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한샘

 

1995년에 만난 그곳은 책방임이 틀림없었다. 루이스 버즈비가 <노란 불빛의 서점>을 펴내기 10년도 전이건만 그곳을 지금 표현해 보라면 딱 ‘노란 불빛의 서점’이다. 노란 불빛과 잔잔한 음악이 감도는 그곳에는 어깨에 숄을 두른 노년의 여성이 몸에 꼭 맞는 일인용 소파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 들어가는 골목은 좁고 길었다. 그 골목에 들어서면 잠시 후 우측에서 새어나올 그 노란빛을 상상하며 마음이 한 걸음 앞서 따뜻해지곤 했다. 등교할 때면 학교가 아니라 그 공간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들어가서 묻고 싶었다. 여긴 뭐하는 곳인가요. 나도 들어가도 되는 곳인가요. 어떤 책을 파나요. 아니 팔긴 파는 건가요.

 

하지만 나는 낯선 언어로 가득할 그곳에 들어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 언젠가 언어가 유창해지면, 한글만큼 그곳의 언어로 읽는 것이 익숙해지면, 그래서 저 안에 가득 차 있는 노란 정적을 깨고 그 여성에게 말 걸 용기가 생기면 꼭 들어가 봐야지 했었다. 하지만 그곳은 그 골목에 항상 있었기에, 그 안에 앉아 있는 여성은 늘 같은 표정으로 뜨개를 하고 있었기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날은 자꾸만 미루어졌다. 그 풍경은 어리고 외로웠던 나를, 혼자 살아가는 일이 고되고 혹독해 잔뜩 움츠려 있던 나를 안심시켜 주는 고요함으로 항상 그 골목에 잠잠하게 존재했다. 그 모습이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 언젠가 내가 그 도시를 떠나게 되더라도 영원하리라 생각했다.

 

다시 그 골목을 찾기까지 거의 십 년이 걸렸다. 골목에 들어서며 오래 간직했던 질문을 할 생각으로 마음이 두근거렸는데 노란 불빛과 잔잔한 음악이 새어 나오던 그곳에는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이제야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용기를 냈는데 힘들었던 나의 하루를 붙들어 주었던 그곳은 사라지고 없었고, 나는 그곳이 정말 책방이었는지조차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시절의 나는 책방이라 확신했지만 그곳은 그저 뜨개를 좋아하는 사람의 작업실이었을 수도 있다. 어떤 사연이었을까. 건강이 안 좋아지신 건 아닐까. 이어갈 사람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내가 사는 이곳처럼 치솟는 임대료를 버티지 못하신 걸까. 어쩐지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책방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책방이었는지 뜨개방이었는지 개인 작업실이었는지 모를, 하지만 노란 불빛과 책이 가득했던 그 공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누군가의 책이 가득한 거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너무 개인적인 공간이어서 쉽게 들어가지 못할 것 같은 공간. 하지만 한번 초대받아 들어간 후에는 그곳의 풍요로움에 스며들어 쉽게 헤어 나올 수 없는 곳. 좋은 음악이 흐르고, 세상이 내는 온갖 시끄러운 소리는 잠시 멈출 것만 같은 곳. 미지의 세계에서 나만의 공간이 되는 경험. 내가 책방을 한다면 모델은 그곳이어야만 했다.

 

2020년 7월 31일. 프리모 레비의 생일에 맞춰 책방 문을 열었다. 2020년은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시작된 해이다. 그해 7월 31일의 신규 확진자는 14명으로, 2만 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와도 그 수에 신경 쓰지 않는 지금 생각하면 참 작게 느껴지는 수이지만 바이러스를 대하는 불안함과 확진자에 대한 마음 역시 지금과는 차이가 있던 시절이었다.

비도 참 많이 와서 6월 초부터 시작된 장마는 공사 기간 내내 멈추지 않았고 8월에 들어서서야 끝이 났다. 1973년 이후 최장 기간의 장마로 기록된 해라는 것을 비가 멈추고 나서야 알았다.

임대료와 사업장 신고의 문제로 7월 안에 개업을 해야 하는 일정이라 7월의 마지막 날에 태어난 프리모 레비의 생일과 정식 오픈일을 맞추기 위해 예정에 없던 가오픈 기간을 두기까지 했지만, 좋아하는 작가 목록 중 가장 첫 줄에 적혀 있던 작가가 프리모 레비는 아니었다. 첫 줄에 적혀 있던 작가의 생일은 겨울이고, 예전의 나였다면 어떻게든 겨울을 기다려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생일에 오픈을 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해 나는 기다림도 사치라는 걸 알았다. 기다림에는 돈이 들고 나는 돈이 없었다.

 

첫 번째로 좋아하든 열 번째로 좋아하든 어쨌든 좋아하는 작가의 생일에 개업을 해야 해야만 했는데 왜냐하면 책방을 열면 반드시 이런 질문을 받게 될 터이기 때문이었다. 7월 31일에 책방을 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네, 바로 그날이 제가 좋아하는 작가인 프리모 레비의 생일이기 때문이죠. 프리모 레비요? 네, 프리모 레비요, 체제에 저항하는 운동가였으며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그런 자신의 경험을 소설과 산문 등 다양한 형식의 글로 남겨 문학계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죠. 그의 책 <이것이 인간인가>는 회고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달까요.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는 책은 제가 너무 좋아해서 제목을 타투로도 남겼다니까요, 보실래요? 여기… (타투를 보여주기 위해 소매를 걷는다.)

 

3년이 되어가는 지금,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모든 작은 책방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있다. 내가 매일 열고 닫은 이곳에도 나의 사연이 쌓여간다. 내가 사랑했고 그리워했지만 들어가 보지 못했던 그 공간과, 내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나의 책방은 여러 면에서 닮아 있다. 들어가 보지 못했어도 안다. 그곳과 나의 책방이 닮아 있음을 아는 이유는 내가 그 시절 마음에 품고만 있었던 질문을 책방에서 실제로 받기 때문이다.

 

여긴 뭐하는 곳인가요. 나도 들어가도 되는 곳인가요. 어떤 책을 파나요. 아니 팔긴 파는 건가요.

 

오늘도 책방에서 사람을 기다린다. 누군가가 여긴 뭐하는 곳이냐 물으며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내가 놓친, 미지의 세계에서 나만의 공간이 되는 경험을 이 책방에 오는 사람들은 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문을 연다. 경기도 외곽 골목길의 작은 건물, 길에서 보이지도 않는 깊숙한 공간에서.

 

─✲─

 

정한샘

2020년 7월 31일 가정식 책방 ‘리브레리아Q’를 열었다. 이탈리아에서 음악을 공부했고, 지금은 책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딸과 나눈 책 편지 《세상의 질문 앞에 우리는 마주 앉아》를 썼고, 그림책 《구름의 나날》을 옮겼다.

_리브레리아Q @libreriaq

 

 

 

 

‘가정식 책방: 리브레리아Q 서점원 노트’는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