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을 쌓는 마음> 윤혜은 작가와의 작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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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 앞에 뿌듯한 마음으로 앉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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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은 작가님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내게는 ‘우정의 작가’다. 일기인간, 걷는 사람, 쓰는 사람, 아이돌 덕후(!), 지망생의 달인(?), (전)책방지기… 여러 모양의 혜은이 있겠지만, 그 모든 혜은 아래 우정이 단단히 받치고 있는 것 같달까. 내가 <매일을 쌓는 마음>의 마지막 문단을 좋아하는 이유.
“두 다리가 뻗어나가는 길은 발아래 하나뿐인 것 같은 데,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길은 언제나 여러 갈래로 펼쳐진다. 그렇게 이 삶을 설명하는 이정표가 늘어나는 것이 좋다. 어딘가에서 나는 휴게소를 찾아 헤매고 있고, 어딘가에서는 이제 막 떠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고 있다. 또 어딘가는 한참 통과하고 있는 중인가 하면 이미 도착해 오래 머물고 있는 곳도 있다. 그 모든 곳에, 서로 다른 친구들이 있다. 지금 내 삶의 현재 위치를 하나로만 잡을 수 없게끔, 나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많은 것이 마음에 든다. 그 복잡한 길들을 나는 오래, 아주 오래 걸어야지.”
아마도 이 글을 쓸 때보다 더욱 복잡한 길을 걷고 있을 혜은 작가님과 이야기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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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하여 얻은 것을 어찌 횡재라 하겠습니까?”

혜은 저는 주간, 월간마다 별자리 운세를 보고 가끔은 유튜브로 제너럴 타로도 보곤 하는데, 사실 아무리 좋은 말이 나와도 기억력이 나빠서 금방 다 잊어버려요. 순간의 기쁨, 혹은 순간의 염려 정도만 느끼고 마는 거죠.^^; 그런데도 계속 운세에 흥미를 갖는 건 <매일을 쌓는 마음>에서도 썼듯이, 좋은 운이든 나쁜 운이든 나에게 어떤 ‘운’이 있음을 확인하는 행위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확인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는 셈이 되는 거잖아요.
그러고 보니 일기 쓰기와 비슷한 맥락이 있네요. 저에겐 기록하지 않고 지나간 하루는 그냥 없던 날이 되어버린다는 감각이 있거든요. 내가 분명히 살아냈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날로 하루가 사라지는 것보다는 즐거웠던 날도, 꽤나 힘이 들었던 날도 나에게 ‘있었음을’ 남겨두는 편이 저는 좋더라고요. 그게 저를 지지해 온 오랜 방식 중 하나여서 그런 것 같은데, 운세를 확인하는 일도 꼭 그렇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모 금융회사에서 공유한 신년운세로 2026년의 운을 가벼게 점쳐봤는데요. 엄청나게 좋은 거예요. 감탄만 나오는 해석 와중에도 참 웃긴 게,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괜한 횡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의 노력의 결과임을 알아야 합니다. 노력하여 얻은 것을 어찌 횡재라 하겠습니까?”
큰 행운들이 오긴 오는데, 사실 내가 무지 노력해서 얻는 일이겠구나. 근데 그런 모양이 너무 저다운 것 같아서, 말도 안 되게 기쁜 예고들에 오히려 신뢰가 갔답니다. 내년이 기대가 되어요(?)
“오늘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한 일”

혜은 원하는 걸 말할수록 잘 이뤄진다(?)는 속설이 있잖아요. 사실 저와 잘 맞는 수법(?)은 아니에요. 좀 쉽게 비장해지는 편이고,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뭔가를 시도하거나 기대해 보는 게 어려운 사람인데 주변의 친구들이 저랑 꼭 반대거든요. 이걸 해야겠다, 저게 되면 좋겠다! 하면서 일상의 크고작은 상상력을 펼치는 사람들이 있어요. 특히 미화언니를 보면서 기대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나를 오히려 사뿐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세 번째 10년 일기장을 만들겠다는 건, 내심 제 안에 자리한 바람이기도 하지만 무언가 훌쩍 기대하는 마음을 저도 흉내내 보고자 호기롭게 뱉은 거예요. 아무 계획이 없어서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또 금방 무거워진답니다… 진짜로 해야 하나… 그럼 언제, 뭐부터 시작해야 하나… 시장조사? 내가 쓴 다이어리의 장단점 분석? 이런 생각이 마구 섞여요. 이렇게 실현이 되려나 봐요.(?)
