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란 대체 뭘까?”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말이에요. 한둘이라면, 고양이란 저런가 보다 하며 무심히 넘겼을 것도 같아요. 그런데 매일 다섯 고양이와 부대끼며 살다 보니 날이 갈수록 고양이의 정체를 모르겠어요. 이놈과 저놈의 차이가 너무 커서 얘네들이 같은 종이란 말인가 싶을 때가 많아요. 공통점이라고 부를 만한 건 잠을 자는 시간이 많다, 내가 부를 땐 절대로 오지 않고 지가 필요할 때만 다가온다, 정도나 될까요? 그것 말곤 다섯 아이가 정말 제각각이에요. 엉덩이를 두들겨 주면 좋아하는 아이, 박치기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 높은 데 올라가는 걸 좋아하는 아이, 웬만해선 낮은 곳에 머무르려는 아이, 베개 위를 좋아하는가 하면 이불 밑에 파고드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발톱도 잘 세우질 않는 아이와 툭하면 깨무는 아이, 온갖 소문난 간식을 다 먹여보았지만 다섯 아이가 모두 먹는 간식은 딱 한 종류이고 잠자는 시간도 서로 다르고 우다다다 뛰어다니는 시간도 각자 제멋대로인 아이들과 살다 보면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고 있더라고요. 도대체 고양이란 녀석들의 정체는 뭘까?

 

하긴 인간을 생각해보면 고양이가 그렇게 제각각인 게 이상한 일은 아니겠죠. 사람도 똑같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우리가 인간에 대해 지구에 있는 개체의 수만큼 고유한 생김새가 있고 성격이 있고 행동이 있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고양이도 개체의 숫자만큼 고유함이 있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닐 거예요. 오히려 그렇게 따지면 똑같은 고양이가 있다는 게 이상한 일이겠네요. 하지만 그 차이와 다양성은 가까이에서, 오래도록 애정을 가지고 지켜볼 때만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고양이에 관해 서투를 때에는 고양이들이 이렇구나 하면서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 일쑤예요. 저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삼삼이와 히루만 있을 땐 고양이란 다 얘네들 같은가 보다 했어요. 둘이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했어도 많은 면에서 비슷했거든요. 그 둘과 다른 고양이가 있다는 걸 상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Photo by Kyle Glenn on Unsplash

 

고양이란 인간과 친밀한 동물인 줄 알았어요. 정서적 친밀함의 수준이 아니라 물리적 거리를 돌파해 들어오는 접촉의 친밀함이 모든 고양이의 특성인 줄로만 알고 있었어요. 삼삼이는, 툭하면 짜증을 부리긴 했지만, 늘 옆자리에 와서 머물고 무릎에도 잘 올라오고 제가 잠을 잘 때도 항상 곁에 붙어서 같이 잠들곤 했어요. 히루는 삼삼이보다도 스킨십에 더 적극적이었어요. 아깽이 시절부터 물고 빨며 아꼈던 터라 일종의 각인효과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저와 붙어 지내는 걸 좋아했어요. 게다가 고양이가 영역 동물이며 독립적인 생활을 한다는 말은 정글에 사는 고양잇과 동물들한테나 해당하는 얘긴 줄 알았어요. 우리가 아는 고양이들은 길에서 지낼 땐 그럴지 몰라도 집 안에 들이게 되면 당연히 달라지는 줄 알았죠. 삼삼이와 히루는 서로 영역을 두고 다툰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거든요.

 

그땐 딱 삼삼이와 히루만큼만 고양이를 알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였을까요? 인간과 고양이의 인연을 관장하는 신이 보기에 저의 좁고 답답한 세계가 영 미덥지 못한 나머지, 같은 고양이지만 삼삼이와는 마치 오골계과 벨로키랍토르(벨로시랩터)만큼이나 큰 차이를 가진 아이를 만나서 더 거칠고 장대한 고양이 세상를 경험해보라고 일종의 계시를 내렸던 걸까요? 아무려나, 저는 모카를 만났고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어요.

 

이러고만 있으면 천사가 따로 없는데…

 

봉산아랫집에 모카가 들어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거실의 소파 밑이었어요.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낯선 집에 처음 왔으니 얼마나 불안하고 무섭겠어요. 히루도 처음 온 날 그랬거든요. 구석으로 숨고 가구들 밑으로 파고들고 조그만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고. 그럴 땐 안전하다는 생각을 할 때까지는 자극하지 않고 가만두어야 하기에, 모카가 숨어 들어간 소파 아래쪽으로 밥그릇과 물그릇을 밀어 넣어주고 무관심한 척 조용히 지켜보았어요. 역시나 히루가 그랬던 것처럼 한두 시간 지나면 밖으로 나올 거라 생각했어요. 고양이란 조심성 많은 쫄보들인 동시에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대마왕이기도 하니까요. 특히나 아깽이들은 말이에요. 곧 이 새로운 공간이 궁금해져서 여기저기 탐색을 시작하리라 예상했죠. 그런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어요. 세상에 그런 고양이가 있을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모카는 소파 아래에서 꼬박 사흘을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이 녀석은 유독 겁이 많은 아이인가 보다.’

