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낙원>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무루 작가와의 작은 인터뷰

 

“좋은 이야기를 더 많이 알고 싶어요. 그리고 하고 싶어요.”

 

 

올 상반기엔 무루 작가님의 신작 <우리가 모르는 낙원>(이하 우모낙)과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이하 이로운 할머니) 개정판을 연달아 내고서, 북토크 투어로 내내 함께했다.

첫 행사였던 라트랑슈의 낭독회부터 김신지 작가님과 함께한 알라딘 북토크, 리브레리아Q의 라운드 테이블, 그리고 대전과 경주, 순천을 거쳐 최근엔 신유진 작가님과 함께한 익산까지, 멀리 가까이 책방을 찾아다니며 독자님들을 만나온 여름이었다. 저마다의 고독이 다정히 함께하는 모양을 보았다. 책을 완성해서 세상에 내놓는 일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라는 것을, 점과 선으로 이어온 여정 속에서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음을 가득 채운 여름’은 동시에 질문을 가득 채운 여름이기도 하였고, 무루 님 말처럼 마음은 ‘사진이나 글로는 다 전해지지 않’을 테지만, 그 질문의 조각들은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때보다 마음을 가득 채운 여름”

소묘 2020년에 <이로운 할머니>를 처음 냈을 때는 코로나19로 독자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어서, 무루 님 작업실에서 소규모로 진행했던 북토크가 무척 특별했던 이벤트로 기억에 남아 있는데요. 이번에는 시간과 마음을 내어 여러 곳에서 많은 분들과 만났습니다. 소감이 어떠실까요?
무루 여름내 기차를 타고 대전, 경주, 순천, 익산의 동네책방들을 다녀왔어요. 수원, 동탄, 서울 같은 인근 도시들에서도 책 이야기하는 자리를 틈틈이 가졌고요. 원래 여름에는 고정된 점처럼 고여 지내는데 올 여름은 동선을 크게 그리며 났어요. 아마 그림으로 그린다면 춤추는 불가사리 같은 모양일 것 같고요(데이비드 위즈너의 <시간 상자>에 등장하는 거대한 불가사리 섬처럼요. 정말 좋아하는 그림책이에요. 여름에 읽기에 더없이 좋은). 새로운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더없이 많은 것이 오가는 시대지만 다정한 눈빛, 떨리는 목소리, 손의 온기처럼 어떤 것들은 사진이나 글로는 다 전해지지 않는다는 걸 새삼 실감했고요. 어느 때보다 마음을 가득 채운 여름을 보냈어요.

 

데이비드 위즈너, <시간 상자> 속 불가사리 섬

 

소묘 저도 그 여정을 함께하면서, 하나의 책이 던진 질문들을 가지고 작가와 독자가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정말 큰 힘을 가지고 있구나, 깊이 느꼈는데요. 그래서 북토크 때 나왔던 질문들을 소묘 레터 독자분들과도 나눠보고 싶어요.

먼저 첫 책을 쓰고 다음 책 사이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어떤 시간들을 보내셨는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두 번째 책을 쓰고 엮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무루 <이로운 할머니>를 쓸 때는 글을 쓴다는 게 뭔지도 모르는 채로 썼어요. 약속과 마감이 있어 당장 쓸 수 있는 것을 쓰자는 생각이었고요. 지금도 쓰는 일이 막막하고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이제는 동기와 책임을 제 밖에서가 아니라 제 안에서 찾고 있어요. 전에는 없던, 듣는 귀 하나가 더 생긴 기분이에요. <우리가 모르는 낙원>은 그 과정을 건너며 쓴 글들이 묶여 나온 책이겠고요.
소묘 두 책 모두 그림책을 다루고, ‘이야기’에 관한 각별한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우모낙>에서는 그 마음이 프롤로그에서부터 더 선명하게 드러나고요. 무루 님이 생각하는 좋은 이야기, 혹은 매료되는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요?
무루 매혹되는 이야기들이 있어요. 제게 매혹은 ‘모른다는 감각’과 관계가 있는데요. 좋은데 왜 좋은지, 불편한데 왜 불편한지 아직 미처 다 알지 못하는 채로 유인되는 이야기들이 좋아요. 그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제 경계를 알게 돼요. 내가 가진 인식이나 언어의 한계가 여기까지였구나, 하고 느껴요. 그리고 그렇게 나를 넘어서는 이야기들을 읽는 일은 결국 질문을 받는 일인 듯해요. 오래 품게 되는 좋은 질문들이 되는 이야기에 늘 끌려요.
소묘 <우모낙>은 ‘고독’에서 ‘함께’로 나아가는 여정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외롭지 않기 위해 함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고독이 함께의 필수조건처럼 여겨져요. 고독이라는 친구와 불화하지 않고 다정히 지낼 수 있는 무루 님만의 방법이 있다면 나눠주세요.

