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은 땅을 디디고

손은 흙을 어루만지며

도시텃밭 그림일지

 

유현미 지음

 

발행일 2023년 5월 22일 | 양장본 150*210 | 304쪽 | 값 19,500원

ISBN 979-11-91744-23-1 03810 | 분야 에세이

 

 

 

 

“흙이 숨 쉬는 작다란 임대 공간은 놀라운 해방구가 된다”

눈, 코, 귀, 혀가 열리는 곳

텃밭에 세 들어 살아가는 지극한 기쁨에 대하여

 

 

생태적 감수성이 깊이 묻어나는 그림책들을 지어온 유현미 작가가 텃밭에 세 들어 살아가는 나날을 온몸으로 쓰고 그렸다. 3월부터 12월까지 한 해 농사를 기록한 일지이자 흙과 사랑에 빠진 이의 연서이기도 하다. 뿌리고 심고 기다리고, 또 아침저녁으로 성실히 따고 캐고 나눈 텃밭의 모든 계절이 생생히 펼쳐진다. 땅에 딱 붙은 단어들과 개운하고 시원한 문장, 꾸밈없이 진솔하면서도 어쩐지 찬란한 그림들에서는 마치 우리 또한 그곳 텃밭 가운데 발 딛고 있는 양, 페이지마다 흙냄새가 끼친다. 두 발로 단단히 땅을 디디고 두 손으로 보드라운 흙을 어루만지는 그 지극한 기쁨을 함께 맛보자고 다정히 손 내미는 책. 꼭 맞잡고 싶어질 것이다.

“이 조그만 밭이, 흙이, 나를 조건 없이 통째로 받아주는구나. 씨를 넣고 모종을 심느라 흙을 계속 매만지는 동안 정작 흙이 나를 어루만지고, 흙과 나 사이 오래된 신뢰의 감정이 모깃불 연기처럼 따스하게 피어났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다른 무엇일 수 있을까. 이상한 감흥에 젖은 채 모종과 씨앗을 마저 다 심었다.”

 

도시 삶의 최전선이자 보금자리, 텃밭에서 회복하는 몸과 마음

“부지런히 몸을 놀리다 보면 어느새 오롯이 나 자신이 되어 있다.”

자연 속 소박하고 느린 삶을 그려낸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는 주인공 혜원에게 남긴 엄마의 편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믿어.” 엄마의 말처럼 도시 생활에 몸도 마음도 꺾여버린 혜원이 시골 마을로 돌아와 그 땅에서 나고 자란 것들을 돌보고 먹으며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갈 힘을 되찾았듯, 유현미 작가는 텃밭이 자신을 살렸다고 고백한다. 비록 도시 속 한 뙈기 텃밭이지만 어릴 적 고향의 울안으로 돌아온 것마냥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 정다운 흙 밭에서, 그는 다양한 사회관계를 위해 써야 하는 이런저런 가면들을 훌훌 벗고 머리가 아닌 몸을 바삐 움직이며 지독한 우울감과 무기력을 떨치고 본연의 자신으로 회복해 간 것이다. 그 모습엔 거짓 없는 기쁨과 즐거움이 넘친다.

도시에 얼마 남지 않은 ‘흙이 숨 쉬는 땅’인 텃밭이 우리에게도 숨통을 틔워주는 놀라운 해방구임을,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보금자리의 공간이 되어줌을 저자는 삶으로써 전한다.

“살아 있다는 감각이 새로이 피어나면서 잃었던 자유가 돌아온다. 복잡하고 단조로운 도시의 가장자리, 흙이 숨 쉬는 작다란 임대 공간은 놀라운 해방구가 된다. 텃밭은 흙과 더불어 나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여 나를 살린다. 씨를 뿌리고 작물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고 도우면서 나도 함께 자란다. 내가 키우고 돌보는 것 같지만 내가 더 보살핌을 받는다.”

