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책방 산책

4월에 한낮의 바다를 보러 동쪽으로 가기로 했던 애초의 계획을 접고 서로 갔습니다. 인천의 책방 모도를 다녀왔어요.

 

 

우리가 어떤 장소, 공간을 기억하거나 그곳에 관한 인상을 가질 때 내부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외부도 크게 영향을 끼칠 것이에요. 외관뿐 아니라 그곳에 이르는 환경까지도 말이죠. 우리는 늘 외부로부터 내부로 향하게 되니까요.

책방 모도로 가는 길은 내내 설렜습니다. 낮은 담벼락, 색색의 벽과 지붕, 제각각의 창문, 언덕 그리고 또 언덕들. 제가 간 날은 마침 꽃들이 한창이었어요. 바람을 타고 어디선가 짙은 향이 날아들어 그것을 좇아 갔더니 책방 모도 건너의 작은 집 안에 마을의 역사를 품고 있는 듯한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해를 거듭하며 꽃을 피워왔을 라일락나무를 눈에 담고 책방 모도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책방 모도의 외관도 특별한데요. 언덕이 시작되는 모퉁이에 삼각지붕을 얹은 단층의 민트빛 파란 건물. 입구에는 이렇게 적혀 있어요.

 

“원래는 담배를 파는 구멍가게가 있던 자리인데 문을 닫은 지 오래고 최근까지 주거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담배 대신 책을 판매합니다.

모도는 ‘모 아니면 도’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골목골목 느껴지는 동네의 역사가 책방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자 과연, 시간이 켜켜이 느껴지는 소담한 풍경이 한눈에 들었어요. 아닙니다. 한눈에 들었다는 것은 착각이에요. 책들이 빽빽한 책장을 향해 눈을 주다 천장에 이르니 삼각지붕 모양 그대로 솟은 꼭지점에 정겨운 실링팬 조명이 달려 있고요. 서가로 발을 떼다가는 책방 한가운데 피아노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앞에 멈춰 섰습니다. 자유롭게 쳐도 된다는 문구에 친구 몇이 떠올랐어요. 네가 여기 있다면 참 좋아하겠구나.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고 난 뒤, 구석구석 시간을 들여 보아야 함을 알았어요. 책방에 놓인 책만큼이나 공간에 담긴 이야기도 중히 여겨집니다. 책을 둘러싸고 배치된 것들이 어떤 이야기를 지녔느냐에 따라 같은 책이어도 공간마다 다른 맥락의 옷을 입고 제게 말을 걸어오니까요. 그리고 공간에 마음이 동하면 자연스레 그 공간을 꾸린 이가 권해주는 책들에도 관심이 싹틉니다.

 

 

피아노 맞은편 평대에는 주로 신간과 ‘책방 모도의 비밀스러운 권유’라는 이름으로 달마다 추천해온 책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책 사이에는 모도의 두 대표님이 각각 책에 대해 적은 연재글, 그리고 한 장의 사진이 담긴 포스터가 꽂혀 있어요. 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4월의 비밀스러운 권유를 골랐고요.

책장은 가까이 가서 보니 칸칸이 메모가 붙어 있는데, 특이한 점은 분야나 카테고리 이름이 붙여지거나 그에 따라 분류된 것이 아니라, 한 권의 책 제목과 그 안에서 따 온 문장이 적혀 있고 그에 맞는 다른 책들이 함께 모여 있었다는 것이에요. 이를테면 이런 것.

 

메모:

잘돼가? 무엇이든

“창작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자산은 습작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작가의 삶이다.(박완서)

 

아이 씨, 어떡하지.”(p.113)

 

나란한 책들:

마술 라디오(정혜윤), 어른이 슬프게 걸을 때도 있는 거지(박선아),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김하나, 황선우),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무루), 기록하기로 했습니다(김신지),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정지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한수희), 저는 이 정도가 좋아요(송은정)…

 

제 나름의 분류 체계는 완벽했습니다.

그리고 또 완벽한 것은 창. 작지도 아주 크지도 않은, 골목으로 난 창은 책방 구석구석 밝은 기운을 전해다 줍니다. 돌아보면 선 자리마다 창으로 다른 풍경을 보여 주고요. 괜히 창가를 서성여 보기도 했어요. 시간이 허락되었다면 책 한 권 펼쳐서 책 한 페이지에 창밖 한 번 내다보기를 만끽했을 텐데요.

창의 오른쪽으로는 오후의 소묘가 사랑하는 그림책들이 표지를 자랑하는 전면 서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저희 책 <섬 위의 주먹>과 <할머니의 팡도르>가 무척 반가워요. 저는 그중에 사라 스튜어트가 쓰고 데이비드 스몰이 그린 <도서관>을 집어 들었습니다. 면지가 책방의 모습과 닮아 있었거든요.

책 두 권과 책방 모도에서 제작한 마스킹테이프 세 개를 들고 계산을 청하러 간 곳 너머에는 더욱 비밀스럽고 매력적인 장소가 숨겨져 있는데, 담배가게였을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 어떻게 쓰였을지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게도 됩니다. 가서 확인해 보시길 바라요 :)

마지막으로 문앞 아주 작은 테이블에는 책 몇 권과 필사노트가 준비되어 있고, 저는 <섬 위의 주먹> 한 구절을 적고 나왔습니다. 수상하고 재밌고 멋진 곳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입구에 쓰여 있던 책방 소개글 아래에 이런 문장이 있었네요.

 

“수상하고 재밌고 멋진 일을 꾸미는 사람들의 공간이 되고자 합니다.”

 

참, 바다를 보러 서로 갔다고 했죠. 그래서 바다를 보았냐 하면, 본 듯도 하고 못 본 듯도 하고 모인지 도인지. 책방 모도의 벽이 봄의 바다색이었다고, 넘실대던 하얀 라일락꽃이 파도였다고, 그곳에서 바다를 보았다고. 그렇게 쓰고 싶네요.

 

 

﹅ 책방 모도 instagram.com/modo.books/

 

 

2부 산-책들

동인천의 나비날다, 또 인천의 서점안착에서 산 책들.

 

 

작업책방 씀, 책의 기분을 산책하고 산 책들.

 

 

 

 

* ‘소소한 산-책’ 코너에서 독자 투고를 받습니다. 제 걸음이 미처 닿지 못한 곳들의 이야기도 전하고 싶어요. 분량 제한은 없습니다. 짧아도 좋고요. 자유롭게 여러분의 산-책 이야기 들려주세요. 해당 메일(letter@sewmew.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된 분께는 오후의 소묘에서 제작한 노트 세트와 신간을 보내드립니다. 소중한 원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소소한 산-책’은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