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계절

박혜미 에세이 화집

 

발행일 2025년 1월 20일 | 누드사철제본 180*250 | 104쪽 | 440g | 값 23,000원

ISBN 979-11-91744-40-8 03650 | 분야 그림 에세이

 

 

 

 

《빛이 사라지기 전에》 박혜미 작가의 첫 에세이 화집

우리가 함께했던 풍경이 그림이 될 때

당신에게 건네는 세심하고 다정한 계절의 안부

 

우리가 계절이라면 어떤 풍경일까?

같은 계절 안에 서로 다른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

당신에게 오늘의 계절은 어땠는지 물어보고 싶다

 

“기억은 문장이 되어 쓰였고, 풍경은 페이지가 되어 그려졌다. 그렇게 우리는 책이 되었다.”

그림책 《빛이 사라지기 전에》로 한여름의 찬란한 풍경을 그려냈던 박혜미 작가가 이 책으로 모든 계절의 빛나는 조각들을 엮어 선보인다. 우리가 함께한 계절을 섬세한 시선과 세밀한 묘사로 아름답게 그려낸 일 년 사계의 장면이 100여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그 사이사이 장면들에 담긴 작가의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계절을 온전히 누리는 일과 안부를 묻는 일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시절에 이 책은 마치 그리운 친구의 안부 편지 같고 또 선물 같다. 이 세심한 계절의 안부는 우리에게 지나온 계절을 기억하고 그려볼 다정한 마음을, 다가오는 계절을 오롯하게 감각할 선명하고 깨끗한 시선을, 우리가 함께한 계절 속 서로의 사적인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희망의 기운을, 두 손 가득 건네줄 것이다.

 

 

“지금을, 이 풍경을 어떻게 그리지 않을 수 있을까?”

가장 사적인 고백, 그린다는 것은 좌절과 절망을 건너

끝내 아름다움을 품는다는 것

박혜미 작가가 두 발로 오래 걸으며 통과한 찰나의 계절을, 두 손으로 영원처럼 빚어낸 장면들 안에서는 깊고 짙은 감정과 마음이 묻어나온다. 폭설 위로 다시 써 내려가는 겨울의 기대, 흩날리는 꽃잎처럼 내려앉는 봄의 그리움, 무겁게 떨어져 발밑으로 구르는 가을의 결실들, 눈을 기다리며 숙성되는 설탕과 유자의 시간. 그것은 때로 매일의 좌절, 희미한 희망에 대한 낙관, 나를 안아주는 마음, 타인의 등을 쓰다듬어주는 마음, 폭우 속 사랑의 고백,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하기 위한 다짐 같은 것들이다.

밤이 지나 낮이 올 때까지 온종일 한 장면만 생각하며 걷고 그리는 작가의 손길과 마음이 종이 위로 충만히 흐르고, 그 페이지들 사이를 찬찬히 함께 걷다 보면 좌절과 절망을 건너 끝내 아름다움을 품는 용기 한 줌을 손에 쥐게 될 것이다.

“주저함에 용기가 필요할 땐 함께 부르던 노래를 혼자 부른다. 나는 금세 씩씩해져, 다시 책상에 앉아 네가 준 믿음 하나를 쥐고 자꾸 넓어져 갔다.”

 

“모든 계절이 찰나처럼 지나가고 잊혀진 풍경들 사이에 내가 서 있고

쥐고 있던 기억에는 우리가 남았다.”

계절에 깃든 기억, 기억에 깃든 우리를 이야기로 만드는 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모래처럼 잊혀진 풍경들 위로 손바닥에 남은 가장 아름다운 기억 안에는 나 혼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너와 내가 함께 느낀 바람과 빛, 나눈 말들과 마음이 알알이 구르고 있을 테니까. 그 모든 감각과 감정을 계절에 기대어 그림과 글로 섬세히 풀어낸 이 책을 통해, 저마다 자신만의 사적인 계절을 껴내어 펼쳐보기를, 그 계절에 깃든 우리를 이야기로 시작해 보기를.

“긴 시간 홀로 덩그러니 남아 몇 장 남지 않은 빈 페이지가 채워지길 기다렸을지도 모를 일기장에 지금의 우리를 쓰고 싶어졌다. ‘잘 지내니?’라는 안부의 물음 대신 ‘잘 지내고 있어.’라는 안심의 마침표로 첫 문장을 시작해야겠다.”

“돌아오는 계절마다 너를 만났고, 혼자여도 둘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책의 다음 페이지에 언젠가의 우리가 계속해서 쓰이고 그려질 것이다. 오늘 만난 계절은 잊지 않고 우리를 다시 찾아올 테니까.”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중소출판사 도약부문 제작 지원’ 사업 선정 도서.