 

눈, 코, 귀, 혀, 손과 발이 쓰고 그려낸 온갖 작은 존재들의 향연

“이 텃밭에 세 들어 살기는 도긴개긴입니다”

이 작다란 땅에 세 들어 살아가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텃밭은 인간이 힘을 들여 작물을 키워내는 인위적인 공간이지만, “놀랍게도 자연과 야생이 슬그머니 합방”하는 곳이기도 하다. 절로 자라나는 연둣빛 어여쁜 냉이꽃과 아욱 싹, 작물 탐하러 온 물까치며 족제비며 고라니, 잎에 구멍 뽕뽕 뚫어 점점이 똥알을 만들어놓은 애벌래들, 나무 사이 어룽거리는 노란빛 꾀꼬리, 흙 속 굼벵이들의 우주, 홍화 허리 꺾어놓는 진딧물 대첩, 누더기처럼 제 몸을 내어준 씨감자 껍질, 몇 겹으로 지어 성채 같은 거미줄과 그 주인, 고구마 넝쿨에 기거하는 비현실적인 박각시, 저녁 밭에서 사람을 홀리는 분꽃, 자꾸만 마주치는 사마귀 커플과 그들의 허물과 알집, 청갓 푸른 마을에 거주하는 노린재와 무당벌레들까지. “이 서로 다른 녀석들이 따로 또 같이 어우러져 잎을 타고 오르내리며 먹고 자고 사랑하고 똥 누고 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어쩌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겠지? 빗방울 맺혀 싱싱하고 싱그러운 청갓 푸른 마을. 영원히 세주고 싶다. 내가 먹고 이웃과도 나눌 청갓이야 충분하니까.”

서문에서도 밝혔듯 “이 텃밭 농사 일지는 친절하고 실용적인 도시텃밭 지침서가 아니”라 흙이 한 어른과 여러 존재들을 “보살피고 보듬고 볼 비비며 아낌없이 사랑한” 사랑 이야기인 것이다. 그 사랑의 터전에 펼쳐지는 “다정하고도 거친, 온전한 세계”에서, 한낱 인간은 기쁘게 작아지고 치열히 살아가는 작은 존재들의 존재감은 더 크고 찬란하게 빛난다.

 

요상한 날씨에도 작물은 자라고 또 나누지마는

“작고 소박한 텃밭 농사라도 농사는 정확히 기후변화와 함께” 갈 수밖에 없다. 텃밭은 “모든 날씨들의 영향을 정직하게 제 몸에 새”긴다. 저자가 기록한 2022년의 봄은 이상고온과 냉해, 긴 가뭄으로 작물들이 전에 없이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이렇게 처음 겪는 일이 앞으로 계속 늘어나겠지. 가뭄을 구체적으로 겪으니 쌀이나 채소 씻은 물을 그냥 버리는 것도 너무나 아깝다. 내가 이러한데 생업이 농사인 농부들 심정은 어떨까. 텃밭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나는 기후변화의 심각함을 잘난 머리로는 알아도 몸으로 실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삶 쪽으로 몸을 움직인다. 반가운 단비가 내리는 날은 기꺼이 비 맞으러 나간다. 빗속에서 고마운 작물을 똑똑 딴다.

“며칠째 비 맞아 올해 가장 부드럽고 크게 자란 깻잎을 두 봉지 듬뿍 담아 경비실 앞 나눔 상자에 내놓는다. “비 실컷 맞고 잘 자란 텃밭 깻잎이에요. 필요한 분 가져가셔요.” 메모와 함께. 경비실 앞에서 비 구경하고 계시던 할머니가 당신도 가져가도 되냐고 물으신다. 아유, 참. 할머니 드시라고 내놓는 거여요. 나누어 먹는 것은 얼마나 마땅한가. 왜 내가 더 좋을까. 도시에서 더 많은 사람이 텃밭을 일구었으면 좋겠다. 흙을 만지고 작물을 키우고 먹을 것을 나누기. 나는 이것이 작은 혁명일 수 있다고 여긴다. 도시에 살아도 흙과 더불어 인간 본연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회복해 가기.”

 

 

차례
들어가며: 나를 사랑한 텃밭

 

1부 뿌리고 심고 한눈팔고: 집에 가고 싶지 않아라

3월 딱새를 보면 / 흙인간

4월 씨 뿌리는 날 / *봄 텃밭 작물 지도 / 쑥대밭에서 / 벌교 송영심 여사 무말랭이 차 납시오 / 집에 가고 싶지 않아라 / 이상한 날씨 / 기지개 켜는 싹

5월 텃밭에 누가 똥 쌌어? /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 귀한 첫물은 / 불사조들의 밤 / 진딧물도 깔깔깔 / 타는 목마름 / 단비 머금은 얼굴들 / 양파가 누웠다

 

