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함을 듣는 일] 이 안에 사랑이 있구나
혜영¯ 집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잖아요. 어떤 분들은 결혼하고 아이 낳은 후에 친정 동네에 가면 편안하고 좋다는데 저는 오히려 슬퍼요. 슬픔이에요 항상. 폭력과 욕설, 나에게 퍼붓는 저주 가득한 말들이 떠올라서 피하고 도망가고 싶은 곳이에요. 어른이 되고 내 가정을 꾸리고 나면 예전에 일어난 일들이 이해가 가는 부분도 생기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거든요. 왜 우리 부모는 나에게 그랬을까. 그런 생각들을 했었어요. 내가 나를 느꼈을 때부터요. 그 불안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고 그림이 유일한 도피처였어요. 김 ...
[소소한 산-책] 제주, 라바북스
글: 이치코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걸까? 스스로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싸돌아다니는 걸 좋아했어요. 집에 붙어 있질 않았죠. 초등(국민?)학교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해가 떨어지고 밥때가 지나 집에 들어가기 일쑤였고 중고등학생이 되면서는 동네 친구들과 방학마다 텐트를 둘러메고 들로 산으로 바다로 놀러 다니곤 했어요. 물론 그걸 여행이라 부르긴 좀 애매하긴 해요. 그저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했던 거겠죠. 그러다 대학에 가서 여행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나들이를 경험하게 되었어요. 어떨 땐 계획된 것 ...
[고양이 화가] 지구에 그림 그리는 화가 일억 명 있다면
지구에 그림 그리는 화가가 일억 명 있다면 일억 개의 그리기 방법이 있을 거예요. 처음에 나는 아주 느린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이 완성되기까지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의 시간이 걸렸어요. 풀과 꽃 모양의 장식을 그렸습니다. 종이에 수채물감으로 식물의 전체적인 모양을 칠하고, 연필과 색연필로 식물의 잎맥과 질감을 한 겹씩 그려 넣었습니다. 그리다가 실수로 붓이 종이를 스치게 되면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했어요. 덧칠을 하면 맑게 칠해지는 물감의 맛이 사라져 버리거든요. 꽃잎 한 장에 붓 터치 한 번. 거의 다 완성된 그림에 ...
[소소한 산-책] 강릉, 한낮의 바다
글: 이치코 <새의 심장>은 시에 관한, 시의 탄생에 관한 그림책이에요. 이야기의 주인공인 나나는 바닷가에서 태어났고 인간의 말보다 바다의 말을 먼저 배웠어요. 그곳에는 그물과 배와 모래와 산들바람처럼 보드라운 돌멩이가 있었고 파도가 먼바다에서 유리 조각들을 동글동글하게 깎아 선물로 보내주었어요. 소녀는 시와 시의 마음을 찾아 도시로, 숲으로 여행을 떠나고 남다른 호기심과 때 이른 이별, 애틋한 우정과 자유로운 영혼으로 빚어진 삶을 통해 마침내 시와 사랑을 발견하게 되죠. ‘소소한 산-책’은 책과 서점과 산책에 ...
[고양이 화가] 침대 위 정원사
난 고양이 화가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가끔은 이 이야기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해요. 수많은 화가들이 있을 텐데. 그중에는 분명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는 화가도, 평생을 그림에 몰두했던 나이 든 화가도 있을 텐데. 마음마저 울렁대는 그림을 눈에 담을 때면 어떻게 저렇게 그릴 수 있을까 감탄하고 재능을 탐내고 왜 나는 저런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까 하며 작아지기도 합니다. 이런 마음은 잠이 오지 않는 밤 적당한 습도와 공기 속에서 자라납니다. 배꼽과 땅이 수평을 이룬 상태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