무루 삶의 모든 순간을 고독하게 보낼 수는 없을 거예요. 제게도 가족과 친구와 동료들이 있고, 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소중해요. 다만 어떤 일들은 혼자 해내야 하는 것 같아요. 그 일들이 제게는 삶을 이루고 나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일들로 여겨지고요. 그래서 그걸 잘 해내는 데에 마음을 써요.  그건 오직 나만 알 수 있는 것이고요.

그러나 고행하듯 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제 나름으로 찾아낸 방법은 스스로 즐거울 수 있는 형식을 찾는 일이에요. 해야 할 일들을 좀 더 좋아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삶의 형식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나날의 습관이 그 중 하나일 것 같고요.

소묘 <이로운 할머니>에서 말하는 삽질, <우모낙>에서 말하는 커뮤니티 실험처럼 삶의 여러 영역에서 다채로운 경험과 실패들을 즐겁게 이어오신 것 같아요. 그 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무루 고독을 다루는 일과 같은 맥락일 거예요. 사는 일에 아름다운 형식을 갖출 수 있다면 즐거울 것 같았어요. 저마다가 찾아낸 형식들이 저는 늘 궁금해요. 그걸 엿보는 일은 제게 영감이 되고요. 그런 영감을 주고받는 일이 제게는 ‘함께’의 맥락으로 읽혀요. 혼자인 사람이 어떻게 세상과 덜 불화하며 어울려 살 수 있을까를 궁리할 때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좋은 ‘함께’요.

 

좋은 질문들이 흘러나왔던 함께의 순간들

 

소묘 “내가 원하는 삶의 형식이 이 세계에 아직 없다면 스스로 만들어볼 수밖에 없다.” _<우모낙>

“좋은 습관을 지닌 노인이 되고 싶다. 기술이나 재능이 아니라 습관인 것은 성과보다 반복되는 리듬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_<이로운 할머니>

<우모낙>에도 <이로운 할머니>에도 좋은 습관과 삶의 형식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무루 님이 가진 좋은 습관은 무엇인가요? 또 앞으로의 삶에서 무엇을 반복하며 살고 싶으신가요?

무루 지난해 여름부터 올 여름까지 ‘일상탐구생활’이라는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각자가 찾아낸 삶의 기술을 나눠보자는 취지였는데요. 저는 ‘도시인을 위한 절기’라는 주제로 한 해를 나는 과정을 기록했어요. 계절의 마디를 긋는 날들을 기록하고 그 날들에 이름을 붙이는 방식으로요. 그렇게 한 10년쯤 기록하고 나면 남은 생을 제가 만든 절기에 의지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어요. 제 나름 도시에 살면서도 자연의 속도를 누리며 계절과 조화하는 방식일 텐데요. 그래서 요즘은 계절의 일들을 느슨하게 기록해 보고 있어요. 오늘은 ‘자다 깨서 겨울 이불을 꺼냈다’라고 썼네요.

