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낙원> 그림 작가 요안나 카르포비치와의 인터뷰

 

언젠가 우리 손을 잡아줄 다정한 친구

 

 

때는 2024년 2월의 어느 날, 무루 님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 작가 너무 좋아서 소개하고 싶어 보내드려 본다. 화집 나오면 좋겠어. 소묘에서…” 보내주신 자료를 살피며 몸과 뇌에 전류가 흐르는 듯했는데, 무루 님 글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림이잖아! 판타지와 서사가 흘러넘치는 작품들 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마음, 비밀과 신비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화집이 아니라 우리 준비하는 책에 실어야겠다고 의기투합을 했다. 진짜로 그 일이 이루어질지는, 또 그게 일 년을 훌쩍 더 넘어서 이루어질지는 아마 그때도 몰랐을 것이다. 그해 11월, 나는 요안나 카르포비치 작가에게 메일을 쓰고 있었다. 이후로 그와 주고받은 모든 메일과 소소한 대화들 하나하나가 다 기쁨이고 우정이고 사랑이었다. 이제 우리는 작은 낙원을 이루는 공동체의 일원이다.

 

 

“그림에 얽힌 사연을 전혀 몰랐는데도, 이 그림을 표지로 골랐다는 게 정말 마법 같았어요.”

소묘 요안나, 먼저 우리의 이번 프로젝트에 함께해 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합니다.

우리 책에 참여해 달라고 제안드렸을 때 흔쾌히 수락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들었을지도 궁금합니다.

요안나 정말 영광이었어요. 솔직히 말해서 약간 압도되기도 했죠. 무루와 소묘가 이 책에 불어넣을 그림의 미학과 분위기를 얼마나 신중하게 고려해서 선택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만큼 제 작품에 대한 책임감도 느꼈습니다. 무루에게도 이번 책이 긴 공백기 이후에 다시 돌아오는 중요한 작업이라는 걸 이해했어요. 한국 독자들에게 저를 소개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제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소묘 예술가로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나 신호가 있나요?
요안나 먼저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니다. 저는 책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이 책이 내 서재에 꼭 두고 싶은 책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봐요. 그다음으로는 편집 방향과 출판의 완성도입니다. 저는 단순함에 담긴 아름다움과 세심한 디테일을 소중하게 생각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작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루와 소묘처럼요.
소묘 표지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인스타그램에 올려주셨는데, 저희 독자들에게도 들려주실 수 있나요?
요안나 표지 그림은 2022년에 그린 거예요. 제 그림 시리즈의 캐릭터인 아누비스가 자전거를 타고 ‘작은 지옥 협곡(The Little Hell Gorge)’을 향해 가는 장면이에요. 지도에서 이 이름을 찾을 수는 없을 거예요. 아주 어둡고 신비로운 협곡인데, 가파른 황토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죠. 제 아버지의 고향이자 저만의 ‘트윈 픽스(Twin Peaks)’*인 슈체브제신(Szczebrzeszyn)이라는 작은 마을 근처에 있어요.

어릴 적 그곳에서 개암나무를 찾아 활을 만들며 놀곤 했어요. 할머니와 함께 허브를 따러 가기도 했죠. 할머니는 “허브는 약보다 더 강하니까 조심해야 해”라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제가 아는 누구보다도 식물과 꽃을 잘 아는 분이었죠.

(*미국의 유명한 미스터리 호러 드라마 〈Twin Peaks〉(트윈 픽스)에서 가져온 비유 같다. 어딘가 비밀스럽고, 신비로우며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특별한 추억의 장소를 말하는 게 아닐까.)

