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루의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고양이 쓰다듬으며 하는 인터뷰

 

천천히 오래 자라는 인생인 것으로 하자.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의 저자 M과 편집자 O*가 각자 자신의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한 인터뷰입니다. 책 출간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이상하고 자유롭게 나누어보았어요. 즐겁게 읽어주시길. 인터뷰를 통해 책에, 저자에게, 한발 더 가까워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어요.
(*이 편집자는 서오X였다가 서지X였다가 O인, 여러 이름으로 지칭됩니다. 그 점이 자유롭고 이상해서 좋아요. 통일하지 않고 두었습니다.)

 

 

 

O 마감을 축하드립니다! 아주 오랜 여정이었는데, 마감하신 소감 먼저 여쭤요.

M 오늘쯤 되니까 실감이 나요, 마감했다는 게. 막 마감한 뒤라 지금은 홀가분하지만 이 기분은 딱 출간 전까지일 것을 알아요. 그래서 당장은 이런저런 생각들 미뤄두고 마감의 여유와 자유를 만끽하고 있어요. 해야 할 일을 끝내지 못한 기분으로 잠드는 날들이 너무 길었거든요. 며칠 잠이 달아요.

 

 

O 저자 소개글 쓸 때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려워 고심했어요. 책의 성격을 고려해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읽기 안내자’라고 정리하긴 했지만요. 직접 자기 소개를 해주신다면?

M 20년 넘게 책과 글을 주제로 수업을 하고 있어요. 20대에는 어린이들을 가르쳤고, 30대에는 청소년들을 가르쳤어요. 같은 방식의 수업을 40대에는 어른들과 하고 있어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할 때는 스스로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데 무리가 없었어요. 그런데 30대가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열여섯, 열일곱, 열여덟 아이들이 그 시절의 저보다 훨씬 나은 사람들인 거예요. 무엇보다 그 아이들하고 제가 하는 일이 수직보다 수평적 관계에서 일어나고 있더라고요. 사제보다는 친구의 관계에 가까운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이어졌어요. (아이들이 크는 동안 제 일도, 저도 어떤 식으로든 자란 것 같고요.) 그 감각이 계속되는 것 같아요. 이제는 확실히 선생과 학생이 아니라 진행자와 참가자라고 생각해요. 안내자라는 표현도 맞겠네요. 그런데 여전히 어려워요. 정확하게 지칭하는 이름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촬영 @정기린

 

 

O 이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왜 ‘무루’인가요?

M 무루는 친구와 말장난 같은 것을 하다가 별 뜻 없이 지은 이름이에요. 그런데 심마니들이 나무를 무루라 부른다더라고요? 그래서 좀 그럴듯하게 보이고 싶을 때에는 나무라는 뜻이라고도 해요. 그런데 실은 별 뜻이 없어요.

 

 

O 무루 님다워요. 흣. 부모님께서 아직 무루 님이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모르신다고 하셨어요. 무엇이 이리도 설명하기 어려운 ‘창직’으로 이끌었을까요? 예전엔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하셨는데 어른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M 한 동네에서 오래 일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가르치던 아이들이 자라면서 저도 대상 연령이 올라갔던 거죠. 30대에는 중고등학생을 가르쳤기 때문에 입시논술을 병행해야 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내내 이상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던 아이들과 3학년 1학기가 되면 현실 얘기를 해야 하는 거예요. 괴리가 컸고 실력도 부족했어요. 아이들의 입시를 책임져줘야 하는데 노력만으로는 제 한계가 컸던 거죠. 그러다 몇몇 학부모들이 아이들 수업처럼 읽고 쓰기를 함께하길 원했고 어른 네 사람이 모인 수업 하나가 만들어졌어요. 재밌더라고요. 무엇이든 주제로 삼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안전장치가 필요 없었던 거죠, 어른들끼리의 수업에서는. 그래서 아이들은 그만두고 이제 어른들이랑 읽고 써야겠다 싶었어요.

 

 

O 이 책은 어떻게 쓰게 되셨나요? (응? 네, 물론 제가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읽기’를 책으로 써달라고 했습니다만..) 출간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쓰는 쪽으로 ‘마음의 비율’이 기울었던 이유가 궁금해요.

M 좋은 편집자를 만난 인연으로 쓰게 되었죠! 제안이 없었다면 아마 쓰지 않았을 것 같아요. (참고로 서오로이 씨는 제가 아는 가장 일 벌이기 좋아하는 사람. 삽질이요? 아휴 저는 졌어요.) 거절하지 않은 이유 역시 편집자에 대한 신뢰 때문이고요? 후후.

