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연습한 시간

엄마의 책장으로부터

 

신유진 에세이

 

“나는 그 책이 엄마와 딸을 방구석에 처박아 둔 이야기가 아니어서 좋아.”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여자들 이야기도 방구석에서 나와야지.”

 

발행일 2024년 11월 15일 | 무선 128*188 | 224쪽 | 285g | 값 17,000원

ISBN 979-11-91744-38-5 03810 | 분야 에세이

 

 

 

 

“더 잘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의 책들로부터 시작된

신유진 작가의 신작 에세이

 

 

엄마의 삶, 여성의 성장, 우리의 미래에 대하여

읽고 쓰고 살기, “이야기로 나아가기”

《상처 없는 계절》, 《창문 너머 어렴풋이》를 비롯한 다섯 편의 에세이를 통해 그 특유의 섬세한 문장으로 삶의 풍경과 진실을 내밀히 전해온 신유진 작가가, 이 책 《사랑을 연습한 시간》에서 아주 오래도록 품어온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동안 하지 않았던, 그러나 반드시 한 번은 꺼내놓아야 했던, 자신의 글쓰기의 근원을. 나를 쓰게 한 언어와 또 쓰게 할 것들을.
뜨거운 것을 속에 품고 허기지다는 듯 책을 갈망하던 사람, 나의 첫 번째 학교, 엄마. 엄마가 읽은 책들, 들려주던 이야기, 때로 침묵하던 시간,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언어와 쓰기를 이루었다고 고백한다. 엄마의 사랑을, 불행을, 삶을 이해해 보려, 그의 말과 속을 내 것으로 옮겨보고자 번역자를 꿈꾸었다고도 쓴다. 그는 엄마의 오래된 책들에 먼지를 떨어내고(1부 엄마의 오래된 책), 모성과 여성성을 파헤쳐 다시 모으고 이어 붙여(2부 여성이라는 텍스트), 끝내 엄마와 나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삶을 껴안으며 새롭게 사랑하고야 만다(3부 삶을 쓰기).

이 책은 우리에게 당도한 새로운 모녀 서사이자 지금 박동하는 여성의 성장과 미래에 관한 이야기이며, 읽기와 쓰기에 관한 뜨거운 증언이다. 무엇보다 한 작가가 쌓아올린 세계가 응축된, 한층 더 깊어진 사유와 파고드는 문장, 반짝이는 진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에세이다.

 

“나는 그곳으로 돌아가 내가 반복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묻는다.

엄마, 여자, 한계, 사랑, 장소, 나…”

전혜린, 사강, 뒤라스, 울프… 엄마의 오래된 책들 위로 한 여자를 다시 쓰는 시도

나의 첫 번째 이방인, 엄마. 그는 한겨울 서늘한 방에서 작은 스탠드의 노란 불빛 아래 읽고 썼던 사람, 문이 달린 책장을 좋아했던 사람, 문을 닫고 자신만의 모험으로 떠날 줄 알았던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감탄과 깨달음의 ‘아!’가 아니라 갈망과 비명의 ‘악!’ 소리를 내며 읽던 엄마의 책들 속에서 엄마의 언어를 배우며 내 것으로 옮겨보고 싶었던 사람.

그리하여 나는 엄마의 오래된 책들을, 무엇보다 엄마를, 엄마의 삶을 받아쓴다. 엄마의 책들 속 전혜린처럼 갈망의 언어로, 울프처럼 진실을 캐내는 언어로, 사강처럼 가벼운 슬픔의 언어로, 뒤라스처럼 침묵을 듣는 언어로. 번역가가 되어 절실히 옮기듯이. 또 나의 새로운 책들 속 에르노처럼 내 계급을 향한 언어로, 솔닛처럼 날실과 씨실의 언어로, 리스펙토르처럼 영원과 순간의 언어로, 그리고 고닉처럼 길 위의 언어로, 오늘의 엄마와 나를, 여성이라는 텍스트를 통과한다. 한계와 갈망, 금기와 자유, 불안과 불행, 희생과 죄책감을 그침 없이 가쁘게, 다시 쓰고 고쳐 쓴다.

오래전 아니 에르노는 어머니를 한 여성으로 돌려놓는 시도로 《한 여자》를 썼고, 신유진 작가는 거기에서 실패를 읽어내고는 딸인 우리가 어머니에게서 어머니를 떼어내는 일이 가능한지 물었다. 그럼에도, 그토록 명확한 한계를 품은 채로 써나가는 용기를 보여준다. 복원사가 되어 엄마의 삶을, 그 두 번째 시간을 살아낸다. 금기와 불행과 희생으로 축소하지 않고 온전한 한 존재의 삶으로. 실패할 시도가 될지언정 “엄마로서 고정된 삶이 아닌, 엄마로서 변화하는 삶, 생명력 넘치는 그 삶을” 내 앞에 있는 엄마에게, 나에게, 세상 모든 딸에게 전하기 위해.

