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코의 코스묘스] 복잡계 이론: 다묘가정에 관한 수학적 고찰

도서관옆집에는 여섯 고양이가 살고 있습니다. 현실의 카오스적 복작거림과 난리스러움에 비해 참으로 건조한 문장이네요. 숫자 여섯은 큰 수가 아닙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금방이잖아요. 하지만 고양이가 여섯이란 표현은 사정이 좀 다릅니다. 고양이 하나, 고양이 둘, 고양이 셋… 이런 선형적인 느낌이 아니라는 게 문제입니다. 무언가 숫자의 비밀이 숨겨진 듯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습니다. 1, 3, 2, 5, 4의 순서로 숫자를 세는 것도 아니고 1+1은 명백히 2임을 알고 있지만 왠지 1 다음에 올 숫자가 2가 아닌 것 ...

[소묘의 여자들] 요안나 카르포비치, 저편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가 모르는 낙원> 그림 작가 요안나 카르포비치와의 인터뷰   언젠가 우리 손을 잡아줄 다정한 친구     때는 2024년 2월의 어느 날, 무루 님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 작가 너무 좋아서 소개하고 싶어 보내드려 본다. 화집 나오면 좋겠어. 소묘에서…" 보내주신 자료를 살피며 몸과 뇌에 전류가 흐르는 듯했는데, 무루 님 글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림이잖아! 판타지와 서사가 흘러넘치는 작품들 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마음, 비밀과 신비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화집이 아니라 우리 준비하는 책에 실어야겠다고 ...

[소소한 리-뷰] 우산을 샀더니

우산을 샀습니다. 처음으로. 대체 무슨 말인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비를 맞고 다녔다는 것인가? 21세기에 삿갓 쓰고 도롱이를 걸친 게 아니라면 우산 없이 다닐 순 없었을 텐데, 혹시 늘 선물 받았다는 이야기인가?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먼저 우산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대체 우산이란 무엇일까요.   우산은 일상의 다른 소비재와는 조금 다른 특성이 있습니다. 먼저 공공재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분명 내 소유의 물건이 맞지만 언제까지 소유가 지속될지 알 수 없으며, 한 사람의 소유를 벗어난다고 해서 물건의 수명이 ...

[이치코의 코스묘스] 완벽한 하루

_Q 당신에게 극적인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_A1 모르겠습니다. 살다 보니 그냥 여기까지 왔습니다. _A2 인생이 온통 드라마인걸요. 삶 전체가 극적인 순간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A1과 A2 모두 곤란한 답변입니다. 무기력할 정도로 재미없거나 지나치게 피곤한 인생을 달가워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대부분 A1과 A2 사이에서 삶의 궤적을 만들어갑니다. 둘 사이라고 해도 그 중앙을 기준으로 정규분포를 이루는 건 아닙니다. A1쪽으로 상당히 치우친 그래프일 가능성이 큽니다. 극적인 순간은 드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극적劇的이라 부르지 ...

[소묘의 여자들] 이미나, 계속 그리고 싶은 어린아이 하나가

  고양이 화가, 이미나 작가와의 여담   몇 마리쯤 그려야 싫증이 나는지     이미나 작가님은 그림책 <나의 동네>(2018)로 처음 만났다. 제주도의 한 소담한 마을에 자리한 책방에서 책을 펼치자마자, 첫 두어 장 만에 이 그림책에 홀려버렸다. 나비들이 화면을 한가득 채운 장면이었을 것이다. 책 속 동네는 건물이나 사람이 아니라 나비와 새, 개와 고양이, 다람쥐 같은 동물들이, 그리고 색색의 꽃과 무성한 초록의 식물들이 주인이었다. 나비처럼 연약한 존재들을 강건하고 대담한 색감과 필치로 그려낸 이 작가가 몹시 궁금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