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팡도르

I Pani d’Oro della Vecchina

안나마리아 고치 글, 비올레타 로피즈 그림, 정원정·박서영 옮김

 

 

 

 

겨울에 만나는 따뜻하고 달콤한 생의 맛,

크리스마스 디저트에 담긴 인생의 비밀 레시피

《섬 위의 주먹》 비올레타 로피즈가 그려낸

삶과 죽음에 관한 섬세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하얀 눈이 지붕과 길을 덮고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

설탕과 향신료에 졸인 귤 향기로 가득한 할머니의 외딴집에

검은 그림자의 여인이 찾아옵니다.

이들이 함께 보내는 크리스마스는 어떤 맛일까요.

“죽음이 나를 잊은 게야”

강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소리 없이 모든 것을 삼키는 마을, 외딴집의 할머니는 창가에 앉아 그 풍경을 바라봅니다. 입술이 종잇장처럼 가늘어진 조그만 할머니는 나이를 잊어버린 지 오래예요. 집집마다 둥글고 흰 눈지붕이 생기고 마을 곳곳에 작은 불빛들이 반짝이기 시작하자 외딴집 부엌에 커다란 솥이 걸립니다. 솥으로 황금빛 꿀이 쏟아지고, 할머니가 주걱을 저을 때마다 반죽에는 점점 더 윤기가 돌아요. 그때 검은 그림자가 문을 두드립니다. “나랑 갑시다.”

 

죽음을 기다려온 할머니는 사신을 반갑게 맞지만 어째서인지 일주일 더, 하루 더, 사신에게 간청하죠.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던 거예요. 마을의 아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준비가요! 이제껏 누구에게도 알려진 적 없고 어디에도 기록된 적 없는 할머니만의 특별한 크리스마스 빵이 만들어지고 있었거든요. “비법은 오직 기다리는 거예요.”

“아름다운 맛이군요”

가을의 정취가 담긴 건포도, 달콤한 비스코티, 바삭한 누가, 고소한 참깨 사탕, 꿀에 졸인 귤과 밤, 부드럽게 부푼 금빛 팡도르, 뜨거운 핫초코, 포춘 쿠키 같은 찰다… 할머니만의 비밀 레시피로 만들어진, 갓 구운 빵과 과자가 쏟아져 나오는 사이 사신은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죽음이 결코 누려본 적 없던, 처음 겪는 환대와 생의 맛. 크리스마스 디저트의 향연과 아이들의 기쁨 속에서 혼란에 빠진 사신은 임무를 무사히 수행할 수 있을까요?

삶과 죽음이 서로에게 다가가 조금씩 경계를 허무는 이야기

하루하루 눈앞의 죽음을 유예하는 할머니와 삶의 다채로운 맛 속으로 한 발 한 발 빠져들어 가는 사신의 이야기는 삶과 죽음이 실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할머니는 죽음이 자신을 잊었다고 한탄하지만 사신은 처음부터 할머니 곁에 있었어요. 외딴집 옆 둥근 동산 속에서 때를 기다렸을 뿐이지요. 그리고 죽음의 입을 통과한 할머니는 오래도록 이어질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들은 모든 것이 끝난 뒤에 비로소 시작됩니다. 그것은 할머니의 마지막 찰다 속에 숨겨진 레시피 같은 것이지요. 포춘 쿠키 같은 찰다를 깨물어 그 속에 든 비밀을 발견한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할머니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_‘옮긴이 후기’에서

 

비올레타 로피즈의 섬세하고 간결한 그림이 주는 깊은 여운

빨간 구슬은 할머니가 만드는 디저트들이 품고 있는 단것의 영혼을 의미합니다. 글에는 디저트에 관한 묘사가 매우 풍성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에, 나는 그 음식들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만을 그리기로 했지요.

_비올레타 로피즈

 

다채로운 색으로 그려낸 전작 《섬 위의 주먹》과 《마음의 지도》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을 선보이는 이번 책은 세 가지 색의 간결한 그림이 섬세하고 아름답게 펼쳐집니다. 외딴집과 할머니와 디저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빨간색, 겨울의 눈과 강의 물안개가 어우러진 흰색, 사신과 겨울나무의 짙은 검은색. 귀까지 덮는 빨간 두건을 쓰고 앞치마를 두른 조그만 할머니는 마을 아이들을 위해 불 앞에서 크리스마스 디저트를 만드느라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습니다. 사신은 팔과 다리가 다리가 있지만 얼굴은 뻥 뚫린 커다란 그림자 같아요. 그런 사신이 죽음조차 매혹하는 생명의 온기에 검은 코트를 벗고 색색의 숄을 걸치죠. 빨간색 구슬이 페이지를 가득 채운 장면에 이르면, 우리는 그림을 통해 충만하게 차오른 삶을 느낍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떠나야 할 때를 잘 알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실은 다르지 않다”(옮긴이)는 역설을 로피즈는 이렇듯 그림으로 이야기합니다.

마침내 검은색과 빨간색 모두 점점 사라지고 무한한 흰색에 충실하게 감싸일 때, 우리는 그 너머의 새로운 이야기를 그려볼 수 있을 거예요.

 

이탈리아의 산타 할머니와 크리스마스 디저트의 전설

신화, 전설, 민담에 매료된 작가 안나마리아 고치가 글을 쓴 이 책은 이탈리아의 산타 할머니 ‘베파나’ 전설을 모티프로 하고 있어요. 할머니가 만드는 디저트 속에도 ‘스폰가타’라는 이탈리아의 오랜 전설이 깃들어 있습니다. 책 말미에 붙은 ‘옮긴이 후기’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으니 꼭 읽어보세요.

 

참,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이기도 한 크리스마스 전통 케이크 ‘팡도르’는 반죽을 부풀리고 치대는 과정을 여러 날 걸쳐 반복해야 하는 수고로운 디저트랍니다. 그래서 할머니에게는 여러 날의 시간이 필요했고, 그 바람에 사신은 영락없이 할머니를 기다려줘야 했지요. 겨울의 풍미가 가득 담긴 귀엽고 다정한 이야기를 비올레타 로피즈의 세 번째 그림책으로 전합니다.

 

저역자 소개

글쓴이 안나마리아 고치

이탈리아 북부의 강이 흐르는 작은 도시 레조넬에밀리아에서 태어났다. 신화, 전설, 민속 전통에 매료되어 기억과 증언 연구와 회복에 깊은 관심을 쏟고 있다. 소설가이자 극작가로 다양한 작품을 썼으며, 문화 기획과 독서 워크숍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그린이 비올레타 로피즈

작가들이 사랑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스페인의 작은 섬 이비자에서 태어났으며, 마드리드, 베를린, 리스본, 뉴욕, 서울, 쿠스코 등 다양한 도시를 여행하며 그림을 그린다. 국내 SI그림책학교 강사 중 한 명이다. 《섬 위의 주먹》을 비롯해 <뉴욕타임스> 올해의 그림책으로 선정된 《숲》과 《노래하는 꼬리》,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브레드》를 그렸다. 《마음의 지도》로 국제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 ILUSTRATE에서 2016 대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정원정

번역을 하고 식물을 돌보고 숄을 짠다. 로피즈가 그린 《섬 위의 주먹》과 《마음의 지도》를 옮겼다.

옮긴이 박서영

어른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고 글을 쓴다. 《섬 위의 주먹》과 《마음의 지도》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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