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직접 구입한 책을 들고 있는 사진이 SNS 계정에 꾸준히 올라오는 서점이 있습니다. 오후의 소묘 책도 종종 등장한 터라 그 사이 내적 친밀감이 생긴 ‘번역가의 서재’인데요. 한적한 주택가를 걷다 적벽돌 건물 2층 유리창 너머로 따듯한 조명과 서가가 보이자 벌써 아늑한 기분이 듭니다. 계단 몇 개를 올라 문을 열고는 조용한 책방에서 그만 탄성을 내지를 뻔했어요. 입구 오른편 카운터의 전면서가에 놓인 저희 그림책 두 권이 얼마나 반가웠던지요. 겨울의 책 <눈의 시>와 <할머니의 팡도르>가 나란했어요. 아는 척하고픈 마음을 누르고 왼편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눈길을 끈 것은 단추 출판사에서 출간된 그림책 <소금차 운전사> 전시였어요. 그림책 전시라면 원화전을 떠올리기 쉬울 텐데, ‘이름 없는 영웅에게 바치는 송가’라는 타이틀을 단 이 전시는 <소금차 운전사>의 작가이면서 음악가이기도 한 올란도 위크스가 작사, 작곡한 12곡의 OST를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꾸려졌습니다.(한 곡은 북트레일러로 공개되어 있습니다.) 전시 기간 매일 30분씩 음감회도 따로 가졌다고 해요. 그림과 이야기가 아름다운 그림책을 또 다른 이야기인 가사와 선율로 접하는 건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책으로 먼저 만났다면 음악은 몰랐거나 혹은 음악을 책에 달린 부수적인 것으로 여겼을 텐데, 이 전시로 만난 덕분에 음악과 그림과 이야기가 하나로 어우러져 한 편의 필름처럼 완성되었습니다.

 

전시를 듣고 보고 나서 단정한 서가 사이를 천천히 걸었어요. 걸었다기보다 한 발 떼고 멈추기를 반복했다고 해야겠죠. 종수가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둘러보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됐어요. 귀엽고 뭉클한 사진집부터 묵직한 철학 에세이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저마다 제 존재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는데요. 이 책들과 공간을 하나로 묶어주는 건 ‘번역서’라는 점이었습니다. ‘번역가의 서재’니까 당연한 일일 텐데 새삼 놀란 건 어째서였을까요? 온전히 번역서만 있는 서재라니! 제 책장에서 늘 보던 책도 그곳에 꽂혀 있으니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분명 한국어로 옮겨진 책들임에도 번역서라는 장르로 묶이는 순간 문학이나 예술 같은 분야가 아니라 저도 모르게 국가별로 책을 구획 지으면서, 한 나라가 지닌 문화의 맥락에서 책을 바라보게 되고 역자의 이름을 더 유심히 보고 원문을 상상해보기도 하고요. 그 아늑한 공간에서 아주 멀리까지 여행하고 돌아온 것만 같았습니다. 여행이 간절했던 탓만은 아닐 거예요.

 

공간에 반하고 책들에 반한 저는 그만 그 책들과 공간의 주인에게도 반해버려서, 조용히 둘러보고만 나오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책방 대표님께 커밍아웃(?)을 하고 말았습니다. 품 넓은 환대에 뭉클해지기까지 한 순간이었어요. 오후의 소묘도 올해 어느 따듯한 때에 번역가의 서재에서 작은 전시를 가지기로 했으니 소식 기다려주세요 :)

 

*<소금차 운전사> 특별전은 종료되었으며 2월은 ‘산문의 아름다움에 매혹되다’라는 주제로 봄날의책 출판사의 산문 번역서 전시가 진행됩니다.

 

번역가의 서재

 

 

 

 

* ‘소소한 산-책’ 코너에서 독자 투고를 받습니다. 분량 제한은 없습니다. 짧거나 길거나 자유롭게, (기왕이면 사진과 함께) 여러분의 산-책 이야기 들려주세요. 메일(letter@sewmew.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된 분께는 오후의 소묘에서 1주년 기념 굿즈로 제작한 노트 세트와 책을 보내드립니다.

 

‘소소한 산-책’은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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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산-책]

2020년 / 1월2월3월4월5월편지9월시월월간소묘를 좇아- • 11월12월

2021년 / 망원동 작업책방 ‘ㅆ-ㅁ’번역가의 서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