2부 따고 캐고 나누고: 요상한 날씨에도 작물은 자라고

6월 왜 찻길로 나왔어 / 이슬의 힘 / 비로소 온전해지는 / 양산 모자 모녀 / 나의 뽕나무 / 버찌 / 홍화꽃 피었다 / 올해 첫 나눔 상자 / 하지감자 안 캡니다 / 장마 시작 / 환호작약 / 나도 일으켜 줘요 / 청갓 푸른 마을 / 작물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7월 장맛비 그치고 / 혹독하다 / 감자 캐는 날 / *여름 텃밭 작물 지도 / 소서 / 사마귀 새끼 / 천국과 지옥 / 분꽃에 홀린 날 / 곤충과 거미의 집 / 빗속에서 오이 따기 / 당신의 허물 / 저녁의 사마귀 곁에서 / 옥수수 익는 냄새 / 침이 꼴깍, 고구마순 김치 담그는 날 / 한여름 / 땅은 거짓말을 안 해요 / 수고 많으시네요 / 굉장한 날

8월 늙은 오이 / 모깃불 피우고 / 매미 한 쌍 / 하마터면! / 가을빛 / 검어질 동 말 동 / 가을밭 만들기 / 벼가 익는다 / 원산지는 ‘이태리’ / 반가운 주문

 

3부 뽑고 널고 말리고: 더할 수 없게 좋아 기쁘구나

9월 탄저병 / 기쁜 범인 / 태풍이 지나가고 / 발은 땅을 디디고 손은 흙을 / *가을 텃밭 작물 지도 / 허공의 캐슬 / 매미는 아직 / 한번 걸려들면 / 마스크 쓴 지구 / 알밤 꿀밤 / *밤 편지 / 가을이라는 선물 / 배추벌레 향연 / 커다란 기쁨

10월 가을 호우주의보 / 기러기 날아오고 / 엄마 사마귀 / 번갯불에 콩 볶듯 / 경사 났네, 경사 났어! / 가을볕에 말립니다 / 널고 걷고 덮어주고 / 마지막 논 / 짚단 실어 나르기 / 오늘은 걸어서

 

4부 덮고 걷고 또 덮고: 텃밭은 고마워요, 내년에 또 봅시다

11월 추위 소식 / 이불 덮기 / 이불 걷기 / 김장 무 수확 / 사는 맛 / 왕겨 이불 / 겨울이 와서 다행이다 / 동장군 납신다

12월 마침내 배추 수확 / 마지막 나눔 상자 / 곧 보자, 새싹들아

 

부록: 제철 텃밭 밥상

 

 

책 속에서

도시가 아무리 흙을 보기 어려운 곳이 되었어도 도시 삶의 바탕은 여전히 흙일 것이다. 콘크리트 담벼락 틈새에서 풀이 왕성하게 자라나는 것을 보면 그 틈새에 내려앉은, 잘 보이지도 않는 아주 적은 양의 흙이 지닌 어마어마한 생명의 힘을 짐작할 수 있다. 모든 삶의 바탕은 여전히 흙이다. 도시에서 땅을 디디고 흙을 만질 수 있다면 그것은 아주 드물고 귀한 경험이 될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한 뙈기 도시텃밭에서 그 호사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8-9쪽)

 

일단 쓸데없이 복잡한 머리가 아니라 몸이 먼저 움직인다. 눈, 코, 귀, 혀, 손과 발이 바쁘다. 잡생각이 끼어들어도 얼마 못 간다. 부지런히 몸을 놀리다 보면 어느새 오롯이 나 자신이 되어 있다. (10-11쪽)

 

땅을 비닐로 싸면 습기가 보존되어 작물이 잘 자라고, 풀은 거의 안 난다. 그렇게 하지 않은 우리 밭은? 풀이 잘 나고 작물도 잘 자란다. 나는 풀이 함께 자라는 밭이 좋다. (15쪽)

 

물을 흠뻑 주고 나서 등산의자를 펴고 앉아 텃밭을 바라본다. 촉촉해진 텃밭을 멍하니 마주하는 불멍 같은 텃밭멍. 아, 집에 가고 싶지 않아라. (…) 오늘도 가뭄에 목말라하는 텃밭에 물 주며 내가 그 물 받아 마시는 것처럼 기쁘다. 이 이상하고 오묘한 기쁨은 어디서 오는 걸까. 새싹들아, 어여 올라오지 말고 너희 나오고 싶을 때 나오렴. 나는 기다릴 수 있어. (35-36쪽)

 

