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는 마음> 정한샘 작가와의 작은 인터뷰
“굳이. 단단한 마음으로, 구태여 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이제는 까마득한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자신이 가장 믿고 따라 읽는 독서가가 책방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 한켠이 설레었다. 책방의 오픈을 손꼽아 기다렸고, 2020년 11월과 2021년 4월 두 차례에 걸쳐 소묘 레터의 [소소한 산-책]으로 리브레리아Q를 소개할 수 있었다. 첫 온라인 주문으로 책방에서 책을 받았던 순간,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 책을 받아볼 독자들에 대한 믿음, 그 타협 없음과 뚝심 있음에 감동했다”라고 적은 문장을 다시 들여다보며, 처음 마주했을 때 느꼈던 마음이 이토록 바램 없이 더욱 선명하게 깊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랍다.
책을 향한 사랑과 삶을 대하는 작은 고집이 어떻게 한 공간을 가득 채웠는지, 그곳에서 펼쳐지는 조용한 음모는 무엇인지, 선명하게 깊어진 시간을 촘촘히 담아낸 <고르는 마음>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
“책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
한샘 맞아요. 이번에는 묻어갈 공저자가 없네요…. 쓸 때는 오히려 이건 책방의 이야기가 아니야, 이건 그냥 ‘나’의 이야기야, 그러니 위축되지 말자! 했는데 막상 책이 나오고 나니 많이 걱정이 됩니다. 걱정이 될 때마다 추천사를 읽어요. 편집자님 외에 책을 처음 읽어주신 독자분들의 글이니까요. 읽으며 제게 부족한 (어쩌면 아예 없는) 자신감을 끌어 올리려 애써봅니다. 이런 분들이 추천해 주셨잖아. 너의 진심을 알아보셨잖아. 그러니 어깨를 펴라, 하면서요.
한샘 딸과 함께 쓴 첫 책인 <세상의 질문 앞에 우리는 마주 앉아>에 이런 이야기를 쓰기도 했는데요, 책을 사랑한다고 스스로 느낀 건 중학교 시절 같아요. 책을 더 읽고 싶어 이불 속에 숨기고, 피아노 악보 속에 숨기던 아이였으니까요. 그러니 제 의지로 책과 멀어진 적은 없었고… 책을 맘껏 읽지 못해 고통스러운 시기는 있었죠.
이탈리아에 살던 시기에는 매년 한국에 왔다 돌아갈 때 정말 엄선한 책 몇 권만을 들고 갈 수 있었어요. 외국에서 한국 책을 구할 수도, 전자책이 있던 시절도 아니라서 무조건 짐에 넣어 가져가는 수밖에 없었는데 책이 은근히 무겁잖아요. 무게 때문에 원하는 책을 다 넣을 수가 없었기에 어렵게 가져간 몇 권의 책으로 1년을 버텨야 한다는 것이 괴로웠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도요. 쌍둥이를 키우며 일을 하다 보니 책을 읽는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시절이 있었어요. 잠든 아이를 업고 책을 읽거나, 작은 집이라 불빛이 차단되는 공간이 없어 아이들이 깰까봐 어둡게 켜놓은 불빛 아래 읽던 시간이 생각나요. 그 두 시절이 그야말로 절실하게 읽는 시간으로 채워진 시절이었네요.
제 의지는 아니지만 책과 멀어지는 순간들도 있어요. 삶이 너무 버겁고 고통스러울 때요. (이를테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라든지 전쟁의 소식이라든지 기후 우울감이라든지 계엄이라든지…) 그런데 책방을 연 이후로는 삶이 책을 멀리하는 순간에도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일들이 생기곤 해요. 처음에는 그게 힘들기도 했었는데요, 이제는 그 감정마저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읽기가 힘들면 힘든 걸 받아들이자, 힘든 순간에도 무언가를 읽어야만 한다면 그냥 읽자, 하면서요. 읽는 행위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누군가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스스로에게서 좀 덜어내려 하는 편이에요, 지금은.
