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를 거두어 집으로 왔어요. 어두컴컴한 밖에서는 허피스에 걸려 괴로워하는 작고 깡마른 아깽이라는 것 말고는 자세히 살펴볼 겨를이 없었어요. 오즈를 안은 품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안도하며 걸음을 재촉하기 바빴어요. 활력이 괜찮아 보였고 몸의 움직임에도 불편함은 없어 보여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허피스만이라면 주사와 약으로 잘 나으니까요. 그렇게 안도를 하며 집에 들어와 조명 아래 밝은 곳에서 오즈를 자세히 보게 되었어요. 그랬더니 글쎄, 어쩜 그렇게 누추하고 볼품없는 아이가 방 안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지.. 제가 흠칫 놀라는 걸 오즈가 못 봤어야 할 텐데 말이에요.

 

아휴, 꾀죄죄…

 

오른쪽 눈은, 정확히 어떻게 안 좋은지 파악할 순 없었지만 아무튼 찡그린 채 제대로 뜨질 못했고 눈동자의 움직임이 많이 굼떠서 마치 사시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눈 아래와 코는 밖에서 본 것처럼 짓물러 있었고요. 물티슈로 닦아내어도 거뭇한 얼룩은 없어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것 때문에 누추해 보이진 않았어요. 오즈가 볼품없어 보인 건 몸통(?) 때문이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몸의 길이와 몸의 둘레가 어우러진 비율, 사람으로 치자면 몸매가… 외모로 고양이를 판단하면 안 되겠지만 당장은 보이는 게 그것뿐인 상황이었어요. 오즈는 참으로 ‘모양 빠지는’ 몸매를 가지고 있었어요.

 

오즈를 데려오자마자 몸무게를 쟀을 때 740그램이었어요. 아깽이를 구조한 것치고 적지는 않은 몸무게였어요. 500그램 전후의 아이들을 구조하면 딱 손바닥만 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오즈는 그것보다는 확실히 덩치가 컸으니까요. 제법 길쭉해 보였어요. 몸의 길이로만 보자면 몸무게가 1킬로그램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는 됐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길쭉해 보이는 몸에 전체적으로 살이 붙은 게 아니라 배만 동그랬어요. 다리는 비쩍 말랐고 등으로는 살갗 아래 뼈가 그대로 만져지는데 유독 배만, 아랫배-윗배 나눌 것도 없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풍만함을 자랑하고 있었어요. 그 모습이 볼품없어 보여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또 얼마나 웃기는지, 정말 초라한 아깽이였어요.

 

“어흥, 내 배 봐라!”

 

하지만 웃을 일이 아니란 게 금세 밝혀졌어요. 오즈는 동그란 배를 밑천 삼아 설사를 하기 시작했어요. 설사란 게 그냥 뿌직, 하고 물💩을 싸는 정도가 아니었어요. 폭포였어요. 여름철 비를 한껏 머금어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지면으로 돌진하는 물줄기처럼 웅장한 💩줄기였어요. 푸슉, 푸슉, 촤아아악. 아깽이용 비상 화장실에 깔아준 모래 면적의 절반은 족히 덮을 만큼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줄기에 경악했어요. 저 통통한 배에 든 것이 모두 💩이란 말인가. 아깽이의 건강 상태를 체크할 때 가장 무서운 증상이 설사와 구토예요. 흔히 줄여서 ‘범백’이라고 하는 범백혈구 감소증의 대표적인 증상이기 때문이에요. 치사율이 높아서 아직 접종을 마치지 않은 아깽이들에게는 치명적인 병이에요. 오즈의 설사는 놀라웠지만 다행히 구토는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계속되는 설사에 점점 걱정이 커져 갔죠. 늦은 밤이라 어떡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차에 모래 더미에서 수상한 기운을 감지했어요. 꿈틀. 어라? 왜 모래가 움직이지?

 

이 연재물의 장르가 갑자기 판타지로 바뀌지 않는 이상 모래가 저절로 움직일 리는 없을 거예요. 모래를 조심스럽게 걷어내며 움직임의 정체를 추적했더니, 세상에나, 오즈의 💩과 모래가 범벅된 속에 하얗고 길다란 실 같은 물체가 꿈틀대고 있었어요. 커다란 기생충이었어요. 또다시 경악해야 했어요. 오즈의 통통한 배가 온통 기생충으로 가득 차 있단 말인가. 한편으로는 안도가 되기도 했어요. 범백 같은 무서운 병의 증세가 아니라 단지 기생충 때문에 설사를 하는 것이라면 그것 나름대로 다행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이때는 오즈의 배에 든 기생충을 과소평가하고 있었어요. <다크 나이트>처럼 최고의 순간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직은 <배트맨 비긴즈>였고 심지어 <다크 나이트 라이즈>마저 남아 있는 상황인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 이야기, 조금 쉬었다 다시 할게요.

