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리-뷰] 유코 히구치 특별展: 비밀의 숲

글루미 웬즈데이. 지난 수요일은 종일 울적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너무 언빌리버블한 사건이라 충격이 더 컸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머리 위에 떠다니는 물음표를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정치공학이니 선거전략이니 하는 걸 따지기 전에, 유에스에이 피플은 불과 몇 년 전 일을 새카맣게 잊어버린 걸까요. 투표용지의 그쪽으로 손가락이 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전 세계의 인민들이 그놈은 안 된다고 악을 쓰며 반대하는데도 굳이 그래야만 했을까요.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남의 나라 프레지던트 뽑는 일로 ...

[소소한 리-뷰] “강물이 위로 흐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 부산국제영화제

글: 이치코   집으로 가는 버스였습니다. 습관처럼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죠. SNS에 올라온 이야기들을 건성으로 훑고 있는 눈은 초점이 흐렸고, 부지런히 화면을 밀어 올리는 손가락만 마치 기계처럼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눈에 띄거나 관심이 가는 소식은 보이지 않습니다. 간혹 있다고 해도 피곤에 지친 몸을 간신히 지탱하기에도 벅한 퇴근길에는 놓치기 십상입니다. 시간을 꼬깃꼬깃 잘 접어서 집에 빨리 도착하는 일이 중요할 뿐이지 접힌 시간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10월 10일 저 ...

[소소한 리-뷰] 복숭아

글: 이치코   가을입니다. 아직 더우시나고요? 전국적으로 30도를 웃도는 날씨를 어떻게 가을이라 부를 수 있냐고요? 9월이니까요. 계절을 나누는 기준이 모두 같을 수는 없을 겁니다. 옷장을 정리하는 일로 한 계절을 떠나보내는 이들도 있을 테고, 잠자리의 이불을 바꾸는 것으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요. 누군가는 아침 최저기온이나 한낮의 최고기온을 기준으로 봄과 여름을, 가을과 겨울을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개나리가 필 때를 봄이라 부르는 이들, 벚꽃이 만발해야 비로소 봄이 왔음을 인정하는 이들, 거리의 ...

[이치코의 코스묘스] 특별 임무: 고양이 여섯을 데리고 이사하기 ②

특별 임무: 고양이 여섯을 데리고 이사하기 ①편 보기   페로몬pheromone은 같은 종의 동물끼리 특정한 사회적 반응을 유발하기 위해 배설하는 화학 물질을 말합니다. 동물, 특히 개미를 비롯한 곤충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잘 알려져 있죠. 인간은 페로몬을 감지할 수 없는데, 페로몬을 수용하는 후각기관인 야콥슨 기관이 퇴화되어 흔적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고양이나 개 같은 동물은 이 기관을 사용해 페로몬을 감지하는데 코에 있는 게 아니라 입천장에서 비강으로 이어지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고 합니다. 입안에 존재하는 후각기관이기 ...

[이치코의 코스묘스] 특별 임무: 고양이 여섯을 데리고 이사하기 ①

이사(移徙) [명사] 사는 곳을 다른 데로 옮김   이사는 현대적인 단어입니다. 20세기가 도래하기 전, 왕을 모시던 시절까지만 해도 일반 백성들은 마음대로 거주지를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그 시절엔 이사란 개념이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한자를 봐도 단어를 대충 만든 느낌이 있습니다. 옮길 이移에 옮길 사徙라니, 유리 유(류)琉에 유리 리(이)璃만큼이나 이상합니다. 식민지 시대가 끝나고 해방이 되었다고 보통의 인민들이 곧바로 거주이전의 자유를 누렸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전쟁을 겪고 폐허를 복구하고 경제발전 구호에 매여 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