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농담처럼 들렸던 앞집 아주머니의 말, 의정부에서 자동차 엔진룸에 몸을 싣고 서울 은평구 봉산 아래까지 뜻밖의 여행을 나온 고양이가 있다는 기막힌 말은 순식간에 저를 조급하게 만들었어요. 울음소리로 봤을 때 아깽이가 분명한 아이가 먼 길을 오는 동안 다행히 상처를 입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어미 없이 낯선 곳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너무 희박했으니까요. 게다가 슬금슬금 해가 떨어지려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초조한 마음과 달리 아무런 장비도 없이 자동차의 엔진룸에서 새끼 고양이를 꺼낸다는 건 막막한 일이었어요. 아이를 꺼내기는커녕 모습을 볼 수도 없었어요. 자동차 밑으로 몸을 밀어 넣어도 봤지만 보이는 건 거무스름한 철판과 이해할 수 없는 구조로 결합된 부속품뿐이었어요. 아까보다 더 세게 보닛을 두드리고 크게 발을 굴러봐도 계속 울어대기만 할 뿐 밖으로 나올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집에서 사료와 간식을 가져와 차 밑에 두고 한참을 지켜봤지만 그것도 소용없었어요. 이렇게는 안 되겠단 생각이 들어 운전석에 보이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어요. 아주머니가 전화를 받았는데 다행히 집에 계셨어요. 사정을 설명하자 본인도 개를 키운다고 하시며, 여리고 작은 생명을 살리려고 애써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자동차의 보닛을 흔쾌히 열어주셨어요.

 

Photo by Rafif Prawira on Unsplash

 

그런데 막상 보닛이 열렸어도 엔진룸에 들어앉은 각종 부속품이 자동차의 바닥에서 보았던 것보다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구조로 배치돼 있다는 것 말고는 상황이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어요. 저는 운전면허가 있긴 하지만 차를 가졌던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자동차의 엔진룸을 본 적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순 없겠지만 거기에 무엇이 어떻게 들어앉았는지 사실상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아주머니가 전화를 받고 보닛을 열어주겠다고 했을 때 아이를 금방 꺼낼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숨은 아이를 잘 찾은 다음에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덥석 잡아 올리면 된다고 생각했죠. 자동차의 엔진룸이 마치 최신 스마트폰의 내부처럼 그렇게 알뜰하게 활용된 공간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자동차의 바닥에서 보나 뚜껑을 열어 위에서 보나 고양이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어요. 심지어 대체 고양이가 숨을 공간이 있기는 한 건가, 라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그러는 와중에도 겁먹은 울음소리가 멈추질 않았으니 어딘가에 숨어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지만요.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만 갔어요. 이미 한참 전에 해가 떨어져서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엔진룸에 숨은 아이와 숨바꼭질을 해야만 했어요. 그래도 몇 시간을 그러고 있자니 기술이라고 부를 만한 게 생기긴 하더라고요. 엔진룸의 부속품들 사이에 어떤 공간이 감춰져 있는지 조금씩 감이 오기 시작했어요. 아이가 조그만 몸을 어느 곳에 숨기고 있는지, 손을 집어넣을 만한 공간이 어디에 있는지 대략 알게 되었어요. 제법 손이 깊게 들어가는 공간이 있는 것도 발견했어요. 아이를 그쪽으로 들어가게 한다면 붙잡아 꺼낼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제 뜻대로 순순히 그 공간으로 들어가 주지는 않았어요. 손을 뻗을 수 없는 공간으로만 요리조리 숨어다니며 제 속을 계속 태울 뿐이었죠.

 

겨우 모습을 드러낸 미노, 꺼내기까진 시간이 한참 더 걸렸지만⋯

 

그렇게 한참 씨름을 하다가 드디어 제가 원하는 곳으로 모는 데 성공했어요. 놀라지 않도록 살금살금 손을 뻗었더니 꿈틀거리는 털 뭉치가 만져졌어요. 꼬리인가? 아니, 꼬리보단 좀 더 평면적이었어요. 도망가지 않게 조심하며 조금 더 손을 넣었어요. 왼쪽 뒷다리와 꼬리가 만나는 부분에, 아마도 엉덩이라고 부를 만한 곳에, 손이 닿았어요. 더 이상 팔이 들어가지 않아서 그 상태로 손목을 돌려가며 목표물을 조심스럽게 탐색했어요. 제가 노렸던 건 뒷다리였어요. 꼬리는 아무리 세게 붙잡아봤자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게 뻔해서 놓치지 않을 만큼 꽉 붙잡을 수 있는 부위(?)가 필요했으니까요. 조금씩 조금씩, 새끼손가락과 약지를 지나 검지와 중지 사이에 꼬맹이의 발바닥이 들어왔어요. 다시 조금씩 조금씩, 아이의 발이 엄지에 닿았고 손바닥까지 닿을 듯 말 듯 했어요. 잘하면 손아귀에 잡힐 것도 같았어요. 딱 한 번의 기회라 생각하고 주먹을 힘껏 쥐었어요. 그리고 손바닥에서 꾸물대는 조그만 덩어리. 다리가 붙잡힌 아이는 발버둥 치기 시작했어요. 발톱을 한껏 세우고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쳤죠. 하지만 저도 사정을 봐줄 생각이 없었어요. 꽉 붙든 채 밖으로 끌어당겼어요. 다치지 않도록 살며시 끄집어내기 시작했어요. 꼬리가 나오고 뒷다리가 나오고 몸통 다음엔 머리까지, 엔진룸에서 아이가 쏙 빠져나왔어요. “얘야, 이젠 살았다.” 꼭 껴안으며 말했어요.

