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책방을 뺀 모든 이야기를 함께 나눕니다.
[소소한 리-뷰] 노안老眼presbyopia
#1 어느 날 안경이 부러졌습니다. 렌즈가 깨진 게 아니라 안경테가 똑 하고 부러지면서 두 동강이 났습니다. 어쩔 수 없이 새 안경테를 샀습니다. 렌즈도 바꿔야 했고요. 새로 바꾼 안경은 예전에 비해 동글동글한 디자인입니다. 눈매도 덩달아 부드러워지는 느낌이랄까요. 악당에서 정의의 사도로 변신할 정도의 드라마틱한 관상적 변화는 아니지만 아무튼 7년 만에 새 안경테로 바꾸고 기분 좋게 안경원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안경 렌즈를 바꿀 때면 매번 어느 정도는 시각적 위화감이 있습니다. 렌즈 도수를 이전과 똑같이 한다고 ...
[소소한 리-뷰] 작은책
올해 첫 영화는 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였습니다. 그리 부지런하지 않은 탓에 극장 개봉 때는 시기를 놓쳤고 새해 첫날 OTT로 감상했습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비교적 간단합니다. “도쿄 시부야의 공공시설 청소부 ‘히라야마’는 매일 반복되지만 충만한 일상을 살아간다. 오늘도 그는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듣고, 필름 카메라로 나무 사이에 비치는 햇살을 찍고, 자전거를 타고 단골 식당에 가서 술 한잔을 마시고, 헌책방에서 산 소설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이가 소원한 조카가 찾아오면서 그의 반 ...
[소소한 리-뷰] 유코 히구치 특별展: 비밀의 숲
글루미 웬즈데이. 지난 수요일은 종일 울적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너무 언빌리버블한 사건이라 충격이 더 컸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머리 위에 떠다니는 물음표를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정치공학이니 선거전략이니 하는 걸 따지기 전에, 유에스에이 피플은 불과 몇 년 전 일을 새카맣게 잊어버린 걸까요. 투표용지의 그쪽으로 손가락이 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전 세계의 인민들이 그놈은 안 된다고 악을 쓰며 반대하는데도 굳이 그래야만 했을까요.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남의 나라 프레지던트 뽑는 일로 ...
[소소한 리-뷰] “강물이 위로 흐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 부산국제영화제
글: 이치코 집으로 가는 버스였습니다. 습관처럼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죠. SNS에 올라온 이야기들을 건성으로 훑고 있는 눈은 초점이 흐렸고, 부지런히 화면을 밀어 올리는 손가락만 마치 기계처럼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눈에 띄거나 관심이 가는 소식은 보이지 않습니다. 간혹 있다고 해도 피곤에 지친 몸을 간신히 지탱하기에도 벅한 퇴근길에는 놓치기 십상입니다. 시간을 꼬깃꼬깃 잘 접어서 집에 빨리 도착하는 일이 중요할 뿐이지 접힌 시간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10월 10일 저 ...
[소소한 리-뷰] 복숭아
글: 이치코 가을입니다. 아직 더우시나고요? 전국적으로 30도를 웃도는 날씨를 어떻게 가을이라 부를 수 있냐고요? 9월이니까요. 계절을 나누는 기준이 모두 같을 수는 없을 겁니다. 옷장을 정리하는 일로 한 계절을 떠나보내는 이들도 있을 테고, 잠자리의 이불을 바꾸는 것으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요. 누군가는 아침 최저기온이나 한낮의 최고기온을 기준으로 봄과 여름을, 가을과 겨울을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개나리가 필 때를 봄이라 부르는 이들, 벚꽃이 만발해야 비로소 봄이 왔음을 인정하는 이들, 거리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