 

That Silk Shawl of Grandma Stasia, 29.7x42cm, 2022 ©Joanna Karpowicz

 

소묘 처음에는 아누비스가 숄을 두른 할머니와 나란히 걷는 그림(<That silk shawl of grandma Stasia>)이 표지 1순위였는데, 인쇄 직전에 표지 디자인을 바뀌었어요. 두 그림 모두 요안나의 할머니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무루의 전작 제목도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였고, 이번 책에도 할머니가 된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챕터가 있거든요.(영어 제목으로는 ‘Sister’s Thread’이고, 그 챕터에는 <Brother> 그림을 넣었어요.)
요안나 무루와 소묘가 그림에 얽힌 사연을 전혀 몰랐는데도, 이 그림을 표지로 골랐다는 게 정말 마법 같았어요. 할머니라는 존재가 무루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으니까요. 두 분의 직관에 고마움을 표해요.
소묘 요안나에게 할머니는 어떤 존재인가요? 할머니와 관련된 그림을 그릴 때 떠오르는 감정이나 기억,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요안나 저는 두 할머니와 아주 깊은 유대감이 있었습니다. 두 분은 매우 달랐지만, 모두 저를 오늘의 저로 만들어준 스승 같은 존재예요. 실크숄을 두른 스타시아 할머니는 조용한 분이었어요. 자연과의 관계가 특별했고, 실용적이면서도 신비로웠죠. 네 아들의 엄마였기에, 저나 사촌들처럼 여자아이들이 주변에 있는 걸 낯설어하시기도 했죠. 할머니는 손에 늘 들판에서 캔 허브, 과수원에서 딴 과일, 텃밭에서 가져온 채소로 가득했어요. 말보다는 음식과 꽃으로 사랑을 표현하셨죠. 스타시아 할머니는 저에게 삶 속에서 디테일을 보는 법을 가르쳐주셨어요.

크리샤 할머니는 스타시아 할머니와 정반대였어요. 스포츠를 사랑했고, 스키와 카약 강사였죠. 야생 자연이 할머니의 왕국이었어요. 외향적이고 모험심이 강했으며, 늘 제게 “안전지대 밖으로 나가보렴”이라고 하셨죠. 할머니와 함께 있으면 늘 이야기와 웃음이 넘쳐 흘렀어요. 크리샤 할머니는 제게 강인함과 책임감을 선물해 줬어요.

소묘 책에 수록된 다른 그림에 얽힌 이야기도 한두 가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요안나 빨간 트램은 키예프의 소녀 옥사나를 위해 그린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폴란드의 이웃 나라인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어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해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고 있죠. 그곳에 친구들과 먼 친척이 있어서, 오랜 시간 그 나라가 겪는 고통에 매우 마음이 아픕니다. 그림 속 붉은 트램은 키예프의 상징 같은 것이에요. 옥사나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우크라이나가 마침내 자유를 되찾으면 함께 커피를 마시자”라고 약속했어요. 원화를 옥사나에게 보냈는데, 다행히도 무사히 도착해 지금 아누비스가 타고 있는 붉은 트램은 키예프에 있습니다.

책(그리고 피크닉 매트^^)에 나오는 식물원은 제 고향인 크라쿠프에 실제로 있는 장소예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인 야기엘론스키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유서 깊은 식물원인데, 정말 아름다운 곳입니다. 저는 식물과 대화하고 싶을 때마다 그곳에 가요.

모든 그림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지만, 저에게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독자/감상자의 해석입니다. 저는 제 이야기를 강요하기보다, 언제나 듣는 걸 좋아해요.

 

Anubis in Kyiv, 23x29cm, 2022 ©Joanna Karpowicz

 

 

“저편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소묘 예술가로서의 여정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그림을 그리고자 결심한 계기나 기억에 남는 첫 작업이 궁금합니다.
요안나 부모님 두 분 모두 예술가였어요. 어린 시절부터 예술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고고학자가 되고 싶었죠. 부모님도 제게 예술가의 길을 권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평범한 직업’을 갖길 바라셨어요. 하지만 그림 그리는 일은 제가 가장 자연스럽고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어요.