 

“왜? 뭔데?”

 

오즈를 구조한 이튿날 병원에 데려갔을 때 다시 충격을 받아야 했어요. 오즈를 구조하고 이름을 붙여줘야 했을 때, 허피스 때문에 한쪽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있는 모습에서 만화 <원피스>에 나오는 외눈 검사 조로가 연상되었어요. 엉덩이를 까봤을 때 조그만 땅콩이 보였기 때문에 남자아이 이름으로는 딱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아프지 말고 조로처럼 강하게 성장하라는 의미도 있었고요. 그렇게 조로라는 이름으로 병원 접수를 하고 진료실에 들어갔는데 의사가 오즈의 엉덩이를 쓱 들춰보더니 ‘여자아이네요.’라고 하는 거예요. 오잉? 분명히 땅콩이.. 땅콩을 보았는데, 라며 의아해하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四묘와 함께 살고 있지만 암컷 아깽이의 엉덩이를 한 번도 까본 적이 없었던 거예요. 하긴 삼삼이와 모카 둘 다 삼색털 고양이(calico cat)였기 때문에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기도 했으니까요. 반면에 치코와 미노의 아깽이 시절 땅콩은 직접 확인을 했기 때문에 오즈를 보고 ‘땅콩이 좀 작구만!’ 하며 아무 의심도 없이 수컷이라고 생각해버렸던 거예요(분명히 똑 닮았었는데…). 아깽이의 암수를 구분하는 게 쉽지는 않다는 의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자괴감이 들었어요. 명색이 四묘의 집사인데, 땅콩과 안땅콩도 구분 못 하다니!

 

어쨌거나 다시 이름을 지어야 했어요. 조로는 너무 남자 이름이니까요. 집에 와서 오즈를 한참 쳐다봤어요. 병원을 다녀온 뒤 하루 만에 말짱해진 오른쪽 눈은 더 이상 조로처럼 보이지 않았어요. 대신에 다른 부분이 눈에 띄었어요. 새삼스러운 건 아니고 오즈가 처음 왔을 때부터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 바로 불룩 튀어나온 배였죠. <원피스>로 시작해서인지 몰라도 이번에도 오즈의 배를 보며 생각이 난 건 <원피스>의 캐릭터였어요. 주인공인 루피의 동료나 주연급의 인물은 아니었어요. 벌써 12년 전에 끝난 스토리에 잠깐 등장했던, 팔다리에 비해 지나치게 크고 동그란 배를 가진 ‘오즈’라는 캐릭터였어요. 만화에서는 남성 캐릭터지만 <오즈의 마법사>를 떠올리면 여자아이의 이름으로도 괜찮겠다 싶었어요. 무엇보다 이름을 부를 때의 울림이 좋았어요. 그리고 봉산아랫집의 전통에 따라 성은 이름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으로, 그렇게 해서 뒤늦게야 제 이름을 찾은 우리의 송오즈.

 

아가씨, 송오즈

 

쉬었던 이야기, <다크 나이트>로 돌아올게요. 아깽이 오즈의 시그니처였던 불룩한 배는 💩과 기생충이 가득한 배였죠. 그 때문에 병원을 몇 번이나 들락날락했는지 모르겠어요. 처음에 진료를 받았을 때는 목 뒤에 기생충 약을 발랐어요. 그것만 해도 웬만한 기생충은 다 잡힌다고 했어요. 하지만 오즈는 전혀 웬만하지 않았어요. 약을 바른 뒤 며칠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자 아깽이용으로 용량을 조절한 구충제를 먹는 약으로 처방받았어요. 약이 효과를 보이고 이삼일이면 기생충이 다 빠져나갈 거라길래 기다렸어요. 하지만 웬걸요. 삼사일이 지나도 계속 보였어요. 간헐적인 설사도 있었어요. 걱정이 되어 또 병원에 갔고 다시 약을 받았어요. 역시나 소용이 없었어요. 다시 병원을 갔을 때 의사도 감탄(!)을 하고야 말았어요. 이렇게나 기생충이 오래가는 아이는 본 적이 없다면서 말이에요.

