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코의 코스묘스] 완벽한 하루

_Q 당신에게 극적인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_A1 모르겠습니다. 살다 보니 그냥 여기까지 왔습니다. _A2 인생이 온통 드라마인걸요. 삶 전체가 극적인 순간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A1과 A2 모두 곤란한 답변입니다. 무기력할 정도로 재미없거나 지나치게 피곤한 인생을 달가워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대부분 A1과 A2 사이에서 삶의 궤적을 만들어갑니다. 둘 사이라고 해도 그 중앙을 기준으로 정규분포를 이루는 건 아닙니다. A1쪽으로 상당히 치우친 그래프일 가능성이 큽니다. 극적인 순간은 드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극적劇的이라 부르지 ...

[소묘의 여자들] 이미나, 계속 그리고 싶은 어린아이 하나가

  고양이 화가, 이미나 작가와의 여담   몇 마리쯤 그려야 싫증이 나는지     이미나 작가님은 그림책 <나의 동네>(2018)로 처음 만났다. 제주도의 한 소담한 마을에 자리한 책방에서 책을 펼치자마자, 첫 두어 장 만에 이 그림책에 홀려버렸다. 나비들이 화면을 한가득 채운 장면이었을 것이다. 책 속 동네는 건물이나 사람이 아니라 나비와 새, 개와 고양이, 다람쥐 같은 동물들이, 그리고 색색의 꽃과 무성한 초록의 식물들이 주인이었다. 나비처럼 연약한 존재들을 강건하고 대담한 색감과 필치로 그려낸 이 작가가 몹시 궁금해 ...

[소소한 리-뷰] 노안老眼presbyopia

#1 어느 날 안경이 부러졌습니다. 렌즈가 깨진 게 아니라 안경테가 똑 하고 부러지면서 두 동강이 났습니다. 어쩔 수 없이 새 안경테를 샀습니다. 렌즈도 바꿔야 했고요. 새로 바꾼 안경은 예전에 비해 동글동글한 디자인입니다. 눈매도 덩달아 부드러워지는 느낌이랄까요. 악당에서 정의의 사도로 변신할 정도의 드라마틱한 관상적 변화는 아니지만 아무튼 7년 만에 새 안경테로 바꾸고 기분 좋게 안경원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안경 렌즈를 바꿀 때면 매번 어느 정도는 시각적 위화감이 있습니다. 렌즈 도수를 이전과 똑같이 한다고 ...

[소묘의 여자들] 신유진, 충분히 사랑하고 있나요?

  <사랑을 연습한 시간> 신유진 작가와의 여담(feat. 이치코 실장)   쓰고, 살고, 모든 것은 사랑하기 위해     (모두가 한창 이안이‘랑’ 이야기하다가 이안이 잠든 후-) 유진 내가 쓰는 걸 진짜 좋아한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어. 오래전부터 계속 써왔는데 예전엔 뭔가 쓰고 싶다라는 열망만 있었지, 쓰는 걸 좋아한다고는 생각 안 했거든. 그래, <사랑을 연습하는 시간>(이하 사연시) 쓰면서부터 쓰는 것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고 내가 이걸 진짜 좋아하는구나를 깨달았어. 소묘 와, 우리 책 하면서. 유 ...

[소소한 리-뷰] 작은책

올해 첫 영화는 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였습니다. 그리 부지런하지 않은 탓에 극장 개봉 때는 시기를 놓쳤고 새해 첫날 OTT로 감상했습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비교적 간단합니다. “도쿄 시부야의 공공시설 청소부 ‘히라야마’는 매일 반복되지만 충만한 일상을 살아간다. 오늘도 그는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듣고, 필름 카메라로 나무 사이에 비치는 햇살을 찍고, 자전거를 타고 단골 식당에 가서 술 한잔을 마시고, 헌책방에서 산 소설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이가 소원한 조카가 찾아오면서 그의 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