결국 미술을 전공했고, 크라쿠프 미술 아카데미에서 회화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동시에 부모님 바람대로 ‘평범한 직업’도 가졌어요. 12년 동안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습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주말과 휴일에 그림을 그렸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요. 점점 불행해졌고, 마치 사람에게 공기가 필요하듯 제게 예술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는 것도요. 안정적인 직업에서 예술가로 전향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저는 선택했어요. 처음에는 낮에 그림을 그리고 밤에 바텐더로 일했죠. 그렇게 천천히 미술 시장에 진입했고, 인내심과 노력을 쏟아 지금은 예술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진짜 나 자신을 찾았어요.

소묘 아누비스 시리즈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아누비스라는 존재에 특별히 끌렸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아누비스는 낯선 존재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를 포함해 아누비스 캐릭터를 저마다 다르게 보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저와 디자이너는 고양이 인간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무루 작가와 함께 팀으로 그림책 번역을 하는 동료 작가 기린은 검은 토끼라고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이비잔하운드일지도 모르고요. 또 누군가는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집트 사신이라는 원래 의미보다는 자신이 바라는 존재로 보고 있는 것 같아 흥미로워하고 있습니다.)

요안나 2012년부터 아누비스 시리즈를 작업해 왔어요. 고대 이집트에서 아누비스는 인간의 영혼을 사후 세계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중요한 신이었죠. 이 시리즈는 제가 스물넷이던 때 돌아가신 아버지께 바치는 작업입니다. 이후로 2011~2012년 사이 조부모님도 모두 떠나셨고, 그 일이 제 안의 무언가를 촉발시켰어요. ‘저편에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저는 그 답을 찾아야 했습니다.
소묘 작가님의 작품들은 시리즈라는 점도 한몫하겠지만 각각의 그림을 떼어놓고 보아도 보는 이로 하여금 이야기를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습니다. 판타지와 서사를 품고 있는 것 같아요. 아누비스 시리즈를 오랜 시간 이어오며, 작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과 여전히 변하지 않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시간이 흐르며 아누비스에 대해 새롭게 발견한 면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혹시 작가님만 알고 있는 ‘아누비스의 진짜 얼굴’이 있을까요?
요안나 처음에는 죽음을 탐구하는 시도로 슬픔과 애도를 다뤘지만, 지금은 삶과 순간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어요. 죽음에서 삶으로의 변화는 곧 제 자신의 변화이기도 해요. 시간이 흐르는 것을 더 받아들이게 되었고, 나이가 들수록 더 낙관적으로 변했습니다. 저는 나이 드는 것이 좋고, 점점 더 행복하고 충만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아누비스는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언젠가 우리 손을 잡아줄 다정한 동반자이자 친구예요. 그날이 아직 오늘이 아닐 뿐이죠. 아누비스는 인간의 삶을 이해해 보고자, 우리 곁에서 즐겁고 아름다운 날을 즐기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아누비스를 현재 우리 삶 속에 등장시킵니다. 도시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자전거를 타고,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그려요. 누구나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고, 굳이 고대 이집트의 문화적 코드로 볼 필요도 없어요. 아이들은 아누비스를 종종 ‘토끼 아저씨’라고 부르곤 해요.

 

Fresh, 29.7x42cm, 2023 ©Joanna Karpowicz

 

소묘 아누비스라는 존재도 중요하지만, 그것만큼 배경도 무척 중요해 보입니다.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처럼 느껴지거든요. 어떤 배경은 무척 사실적이고(특히 도시를 배경으로 한 그림들은 에드워드 호퍼를 떠올리게도 하고요), 한편 어떤 배경은 굉장히 비현실적이에요. 도시의 밤, 낯선 골목, 비현실적인 풍경 등 다양한 공간을 그릴 때, 실제 장소와 상상 속 공간을 어떻게 조합하나요? 아누비스가 존재하는 장소를 선택하고 그리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요안나 아누비스는 제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녀요. 저는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고,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항상 호기심과 애정을 가지고 주변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합니다. 아누비스를 그곳에 놓으려면 그 장소와 감정적으로 연결되어야 해요. 저를 부르는 장소들이 있어요.