 

“끈끈한 혈육 관계의 이야기가 아닌, 살면서 놓친 연기 같은 것들을 바라보는 두 여자의 이야기, 그런 모녀 서사를 쓰고 싶었다. 덜 끈끈하고, 덜 달라붙어 있고, 덜 애잔한 글.” _<우리가 같이 걸을 때>

 

“내가 엄마 안에서 폭발할 것 같은 여성의 에너지를 발견한다면, 그것을 옮길 수 있다면, 금기와 불행과 희생을 뛰어넘은 그다음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자궁이 축복의 전부이거나 불행의 전부이지 않은 이야기, 모성과 감성, 이성과 야성을 두루 가진 존재의 이야기.” _<나와 엄마와 마릴린 먼로 2>

 

신유진 작가의 글쓰기의 기원과 지평

우리의 갈망, 가장자리, 어쩔 수 없음, 그 모든 사소하고 소중한 것들을 사랑하기 위해

“별거 아닌 것들의 별것을 향한 몸부림. 그 말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별거 아닌 것을 말할 줄 아는 용기도. 엄마의 그 말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을 테니까.” _<별거 아닌 것들의 별것>

 

“내 자리에서 날아가는 모든 것의 아름다움을 지켜보는 목격자가 되리라 다짐했다. (…) 내가 목격한 어떤 발들의 아름다움을 말하기 위해. 어떤 말은 날개가 될 수 있으므로.” _<맨발로 오롯이>

 

나의 언어를 이루고 쓰기의 기원이 된 엄마의 책들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또한 여성으로서 작가로서 앞으로 써 나갈 것들과 나아갈 걸음을 비추는 등불이 된다. 가져본 적 없는 언어, 품은 적 없는 사유가 아니라 별거 아닌 것들을, 가장자리를, 하찮고 사소한 것들을 진실로 응시하고 그것들에 날개를 달아주겠다고. 그가 가장 먼저 날개를 달아주고자 하는 것은 엄마의 가장자리, 엄마의 발이다. 맨발로 삶을 마중 나가는, 생을 열정적으로 만나기 위해 망설이지 않고 걸음을 내딛는.

엄마는 그 뜨거운 발로, 한때 ‘여자들은 어쩔 수 없지’라고 읊조리면서도 그 어쩔 수 없음으로 멀리까지 나아갔고, 이제는 집에서 일터까지 5분 거리를 ‘내 인생의 순례길’이라고 여긴다. 마침내 그 길을 나와 나란히 걷는다.

엄마의 책 위로 나의 책을, 엄마의 삶 위로 나의 삶을 포개며 씨실과 날실로 엮어낸 이 이야기를, 신유진 작가는 완성이라 말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사랑을 연습한 시간’이라고, 이 연습 끝에 탄생하게 될 진짜 작품은 바로 연습했던 시간, 우리의 ‘인생’일 거라고. 언젠가 이 연습이 완성된다면 그 끝에 쓰일 마지막 문장은 엄마의 편지처럼, 언제나 ‘사랑한다’일 것이다.

 

여성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온 오후의 소묘가 선보이는 더없이 애틋한 작품

엄마와 딸이라는 그 아슬아슬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탐구한 그림책 《두 여자》, 사랑과 폭력 사이에서 무너진 삶 위로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담은 아티스트북 《고양이와 결혼한 쥐에게 일어난 일》, 여성 창작자 10인의 ‘자기만의 방’에 관한 앤솔러지 에세이 《자기만의 방으로》까지, 여성 창작자와 여성의 이야기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온 출판사 ‘오후의 소묘’가 전하는 새로운 여성 서사. 작가 자신만큼이나 오래 품어온, 반드시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이제 당신에게 건넨다. 여성으로서의 나를, 우리를 오롯이 사랑하자고, 함께 뜨겁게 살아가자고, 여자아이들의 미래를 낙관하자고, 여전한 야만의 시대에 간절히 전한다.