(*편집자 주: 진실이 아닌 듯하여 빼고자 했지만 빠진 대목이 있다면 저자가 직접 자신의 계정에 올리겠다고 협박!하여 울면서 싣습니다. 저자의 구독자가 백 배 많다..)

 

 

 

 

O 이 책에는 그림책 이야기가 한가득이고, 스무 살부터 그림책을 읽어왔다고 하셨어요. 스물이면 그림책을 탐독할 나이가 전혀 아닌데(역시 이상한 사람!) 그림책 세계의 문이 열린 어떤 순간이 있을까요? (어른이 된 나의 첫 그림책 <문이> 에피소드를 퇴고하면서 빼셨는데, 왜죠? 그 이야기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M 아, 빠진 원고 중에 <문이>가 있었죠. 이번 원고에서 빠진 원고들이 몇 꼭지 있어요. 정말 잘 쓰고 싶은 주제들이었는데 지금의 나는 아직 쓸 수 없겠구나 싶어서 뺐어요. <문이> 꼭지 주제는 ‘슬픔’이었어요. 소설창작 수업에서 교수님이 소개해준 책이었고요. 아름답고 슬펐던 기억이 나요. 그때부터 하나둘 사서 읽기 시작했으니 ‘문이’가 제 그림책의 문이었네요. 어릴 때 책을 별로 안 읽어서(이전엔 만화책만 봤던 자) 그 무렵 거의 책 처음 읽는 기분으로 장르 구분 없이 아무거나 읽었어요. 그림책도 그렇게 읽기 시작했고요.

 

 

O 제목 이야기를 해볼까요? 무루는 왜 할머니 이야기를 좋아하나. 왜 이상한가. 어째서 그토록 자유로운가. (왜 제목 듣고 갸웃했나.)

M 이쯤에서 금정연 작가의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의 서문을 소환하고 싶네요? (*편집자주: 소환하지요. “‘멋진’이라는 수식어가 필요한 이유가 뭔가? 나는 편집자에게 물었다. 왜죠? 직접 쓰셨잖아요. 편집자가 대답했다. 19쪽, “이런 문장을 쓰고 있는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실패를 모르는, 한마디로 멋진 문장들을 가지고…” 그만! 나는 소리쳤고 시키는 건 뭐든 할 테니 제발 낭독을 멈춰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했다.”)

할머니와 이상함과 자유로움은 모두 제가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이 모두가 제목에 포함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처음 제목 제안해주셨을 때 갸웃했던 건, 어쩐지 확신에 찬 사람의 큰 목소리 같아서였는데 조금 어색했고요. 이 질문 때문에 생각해봤어요. 만일 제가 끝내 제목을 지어야 했다면 <아직 자라고 있습니다>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랬다면 아무도 사지 않는 책이 되었을까…)

아무튼, 할머니 얘기를 하자면요. 할머니가 되는 상상을 처음 한 건 이치카와 사토미의 그림책 <초롱초롱 별나라>를 읽으면서였어요. 이 책의 도입부를 무척 좋아하는데요. 문장도 그림도 참 아름다워요. 다만 저런 할머니가 되려면 돈이 아주 많아야겠다 싶다는 점에서 완전히 제 이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할머니상에 대해 처음 생각을 하게 된 계기인 것만은 틀림없어요. 아, 나도 어떤 할머니가 되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거든요. 아이러니하죠. 이미 그때 비혼 결심 있었는데 말이죠. 그런 점이 또 이상하고 자유롭죠. 경험한 세계의 상식으로는 잘 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때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O <아직 자라고 있습니다>라.. 멀리 못 갈 것 같아요.. 후후. 지어주신 제목으로 짐작은 하지만, 아 내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 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독자들이 이렇게 읽어주면 좋겠다, 혹은 어떤 독자들이 읽어주면 좋겠다!

M 퇴고할 때 보니까 제가 ‘성장’을 정말 많이 썼더라고요? 결핍에 대한 욕망이지 싶어요. 30대 내내 입버릇처럼 ‘나는 늦된 애다’를 달고 살았거든요. 남들 다 아는 걸 너무너무 늦게 알아서 매번 미치겠는 거예요. 그게 처음에는 죽도록 괴로웠는데 나중에는 좀 자포자기 하는 심정이 되어서, 천천히 오래 자라는 인생인 것으로 하자, 하고 체념하게 되었죠.