첫날은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둘째 날까지 나오질 않자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혹시 사람에게 해코지를 당한 경험이 있는 걸까?’

셋째 날이 되자 저의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얘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히루가 처음 왔을 때는 삼삼이와 익숙해질 시간을 주기 위해 둘을 격리했어요. 제가 잠자는 방에 조그만 화장실을 마련해주고 밥과 물을 따로 챙겨준 다음에 삼삼이가 들어오지 못하게 방문을 닫고 하룻밤을 지냈어요. 계획대로라면 일주일 정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인사를 시킬 생각이었지만 삼삼이가 문밖에서 하도 울어대는 데다 둘이 금세 친해지는 바람에 이튿날 바로 격리를 해제하긴 했지만 말이에요.

 

어쨌거나 적당한 거리를 두는 데 성공!

 

반면에 모카는 삼삼이와 격리를 시킬 엄두도 내지 못했어요.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집에 와서 밤 늦게까지 거실 소파 밑에서 꼼짝도 안 하는 걸 보고, 문을 닫은 방 안에 모카를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삼삼이를 방에서 못 나오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냥 삼삼이를 믿어 보기로 했어요. 삼삼이는 자신의 존재 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스타일이거든요. 먼저 귀찮게 하지만 않는다면 삼삼이가 모카를 해코지할 일은 없을 것 같았어요.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서 봤더니 역시나 예상대로 아무 일도 없었어요. 모카는 여전히 소파 밑에 있었고 삼삼이는 거실의 새 식구한테는 관심도 없이 제 머리맡에서 자고 있었어요. 둘째 날도 그랬고 셋째 날도 마찬가지였어요. 제 기억이 맞다면 넷째 날에 모카가 소파 밑을 나와서 집 안 탐색을 시작했을 때, 모카가 삼삼이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했던 것 같아요. 삼삼이는 별다른 감흥 없이 무심하게 인사를 받아줬던 것 같고요. 아니면 살짝 짜증을 부렸을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둘은 그렇게, 제가 아는 한은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방식으로 합사를 하게 되었어요.

 

일단 제집으로 여기게 되자 모카도 여느 고양이와 다를 바 없이 인간과 생활하는 법을 익혀가는 듯했어요. 제가 소파에 앉아 쉬고 있으면 그 밑이 아니라 옆자리에 와서 함께 쉬기도 했고 컴퓨터를 쓰고 있으면 키보드 옆에 딱 붙어 앉아서 모니터를 쳐다보기도 했어요. 간혹 무릎에 올라와서 잠들기도 했고요. 집에 온 지 한 달이 지났을 때 또 다른 아깽이 동기가 생겨서(치코, 이치코예요!) 더 빨리 적응을 했던 것 같아요. 여전히 조금만 낯선 소리가 들려도 화들짝 놀라 구석으로 숨기 바쁜 겁쟁이 쫄보였지만, 조금씩 삼삼이나 히루처럼 인간에게 친밀한 아이가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에게 안기는 걸 싫어해서 한 번 안아보려면 팔뚝과 몸통에 할퀸 자국이 잔뜩 생길 걸 각오해야 했지만 그것도 조금씩 나아지리라 여겼어요. 돌이켜 보면 우스운 생각이었고 참으로 대단한 착각이었죠.

 

이 정도면 됐다, 싶기도 했으나…

 

첫 번째 접종을 위해 병원을 갈 때만 해도 그리 어렵지 않게 붙잡아서 캐리어에 넣을 수 있었어요. 싫다고 발버둥을 치긴 했지만 아직 생후 3개월도 안 된 꼬맹이라 쉽게 잡을 수 있었죠. 두 번째 접종까지도 어렵진 않았어요. 몇 주 동안 제법 자라긴 했지만 아직 덜 여문 근육으로 저를 피해 도망가기엔 무리였어요. 잽싸게 잡아서 캐리어에 넣었죠. 그런데 세 번째 접종을 할 때가 되자 상황이 좀 달라졌어요. 일단 잡기만 하면 빠져나가지 못하게 꼭 붙들어서 캐리어에 넣을 수 있을 것 같긴 했지만, 모카를 잡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아졌어요. 몸집이 커진 만큼 움직임도 빨라져서 제가 따라가기 힘들어져버렸거든요. 얼마나 악착같이 도망다니는지 괜히 무리해서 붙잡다가는 모카가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몇 번 잡으려고 시도하다가 그만뒀어요. 그리고 조용해지기를 기다렸어요. 아무리 그래봤자 고양이니까 곧 잠을 자려고 할 테니까요. 그렇게 모카가 잠든 틈에 살며시 옆으로 다가가 얼른 담요를 감싸 붙잡았어요. 캐리어에 넣고 무사히 병원에 다녀오긴 했지만 어찌나 심하게 발버둥을 치는지 다음번에는 어쩌면 난리법석만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어요. 도대체 이런 불길한 예감은 왜 빗나가지 않는 걸까요?