 

 

차례

0 보내고 기다리는 계절

1 재회하는 계절

2 비밀한 계절

3 물들고 구르는 계절

4 쓰이고 그려지는 계절

 

 

저자 소개 박혜미

그림책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섬세한 시선과 세밀한 묘사로 마음이 기우는 것들을 사려 깊게 그려가고 있다. 고운 인상이 남은 것들로 작고 적은 무언가를 만들기도 한다. 그림책 《빛이 사라지기 전에》, 《오늘을 축하해》를 지었고, 《당연한 것들》을 비롯한 여러 책에 삽화로 참여했다.

 

 

책 속에서

꾹꾹 눌러쓴 글씨는 한낮 햇볕에 닿아 서서히 녹아내리다 찬바람에 얼어붙으며 흐릿하게 윤곽만 남기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 자리엔 다시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다짐이 새로 적힌다. _8쪽

 

차갑기만 했던 바람이 한 발짝 다가와 둥그렇게 휜 등을 쓸어줄 때, 지하철역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이 떠오르며 내내 입속을 맴돌았던 말이 혼잣말처럼 튀어나온다. 전부가 언제나 진심일 필요는 없다고, 지금의 좌절이 우리를 다음 페이지가 아닌 다음 챕터로 넘어가게 해줄 거라고. _11쪽

 

머리 위로 다시 비가 쏟아져 내리고, 우리는 우산 하나를 나눠 쓴 채 걷기 시작한다. 미처 피하지 못한 빗방울이 어깨 위에 앉았다 넓어졌다 짙어지고, 모르는 사이 서로의 어깨에 연분홍 얼룩이 생겼다. 얼룩이란 말 대신 기억이라 말하자고, 안녕이란 말 대신 나중에 그 언젠가 오늘을 그리자 하며 헤어졌다. 우리의 바람대로 기억은 그림이 되고, 여전히 우리는 마주 보며 웃고 있을 거다. _54쪽

 

한낮의 찬란함이 손가락 끝에서 붉게 반짝일 때, 당신의 웃음이 무지개처럼 흩어져 사라질 때, 어째서 우리의 여름은 능소화로 피어났을까? 당신의 고단함을, 바람을, 열정을 먹고 자란 주황빛 아름다움을 함께 뒤집어쓰고, 마침내 문장 뒤에 찍힌 느낌표처럼 우리는 여름의 절정 아래 서 있다. _67쪽

 

나는 온종일 한 장면만 생각해. 밤이 지나 낮이 올 때까지. 시선이 가슴을 향해 손끝에 머물게 될 때까지. 아주 소중한 것을 만질 때처럼. _74쪽

 

네가 내게 해준 말들 중에 그 말이 정말 좋았다. 살면서 한 사람만 곁에 있어도 버틸 수 있잖아. 다가오는 매일에 쉽게 지치고, 나를 탓하고 의심하고, 그러다 불안해지고 비극이 덮쳐와도, 누군가의 믿음 하나가 있다면 그걸로 괜찮아질 수 있다는 게, 그 사실이 나를 계속 씩씩하게 만들어주는 거 같아. 그 말이 나는 좋았다. 하나의 믿음이면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 내 손에도 한 줌 온기를 쥐게 해주는 거 같아서, 그 말을 사탕처럼 자주 꺼내 먹었다. _85쪽

 

가을이 애틋한 건 긴 기다림을 찰나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일 테다. 긴 기다림은 단풍보다 먼저 마음을 물들이고, 떨어지는 낙엽의 뒤편에는 아직 보낼 수 없는 시간들이 행렬을 이뤄 굴러간다. _91쪽

 

모든 겨울은 눈을 기다리는 일로 시작되고, 내 겨울은 유자를 사는 일로 시작된다. 시장에서 사 온 유자의 껍질을 잘 닦고, 얇게 채 썰어 하얀 설탕에 켜켜이 쌓아 담고, 속이 잘 보이는 유리병에 담는다. 눈을 기다리는 일은 유자가 숙성될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설탕과 유자가 유순해질 때,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_99쪽

 

굳이 특별해지기 위해 애쓰지 않는 순간부터 삶은 조금씩 내 것이 되어간다. 오늘이 적힌 일기는 매일 다른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진실은 같은 말을 되풀이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지나간 언젠가의 오늘을 여러 번 고치며, 새로 쓰며, 내가 조금 더 선명해진다. 일상은 두서없이 쓴 어제를 단정하고 정갈한 하나의 문장으로 퇴고하기 위한 수많은 반복의 과정이지 않을까. _101쪽

 

 

 

 

 

***본문 미리보기***

 

 

 

서점에서 보기

• 교보문고

• 알라딘

• 예스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