독자에게 어떻게 이 이야기들이 전해질까에 대한 고민은 실은 쓰면서 다 한 것 같아요. 지금은 그저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정확하게 잘 전해지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이 읽어주셨으면 해요.

 

 

O 아, 맞아요. 그래서 ‘성장’이라는 주제가 잘 드러나는 원고를 첫 장으로 배치했어요.(‘태어나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저자의 입장에서 가장 먼저 읽어줬으면 하는 꼭지가 따로 있다면?

M 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아서 지금 해봤어요. ‘고양이라는 이름의 문’이지 싶어요. 이 이야기는 모든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해서요. 문을 열어주는 것은 꼭 어떤 대상이 아니라 이야기일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편집자라면 역시나 ‘태어나기로 결심했다’를 제일 앞에 둘 것 같고요.

 

 

O 또 말이 나와서 말인데… ‘태어나기로 결심했다’ 장을 서너 번 다시 쓰신 것 같아요. 대체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후ㅎㅎㅎ)

M 으하하하. 저는 지금도 1번 글이 아쉬워요. 다 못 고친 글 같아요. 역시 아직은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애써 하려고 했던 걸까, 싶기도 하고요. 잘 쓰는 일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글은 늘 되고 싶은 나일 때가 많아서 진짜 나로부터 가끔 멀리 가는 것 같아요. 뭐에 홀렸는지 초고가 그럴 때가 종종 있어요. 지금의 나인 줄 알고 썼는데 퇴고하려고 보니 내가 아닌 거예요. 그렇게 쓴 글은 문장이 공허하고 써놓고도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도통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고요. 그쯤 되면 이건 문장을 고치는 수준이 아니라 다시 정확히 써야 하는 거더라고요. 그렇게 된 거예요.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덜 고쳐진 글 같은 기분이에요. 흑흑.

 

 

 

 

O 그 원고를 빼자고 하셨을 때, 이렇게 좋은 글을 대체 왜 빼자는 거지? 정말 이해가 안 됐는데, 이제야 좀 알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고생했지만 고쳐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쓰면서 즐거웠던 꼭지가 있을까요?

전 무루님의 첫 그림책(이 될) <정글맨션> 에피소드가 나오는 ‘그 숲에 무슨 바람이 불어서’ 편이 정말 신났고요! 오후의 소묘 에디터 입장에서는 <섬 위의 주먹> 루이 할아버지 나오는 ‘오해받는 사람이 제일 좋아’ 최고.(흐흐)

M 저도 ‘정글맨션’이 아주 즐거웠어요. 살짝 투스텝으로 쓰는 기분이었달까요. 워낙 숀 탠을 좋아하기도 하고, ‘정글맨션’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고요.

아, ‘나는 설레며 기다린다’도 실은 좀 신나게 썼어요. 이 글은 처음에 책 원고로 쓴 게 아니고 블로그에 쓴 글이었어요.(‘할머니가 된다’라는 제목이었죠.) 문장 수업에서 <에브리맨>을 읽던 날 오신 분들께 나이 듦에 관한 공통 과제를 내드린 다음 저도 같은 주제로 쓴 글이에요. 그런데 마침 제가 주마감을 하고 있었잖아요? 이것으로 마감을 하자 싶었죠.

 

 

O 출간을 제안했을 즈음 저는 무루님이 이미 성장을 마치고(?) 모든 일을 선명히 보는 사람일 거라고 짐작했던 것 같아요. 어떤 답을 알고 있을 거라고. 근데 2년 정도 (격)주마다 한 편 한 편 원고를 받아오면서 아, 이 사람은 지금 어떤 문제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구나, 여전히 ‘삽질하며’ 성장하는 중이구나(때리지 마..), 그리고 그 고민의 지점들이 겹쳐서 놀랍고 반가운 거예요. 개인적으로 격동의 시기였는데 한 발 앞서 문장으로 촘촘히 길을 내어준 무루 님 원고가 큰 힘이 되었어요.

질문이 아니라 뜬금 고백이 되어버렸지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면, 두 가지를 묻고 싶어요.

1) 책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혹은 그 시기에 가장 고민했던 것에 관해?

M 음, 시간부족이 가장 힘들었어요. 일을 하면서 써야 하니까요. 시간이 부족하니까 만족할 만한 초고가 안 나왔어요. 이런 초고를 모아서 퇴고를 한들 제대로 책이 될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이거슨’ 편집의 마법인가 싶고요?

