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산-책

 

만화책 좋아하실까요?

누군가에게 책은 도피처일 수 있겠으나 제게는 책이 곧 현실이고 현실은 자주 도망가고 싶게 만드는 재주가 있죠. 그때마다 저는 만화책과 그림책을 펼쳐요. 네? 그것도 책 아니냐고요? 네… 그러니까 “현실로 현실을 수선하기”(로베르 브레송의 문장, 금정연 <담배와 영화>에서 재인용)와 다를 바 없겠지만… 아무려나 저는 책 한 권을 마감한 틈에 홀가분히 만화책방으로 떠납니다.

마침 사 모으는 시리즈의 신간이 나와 더욱 신나는 발걸음이었고요. 제가 향한 곳은 홍대의 만화전문서점 북새통이에요. 만화책은 꼭 이곳에서 구입한답니다. 어느 틈에 12년째 드나들고 있어요. (그사이 맞은편에 있던 한양툰크는 문을 닫았죠… 북새통은 힘을 내자.)

이날은 코로나19의 여파인지 여느 때보다 사람도 적고 책도 적었어요. 덕분에(?) 쾌적하게 신간 평대를 둘러보고 미로 같은 서가 사이사이를 산책했습니다. 책들이 늘 산처럼 쌓여 있고 빈틈없이 빽빽이 꽂혀 있었는데, 대대적인 재고 정리라도 한 걸까요. 그럼에도 있을 책은 다 있어서, 제 손에는 모리 카오루의 <신부 이야기> 12권과 아다치 미츠루의 <믹스> 16권이 들려 있습니다.

 

<신부 이야기>는 제가 지금 읽고 있는 만화 연재물 양대산맥 중 하나예요.(다른 하나는 정기린 네 컷 만화 <일상백서>.) 19세기 중앙아시아를 배경으로 유목 정착민들의 삶과 여러 여성(신부)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말 타고 활 쏘며 대지를 누비는 주인공(격인) 첫 신부 아미르(와 시할머니)에게 반하고, 당시 복식과 문화를 섬세하게 표현한 작화에도 매번 감탄합니다. 1권의 결혼식 첫 장면은 지금도 종종 들춰보고, 스물의 신부가 자신의 꼬마 신랑에게 활쏘기를 가르쳐주는 장면도 좋아해요. 그런가 하면 결혼한 여자는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집 밖을 다닐 수 없어 유일한 외출이 목욕탕인 신부도 있어요. 목욕탕에서 만난 다른 신부와 자매결연을 맺기도 하고요.(또 다른 결혼이라고도 칭하고, 실제 풍습이었다고 해요.) 요즘엔 고양이 에피소드도 등장합니다! 좋아하는 요소들이 빼곡해서 신간 발매일을 손꼽아 기다려요. 다만 19세기 중앙아시아가 겪은 고난을 생각하면 앞으로 이들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벌써 애닲습니다.

 

<신부 이야기> 中

 

그리고 새 연재를 시작해볼까 싶어 눈으로 표지들을 훑었어요. 만화책은 모두 래핑되어 있기 때문에 표지만 보고 선택할 수밖에 없어요. 작가나 그림체, 제목이나 카피 같은 것들로 판단해야겠죠. 느린 걸음을 멈춰 세우고 손을 뻗어 나가게 만든 책은 <바깥 나라의 소녀>였어요. 아마도 ‘바깥 나라’라는 단어가 저를 끌어당기고, 기괴한 형상의 검은 존재와 작고 하얀 소녀의 대비가 흥미를 일으킨 듯해요. 뒤표지에 적힌 “닿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이형의 존재들이 사는 바깥 나라와, 인간이 사는 안쪽 나라로 갈라진 세계. 본래 만나서는 안 될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작은 이야기가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한다”라는 책 소개글을 읽고선 내려놓을 수 없게 되었지요.

월간소묘 5월의 책인 무루의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에서 판타지에 대해 “읽고 쓰는 많은 사람들이 ‘저항’을 판타지 문학의 중요한 속성으로 본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렇다면 이 만화는 오직 인간만 사는 이 세계와, 자신과 다른 존재를 배척하는 우리의 현실에 저항하고 어떤 연결의 실마리를 던져주지 않을까. 게다가 그 속에서 즐거움까지 선사해주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고서 1, 2권을 데려왔습니다.(새 시리즈는 일단 1, 2권을 본 후 계속 살지 말지 결정합니다.)

