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코의 코스묘스] ⑯ 소리치는 일

<말투 하나 바꿨을 뿐인데>라는 책이 있어요. 읽어보진 않았지만, 책 소개를 보니 40가지 심리 기술을 활용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투의 심리학’에 관한 책이라고 해요. 사람의 관계에서 말투는 중요하죠.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는 식상한 속담이 의미하는 바도 말의 ‘내용’에 따라 천 냥 빚이 변제될 수 있다는 건 아닐 거예요. 천 냥이 현대의 화폐 단위로 얼마일지 알 수는 없으나 제법 큰 돈이 분명할 텐데요, 그걸 한 방에 털어낼 정도라면 그저 좋은 말로는 어림도 없을 거예요. 아무리 좋은 말이더라도 그 ...

[쓰기살롱 노트] 그녀의 꿈

글 지혜 (지혜의서재)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 이 책을 덮고 한참을 끌어안고 있었다. 나는 나의 어머니에 관해 떠오르는 것이 거의 없었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어머니가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부터 그녀의 근원인 할머니와 유년 시절, 결혼 전과 후에 관한 이야기까지 이 책에 담았다. 나도 그녀를 따라 천천히 떠올려보았다. 나의 어머니의 역사를. 그런데 시작부터 막혔다.   ‘엄마를 인터뷰해야겠다!’   2년 전쯤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을 읽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그때 처음으로 엄마의 ...

[이치코의 코스묘스] ⑮ 약자의 마음 (1)

봉산아랫집의 오묘는 어떤 기준에 따라 각각의 고양이들이 닮은 꼴로 묶이기도 하고 전혀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되기도 해요. 이를테면 삼삼이와 모카는 높은 장소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어요. 이불 속을 좋아하기론 모카, 미노, 오즈가 서로 닮아 있고요. 그런가 하면 입이 짧아서 간식에 엄청나게 까탈스러운 삼삼이, 모카, 미노, 오즈의 그룹도 있어요. 이상하네요. 치코 이름이 없네요. 치코는 웬만한 기준으로는 나머지 아이들과 닮지 않은 묘한 녀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콩파라는 이유로 미노와 함께 묶을 수 있어요. 두 녀석 모두 수 ...

[이치코의 코스묘스] ⑭ 회색의 미궁

마치 농담처럼 들렸던 앞집 아주머니의 말, 의정부에서 자동차 엔진룸에 몸을 싣고 서울 은평구 봉산 아래까지 뜻밖의 여행을 나온 고양이가 있다는 기막힌 말은 순식간에 저를 조급하게 만들었어요. 울음소리로 봤을 때 아깽이가 분명한 아이가 먼 길을 오는 동안 다행히 상처를 입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어미 없이 낯선 곳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너무 희박했으니까요. 게다가 슬금슬금 해가 떨어지려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초조한 마음과 달리 아무런 장비도 없이 자동차의 엔진룸에서 새끼 고양이를 꺼낸다는 건 막막한 일이었어요. 아이를 꺼내기는커녕 모습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