혜은 굳이 일기장을 펼치지 않아도 알 것 같아요. 작년 가을부터 올해 늦여름까지는 씀을 닫는 일에 대해 가장 몰두해 있었으니까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 다음은 뭘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지금’에 충실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책방을 닫고 남은 올해를 보내는 마지막 3개월도 같은 마음이고요. 이렇게 현재만 생각하고 있다니…)
최근에 한 원고에도 썼었는데, 씀을 닫는 일을 씀을 지금껏 운영해 온 일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더라고요. 또 한편으로는, 저는 책방을 운영해 온 시간이 작가 활동을 한 시기와 거의 동일하거든요. ‘작업책방’ 씀에 어울리는 작업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쓴 일들이, 결과적으로 작가 활동에 대한 지지가 되어주었더라고요. 그래서 씀과 함께 만들어진 제 모습을 전반적으로 회고하면서, 씀이 끝나도 쓰는 혜은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일기도 꽤 많이 썼어요.


“없던 척하는 일에 이제 그만 실패하기”
소묘 “요즘은 스스로 질문을 던지지 않고서는 쌓을 수 없는 것들 앞에 있다. 쓰기로 무엇을 파고들고 싶은지. 문장을 잘 쓰는 것보다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통과하고 싶은지. 내 소설이 이 세상의 어디를 경유했으면 하는지.” _<매일을 쌓는 마음>
이 질문에 대한 작은 답이 책으로 나왔지요. 첫 청소년 소설 <우리들의 플레이리스트>가 올 6월에 출간됐는데, 읽으면서 여름을 열기에 참 좋았다 생각했어요. 어떤 소설인지 직접 소개 부탁드려요 :)
혜은 이 소설에는 같은 자리에서 다른 시간을 겪는 시절, 변해 가는 자신의 모습이 ‘우리’로 겹쳐지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들이 등장합니다. 모두가 반짝이는 꿈을 꾸라고 하는 세상에서, 누군가는 외로움을 고백하는 것에서부터 꿈이 시작되기도 한다는 걸 알려주는 다섯 친구들의 이야기랍니다. 나래, 이나, 소영, 유림, 정현과 함께 마냥 연약했다고만 여긴 10대 시절에 깃들어 있는 용기를 알아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여기까지는 대외용(?)이고요, 사실 <우리들의 플레이리스트>는 제가 묻어둔 오랜 꿈, 그러기로 선택한 저의 10대와 화해하는 30대를 맞이하고 쓰게 된 이야기예요. 소묘님은 ‘꿈’ 하면 어떤 장면을 떠올리시나요? 저에게 꿈은 스스로 매몰차게 끊어내 버린 것. 그럼에도 오랫동안 내 곁을 맴돌았고, 그걸 알았지만 더는 해줄 있는 게 없어 몇 번이고 외면하다 끝내 잊는 데 성공한 이야기에 가까워요. 그런데 이 소설을 쓰면서 깨달았어요. 저의 오랜 꿈은 이러한 잊기가 실패하기를 묵묵히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고요. 어떤 시절을 없던 척하는 일에 이제 그만 실패하기를 말예요. 그 방법이 소설을 쓰기가 될 줄은 몰랐는데, 쓰고 나니 나한테 한번은 꼭 주고 싶었던 이야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혜은 질문보다는, 완벽한 끝이라는 건 없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그게 무엇이든, 어쩌면 죽음 마저도요. 물론 물리적인 세계 안에서는 시작과 끝이 분명한 일들과 존재가 더 많겠지만, 그냥 이 세상에 한 번이라도 출현했던 것들은—가시적이든, 비가시적이든—어떤 식으로든 영원히 남아서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지구가 살아 있는 거대한 무덤 같기도 하고요. 이 우주가 탄생한 이래(?) 한 순간도 완벽히 멈추지 않고 억겁의 시간을 그냥 무한히 반복하고 있는 게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그리고 또 하나는, 아직 짧은 생을 살았을 뿐이지만 내 안에 제법 세월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시간이 쌓이고 있구나. 확실하게 과거라는 거리감을 느끼며 돌이켜볼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 생기는 게 좋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혜은 사실 제가 무언가를 ‘쌓겠다는’ 다짐을 잘 하거나 그런 감각을 원동력 삼아 살아온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데 제가 지나온 궤적을 소묘님께서 ‘쌓는 마음’으로 이름 붙여주시고, 덕분에 <매일을 쌓는 마음> 이라는 책을 쓰게 된 이후로 그게 저와 잘 어울리는 모양으로 자리잡은 느낌이랄까요.ㅎㅎ