 

“여긴 어디냥?”

 

밖으로 꺼내서 처음 봤을 땐 하루가 넘게 엔진룸에서 뒹굴었던 아이치고는 깨끗해 보였어요. 상처도 보이지 않았고 털의 윤기도 좋은 편이었어요. 그런데 집에 데려와 조명 아래서 자세히 보니 몸에 온통 검댕이 묻어 있었어요. 기름이 직접 묻은 건 아니었지만 차에 쌓인 기름때들이 몸에 들러붙어 거뭇거뭇했어요.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는데 시커먼 기름때가 얼마나 닦여 나왔나 몰라요. 다행히 건강 상태는 아주 양호해 보였어요. 잘 먹고 활기가 좋았으며 허피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귓속에 진드기도 전혀 없었어요. 꼬리의 끝부분이 S 자로 꺾여 있었지만 다친 게 아니라 원래 그런 것 같았어요. 그리고 엉덩이엔 땅콩이 달려 있었고요. 아이를 구조하기 전날에 꿈을 꾸었는데요, 꿈속에 황소가 나왔어요.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나진 않았지만 커다란 소가 등장했던 장면만은 선명했어요. 눈앞에 있는 아이를 보고 왜 그 황소가 생각났는지는 모르겠어요.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궁에 갇힌 미노타우로스를 떠올렸던 걸까요. 아이와 저한테 모두, 자동차의 엔진룸은 미궁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요. 아무튼 미노타우로스, 미노, 회색 몸통에 검은 줄무늬가 있는 태비, 일명 고등어, 고미노.

 

심장에 무리무리무리..

 

곱게 닦아 뽀송뽀송해진 미노는 깜짝 놀랄 만큼 예뻤어요. 사실 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터라 고등어 아이들은 평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미노는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아깽이일 때 귀엽지 않은 고양이는 없다고 해도 미노의 귀여움엔 조금 치명적인 면이 있었어요. 아마 눈 색깔 때문이 아니었을까 해요. 고양이는 털 색깔이나 무늬를 타고나는 것처럼 눈동자 색깔도 제각각 다르게 정해지지만, 갓 태어났을 땐 눈동자의 색을 결정하는 멜라닌 세포가 활성화되지 않아서 모든 아깽이가 푸른빛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고 해요. 그러다가 생후 6~8주 정도 지나 어미 젖을 뗄 때쯤 본래 정해졌던 눈동자 색깔이 드러나기 시작한대요. 갓 구조했을 때 미노는 본래의 눈동자 색깔을 찾아가는 중이었어요. 그런데 한창 변하고 있던 그 색이 옅은 회색에 가까웠어요. 마치 투명한 듯 반짝이는 회색빛의 눈동자.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지 볼 때마다 마음이 설레었어요. 미노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심장이 괴로웠어요. 심쿵이거나 혹은 심멎이거나. 게다가 선명한 줄무늬는 얼마나 강렬한지, 눈 덮인 산 속에 우뚝 선 시베리아 호랑이의 풍모가 드러나는 듯했어요.(그래서 미노의 다른 이름은 고민호!) 어쨌거나 치명적이란 단어를 빼곤 설명하기 힘든 매력이었어요.

 

고민虎, 심장폭행!

 

미노가 어디서 살아갈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어요. 저희 집에는 고양이가 이미 셋이나 – 삼삼이, 모카, 치코가 있었지요. 고양이가 하나 더 생긴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고요. 그렇다면 입양을 보내야 했지만 맘에 걸리는 게 있었어요. 미노가 의정부에서 온 고양이란 걸 알려줬던 앞집 아주머니, 봉산아랫집에 1년 5개월을 살았지만 그때 처음 보았던 아주머니 때문이었어요. 차에서 미노를 꺼내려고 애쓰는 동안 앞집 아주머니와 차 주인 아주머니도 상황이 궁금했는지 몇 번이나 나와 보곤 했어요. 그러다 무심히 한마디를 던졌죠. “쟤는 차에서 꺼내면 우리집에서 키우든지 해야겠어.” 그 말이 미노의 운명을 결정해버릴 줄은… 사실 너무나 고마운 마음이에요. 갈 곳 없는 생명을 흔쾌히 거두겠다니 말이에요. 그런 맘들이 많아지면 세상이 얼마나 따뜻해지겠어요. 아주머니한테 몇 번이라도 감사를 해야 할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미노를 구하고 나서 아주머니 집에 찾아가 ‘아까 그 고양이 구조했어요’라고 말할 수 없었어요.