한샘 사실 책방 이름으로 처음 생각한 건 ‘Q의 서재’였어요. 나는 콰르텟인데, 콰르텟의 서재는 너무 기니까 Q의 서재로 해야겠다 한 거죠. 그런데 책방 인근에 ‘ooo의 서재’가 이미 있었어요. 책방은 아니고 카페였는데 이름이 겹치니까 안되겠다 싶어 생각한 것이 지금의 이름 리브레리아Q이고요.
리브레리아는 이탈리아어로 책방이니까 책방Q인 셈이죠. Q의 서재와 크게 다른 의미는 아니고요. 처음 생각한 이름도, 지금 가지게 된 이름도 결국은 Q, 그러니까 저의 책방, 저의 서재라는 뜻인데요. 이렇게 설명하니 자아가 너무 비대해 보이기도 하는데 그보다는 제 서재를, 제게 있는 책들의 일부를 그대로 옮겨놓는다는 컨셉이어서 그런 이름을 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리고 Q는 질문 question의 첫 글자이기도 하고, 큐레이션의 ‘큐’와 발음이 같고요. 이렇게 아이디의 이니셜 Q뿐 아니라 Q가 가진 여러 의미로도 제가 생각하는 지점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오늘도 책방에서 사람을 기다립니다”
한샘 제일 달라진 것은 책의 권수인 것 같네요. 책에 쓴 <작업노트> 중 ‘입고 리스트’를 보면 늘어나는 책의 수에 한숨을 쉬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지금도 여전히 책이 늘어가고 있기에… 책방의 여백이 점점 줄어듭니다.
책이 이렇게 늘어나도 지키려고 애쓰는, 지켜지고 있는 것은 큐레이션의 고집일테고요. 사실 이 부분은 작은 책방은 대부분 그럴 것 같기는 한데요. 어쨌든 이 공간 안에 들어오는 책들은 다 제 간섭과 통제 하에 두려 합니다. 어떤 이유로든 제가 더는 읽지 않는 작가라면 그의 책이 아무리 좋아도 책방에서는 다 빼고요, 제가 읽고 좋았던 책이라면 그 책이 아무리 구간이 되더라도 계속해서 채워두는 그런 작은 고집이요.
“한 명이라도 더 내 쪽으로 끌어당기고 싶은 마음”
한샘 책에 꼭 싣고 싶은 주제이면서 다른 달의 편지와 겹치지 않는 주제일 것, 잘 읽힐 것. 책을 고르는 마음이 잘 드러난 편지일 것. 이정도의 기준이 있었던 것 같네요.
예를 들면 2021년 11월의 편지는 노년의 이야기였고 2023년 11월의 편지는 자연의 경이에 대한 이야기였는데요, 노년의 이야기는 증조할머니와의 관계를 다룬 9월의 편지가 있고, 자연의 경이는 기후를 다룬 5월의 편지가 있으니 그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2022년의 11월을 선택하게 된 거예요.
지나간 편지를 읽어보니 말이 되지 않는 문장도 많고 맘에 들지 않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크게 고치지 않으려 했어요.
한샘 제가 보낸 책들이 삶을 작게나마 변화시켰다는 글이 기억에 많이 남았어요. 여성으로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고,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게 되었다고요. 베스트셀러만 읽던 책 편식쟁이에서 벗어나게 해주어 고맙다는 글이었는데 제가 생각한 큐레이션의 방향과 모든 문장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 참 감사하고 뿌듯했어요.
여성의 삶을 생각하고 내가 살아가는 지구와 환경을 돌아보는 것, 베스트셀러가 아닌 생각의 확장으로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요.
한샘 지금이 8월이니 내년에 할지 말지에 대한 생각은 있어야 할 텐데 사실 아직도 모르는 상태이긴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이런 글이 써진 예치금 신청서가 들어왔거든요.
“비밀Q로 책 받아봤었습니다. 한동안 너무 바빠 책을 멀리 했는데 다시 너무 생각나서 돌아왔어요. 비밀Q 했었을 때 강제로(?) 책을 읽게 돼서 너무 좋았는데 없어지니 절 강제할 무언가가 없더라고요. 예치금이라도 넣어놔야 읽을 것 같아서 왔어요. 비밀Q는 아직 예정에 없으신 거죠? 다시 한다면 꼭 신청하고 싶어요.”
