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코의 코스묘스] 만수무강
2024년은 개인적으로 엄청난 한 해였습니다. 이사를 했는데요. 차곡차곡 쌓인 것들이 뭐 그리 많은지, 8년을 한 곳에 살다 옮기려니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사 나온) 봉산아랫집은 태어나서 가장 오래 머문 공간이었습니다. 어느 집에서도 그렇게 오래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여섯 살까지의 기억이 흐릿한 시절을 제외하면) 중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5년 정도 한 집에서 살았던 게 가장 길었던 것 같은데 그 기록을 가뿐히 뛰어넘었습니다. 8년이 긴 시간이긴 하지만 고작 그걸로 엄청난 한 해라고 할 수 ...
[월간소묘: 레터] 11월의 편지, 작은 도망
벌써 연말이네요. 11월부터 이곳저곳에서 캐롤이 들리고 크리스마스 장식이 한창입니다. 날은 이렇게나 포근한데 말이에요. 좋은데 걱정… 다음 주엔 그래도(?) 부쩍 추워진다지요. 모두 월동 준비 단단히 하시길 바라요. 이달의 ‘소소한 리-뷰’에서는 스산하고도 따듯한 전시를 소개합니다. 12월 20일까지 더현대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유코 히구치 특별전: 비밀의 숲> 전시인데요. 무려 고양이 그림이 1,000점 넘게 있으니 우리 소묘 레터 구 ...
[소소한 리-뷰] 유코 히구치 특별展: 비밀의 숲
글루미 웬즈데이. 지난 수요일은 종일 울적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너무 언빌리버블한 사건이라 충격이 더 컸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머리 위에 떠다니는 물음표를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정치공학이니 선거전략이니 하는 걸 따지기 전에, 유에스에이 피플은 불과 몇 년 전 일을 새카맣게 잊어버린 걸까요. 투표용지의 그쪽으로 손가락이 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전 세계의 인민들이 그놈은 안 된다고 악을 쓰며 반대하는데도 굳이 그래야만 했을까요.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
[월간소묘: 레터] 10월의 편지, 힙hip하지는 못해도
저는 신기가 있습니다.(응?) 며칠 전 새벽이었어요. 거실 창가 쪽 작은 조명만 켜놓은 집에서 그 조명 아래 책장 앞을 서성였습니다. 문득 이제는 읽어야겠다고 떠오른 책을 찾기 위해서였어요. 읽은 이들 대다수가 저에게 힘들 거라고 겁을 주었던 바로 그 책, <채식주의자>를 책장에 꽂아둔 지 근 10년 만에 꺼내어 소파로 가져갔습니다. 어째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저에게도 갑작스러운 일이었는데요. 그게 다 노벨문학상 수상의 계시였던 게 ...
[소소한 리-뷰] “강물이 위로 흐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 부산국제영화제
글: 이치코 집으로 가는 버스였습니다. 습관처럼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죠. SNS에 올라온 이야기들을 건성으로 훑고 있는 눈은 초점이 흐렸고, 부지런히 화면을 밀어 올리는 손가락만 마치 기계처럼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눈에 띄거나 관심이 가는 소식은 보이지 않습니다. 간혹 있다고 해도 피곤에 지친 몸을 간신히 지탱하기에도 벅한 퇴근길에는 놓치기 십상입니다. 시간을 꼬깃꼬깃 잘 접어서 집에 빨리 도착하는 일이 중요할 뿐이지 접힌 시간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