그 시기라기엔 2년 반은 길어서 딱 하나의 고민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은데, 모순에 대해 자주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라는 사람의 모순.

 

2) “사는 것이 무엇을 향해 가는 일인지 조금씩 더 선명해졌으면 좋겠다”라는 문장을 쓰기도 하셨는데, 원고를 집필하던 때보다 지금 삶에서 좀 더 선명해진 부분들이 있을까요?

M 선명해졌다기엔 2년 반은 짧아서(여기도 모순) 더 선명해진 건 없는데, 그래도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 하나를 끝냈다는 기분이 들어서 좋아요. 무얼 끝까지 해본 경험들이 하나둘 쌓이면 조금씩 더 선명해지지 않을까요?

 

 

 

 

O 힘들었던 점 여쭈었으니, 좋았던 점도 여쭤봐요.(있었을 거야..)

M 당연히 있죠. 일단 서수연 작가님! 내 마음속 최고의 그림 작가님과 함께 책에 이름 나란히 올리게 된 것 꿈만 같고요. 특히 ‘정글맨션’에 그려주신 그림 봤을 때는 거의 그림책 협업한 기분이었어요. 아, 내가 언젠가 그림 작가님과 그림책을 쓰게 된다면 이런 희열을 느끼며 작업하게 되겠구나 싶더라고요.

또, 정말 좋아하는 작가님들께 추천사를 받아서 퇴고 막바지에 큰 용기를 얻었어요. 김영민 교수님이 엉망진창 초고 보시고도 추천사 승낙하셨다고 했을 때, 김하나 작가님이 써주신 추천사 마지막 문장 읽었을 때(*편집자주: 또 소환해볼까요. “나는 이 글들을 사랑한다.”), 잠깐 세상의 중력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달까요?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건 좋은 동료와 작업했던 거예요. 작가 여러분, 서지우 편집자랑 꼭 일하세요. 정말 최고다. 어크로스도 최고예요. 독자일 때도 좋았는데, 저자일 때마저도 좋으면 저는 어떻게 하죠? 흑흑.

 

 

O 그림 자랑으로 말을 돌려봅시다. 서수 작가님 일러스트 시안 받아보고 뭘 빼고 뭘 넣을지 선택할 수가 없어서 결국 어떻게든 다 실었잖아요. 어떤 점이 특히 좋으셨을까요? 그리고 어려운 질문인 것 알지만, 그래도 굳이 한 장을 꼽아본다면?

M 영화 <작은 아씨들>에서 엄마랑 조가 본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어요. 길들여지지 않는 마음, 자유롭고 아름다운 야성미 같은 것인데요. 서수 작가님 그림에서 그런 것을 느껴요. 아주 강하지만 또 아주 약한 것. 그래서 조금 슬픈 것. 가슴이 뛰게 매혹적인데 누구에게나 보이지는 않는 것. 그런 매력에 반해요, 매번. 누군가에게는 어딘가 꼭 있기를 바라는, 오아시스가 되는 그림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랑할 수밖에 없고요.

 

 

O 말씀하신 바로 그 지점에서 글과 그림이 서로 공명한 것 같아요. 시너지를 일으키는 걸 보면서 저도 무척 즐거웠어요. 마지막으로, 식상해서 안 할까도 싶었는데, 역시 빠질 수 없는 질문인 것 같아요. 책에 언급한 그림책들 중에서 각별히 아끼는 것이 있다면요?

M <섬 위의 주먹>이죠.(*편집자주: 최고.) 이 그림책은 그저 그림책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저에겐 이제 막 첫발을 들여놓은 어떤 낯선 세계의 문이 되어준 이야기예요. 그 세계의 무엇이 좋은지도 아직은 말할 수 없는.

 

 

O 다시 진짜 마지막. 앞으로의 세계는 어떤 모양일지, 구체적으로는 다음 책 계획에 대해서 들려주시면 좋겠어요.

M 정말 백지예요. 언제나처럼 누군가의 제안이 다음 책 계획으로 이어질 확률이 크지 않을까요? 그리고 늘 그랬듯 내용과 시기는 그 제안자의 가방 속에 들어 있을 것 같은데요?

 

 

네, 제 가방 속에 여럿 있습니다! 너무 멀지 않은 시기가 되길 바랄 뿐이에요. 참, 지금은 비올레타 로피즈의 그림책 <노래하는 꼬리>를 옮기고 계시죠. 다음 레터를 띄울 땐 소개하게 되겠어요.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서점에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