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소묘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모임 ‘쓰기살롱’ 멤버들의 글을 소개합니다.

[쓰기살롱 노트] 소묘

글 서우   초가을 아침 공기가 콧속으로 차갑게 들어온다. 옷소매를 여미며 종종걸음 빌딩 안으로 들어선다. 화실에 도착해 빈방의 전기등을 켠다. 청색 앞치마 끈을 둘러매며 넓게 빈 교실을 살펴본다. 아직 아무도 없는 빈 공간. 연필을 열 자루 정도 손에 쉬어 스테인리스 통으로 향한다.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무릎을 단단하게 고정하고 팔꿈치를 얹은 채 자세를 잡는다. 20여 분이 흐르자 엇비슷한 형상의 사람들이 화실을 메우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무심하고 날카롭게 흑심을 감싼 나무껍질을 칼질해 나간다. 특유의 흑연 냄새가 ...

[쓰기살롱 노트] 동그라미의 가장자리

글 아련   <현대시인론> 첫 시간, 교수님은 화이트보드에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 동그라미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해봐요.” 그러고는 검은 가장자리의 한쪽을 오돌토돌하게 고쳐 그렸다. “문학은 이렇게 조금씩 동그라미의 가장자리를 넓혀요. 우리는 그런 이야기들을 만날 겁니다.” 바로 그 순간 <현대시인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업이 되었고 나는 문학과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지금 문학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만난 지 6년째 되던 해 J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J가 대학을 졸업하자 ...

[쓰기살롱 노트] 고양이라는 이름의 문

글 아련   시작   2019년 J와 나는 치앙마이에서 여름을 나기로 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게스트하우스 1층 로비였다. 눈을 뜨면 대충 짐을 챙겨 로비에 내려왔다. 우기의 치앙마이 날씨는 언제나 극단적이었다.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거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뜨거운 햇빛이 작열하거나. 해가 넘어가기 전까지 로비 중앙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했다. 몇 주가 지나자 스태프들도 우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가끔 처음 온 게스트를 안내하고 밤에는 가장 늦게까지 남아 마지막 정 ...

[쓰기살롱 노트] 결국 나도 말하고 싶어졌다

글 지혜(지혜의 서재)     흰 눈으로 덮인 벌판 위에 두 개의 의자가 마주 보고 있다. 의자 뒤로 보이는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서 있다. 어슴푸레한 하늘 때문에 더욱 한기가 느껴진다. 그곳에서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한다. 어둡고 추워 힘들지만 들어야 할, 해야 할 말들이 있기에 그 의자에 앉은 두 사람을. 책 표지를 보며 잠시 숨을 고르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 여성의 목소리는 언제나 모든 여성을 위한 목소리가 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   <당신의 말을 내가 들었다>의 저자인 안미 ...

[쓰기살롱 노트] 파도 10퍼센트

글 이민정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산다. 해야 할 일들도 넘쳐난다. 몇 년 전 “사람들은 대부분 바쁜 척하고 산다며, 다만 어린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제외. 그들은 정말 바쁜 것이다”라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그래, 나는 바쁜 척 아니고 정말 바쁜 사람이야. 그렇게 공신력 없는 그 글에서마저 위로를 받던 날들이 이어졌다.   아이를 키우면서, 책임이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체감한다. 성인이 될 때까지 24시간을 책임져야 한다. 인간은 성인이 되기까지 너무 오래 걸리는 동물이란 생각도 든다. 아이의 마음과 미래를 미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