 

아무튼 설사도 계속 잡히지 않아서 일반적인 기생충 검사 키트로는 검출이 안 되는 원충 계열의 가능성을 살펴보기로 했어요. 그런데 이 검사를 국내에서 하는 곳이 없어서 외국으로 샘플을 보내서 결과를 받아야 한다고 했어요. 거참, 저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유에쓰에이를 오즈의 💩이 먼저 가게 되다니 말이에요. 다행히 먼 길을 떠난 응가 샘플에서 원충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오즈의 설사와 기생충 파티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어요. 당시 제 SNS의 글을 찾아보니까 “아직 독방을 쓰게 해야 하는데 혼자 재울 수 없어 3주를 같이 자고 있다”라며 오즈의 사진을 올린 게 있더라고요. 기생충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화장실을 같이 쓰면 안 되기 때문에 독방을 쓴 거니까 무려 3주나 그랬다는 거예요. 그 긴 시간을 함께 자면서 아침저녁으로 졸린 눈을 부비며 오즈의 💩을 뒤적이며 기생충을 찾고 있는 제 모습을 생각하니, 2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울적해지네요.

 

“아웅, 잘 잤다~”

 

오즈는 봉산아랫집에서 병원 방문 기록을 세운 아이였어요. 치코가 약골이었다고는 해도 오즈만큼 병원을 자주 가지는 않았어요. 퇴원한 다음에 한 번 정도 호흡 상태가 좋지 않아서 병원을 간 것과 접종, 중성화 수술이 다였죠(적어도 아깽이 때는요). 그런데 오즈는 구조된 다음 날부터 2주 동안 무려 8번이나 병원을 갔어요. 오직 💩! 때문에 말이에요. 우여곡절이 길었지만 3주 차를 지나며 기생충이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했어요. 독방에서 벗어나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며 (이미 활발했지만 더욱 격렬하게) 활발하고 천진난만한 아깽이의 생활을 시작했어요. 첫 번째 접종도 무사히 마쳤어요. 두 번째 접종을 하기 전에 잠깐 감기 증상이 다시 올라와 병원에 가긴 했지만 별일은 없었어요. 그리고 두 번째 접종을 하고….

 

<다크 나이트 라이즈>, 영웅의 이야기는 절정에서 끝나지 않는 것 같아요. 꼭 뒤따르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죠. 설사와 기생충으로 잔뜩 고생을 하며 서사의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마음을 움찔하게 만드는 사건이 남아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두 번째 접종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갑자기 오즈가 절룩거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심장이 철렁했어요. 병원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영문을 알 수 없었어요. 다급히 병원으로 다시 갔어요. 오즈의 상태를 본 의사는 간혹 접종 뒤에 일시적으로 마비가 오는 경우가 있다고 했어요. 다른 이상은 없어 보이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요(그래도 주사를 한 대 맞긴 했어요). 안심이 되긴 했지만 불안함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어요. 종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어요. 다음 날 일어나 보니 의사의 말처럼 괜찮아져 있었어요. 여전히 한쪽 다리를 불편해하는 것 같았지만 전날처럼 절뚝거리진 않았어요. 그래도 불안해 또 병원을 가서 의사의 확인을 받아야 하긴 했지만요. 그 뒤에 3차 접종과 중성화 수술이 그나마 별사건 없이 무사히 지나간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절뚝거리는 자가 범인..?

 

17회. 구조한 이튿날인 10월 26일부터 다음 해 2월 19일에 중성화 수술 실밥을 빼는 날까지 오즈가 병원을 방문한 횟수예요. 구조된 아깽이가 건강에 큰 문제가 없다면, 병원을 방문하는 횟수는 구조 직후 건강 상태 점검 및 전염병 검사, 3번의 접종과 항체 검사, 중성화 수술과 실밥 빼는 일까지 해서 보통 일고여덟 번 정도예요. 오즈는 거기에 열 번을 더해 병원을 제집인 양 들락거렸죠. 하지만 그러면서도 건강에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어요. 그놈의 기생충과 가벼운 예방접종 쇼크 정도가 전부였으니까요. 다행이긴 하지만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도 있는 일로 얼마나 호들갑이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어넘길 일이지만 그땐 정말 조마조마한 날들이었어요. 육체적으로 피곤한 건 말할 것도 없고요.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라고 부를 만한 시기였어요. 그런데, 어쩌면 그 요란했던 시절이 D가 탄생하는 서막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일말의 평범함도 거부하는 독보적 존재 D의 의지를 이어가는, (역시 <원피스>에 나오는 대사처럼) ‘해적왕이 될’ Dㅗ른자, 송 D 오즈.

 

“어쭈, 자네도 뎀빌라고?”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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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 잃어버린 시간에 관하여, 김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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