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사장 김미정(슈뢰딩거)

 

“당신 나라의 고양이 책을 가져다주세요. 그러면 저희가 준비한 작은 선물을 드립니다.”

 

2015년 8월부터 2017년 9월까지 동묘앞역 근처 한옥에서 에어비앤비를 운영했다. 작은 마당과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난 서재, 네 개의 방이 있는 그 집은 나와 남집사, 고양이 두 마리가 살고도 방이 남았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 소개 페이지에 별 기대 없이 적어둔 이 짧은 문장은 예상보다 효과가 컸다. 캐리어를 주섬주섬 뒤져 기대에 찬 눈빛으로 책을 건네주는 모습이 정말 예뻤다. 나는 거기에 걸맞은 리액션을 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다. 서로 상대방을 감동시키고 기쁘게 하기 위한 이 작은 배틀이 주는 긴장감이 정말 좋았다. 체크인 전에 메시지로 “나 고양이 책 가져갈게!”라고 먼저 알려 오지 않은 깜짝 선물일 경우에는 더 그렇다.

 

오마이갓! 쏘 큐트! 땡큐! 잇츠 러블리!

 

나의 격한 리액션 뒤에는 손님들의 책 소개가 이어진다. 이 책은 내가 어렸을 적에 재밌게 읽었던 책이야. 우리나라에서는 이 책이 유명해. 이 책의 이런 점이 좋았는데 너도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손님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온 고양이 책은 우리 집 서재에, 그리고 서울에 있던 ‘고양이책방 슈뢰딩거’에 자리 잡았다. 문을 열자마자 바로 보이는 곳에 Not for sale 전면책장을 둔 이유는 이 책들을 자랑하기 위함이다. 덕후의 마음은 그런 것이다. 내 콜렉션을 자랑하고 싶고, 사람들이 관심 가져주면 좋겠고 또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해주면 더 더 더 좋겠다는 그런 마음.

 

(대학로에 있었던) 고양이책방 슈뢰딩거의 Not for sale 책장

 

서가가 가득 찼다는 것은 어느 정도 데이터가 쌓였다는 말이 되겠다. 나는 손님들과 손님이 선물로 가져오는 책 사이에 약간의 규칙이랄까 특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러 나라 각양각색의 손님들이 오는 만큼 책이 겹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슈퍼호스트이자 고양이책방 주인장인 나는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성급한 일반화 알고리즘을 돌려 매우 주관적인 결론을 도출해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일단 투숙객을 ‘한옥’에 끌려서 온 사람과 ‘고양이’에 끌려서 온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고양이 때문에 숙박을 하는 사람은 다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과 키우지 않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case 1

고양이보다 ‘한옥’이 좋아서 우리 집을 선택한 사람들의 책은 백과사전이나 육묘서가 많았다. 고양이가 사는 집에 숙박할 정도로 딱히 거부감은 없지만 크게 호감은 없는 경우다. 대체로 고양이를 ‘고양이’ 그 자체로 객관적으로 보는 느낌. 이런 책들은 대체로 양장에다가 부피가 크고 무겁다. 나는 이런 책을 받을때면 취향 존중을 생각한다. 자신의 관심 분야도 아닌데 호스트가 고양이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시간을 내어 모르는 분야의 책을 골라 크고 무거운 그 책을 여행 짐만으로도 빠듯한 트렁크에 넣어서 비행기를 타고 온 그 모든 과정과 수고를 생각하면 뭉클해진다.

 

“안녕, 나는 조르바.”

 

case 2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키우지는 않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책들은 주로 사진집이나 유명한 고양이에 대한 책이 많았다. 그럼피캣, 릴법, 듀이, 어깨 위 고양이 밥 같은 셀럽 고양이나 If fit I fit 같은 밈 사진집, 페이스북 이모티콘 캐릭터 푸신 책도 있었다. 랜선집사의 기운이 매우 강하게 느껴진다. 고양이가 가진 특징에서 오는 귀여움과 웃음이 그들을 사로잡은 게 분명하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그 고양이가 책에서 나오는 순간 모두 자신이 그 고양이의 얼마나 큰 팬인지 덕심을 분출하는 타임이다. 그야말로 위아더월드다.

 

그리고 재미있는 건 이 케이스의 손님들은 나중에 높은 확률로 집사가 되었다. ‘랜선집사’ 손님들이 오면 우리 고양이들이 방에 들어가는 것을 놔두기는 하지만 눈을 떼지는 않는다.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익숙하지는 않아 본의 아니게 고양이를 놀라게 해 흥분한 고양이가(높은 확률로 조르바) 손님을 할퀴거나 깨물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는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 고양이를 잘 모르는 만큼 조심하기 때문이다.

 

사고는 오히려 집사 손님들에게 일어났다. 자기 고양이를 생각하고 조르바를 안거나 미오를 많이 쓰다듬다가 물리거나 발톱에 긁힌다. 물론 손님이 고양이에게 사과한다. 반창고도 필요 없단다. ‘이 흉터가 이번 여행 기념품이 될 거예요!!! 집에 돌아가도 조르바를 잊지 않겠어요’ 하고 웃는 것이다. 호스트로서는 미안하지만, 애묘인으로 그 마음이 이해가 간다. 흉터 한두 개쯤이야 아무렇지 않고 사실 다 사람이 잘못한 거다. 고양이는 잘못 없다. 애옹.

 

조르바와 미오

 

case 3

그럼, 이런 냥덕 집사 손님들은 어떤 책을 가져올까? 그들이 생각하기에 이미 여러 고양이를 키우는 n년 차 집사는 육묘책은 이미 있을 것이고 남의 집 고양이를 보며 대리만족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그림책이었다. 그림책은 글도 중요하지만 ‘그림을 읽는’ 책이다. 문자를 몰라도 그림으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그림책만큼 좋은 수단이 또 있을까?

 

애묘인들은 고양이를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냄새 맡고 싶어 한다. 그러다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나의 마음과 생각을 가슴속에 둘 수만은 없게 되어 그리고 싶고 쓰고 싶고 읽고 싶고 만들고 싶고 찍고 싶어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고양이는 털투성이 포유류가 아니라 내 감정이 투영된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고양이가 주인공인 그림책을 가져온 손님들은 책 속의 고양이에 자신의 고양이를 투영하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투영하기도 하고 ‘내 고양이와 나의 관계’를 투영하기도 한다. 자신의 마음과 같은 울림을 가진 책을 발견하고 바다 건너 있는 호스트에게 소개해주는 것이다.

 

“나도 가끔 생각나긴 해.”

 

어떤 선물이 더 낫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마음을 담아 책으로 그 마음을 나누던 때가 정말 행복했고 그들이 그리울 뿐이다.

 

지난달, 서울 매장을 정리하면서 Not for sale 책장에 있던 책도 에어캡에 포장해서 가져왔다. 이 책은 파리 노신사 장기가 가져다줬지. 이 책은 톡이 가져다줬어. 이 책은 매간, 이 책은 라리사… SNS를 통해 안부를 알 수 있는 친구들도 있지만, 안부를 모르는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특히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메일을 보내 잘 지내냐고 묻고 싶지만 또 그 답을 알고 싶기도 하고 알고 싶지 않기도 하다. 언젠가 고양이 책을 들고 다시 친구들을 만나러 갈 수도, 친구들이 올 수도 있기를 바라본다.

 

모두들, Stay safe, stay healthy.

 

 

‘틈새인간 표류기’는 [월간소묘 : 레터]에 비정기적으로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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