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식 책방: 리브레리아Q 서점원 노트
오후의 소묘 ‘작가노트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예정되어 있는 <가정식 책방: 리브레리아Q 서점원 노트>의 레터 연재를 시작합니다. 리브레리아Q는 경기도 용인에 있는 큐레이션 책방입니다. 노란 불빛이 아름다운 이 서점에 대해서는 ‘소소한 산-책’ 코너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살펴주세요. [소소한 산-책: 용인, 리브레리아Q] 물론 이번 연재글을 통해 알아가셔도 좋을 거예요. “미지의 세계에서 나만의 공간이 되는 경험” 함께해요 :)
[가정식 책방] 압정 빼어내기
글: 정한샘 어렸을 때 압정을 밟은 적이 있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 시절에는 압정이 어디에나 있었다. 당시 압정은 요즘 나오는 것처럼 다양한 모양이 아니고 납작한 모양 딱 하나여서, 바닥에 떨어지면 대부분의 경우 무섭고 뾰족한 바늘을 위로 하고 놓일 수밖에 없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압정을 밟지 않으려고 고개를 빼고 조심하며 걸었다. 압정을 밟는 것은, 그것이 발바닥에 박히는 것은 당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고 으으윽 하는 신음이 절로 나왔다. 그러니까 나는 그 상 ...
[가정식 책방] 누군가에게 집이 되어주고 싶어서
글: 정한샘 집은 무엇일까. 집이란 공간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집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다. 지금껏 한 번도 경제적 논리의 ‘내 집’을 가져본 적 없으나 내가 머무는 모든 집을 ‘내 집’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얼마나 낡았든, 얼마나 작든, 얼마나 짧게 머물든 그곳은 나의 집이었다. 사는 동안은 마치 그곳에 평생이라도 머물 것처럼 가꾸고 돌보며 내 생활 패턴에 최적화시켜 놓았다. 여기를 보고 저기를 봐도 책을 읽고 무언가 적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 안에서 나는 안전하고 만족스러웠다. 하루 외출 ...
[가정식 책방] 4월의 책을 보내는 마음
글: 정한샘 “전라도에 페미까지 대박이네요… 저는 믿고 거르겠습니다.” 책방을 열고 한 해가 막 지났을 무렵 한 일간지의 인터뷰에 응한 적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서 착안한 코너였는데, 나만의 방을 꾸려나가는 여성 자영업자들을 만나는 기획이라고 했다. 기사는 인터뷰어가 책방을 보고 느낀 내용과 질문으로 이루어졌다. 주요 질문이 책방을 어떤 책으로 채웠냐는 것이었기에 나는 책방을 구성하는 서가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곳들을 소개하며 설명했다. 여성의 삶과 페미니즘 도서가 놓인 ...
[가정식 책방] 기뻤어, 기뻤어, 기뻤어
글: 정한샘 상실을 겪고 있는 친구에게 선물할 책을 추천해 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어떤 책을 권했더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뭘 안다고. 누군가를 잃고 살아가는 일에 대해 대체 뭘 안다고 책을 골라 추천했을까. 그때와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 마음을 짐작만 하던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 아픔을 감히 모르고 책을 고르던 때로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늘 생각하며 살았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이별이 찾아온다면 스페인의 시인인 안토니오 갈라의 시처럼 ‘다 끝났다’고 ...
[가정식 책방]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글: 정한샘 어두운 공간을 목소리가 채운다. 단어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꽂혀 와 숨을 쉴 타이밍을 자꾸 놓친다. 이어지는 첼로와 기타의 선율에 참았던 숨을 뱉는다. 낭독과 클래식 음악이 함께 하는 이 시간을 위해 책방 문을 닫자마자 고속도로를 달렸다. 낭독이 이루어질 책은 포르투갈의 극작가이자 연극 연출가인 티아구 호드리게스가 쓴 희곡집 《소프루》이고 그에 맞는 음악을 첼로와 클래식 기타가 연주해 줄 것이었다. 《소프루》는 무대 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배우에게 대사와 동선을 알려주는 ‘프롬프터’를 주인공으로 이끌어낸 희곡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