많은 이들이 이제 아누비스 시리즈가 지겹지 않냐고 묻는데, 제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이렇습니다. 더 많이 그릴수록 더 많은 영감을 얻습니다.

소묘 요안나의 그림에는 독특한 색감, 빛, 그리고 공기가 느껴집니다. 그림을 그릴 때 색이나 빛을 어떻게 결정하나요? 공간을 상상할 때 소리, 냄새, 온도 같은 감각도 함께 떠올리나요?
요안나 네, 제 작업 과정을 정말 잘 묘사해 주셨어요 :) 저를 부르는 장소들에서 저는 카메라를 스케치북처럼 사용합니다. 사진을 찍고, 때로는 스케치북에 빛, 색, 형태에 대한 메모를 빠르게 남기기도 하고, 꿈에서 본 장소를 글로 적은 뒤 그림으로 그리기도 합니다. 저는 항상 그림에 몰입해 그 속에 있고자 해요. 때로는 하루치 작업을 끝내고 나면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요. 그림을 그리는 꿈에서요.

 

“정해진 규칙은 없어요. 그냥 마음을 두드리는 순간이면 됩니다.”
소묘 여행을 좋아하고 자주 다니시는 것 같습니다. 여행이 작업에 주는 영감이 있다면? 최근 다녀온 여행지 중, 특히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장소와 그곳에서 얻은 영감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요안나 여행 중에 너무 아름다워서 차마 그릴 수 없는 풍경을 마주할 때가 있어요. 스위스와 프랑스 사이의 레만 호수처럼요. 그런 곳은 너무나 압도적이고 영원한 아름다움을 발산해서, 오히려 그림으로 옮길 가능성이 낮아요. 제게는 너무 크고, 너무 벅차거든요. 하지만 가끔 작은 마을을 지나가다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오솔길을 보면 ‘이건 꼭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정해진 규칙은 없어요. 그냥 마음을 두드리는 순간이면 됩니다.
소묘 그림 작업 외에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그것들이 요안나의 예술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요안나 가까운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해요. 그림을 그리는 일은 매우 외로운 직업이기 때문에, (저처럼 내향적인 사람이라도)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하거든요.
소묘 무루 작가는 삶을 이루는 요소 중에 습관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습관을 지녀야 한다고 말하죠. 요안나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될까요? 오랫동안 이어가고 싶은 습관은 무엇이 있을까요?
요안나 저는 항상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요. 하루의 리듬을 만들어주고, 작업에는 빛이 필요하거든요. 걷는 걸 좋아해서 많이 걷고, 일이 벅차게 느껴질 때도 그냥 걷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숲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해요.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운동 사랑도 제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에요. 예전엔 달리기를 했지만, 요즘은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바꿨어요. 예술가에게 근력을 향상시키는 건 중요해요. 우리는 온몸으로 일하니까요. 작업할 때는 습관처럼, 작업실을 항상 깔끔하게 정리합니다. 하루를 마치면 꼭 간단히 청소를 해서, 다음 날 바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두죠.

 

Journey Through The Secret Life of Plants, 70×100 cm, acrylic on canvas, 2024 ©Joanna Karpowicz

 