 

“틈에서 발견하는 낯설고 이상한 이야기들 쪽으로”

소묘 첫 <이로운 할머니>와 <우모낙> 그리고 <이로운 할머니> 개정판까지, 무루 님의 <정글맨션> 이야기가 구체화되는 모습을 독자로서 즐겁게 따라갔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품고 그 세계를 완성해 나가는 일은 에세이를 쓰는 일과는 또 다른 영역일 것 같아요. 무루 님이 그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얻은 즐거움이나 어려움, 앞으로의 구상도 듣고 싶어요.

무루 <정글맨션>을 구체화하는 일은 제게 삽질 중 하나였어요.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될지, 목차는 어떻게 구성될지, 각각의 인물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상상하는 일이 재미있었고, 때로는 그걸 상상하는 데에 꽤 시간을 들이기도 했는데요. 그건 오직 제가 그 글을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사실 <정글맨션>이 책에 실린 건 그야말로 우연이었잖아요? 그래서 지금까지는 오직 즐겁기만 했는데요. 책에 싣기로 결정한 순간부터는 걱정이 컸어요. 내가 이야기를 쓰다니. 이렇게 막 쓴 글을 책에 실어도 되나? 했죠. 막 썼다는 건 그러니까 오직 즐거움을 위해서만 썼다는 뜻이에요. 독자에 대한 어떤 책무도 없이 저 혼자 좋자고 쓴 글이니까요. 그래서 이제부터 찬찬히 고민해보려고요. 이 이야기가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저를 어디로 데려갈지, 잘 따라가 보려고 해요.

소묘 최근 무루 님을 즐겁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작은 습관이나 취미, 누리고 있는 일상의 기쁨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무루 운동을 시작했어요. 이제 딱 1년이 됐고요. 몸이 조금씩 달라지는 걸 느껴요. 노화의 과정을 가파르게 겪는 중이라 아주 희미하게라도 유연하거나 강해지는 느낌이 소중해요. 선생님을 만나 일주일에 한 번 운동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데요. 몸을 움직이며 제가 육체를 가진 사람이라는 걸 실감하고 있어요. 오직 나만 알 수 있을 만큼 아주 조금씩 강해지는 느낌이 좋아요. 평생 정신이 몸을 끌고 살아왔는데요. 이제 몸으로 삶을 잘 지탱하며 살아보고 싶어요.

소묘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에 수식어 하나를 더한다면, ‘강한’이 될 것 같네요.ㅎㅎ

‘낙원’에 대해서도 우리가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무루 님에게 ‘낙원’이란?

무루 틈일 거예요. 완결된 세계에 난 균열 같은 것. 익숙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그래서 정상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틈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이야기들. 낯설고, 혼란스럽고, 불완전하고, 이상한 것들. 이름이 없거나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들. 그 모든 것들이 어떤 위협 없이 자기 자리를 가지는 일.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쪽으로 흘러가는 마음. 그게 저의 낙원이에요.
소묘 마지막으로 ‘소묘의 여자들’ 공식 질문입니다. 저희 책에는 ‘오해’라는 단어를 애틋하게 여기신다고 쓰셨는데, 무루 님이 요즘 골몰하는, 아끼는 단어는 무엇인가요?
무루이야기‘를 아껴요. 제게 이야기는 어떤 것의 이면을 드러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모른다는 감각을 일깨우거나 타자를 감각하거나,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고요. 한 사람이 지닌 주관적 진실이 어딘가에 닿으려고 애쓰는 방법이기도 해요. 좋은 이야기를 더 많이 알고 싶어요. 그리고 하고 싶어요.

 

 

 

모르는 것들에 매혹되는 사람,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 가장 좋은 함께를 도모하는 사람, 삶의 형식을 발명하는 사람, 자기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 이름 없는 것들의 자리를 그려보는 사람, 그러니까 이야기를 아끼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라서 우리는 무루에게 매혹되고 마는 것이겠다. 그의 글이, 이야기가, 삶이 우리에게 언제나 좋은 질문을 건네며 자기만의 틈을 발견하게 하기 때문에. 저마다의 틈으로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따라 흘러가다 보면 언젠가 우리의 질문과 이야기가 포개지는, 이 여름 같은 순간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그리는 낙원.

 

 

 

‘소묘의 여자들’은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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