제가 살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이 뭘까 잠시 고민해 보니까, 엄마의 건강 다음으로 ‘내 마음에 드는 내 모습이 되자’인 것 같아요. 학창시절부터 다른 누구보다도 제 마음에 드는 제가 되고 싶었던 기억이 나요. 그런 일기를 자주 남기면서 자랐고요. 그래서 제가 삶에 의식적으로 더하고자 하는 게 있다면, 그건 전부 넓은 의미에서 제 마음에 드는 저를 위해서일 거란 생각이 들어요.
혜은 성실과 정성 중에 고민을 많이 했는데… 갑자기 친구가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보낸 인터뷰에 성실이라는 말이 바로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둘 다 비슷비슷한 느낌이지만) 성실로 해야겠다~라고 마음을 정한 뒤, 친구에게 그 얘길 하니까. “난 정성에 한 표!”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 그래? 그럼 정성으로 하지 뭐~이렇게 되었습니다. 어쩐지 성실도 정성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답변이지만…
사실 이 대화는 며칠 전 아침에 친구가 브로콜리너마저의 윤덕원 씨 인터뷰를 보내면서 “대충 하는 것도 있는 하루를 보내라”는 안부로 시작됐거든요. 그의 신간 <열심히 대충 쓰는 사람>이라는 책의 한 페이지와 함께요. 근데 사실 저는 12월이 되면서 더 충실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거든요. 만약 친구가 문득 제가 또 온 마음으로 하루를 다 살까 봐 가볍게 핀잔하는 마음으로 그 연락을 한 거라면, 제가 확실히 무엇이든 정성을 다하는 게 익숙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게 제 마음에 드는 모습이라 그런가 봐요.
정성을 좋아하면, 별것 아닌 것도 소중하게 대할 수 있거든요. 내게 오는 것을 대수로워하는 마음,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 게 저는 좋아요. 그래서 가끔 무거워질 때도 있지만, 그렇게 몸도 마음도 기울어지려 할 때면 새로운 정성을 향해 허리를 펴고 넓은 보폭으로 넘어가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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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책방 씀을 닫고 더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혜은 작가님, 그 곁에는 함께하는 서로 다른 친구들로 가득했고, 우정의 다른 말을 알게 되었다. “이 삶을 협업하는 운.” 꼭 너와 함께 할 거야, 라고 말해주는 친구와 대충하는 것도 있는 하루를 보내라, 라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다니, 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운인가요. 그건 어디서 떨어지거나 주어진 운이 아니라 10년 일기장을 두 권 채울 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랫동안, 매일 하루의 끝에서 쌓아온 두께에서 온 것일 테다. ‘내 마음에 드는 내 모습이’ 되기 위해 걷고, 듣고, 말하고, 쓰는 하루를 차곡차곡 정돈하고서 다소간 뿌듯한 마음으로 일기장 앞에 앉는 한 사람의 모습을 그려본다. 즐거웠던 날도 힘들었던 날도 모두 나에게 ‘있었음’을 남겨두는 일, 오늘 가장 마지막에 한 그 일이 우리 안에 영원히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하면, 혜은처럼 ‘새로운 정성을 향해 허리를 펴고 넓은 보폭으로 넘어가’고 싶다.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더라도 작게나마 이 삶을 협업하는 기분, 역시 나의 우정의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