 

고양이 입양을 보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지 않을까 해요. 지금 내 손에 잠시 맡겨져 있는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져 줄 인연을 찾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말이에요. 늘 더 나은 사람, 더 괜찮은 조건의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어 결정을 미루고 망설이게 되죠. 간혹 입양 이후에 벌어지곤 하는 불상사에 대한 걱정까지 겹치면 마음을 결정하기가 더 힘들어지곤 해요. 내가 직접 책임지지 못한다는 미안함까지 얹혀 있고요. 경우에 따라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선택하기 위해 현실과 타협도 해야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누군가는 본인이 책임질 상황이 안 되는데 데려가겠다는 사람이 있는 것만 해도 어디냐, 대충 키울 만한 사람한테 보내면 되지,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고양이의 입양이란 고양이가 머무는 장소가 A에서 B로 바뀌는 게 아니에요. 고양이의 세계가 A에서 B로 바뀌는 거예요. 누군가의 세계가 통째로 바뀌는 일에 어떻게 대충이 있을 수 있나요.

 

“이 형아는 머리가 엄청 크네..”

 

“누나들이 체고다..”

 

제가 앞집 아주머니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게 문제였어요. 입양 조건에 관해 확인할 수가 없었어요. 이를테면 나이는 몇 살인지, 가족 구성은 어떻게 되는지, 반려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있는지, 다른 가족들의 동의는 받았는지 등에 관해 물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차에서 꺼낸 다음에 자기가 키우겠다고 명확하게 저에게 얘기한 건 아니었고, 저랑 아주머니는 그날 처음 본 사이였으니까요. 그렇다고 아주머니한테 말도 없이 다른 곳으로 입양을 보내는 건 또 마음에 걸렸어요. 어떤 약속을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미노를 구조하는 동안 계속 궁금해하며 같이 마음을 써준 사람이 슬쩍이나마 키우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는데 그 마음을 무시하자니 왠지 미안했어요. 비록 그날 처음 본 사이라고 해도 말이에요. 어떤 선택도 흔쾌히 내릴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하루, 이틀 시간만 흘러갔어요.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셋이나 있는데 넷이 뭐라고,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알고 보니 형아도 갠찬네..”

 

四묘, 조화로운 일상의 풍경

 

제겐 홀짝의 법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는 것 같아요. 고양이의 수가 홀수가 될 때는 고민의 시간이 길어지고 (함께 산다는) 선택을 하기가 많이 힘들었어요. 반면에 짝수가 될 때는 의외로 금방 결정을 내리거나 될 대로 되라는 마음가짐으로 비교적 편안했어요. 삼삼이는 첫 고양이였으니 당연히 가장 오랜 시간을 두고 고민하며 결정을 했고요. 그에 비하면 히루는 입양을 결정하기 전에 이미 ‘둘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맘이 있었던 것 같아요. (모카는 특수한 상황이라 예외로 하고) 셋째인 치코를 구조했을 땐 입양을 보내려고 나름 애를 썼어요. 둘에서 셋이 되는 건 심리적으로 많은 부담이 되었거든요. 비록 현실의 쓴맛(?)을 보긴 했지만요. 그에 비하면 미노는, 앞집 아주머니로 인해 발생한 묘한 상황 덕이긴 했어도 어쨌거나 수월하게 식구가 될 수 있었어요. 짝수가 지닌 안정성 때문일까 싶기도 해요. 아무래도 홀로 덩그러니 있는 것보단 짝이 맞아 함께 있는 게 편안해 보이니까요. 2-4-6-8-10에 비하면 1-3-5-7-9가 왠지 더 불안하고 사나울 것만 같은 건, 저만 그런가요? 미노가 식구가 되면서 봉산아랫집에는 조화의 기운이 넘치게 되었어요. 四묘는 음양의 이치에도 딱 맞게 암수가 각각 둘, 둘이었고 무늬마저 삼색, 카오스, 치즈, 고등어 순으로 아름답게 배치되었죠. 균형 잡히고 평화로운 세계였어요. 삼삼이, 모카, 치코 그리고 미노. 단단하고 든든한 세계이기도 했죠. 조화로운 일상이 완성되었다고, 믿을 만했어요. 충분히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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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 코스묘스의 오묘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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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 잃어버린 시간에 관하여, 김삼삼

④ 각자의 자리   |   ⑤ 굴러온 돌   |   ⑥ 잃어버린 시간

Episode 3. 미래에서 온 카오스, 강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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⑯ 소리치는 일   |   ⑰ 총체적 난국   |   ⑱ 엔드게임 and..

시즌 2,

길어질 게 뻔한 변명(1)   |   길어질 게 뻔한 변명(2)   |   길어질게 뻔한 변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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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교감 사이에 어중간하게(1)   |   공감과 교감 사이에 어중간하게(2) 

고양이의 버킷리스트 

떨림이 멈추지 않는 세계에서(1)   |   떨림이 멈추지 않는 세계에서(2) 

시즌 1, Again

• Episode 7. 고양이, 장소, 환대, 시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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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2,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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