 

2016년 9월 22일, 모카의 중성화수술을 예약한 날이 되었어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비장한 심정이었어요. 모카는 벌써 묘생 5개월 반, 몸무게도 2.5킬로그램을 넘긴 늠름한 캣초딩이 되어 있었어요. 과연 모카를 캐리어에 넣을 수 있을까? 자신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해보는 수밖에요. 지난번과 똑같이 모카가 얌전히 잠자고 있을 때를 노렸어요. 살며시 옆에 다가가 담요로 덮칠 계획이었죠. 그때보단 날렵하게 움직여야 했어요. 모카가 낌새를 채기 전에 와락 덮치려고 했어요. 그런데 와락의 와,라는 동작이 시작되기도 전에 모카는 이미 도망가버렸어요. 동물병원에서 수술은 보통 오전에 하기 때문에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인데, 아무리 기다려도 모카는 긴장을 풀지 않고 저를 경계했어요. 결국 병원에 전화를 해서 수술 날짜를 미룰 수밖에 없었어요.

“아이가 하도 도망다녀서 잡을 수가 없네요. 수술 날짜를 미뤄야 할 것 같아요.”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 이제 본격적으로 지옥의 입구에 발을 들인 듯한, 또 빗나가지 않을 게 분명한 예감이라고나 할까요.

 

차라리 이렇게 정신없이 놀고 있을 때를 노렸더라면…

 

중성화수술을 위한 포획(?)의 두 번째 시도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보기로 했어요. 작전은 동일했으나 덮치는 동작을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실행하기로 했어요. 지난번에 실패한 이유가 담요로 덮치기 위해 살금살금 준비동작을 했던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아무런 사전동작도 없이 불시에 번개같이 담요와 제 몸을 함께 모카에게 날렸어요.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모카를 붙잡잡았어요. 이제 모카의 발버둥을 진정시키며 캐리어에 넣어야 할 차례였어요. 격렬하게 담요 밖으로 삐져나오는 앞다리, 뒷다리를 몇 번이나 다시 붙잡아 갈무리한 다음에 겨우 캐리어에 집어넣었어요. 이제 됐다,라고 생각하며 한 손으로 캐리어의 지퍼를 잠그려는 순간 모카를 누르고 있던 다른 손에 불길한 근육의 율동이 느껴졌어요. 아차 싶었을 때 모카는 이미 바다 위로 솟구쳐 뛰어오르는 돌고래처럼 우아하게 캐리어 밖으로 뛰쳐나간 뒤였어요. 그 상황에서 다시 모카를 잡으려고 시도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 결국 허탈함을 뒤로 한 채 병원에 전화를 걸어야 했어요.

“죄송하지만 이번에도 캐리어에 넣는 걸 실패해서 예약을 한 번 더 미뤄야 할 것 같아요.”

전화기 건너편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잔뜩 묻어 있었어요.

“그러면 다음 주 금요일로 다시 예약을 잡아 드릴게요. 그런데 만약 다음번에도 아이를 못 데리고 오시면 저희 병원에서는 수술 진행이 힘드실 것 같아요.”

 

언제라도 도망갈 수 있도록-

 

아직 한 번의 기회가 남았지만 자신감은 바닥까지 떨어져버렸어요. 이러다간 집에서 함께 사는 고양이를 캐리어에 넣기 위해 길고양이 포획틀이라도 사용해야 할 판이었어요. 그 병원이 아니라도 중성화수술을 못하는 건 아니겠지만 다른 병원에 예약을 한다고 해서 모카가 순순히 캐리어에 들어갈 리는 없으니까요. 모카가 1cm라도 더 자라기 전에, 100g이라도 더 늘기 전에 조금이라도 제가 힘겨루기에서 우위에 있을 때 붙잡아서 중성화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아무런 대책이 없었어요.

 

고양이와 인간 사이에 평화로운 시간만 존재하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어요. 모카는 삼삼이나 히루와는, 심지어 당시 함께 커가고 있던 아깽이 치코와도 완전히 다른 아이란 걸 인정해야 했어요. 제가 완전히 다른 세계에 들어섰다는 걸 깨달았죠. 그 세계가 카오스로 가득찬 곳이라는 사실도요. 모카라는 혼돈의 카오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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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 코스묘스의 오묘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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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 잃어버린 시간에 관하여, 김삼삼

④ 각자의 자리   |   ⑤ 굴러온 돌   |   ⑥ 잃어버린 시간

Episode 3. 미래에서 온 카오스, 강모카

⑦ 빈 책상   |   ⑧ 혼돈의 카오스   |   ⑨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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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교감 사이에 어중간하게(1)   |   공감과 교감 사이에 어중간하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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