 

“나는 그 책이 엄마와 딸을 방구석에 처박아 둔 이야기가 아니어서 좋아.”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여자들 이야기도 방구석에서 나와야지.” _<우리가 같이 걸을 때>

 

 

차례

프롤로그: 이야기로 나아가기

 

1 엄마의 오래된 책 별거 아닌 것들의 별것 / 닫힌 문 앞에서 / 갈망 혹은 비명 / 여름과 사강 /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너에게 / 다 그리고 싶어

 

2 여성이라는 텍스트 버지니아 울프에 대하여 / 내가 집이 된 것만 같을 때 / 나와 엄마와 마릴린 먼로 1 / 나와 엄마와 마릴린 먼로 2 / 엄마가 될 수 있을까? / 첫눈 오던 날

 

3 삶을 쓰기 환한 말 / 아니 에르노로부터 / 사납게 써 내려간 글자들 / 맨발로 오롯이 / 우리가 같이 걸을 때 / 오렌지빛 하늘 아래 당신의 손을 잡고

 

에필로그: 사랑을 연습한 시간

 

 

저자 소개 신유진

읽고 쓰고 옮기는 사람. 엄마의 책장 앞을 서성이고 파리의 오래된 극장을 돌아다니며 언어를 배우고 이야기를 꿈꿨다. 그 모든 것이 사랑을 연습한 시간임을 이 책을 쓰며 알았다.

산문집 《상처 없는 계절》, 《창문 너머 어렴풋이》, 《몽카페》, 《열다섯 번의 낮》과 《열다섯 번의 밤》을 썼고, 소설집 《그렇게 우리의 이름이 되는 것이라고》를 지었다. 옮긴 책으로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 《빈 옷장》, 《세월》을 비롯해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세상의 발견》과 희곡집 《소프루》 등 여러 책이 있다. 《생텍쥐페리의 문장들》과 프랑스 근현대 산문선 《가만히, 걷는다》를 엮고 옮겼다.

 

 

책 속에서

나는 엄마가 만든 이야기를 배턴처럼 받아 들고 계주를 이어가는 사람은 아니다. 아예 다른 곳으로 뛰어 가길 원한다. 그러니 우리 사이에 주고받는 모든 것들은 계승이 아닌 연결에 가까울 것이다. 엄마를 쓰는 일, 엄마의 이야기를 옮기는 일은 한 방향의 선을 잇는 것이 아닌,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선을 이어 면을 만드는 일이다. 엄마와 내가 만든 그 ‘면’ 안에 타인을 초대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이야기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_프롤로그

 

나는 우리에게 주어진 그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우리를 말하게 하고, 나아가게 한다는 사실을 안다. 엄마가 ‘여자들은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할 때, 그 어쩔 수 없음이 엄마를 어디까지 나아가게 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_별거 아닌 것들의 별것

 

엄마가 그 침묵 안에서 책이라 불리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 어디도 갈 수 없고, 무엇도 바꿀 수 없는 사람이 자기만의 세계를 열고 들어가는 모습을. 어쩌면 그때 그 장면들을 목격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읽고 쓰는 나의 삶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방문 너머에서 아무도 몰래 이뤄진 엄마의 모험이 나에게 용기를 줬을 것이다. _닫힌 문 앞에서

 

“이 책도 우는 여자 이야기야?” 한때 내게 여성 작가들은 울거나 웅크리는 사람들이었고, 나는 그들의 자기 고백적인 글이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감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내 질문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빙긋 웃으며 답했다. “아니야, 갈망하는 여자의 이야기야.” _갈망 혹은 비명

 

그건 엄마가 쓴 하나의 소설이다. 나는 그 소설의 주인공이고, 이야기의 결말은 늘 ‘우리 딸, 사랑한다’로 끝난다. _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너에게

 

화가가 되지 못했던 엄마가 그린 그림은 사실상 모두 연습에 불과했고, 그 연습 끝에 엄마가 완성한 진짜 작품은 연습했던 시간, 엄마의 인생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쓰는 글 역시 모두 연습이고, 이 연습 끝에 탄생하게 될 진짜 작품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 나의 인생이라는 것도. _다 그리고 싶어

 

나는 동경하는 작가들의 언어를 마음에 품고, 나의 경직된 언어로 말한다. 모어에서 벗어나길 꿈꾸면서 모어를 움켜잡는다. 유연하고 자유롭고 아름다운 것을 욕망한다고 말한다. 그런 것을 가질 수는 없지만 알아볼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내가 내 글에 담을 수 있는 솔직함이다. _환한 말

 

여자들은 내게 질문의 근원이고 여자인 나는 질문하며 산다. 아니 질문을 산다. 질문을 살면 답이 된다는 것을 아니까. 답이 된 내 삶이 또 다른 여자의 질문이 되리라는 것을 믿으니까. _내가 집이 된 것만 같을 때

 

세상에 함부로 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나 자신의 이야기라고 해도. 온몸으로 느끼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좌절하고, 쓸 수 없는 것을 쓸 수 있는 것으로 옮겨보는 것. 최선을 다해 옮겨보는 것, 그게 글쓰기일 것이다. 그래도 쓸 수 없는 것 앞에서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자. 그게 삶일 것이다. _우리가 같이 걸을 때

 

 

 

 

 

 

 

***본문 미리보기***

 

 

 

서점에서 보기

• 교보문고

• 알라딘

• 예스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