하지만 기대는 실망을 부르기도 하죠. 매력적인 주제와 설정과 작화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과 중심이 되는 두 캐릭터가 너무나 평면적이어서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즐거움은 미끄러져 갔어요. 지난달 소소한 산책에서 그림 에세이 <무용한 오후>에 대해 이렇게 썼지요. ‘산문에서 시가 되는 과정을 거친’ 책 같다고요. 모든 책이 그렇게 쓰여야 하는 건 아니지만, 좋은 만화는 어느 정도 시를 닮았다고 생각해요. <바깥 나라의 소녀>는 시가 되고 싶었으나 독백이 되어버린 느낌이랄지.

작가가 한 인물에 밀착되어 그의 속을 다 끄집어내 보여주는데 속마음과 대사가 뻔하고, 반면 세계에 대한 정보는 부족해서(주긴 주는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고..) 그 불균형에 마음이 기우뚱해집니다. 컷은 단조롭고 예측 가능하고 컷과 컷 사이에 독자가 개입할 틈이 거의 없어요. 이 원서의 편집자는 무엇을 한 걸까, 책장을 덮으며 처음 든 생각에 스스로 흠칫 놀랐습니다.(편집자란 존재 무얼까…) 후에 찾아 보니 마니아층이 제법 있고, 레터 구독자 분들 중에도 팬이 있으실 텐데 제가 정말 너무 아쉬워서 그렇고요. 사실 재미가 아주 없는 건 아닌데다 독백과 단조로움은 연극적이고 서정적이라고 달리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정말 소극장에 올려진 연극의 1막을 보고 있는 기분이 든달까요.) 본격적인 사건도 이제 막 시작되려는 참이라 3권을 볼까 말까 아직도 고민 중입니다. 아마도 언젠가 만화카페에서 보게 되지 않을까요. 뒤로 가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다시 기대해보며…

아무려나 네, 저는 여전히 책 사는 일에 실패를 겪습니다. 16000원의 실패로 글을 썼으니 그것 또한 나쁘지만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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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북스

 

다음 산책 코스는 스틸북스입니다. 오후의 소묘의 새로운 필자가 될 토림도예의 개인전을 본 후 한남동으로 걸음했어요. <매거진 B>로 유명한 JOH가 만든 의식주정(의식주+정보) 복합공간 사운즈 한남에 자리한 스틸북스는 ‘관점 있는 중형 서점’을 모토로 합니다. 1층부터 4층까지 생활과 일, 예술과 디자인, 사유와 사람을 주제로 큐레이션되어 있는 이 서점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츠타야를 떠올리게 해요. 요즘 제 관심 분야 중 하나는 건축이고 예술과 디자인을 주제로 한 3층의 서가 여럿을 건축이 채우고 있었어요. 크고 멋진 책들 사이에 작고 얇은 책 하나가 눈에 들었습니다. <우리는 여성, 건축가입니다>(데스피나 스트라티가코스)예요. 이 편지를 띄우고 찬찬히 펼쳐 보려 합니다.

실은 스틸북스와 이웃한 그림책방 스틸로가 궁금했는데 굳게 닫힌 문앞에서 슬피 돌아왔어요. 안타깝게도 한남점은 5월 17일 자로 영업을 종료했다고 하네요. 시즌 2를 준비 중이라니 그때는 늦지 않게 가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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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북스

 

그리고 4월에 소개드렸던 이후북스에도 나들이했습니다. 이 피드 때문이었는데요. “아주 아름답고 기발한 정말 매력 넘치는 그림책입니다. 책 안에 티켓과 갤러리 가이드가 들어 있어요. 후훗 북위30° 동경1° 사하라에 자리하고 있는 오아시스 갤러리에 한번 가보셔요. 갔을 때 없어지지 않아야 할 텐데…” 그래서 갔습니다. 달려갔어요.

 

☑︎ 북새통문고

☑︎ 스틸북스

☑︎ 이후북스

 

 

 

* ‘소소한 산-책’ 코너에서 독자 투고를 받습니다. 분량 제한은 없습니다. 짧거나 길거나 자유롭게, (기왕이면 사진과 함께) 여러분의 산-책 이야기 들려주세요. 메일(letter@sewmew.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된 분께는 오후의 소묘에서 1주년 기념 굿즈로 제작한 노트 세트와 책을 보내드립니다.

 

‘소소한 산-책’은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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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산-책]

2020년 / 1월2월3월4월5월편지9월시월월간소묘를 좇아- • 11월12월

2021년 / 망원동 작업책방 ‘ㅆ-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