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으로
우리의 내면에서 무언가 말할 때

 

고운, 무루, 박세미, 송은정, 서수연, 신예희, 안희연, 이소영, 휘리 지음

 

발행일 2024년 2월 1일 | 무선 128*188 | 208쪽 | 값 17,000원 | 270g
ISBN 979-11-91744-31-6 03810 | 분야 에세이

 

 

 

 

나만의 방, 이곳의 이름은 가능성이다

여성 창작자 10인의 ‘자기만의 방’에 관하여

 

시 쓰고, 글 쓰고 옮기고, 그림 그리고, 옷 짓고, 집 짓고, 식물을 연구하고, 수업을 하고, 집과 아이를 돌보는 여성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성 10인의 ‘자기만의 방’에 관한 앤솔러지 에세이. 나만의 공간,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이자, 제‘자리’를 찾고 만들어가며 그로써 확장되고 연결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기만의 방으로부터 스스로의 가능성을 발현하며 일과 삶을 단단히 꾸려나가는 이들의 모습 위로 우리는 각자의 방을 포개어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새로운 방을 꿈꾸며 나의 가능성을 보듬거나 창밖 너머 불빛들에 손을 흔들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이 책은 무엇보다 저마다의 방들을 향한 응원이니까.

 

“빈방을 갖게 된 후에야 비로소 태어나는 것들이 있어”(서수연)

나만의 공간, 그 안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발현하며, 열린 문 너머로 나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

여성이 자기만의 방에 들어갈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1929)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울프는 100년 뒤라면 자기만의 방과 돈을 가진 여성들이 성의 제약 없이 자신의 재능을 발현할 거라고 썼는데, 95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어떨까. 자기만의 방이 있는가? 자기만의 방이 있다면 그 안에서 어떤 일들을 벌이고 있는가?

고운, 무루, 박세미, 송은정, 서수연, 신예희, 신지혜, 안희연, 이소영, 휘리. 이 열 명의 여성 창작자들이 방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태어나는 것은 시인, 작가, 엄마, 화가, 공예가, 번역가, 건축가, 식물세밀화가… 아니 실은 한 단어로 포섭할 수 없는 새로운 무엇이다. 스스로의 가능성을 발현하며 자신의 ‘자리’를 찾고 만들고 넓혀온 이들은, 나만의 방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어디까지 뻗어 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작업과 영감, 돌봄과 사랑, 기억과 상실, 고독과 연결, 나이 듦과 가능성의 돛들이 그곳에 펼쳐진다. 방은 배가 되어 먼바다로 나아간다.

 

“책상이 닻을 올리고 항해를 시작한다. 우중의 숲길이다가도 순식간에 사막이 펼쳐지는 곳. 둥지의 알을 쓰다듬다가도 뜬금없이 번지점프를 하는 곳. 이 책상의 이름은 가능성이다. 이곳은 나의 방이다.” _안희연

 

“먼바다에서 내 방은 작지만 튼튼한 배가 되어주었다. 나만의 공간에서 오롯이 혼자였던 시간 덕분에 타인에게로 힘껏 건너갈 수 있었다. … 나로 충분했던 가장 작은 방에서 타인의 방으로, 그 너머로.” _고운

 

“어느 곳이든 우리의 방이 될 수 있어”(박세미)

자기만의 방의 다채로운 형태들, 방이 데려오는 더 많은 우리의 이야기

책상 하나와 작업실 사이, 1인 가구와 5인 가구 사이, 넓게 펼쳐진 스펙트럼 안에서 일과 삶의 형태가 모두 다른 열 명의 여성들이 써 내려간 자기만의 방은 그 조건들만큼이나 다채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각자 방에 대한 정의도 모두 다르다. 누군가에게 방은 나를 구축하는 것들의 집합이고, 다른 누군가에게 방은 삶의 형식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방은 육면체의 물리적 공간만이 아니라, 시와 글이 되고, 기억의 저장소가 되고, 몸과 정신이 머무는 옷이 되고, 내가 끝내 다다를 목적지도 될 수 있다. 때로는 간절함과 절실함으로 자기만의 방을 구하는 이야기와, 자기만의 방 너머로 나아가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가 교차한다.