책을 쓰며 비밀Q가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다시 보이던 참에 이런 신청 글이라니. 2026년에 구간 블라인드북 서비스 비밀Q가 돌아올지, 신간과 각종 강의 콜라보 서비스인 멤버Q가 지속될지 저도 아직 모르겠어요. 만일 멤버Q를 이어가게 된다면…
~본격 홍보!~
지금 책방에서 하고 있는 멤버Q는 1년간의 멤버십 구독 서비스입니다. 그해에 출간된 신간 세 권과 온라인 무료 북토크 3회, 기획 강의 선공개 및 할인을 제공하고 있고요. 2025년 8월 기준 진행된 강의로는 김지승 작가님의 <딕테> 입문 강의, 한연희 시인님의 시 창작 수업, <시사IN> 장일호 기자님의 민주주의 북클럽, 신유진 작가님의 에세이 특강이 있습니다.
무료 온라인 북토크로는 사이 몽고메리의 <거북의 시간>, 김지승 작가님의 <마지네일리아의 거주자>가 있었고요, 8월에 예정되어 있는 무루 작가님의 <우리가 모르는 낙원> 오프라인 북토크에도 멤버Q 혜택이 있을 예정입니다.
이 작가님들과 책이 이미 좋아하는 분들과 책이라면, 마음에 궁금함과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하신다면, 리브레리아Q의 멤버Q가 되실 준비가 되어 있으신 겁니다. 2026년에 함께해 주세요 :)
한샘 굳이.
단단한 마음으로, 구태여 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나아가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나와 아무 상관이 없어도, 내게 도움이 되지 않아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신경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그런 고집으로 삶을 이어가고 싶어요.
✲
한샘 님에게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분들께 소개하고 싶은 꼭지와 구절을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출근하기 싫은 날>을 꼽아주셨다.
“책을 파는 일은 결국 다른 세계에서 오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책방으로 출근하는 것은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기로 작정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는 일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도 여전히 어색한 일이어서 나는 이 일을 오래 하고 싶기도 하고, 당장 그만두고 싶기도 하다. 오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실망하고, 왔으나 책을 사지 않는 사람으로 인해 슬플 때면 음악도 없이 꿀렁꿀렁 몸을 움직이던 아이를 생각한다. 우산이 있지만 우비에 달린 모자 위로 떨어지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온몸을 둥글게 둥글게 만들던 아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그 움직임. 내게도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고, 몸 대신 마음을 둥글게 둥글게 만들어본다.”(94-95쪽)
서점원Q는 오늘도 기다림의 편으로 기울어 책방의 문을 열고 책을 고르며 조용히 기다릴 것이다. 다른 세계에서 오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가 책을 사랑하는 마음은 결국 세상을 사랑하려는 마음이 아닐까. 책을 고르는 일은 누군가의 시간을, 마음의 방향을, 때로는 삶의 궤적을 바꾸는 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한 명이라도 더 내가 사랑하고 믿는 책과 세상의 편으로 이끌기 위해, 두렵지만 계속해서 나아가는 그 다정한 고집이 그저 고맙다. 거창한 계획이나 다짐 없이도, ‘굳이’, ‘구태여’ 하는 마음이 얼마나 단단할 수 있는지를 배운다.
“그의 독자로 사는 것은 나의 장래 희망”이라는 장일호 기자님의 말처럼, 나 역시 오래오래 그의 음모에 기대어 그가 열어주는 세상의 새로운 문들을 굳이 열어보고 싶다. 그렇게 우리가 둥글게 둥글게 이어진다면 좋겠다.
‘소묘의 여자들’은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소묘의 여자들]
박혜미, 어디선가 이상한 용기가 (feat. 정선정) • 신유진, 충분히 사랑하고 있나요? • 이미나, 계속 그리고 싶은 어린아이 하나가 • 요안나 카르포비치, 저편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 정한샘, 작은 고집으로 지켜온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