우리 텃밭도 기후변화를 고스란히 겪고 있다. 보통은 씨 뿌리고 보름이면 싹이 올라온다. 빠르면 열흘 만에도 고개를 내민다. 올해는 영 아니올시다. (…) 이런 난리는 처음이다. 이렇게 처음 겪는 일이 앞으로 계속 늘어나겠지. 가뭄을 구체적으로 겪으니 쌀이나 채소 씻은 물을 그냥 버리는 것도 너무나 아깝다. 내가 이러한데 생업이 농사인 농부들 심정은 어떨까. 텃밭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나는 기후변화의 심각함을 잘난 머리로는 알아도 몸으로 실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57쪽)

 

이 서로 다른 녀석들이 따로 또 같이 어우러져 잎을 타고 오르내리며 먹고 자고 사랑하고 똥 누고 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어쩌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겠지? 빗방울 맺혀 싱싱하고 싱그러운 청갓 푸른 마을. 영원히 세 주고 싶다. 내가 먹고 이웃과도 나눌 청갓이야 충분하니까. (115쪽)

 

며칠째 비 맞아 올해 가장 부드럽고 크게 자란 깻잎을 두 봉지 듬뿍 담아 경비실 앞 나눔 상자에 내놓는다. “비 실컷 맞고 잘 자란 텃밭 깻잎이에요. 필요한 분 가져가셔요.” 메모와 함께. 경비실 앞에서 비 구경하고 계시던 할머니가 당신도 가져가도 되냐고 물으신다. 아유, 참. 할머니 드시라고 내놓는 거여요. 나누어 먹는 것은 얼마나 마땅한가. 왜 내가 더 좋을까. 도시에서 더 많은 사람이 텃밭을 일구었으면 좋겠다. 흙을 만지고 작물을 키우고 먹을 것을 나누기. 나는 이것이 작은 혁명일 수 있다고 여긴다. 도시에 살아도 흙과 더불어 인간 본연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회복해 가기. (117쪽)

 

마음과 손은 바쁜데 시간에 쫓기고 모기한테도 쫓기는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생각 꽃이 피어났다. 이 조그만 밭이, 흙이, 나를 조건 없이 통째로 받아주는구나, 하는. 씨를 넣고 모종을 심느라 흙을 계속 매만지는 동안 정작 흙이 나를 어루만지고, 흙과 나 사이 오래된 신뢰의 감정이 모깃불 연기처럼 따스하게 피어났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다른 무엇일 수 있을까. 이상한 감흥에 젖은 채 모종과 씨앗을 마저 다 심었다. (208쪽)

 

텃밭 고구마순을 삶아 가을볕에 너는 이 소박한 호사가 사뭇 재미나서 가슴이 다 설렌다. 혼자 웃는다. (…) 물기가 빠져나가면서 푸른빛이 스러지고 무채색으로 바뀐다. 도톰하고 반듯했던 형태도 마르면서 가늘어지고 오그라든다. 햇빛과 바람의 힘은 무지막지하구나. 잠깐 사이에 다른 존재가 되어간다. (260-261쪽)

 

텃밭이 내주는 싱싱한 먹을거리는 이미 그 자체로 훌륭한 음식이다. 아침 이슬 머금은 상추와 깻잎, 풋고추, 오이, 가지, 토마토, 부추, 호박…. 여름에 갓 딴 풋고추에 된장쌈장만 있으면 맛있는 한 끼 완성이다. 풋고추가 이렇게 맛있다니. (…) 작물을 냉장고에 쟁여두지 않고 그때그때 먹기. 넉넉하니 가차 없이 이웃과 나누기. 이것이 텃밭 먹을거리를 맛있게 먹는 비법 아닌 비법이다. (296쪽)

 

 

저자 소개

유현미

울안에 텃밭이 그득한 익산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랐어요. 열여덟 살 때부터 수도권에 살게 되면서 텃밭을 거의 잊고 지내다, 문득 땅이 나를 불러 지금은 도시에서도 흙의 품에 폭 안겨 삽니다. 먼 길을 돌아 어릴 적 울안 텃밭으로 다시 돌아온 것 같아요. 모습은 많이 다르지만 향그러운 흙냄새는 똑같아요.

그동안 텃밭 시 그림책 《아그작아그작 쪽 쪽 쪽 츠빗 츠빗 츠빗》을 비롯하여 《오늘은 매랑 마주쳤어요》, 《너희는 꼭 서로 만났으면 좋갔다》, 《촛불을 들었어》, 《쑥갓 꽃을 그렸어》, 드로잉 산문집 《마음은 파도친다》 들을 쓰고 그렸습니다.

Instagram @drawing_hyun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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