그리고 이토록 제각각인 방들이 실은 조금씩 닮았거나 나란하다는 것을 우리는 금세 알아챌 수 있으리라. 한 뼘 열린 창으로, 문틈으로 서로 연결되고 확장되는 모양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이 이야기들은 육면체의 닫힌 방으로 끝나지 않고 저마다의 가능성이 자라나고 뿜어 나오게 될 창을 내어준다. 우리의 가슴과 손에서 한없이 열리며, 자기만의 언어로 우리 내면에서 말하는 것들을 꺼내 놓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위한 책상이 되어줄 것이다.

 

책상에서 비롯되는 시와 글의 가능성:

우리 내면의 무언가가 말할 때 ∙ 안희연 X 단 한 사람을 위한 책상 ∙ 송은정

“우리 내면의 무언가가 말할 때, 내가 아니라 그것이 나의 몸을 빌려 더듬거리며 말할 때, 나는 그것을 받아 적는 사람이다. 입 없는 존재들의 몸짓을 언어로 번역하는 사람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이 모든 일은 책상에서 이루어진다.” _안희연

 

“방금 전까지 오이를 소금에 절이며 싱크대 앞에 서 있던 한 여자가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명백한 작가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내겐 여전히 놀라울 따름이어서, 나는 그런 자신을 계속해서 목도하고 응원하고 싶어졌다. … 나는 그 글이 나만의 어디로든 문이 되길 고대하고 있다. 문을 열면 그곳엔 단 한 사람을 위한 책상 하나가 놓여 있을 것이다.” _송은정

 

양육과 가사의 틈으로 나 자신이 되는 분투:

열병합 방식으로 그리는 일 ∙ 서수연 X 가장 작은 방에서 짓는 것들 ∙ 고운

“내 그림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제일 많이 듣는 말은 “그림이 따뜻하네요”였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내 그림이 열병합 방식이어서 그런가 보다 생각한다. 일과 육아가 끝나고 버려지는 폐열을 이용해 온수를 만들고 그걸로 그림 그리나 보다 생각한다.” _서수연

 

“내 방은,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그 공간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의 양과 질에 있어서도 모두 투쟁으로 얻은 것이다. 가족들에게 사랑과 이해와 도움을 구하면서. 간절함으로. … 우리는 사랑 안에 있어. 우리는 함께 자라고 있어. 육아도 일도 제대로 하는 것 없이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사실은 있는 힘껏 삶을 아끼고 사랑하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나도 나를 응원해 주고 싶다.” _고운

 

고유한 나를 이루는 존재로서의 방:

열린 문, 한 뼘의 틈으로 ∙ 휘리 X 나를 구축하는 질료들 ∙ 박세미

“내 방에서 일어나는 일은 대체로 나만 알 수 있었다. 방문이 한 뼘 열려 있어도, 그 문을 불쑥 열거나 서랍을 허락 없이 열어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 그 덕분에 ‘고유한 나의 영역’이라는 감각이 내 삶에 자연스러운 일로 자리 잡았다. 나의 고유함을 지켜주는 사람들을 곁에 두게 되었으니, 나도 그 사람들의 고유함을 지키고 또 궁금해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_휘리

 

“방을 채운 질료들, 이를테면 책, 침대, 옷, 화병 같은 것들은 내가 새로운 껍데기로 이동할 때마다 내가 끝내 맨몸이 아님을 역설적으로 알려주었다. … 나는 내가 사랑하는 질료들을 붙잡는다. 그것들이 나를 구축하므로, 나는 간절히, 그것들을 지켜내는 방이 되고 싶다.” _박세미

 

1인 가구, 선택한 고독과 삶의 형식으로서의 집:

세 개의 집, 두 권의 책 ∙ 신지혜 X 내가 있는 곳 어디든 ∙ 신예희

“나는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었던 집을 떠나며 나만의 집을 선택했다. … 이 집에서 나는 혼자 마음껏 고독할 수 있다. 집에 틀어박혀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늘었지만 어쩐지 나의 세계는 확장되고 있다.” _신지혜

 

“1인 가구의 삶. 조금은 외롭고 가끔은 쓸쓸하지만 대체로 만족스럽다. 가족과 함께 살 때는 ‘나만의 방’에 대한 애정을 깊이 느껴본 기억이 없다. 어차피 독립된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였을까? 내 방이 있다고 해서 혼자일 수 있는 건 아니다.” _신예희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작업실:

