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묘는 아시다시피 ‘작은 고양이’고요. 오후의 소묘에서 고양이 실장을 맡고 있는 이치코의 글을 전합니다. 고양이 얘기만 합니다.

[이치코의 코스묘스] 고양이의 버킷리스트

고양이는, 오랜만에 고양이에 관한 얘기로 글을 시작하네요,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행동들로 채우고 있어요. 도대체 왜 저런 기묘한 자세로 잠을 자고 있는지, 왜 새로 산 장난감에는 관심이 없고 택배 박스에 그렇게 집착하는지, 아마 고양이들끼리도 다른 고양이가 왜 그러는지 잘 모를 거예요. 물론 제각각의 이유는 있겠죠. 우주적 차원의 거창한 이유일 것 같기도 해요. 고양이니까요. 본인 말고 다른 존재에게 뭔가를 납득시켜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부재하신 분들이잖아요. 그런데 고양이의 행동이 이해되는(듯한) 순간들이 간혹 있 ...

[이치코의 코스묘스] 공감과 교감 사이에 어중간하게(2)

얼마 전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었어요. 읽기 전엔 무슨 내용의 책인지 전혀 몰랐어요. 그래도 소설이 아니란 건 알 수 있었어요. 표지에 큼지막하게 ‘르포르타주’라고 적혀 있었으니까요. 조지 오웰의 에세이는 어떨까, 하는 궁금증으로 읽기 시작했어요. 마치 조지 오웰의 소설에 대해서는 제법 아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동물농장>이나 <1984>의 목차도 펼쳐 본 적이 없었어요. 워낙 유명한 작품들이라 읽지 않아도 읽은 것 같은 착각이 들긴 하지만요. (왜 샀는지 기억나진 않고) 책 ...

[이치코의 코스묘스] 공감과 교감 사이에 어중간하게(1)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얘길 나누다가 오후의 소묘에 관해 설명해야 할 일이 있었어요. 어떤 책을 만들고 있는지, 지금까지 몇 권이 출간되었는지, 책이 어느 정도 팔리는지 등에 대한 간단한 얘기였어요. 친구가 책에, 특히나 그림책엔 별 관심이 없어서 자세하게 설명할 만한 건 없었어요. 그저 대화의 중간에 안부처럼 몇 마디가 오갔을 뿐이고 ‘올해는 에세이 책들도 내보려고 해.’라며 얘기를 마칠 참이었죠. 그런데 친구가 갑자기 ‘에세이’란 단어에 반응을 하더군요. “에세이? 그거 자기 자랑할라고 쓰는 거 아닌가?” 그러게요. 자 ...

[이치코의 코스묘스] 원래 그런 게 어딨나요?

꼬박 열두 달이 지났네요. 작년 2월의 첫 편지 ‘생기’에 실렸던, 오후의 소묘의 로고가 된 히루 사진을 넣은 글을 시작으로 해서 어느새 열두 번째 편지에 담을 이야기까지 왔어요. 연재가 길어지다 보니 도대체 무슨 말을 했던가, 가물거릴 때가 많아졌지만 제 출생의 비밀(?)에 관해 말씀드렸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어요. 저는 말이에요, 어떻게 보자면 식상한 환경에서 태어났어요. 경상도 어느 시골이 고향인 남자이고요, 태어나 보니 증조할아버지도 장남, 할아버지도 장남, 아버지도 장남이었고 저도 장남이었어요. 두 해 뒤에 동생이 태어났는 ...

[이치코의 코스묘스] 길어질 게 뻔한 변명(3)

연년생으로 붙은 모카, 치코, 미노, 오즈에서 일단 멈춤, 그러니까 식구가 더 늘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희망이 (적어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까지는) 깨지지는 않고 있지만 봉산아랫마을의 아이들을 구조하는 일에는 멈춤이 없었어요. 2018년에 오즈를 구조한 뒤 2019년에도 2020년에도 여전히 생명이 위태로운 아이를 길에서 발견하고 구조하는 ‘슈퍼히어로’의 길을 걷고 있어요. 오늘은 그 얘기를 해 볼까 해요. 오랜만에(?) 고양이 얘기네요.   동네 찻길에서 봉산아랫집으로 들어오는 골목 어귀에는 시장이 하나 있어요. 자그마한 규모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