소묘  ‘우리가 모르는 낙원’이라는 주제를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이미지나 생각이 떠올랐나요? 무루 작가는 우리 책에 이렇게 썼어요. “아직 쓰지 않은 이야기들이 우리를 구할 것이다. 낙원은 언제나 미래형 문장으로 쓰일 것이다.” 요안나를 구했던 이야기가 있을까요? 또, 작가님에게 그런 ‘아직 쓰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앞으로 그리고 싶은 장면을 한 문장으로 들려주셔도 좋습니다.)
요안나 저는 불안장애 진단을 받았고, 우울증도 겪었습니다. 지금은 훨씬 나아졌지만, 불안은 여전히 제 삶의 일부예요. 한밤중 불안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줘요. 매번 조금씩 다르고, 결말이 없는 이야기예요. 결국 잠이 들기 때문이죠. 그게 도움이 됩니다.
소묘 올해 볼로냐 도서전에서 일러스트레이터 앰버서더로 참석하기도 하셨는데, 앞으로 그림책 작업 계획이 있으신가요?
요안나 지금까지 아누비스 시리즈를 담은 아트북 <Anubis. Thin Places> 1, 2권(출판사 Timof Comics)을 냈어요. 2025년 말에 3권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소묘 요안나에게 ‘낙원’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무루 작가는 낙원은 ‘서로가 다정한 얼굴이 되어주는 세계 속에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단언하지는 않았지만요. 우리 책 제목의 다른 후보 중에는 ‘고독한 우리가 다정한 세계를’이라는 것도 있었어요. 웃음.) ‘낙원’이란 결국 어떤 공간, 어떤 감정, 어떤 사람일까요? 예술가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낙원’에 가까워지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요안나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평화롭고 가장 저다운 느낌을 받아요. 그리고 자연 속에 있을 때요. 새소리를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그 순간이 저에게는 낙원입니다.
소묘 요안나, 당신은 정말로 우리에게 다정한 얼굴이었어요. 당신과 나누는 모든 과정이 나에겐 즐거움이었어요. 요안나라는 낙원을 알게 되어서 무척 기쁩니다. 고마워요.
요안나 한국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언젠가 꼭 한국에 가서 아누비스와 함께할 장소를 찾고 싶어요.

 

요안나 카르포비치Joanna Karpowicz [인스타그램]

 

 

요안나 카르포비치 작가의 답변을 읽으며, 처음 무루 님이 요안나의 작품들을 보여주었을 때와 똑같이, 아니 그보다 더 크게 벅찼다. 그의 이야기들은 그동안 소묘가 펴냈던 그림책들과 꼭 닮아 있었고, <우리가 모르는 낙원>과도 더 깊게 연결되어 있었다.

    “허브는 약보다 더 강하니까 조심해야 해”라고 일러준 스타시아 할머니는 <섬 위의 주먹>의 루이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그도 이렇게 말하곤 했으니까. “야생 당근에서는 좋은 냄새가 난단다. 하지만 독당근을 잘못 먹으면 커다란 소도 죽고 말지.” 스타시아 할머니와 정반대라는 크리샤 할머니는 또 어떻고. “안전지대 밖으로 나가보렴”이라는 말은 <레몬 타르트와 홍차와 별들>의 가장 중요한 문장이다. 그들은 모두 생의 풍요로운 정원을 가꿨고 다음 세대에게 그 유산을 전해주었다. <곰들의 정원>도 분홍 곰 할아버지와 푸른 곰 할아버지에게서 색색의 정원을 모두 물려받은 보라 곰 이야기가 아닌가. 이어지는 이야기들에서는 <우리가 모르는 낙원> 속 ‘2장 현실로 현실을 수선하기’, ‘4장 인생 내 맘 같지 않아서’, ‘9장 비밀을 가지는 일’과, 또 최근에 완성한 무루 님의 첫 픽션 <정글맨션>의 한 문단이 겹쳐보였다.

    우리가 고른 표지 그림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며 요안나가 ‘정말 마법 같다’고 한 것처럼, 요안나라는 작가가 가진 이야기들을 전혀 모른 채로 우리가 그와 작업하게 된 것도 ‘정말 마법 같다’. 한편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를 잘 알지 못해도 좋은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충분히 상상하게 하니까. 그가 그려낸 빛, 색, 공기, 그리고 아누비스라는 세계에 이미 감응하고 공명했으니까. ‘그냥 마음을 두드리는 순간’이 우리를 서로에게로, 우리도 몰랐던 다정의 낙원으로 이끈다.

 

 

 

‘소묘의 여자들’은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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