홀로 살아갈 수 없다 ∙ 이소영 X 나에게로 이르는 길 ∙ 무루

“생물은 홀로 살아갈 수 없다. 길가 콘크리트 사이에 핀 외딴 풀 한 그루 역시 그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작은 동물이 멀리에서 씨앗을 물어 번식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풀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은 또 다른 곤충이 다가와 수분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의 작업실만큼은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길 바라지만 그렇다고 늘 나 혼자만 이곳에 있길 원치 않는다.” _이소영

 

“작업실 생활은 내게 일종의 평형추인 셈이다. 일을 하기 위한 공간이라는 본래의 목적보다도 어쩌면 일정 시간 타인과 연결될 수 있어서 이 장소가 내게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결핍된 관계성을 회복할 수 있는 이 이틀의 시간이 내게는 나 자신과 잘 지낼 수 있는 동력이 된다.” _무루

 

 

차례

우리 내면의 무언가가 말할 때 ∙ 안희연

단 한 사람을 위한 책상 ∙ 송은정

열병합 방식으로 그리는 일 ∙ 서수연

가장 작은 방에서 짓는 것들 ∙ 고운

열린 문, 한 뼘의 틈으로 ∙ 휘리

나를 구축하는 질료들 ∙ 박세미

세 개의 집, 두 권의 책 ∙ 신지혜

내가 있는 곳 어디든 ∙ 신예희

홀로 살아갈 수 없다 ∙ 이소영

나에게로 이르는 길 ∙ 무루

 

 

저자 소개

고운

양장점 ‘리틀스티치’를 운영하며 작은 방에서 옷을 짓는다. 실과 글이 지나간 자리를 사랑한다. 그림책 《두 여자》를 옮겼고, 사랑, 기쁨, 바다, 세 아이와 심장을 나눠 가졌다.

 

무루

사방이 열린 작업실에서 어른들과 함께 그림책과 문장을 읽는다. 에세이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를 썼고, 《인생은 지금》, 《할머니의 팡도르》, 《섬 위의 주먹》 등 여러 그림책을 동료와 같이 옮겼다.

 

박세미

문학과 건축, 두 축에 속해 있다. 건축 기자로 오래 일했으며, 시집 《내가 나일 확률》, 《오늘 사회 발코니》를 지었다. 그 밖에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 《전자적 숲: 더 멀리 도망치기》 등에 글을 썼다.

 

송은정

바깥을 걷고 여행하며, 집에서 글을 쓴다. 출판 편집자, 책방 ‘일단멈춤’의 주인, 라이프스타일숍 에디터를 거쳐 프리랜서로 살고 있다.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 《빼기의 여행》, 《저는 이 정도가 좋아요》, 《비건 베이킹: 심란한 날에도 기쁜 날에도 빵을 굽자》를 지었다.

 

서수연

그림책 《백 살이 되면》을 비롯해 에세이 《돌봄과 작업》,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매거진 《AROUND》에 그림으로 참여했고, 2016년부터 카페 일과 양육의 틈틈이 작업을 하며 ‘퇴근드로잉’을 이어오고 있다. 서로와 서온, 두 아이의 엄마다.

 

신예희

20년 넘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프리랜서로 살고 있다. 여행과 음식을 몹시 좋아한다. 늦깎이 초보 운전자의 좌충우돌 성장기 《마침내 운전》을 비롯해 《이렇게 오랫동안 못 갈 줄 몰랐습니다》,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등 여러 책을 썼다.

 

신지혜

건축 설계 사무소에서 일했다. 태어나 처음 살았던 집부터 열한 번째 집까지의 기억을 담은 《0,0,0》과 타인의 첫 번째 집을 인터뷰한 《최초의 집》을 썼고, 건축의 모양에 관한 책들을 지었다. 창문과 책과 춤을 좋아하던 그는 2022년 5월 유명을 달리했다.

 

안희연

면벽의 책상에서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산문집 《흩어지는 마음에게, 안녕》, 《단어의 집》,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등을 썼다.

 

이소영

식물세밀화가, 원예학 연구자로 식물 곁에 오래 머물며 그림을 그린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이소영의 식물라디오’를 통해 식물 이야기를 전해오고 있다. 《식물의 책》, 《식물과 나》, 《식물 산책》 등을 썼다.

