하지 않게 되는 일이 모두에게 일어났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겐 그게 폴댄스겠고, 누군가에겐 좋은 친구의 힘이 되는 말이겠고, 누군가는 삶의 어느 순간 자연스레 일어난 기적이기도 하겠지. 가장 좋은 건 애초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각자의 몸에 관대한 세상이 오는 일이겠고. … 성취나 속도가 없어도 내 몸이 나에게 해낸 일은 온전히 내가 알고 있으니까 괜찮다.” 어서 몸을 움직여야겠어요.

 

 

이후북스는 세 사람이 지키고 있어요. 두 사장님과 원 스텝님. 원 스텝님은 <틈새의 삶>을 추천해주셔서 샀고요. ‘희망 없이 죽어가는 행성에서 공허로부터 의미를 만들어내려는 노바토레주의자의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답니다. ‘영미권 아나키스트들이 자주 인용하는 에세이’라는 편집자 후기가 있고 저는 한때 아나키… 이만 줄일게요. 그 밖에 김보배 작가의 그림책이랄지 일러스트집 <풍경빌라>, 김영순과 강미선이 쓴 <딸아, 머하야? 밥 먹어야?> 함께 담아 왔습니다. <풍경빌라>에는 여섯 가구가 살고요. 제 방 모습은 302호(이따금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우는 방)에 가까운데, 201호(싱그러운 풀잎 향이 가득한 방)에 살고 싶네요. <딸아, 머하야? 밥 먹어야?>는 요리책인데 왜 펼칠 때마다 눈물이 나는지.

이후북스에서는 코로나 시대를 맞아 최근 온라인 모임을 다각화하고 있어요. 계정 소개해드리니 살펴보시면 함께할 만한 것을 발견하게 되실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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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산책 코스는 합정의 아트북 전문서점 비플랫폼이었습니다. ‘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문앞에 걸린 ‘외근으로 휴무’ 메모를 보고 돌아서야 했기 때문이에요. 3월에 진행한 이명애 작가 그림책 <내일은 맑겠습니다> 원화전을 보고 싶었는데 놓치고 말았어요. 아쉽지만 또 다른 기회가 있겠지요.

 

그래서 근처의 알라딘 중고서점 합정점을 찾았어요. 지인들에게 선물하거나 분명 있었는데 없어져서 빈자리가 허전한 책들은 중고책으로 채워 넣곤 해요. 이번엔 그림책 위주로 바버러 쿠니의 <미스 럼피우스>, 정미진/김소라 작가의 <있잖아, 누구씨>, 레오 리오니 <프레드릭>, 숀 탠의 <Rules of Summer>(여름의 규칙 원서)를 샀고요. 무루의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읽기 지난 시간 텍스트였던 <토끼 아저씨와 멋진 생일 선물>도 발견하여 데려왔어요. :)

 

 

마지막으로 지난달 산책 서점이었던 유어마인드를, 바로 아래층에 자리한 사루비아 다방에서 미팅이 있어 겸사겸사 또 다녀왔지요. 민정화 작가의 팝업 전시 ‘접힌 수평선과 빛’을 찬찬히 감상하고선, 지난 전시 때 깜박하고 데려오지 않았던 한요 작가의 <베란다 베란다>와, 한차연 작가의 <제주 일기>, 제로퍼제로 <놀러 가자>, 김뉘연/전용완 작가의 <문학적으로 걷기/ 수사학/ 시는 직선이다>라는 흥미로운 작업물을 샀습니다.

 

 

다음 달엔 좀 더 멀리 나가보고 싶어요.

 

 

 

 

* ‘소소한 산-책’ 코너에서 독자 투고를 받습니다. 제 걸음이 미처 닿지 못한 곳들의 이야기도 전하고 싶어요. 분량 제한은 없습니다. 짧아도 좋고요. 자유롭게 여러분의 산-책 이야기 들려주세요. 해당 메일(letter@sewmew.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된 분께는 오후의 소묘에서 제작한 노트 세트와 신간을 보내드립니다. 소중한 원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소소한 산-책’은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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