 

휘리

살아 있는 것의 힘을 그려나가고 있다. 태몽에서 비롯된 이름 ‘아름다울 휘徽 , 잉어 리鯉’처럼 자신의 세계에서만큼은 자유로이 유영하는 존재가 되고 싶다. 그림책 《허락 없는 외출》, 《곁에 있어》, 《잊었던 용기》를 쓰고 그렸다.

 

 

책 속에서

어쩌면 내가 쓰는 한 편 한 편의 시도 물방울을 위한 집 짓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 제아무리 최고 급 자재를 들여 근사한 건축물을 지어놓았다 하더라도 정작 그 안에 물방울이 맺히지 않는다면 다 부질없다는 생각. (…) 내 시의 집들은 물방울이 찾아오기에 좋은 거처였던가. | 안희연, <우리 내면의 무언가가 말할 때> _13~14쪽

 

방금 전까지 오이를 소금에 절이며 싱크대 앞에 서 있던 한 여자가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명백한 작가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내겐 여전히 놀라울 따름이어서, 나는 그런 자신을 계속해서 목도하고 응원하고 싶어졌다. | 송은정, <단 한 사람을 위한 책상> _47~48쪽

 

거기서 나는 땀을 흘리며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느라 땀을 흘린다는 게 좋았다.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데리러 가기 전 작업실 불을 끄고 방을 둘러보는 순간이 너무 좋았다. 어두운 벽에 기대어 있는 캔버스의 실루엣, 테레빈유 냄새, 아직 손에 묻어 있는 물감. | 서수연, <열병합 방식으로 그리는 일> _68쪽

 

내 방은,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그 공간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의 양과 질에 있어서도 모두 투쟁으로 얻은 것이다. 가족들에게 사랑과 이해와 도움을 구하면서. 간절함으로. (…) 내가 지키고 싶은 건 최소한의 자유였다. 읽고 있는 책들을 쌓아둘 자유, 일기나 편지를 숨기지 않을 자유, 일할 자유, 일하지 않을 자유. | 고운, <가장 작은 방에서 짓는 것들> _88~89쪽

 

이 작은 방을 하나의 세계라고 말해도 괜찮을까? 그렇다면 열어둔 문틈은 누군가와 통하는 길이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 종이컵에 실을 달아 만들었던 전화기처럼, 간단하고 연약해 보이지만 확실한 자기만의 연결. 여전히 한 뼘 열린 문틈, 그 방 안에서 나는 매일 무언가를 지켜내고 잃어버리며 살아간다. | 휘리, <열린 문, 한 뼘의 틈으로> _116쪽

 

논두렁의 짚 더미에서 태어났을 설화는 어미 개로부터 배웠을 것이다. “여기가 우리 방이야.”, “그리고 어느 곳이든 우리의 방이 될 수 있어.” 그리고 나 역시 설화에게 배운다. “우리가 걷고 있는 곳이 우리의 방이 될 수 있어.” | 박세미, <나를 구축하는 질료들> _128~129쪽

 

책으로 둘러싸인 작은 방, 책상 앞에 풍경을 담은 창문이 있는 작은 공부방을 언제나 꿈꿔왔다. (…) 나는 나의 온전한 방을 갖게 되는 동안 타인이 주어인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준다. | 신지혜, <세 개의 집, 두 권의 책> _152~153쪽

 

1인 가구의 삶. 조금은 외롭고 가끔은 쓸쓸하지만 대체로 만족스럽다. 가족과 함께 살 때는 ‘나만의 방’에 대한 애정을 깊이 느껴본 기억이 없다. 어차피 독립된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였을까? 내 방이 있다고 해서 혼자일 수 있는 건 아니다. | 신예희, <내가 있는 곳 어디든> _163쪽

 

나의 작업실 구석구석의 요소들은 세계 곳곳을 탐험하게 해준다. 나는 언제라도 움직이지 않고 나만의 공간에서 공간 너머의 세상을 만나고 즐길 수 있다. | 이소영, <홀로 살아갈 수 없다> _179쪽

 

작업실 생활은 내게 일종의 평형추인 셈이다. 일을 하기 위한 공간이라는 본래의 목적보다도 어쩌면 일정 시간 타인과 연결될 수 있어서 이 장소가 내게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결핍된 관계성을 회복할 수 있는 이 이틀의 시간이 내게는 나 자신과 잘 지낼 수 있는 동력이 된다. | 무루, <나에게로 이르는 길> _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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