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목숨이 아홉 개라는 속담은 참 이상한 말이에요. 왜 그런 말이 생겨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요. 아홉이라는 숫자, 환생이라는 개념 때문에 동양의 속담처럼 보이지만 실은 서양의 속담이에요. “A cat has nine lives. For three he plays, for three he strays and for the last three he stays.”(고양이는 아홉 번을 산다. 세 번은 놀면서, 세 번은 길을 잃은 채, 세 번은 머물며 산다)라는 오래된 말이 있다고 하고,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도 ‘고양이의 아홉 목숨’이란 표현이 등장한다고 하니 말이에요. 아홉 개의 꼬리가 달린 여우 이야기를 가진 동양에서 유래되었나 싶다가도,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바스테트라는 고양이 모습 여신의 존재를 보면 서양에서 생겨난 말인가 싶기도 해요. 아무튼 어느 문화권에서 생겨났느냐에 상관없이, ‘고양이의 목숨이 아홉 개’라는 속담은 과학적 사고방식이 보편화되기 전의 생활 속 지혜를 담은 말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또 종교적 방식의 접근, 이를테면 토테미즘의 흔적이 느껴지지도 않는 이상한 말이 분명한 것 같아요.

 

<보건교사 안은영> [출처 : 넷플릭스]

 

최근 드라마로 제작되어 화제가 되고 있는 <보건교사 안은영>을 보셨나요? 이상함의 대잔치라고 할 만큼 설명 곤란한 인물들과 괴상한 설정이 마구 등장하는데요. 그중에는 ‘옴잡이’라는 캐릭터도 있어요. 보건교사 안은영이 젤리와 분투하며 근무하는 목련고등학교로 전학 온 백혜민은 첫 등굣길에 옴(우리가 재수 옴 붙었다고 할 때의 그 옴이라고 해요) 젤리를 붙잡아 능청스럽게 먹으면서 등장해요. 자신이 지키는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불운을 막기 위해 지독한 위통을 감수하면서도 부지런히 옴 젤리를 먹어 치우는 백혜민은 인간의 모습이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예요. 백제 때부터 기억이 난다고 말하지만 스무 살까지만 사는 생을 계속 반복해야 하고, 탄생의 기원이 없기 때문에 배꼽이 없으며 목련고등학교가 있는 지역의 반경 5.38km를 벗어날 수 없는, 마치 지박령 같은 존재로 묘사되고 있어요. 끝없이 재생되는 생명으로 연달아 삶을 이어가는 백혜민의 모습을 보며 고양이의 아홉 목숨이 생각났어요. 명확한 실행 목표와 생존 방식의 제약을 전제로, 아니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백혜민의 삶이 반복될 수 있는 건(혹은 반복되어야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만약 그렇다면 고양이가 아홉 번을 사는 이유에도 주어진 목표가 있는 것일까? 혹은 어떤 제약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지만,

 

그럴 리가 없죠. 고양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실 거예요. 고양이에게 어떤 목표를 정해주거나 제약을 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란 걸요. 시킨다고 하는 녀석들이 아니란 걸, 하지 말란다고 안 하는 녀석들이 아니란 사실을 우리는 매일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니까요. 아무튼, 기원과 의미를 알 수 없는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고양이가 아홉 번을 산다는 속담은 참 근사한 말인 것 같기도 해요. 왠지 모르지만 고양이란 존재의 예측 불가능성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어차피 어떤 의미인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내 맘대로 의미를 갖다 붙일 수 있는 확장성도 있는 것 같고요. 이를테면, 우리 고양이가 나를 만나기 위해 아홉 번의 목숨으로 기나긴 여행을 했던 건 아닐까, 라는 생각 같은 것 말이에요. 각자 한 번의 여행만으론 서로 못 만나고 엇갈릴 수도 있잖아요. 삼삼이한테 ‘아홉 번이나 여행을 하는 건 나를 만나려고 그랬던 거지?’라고 물어보면 왠지 그렇다고 대답해줄 것 같아요. 누군가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의미 부여라고 비난할지 몰라도, 삼삼이는 아마 제 맘을 이해해줄 거예요. 모카, 치코, 미노, 오즈도 그렇고요. 혹시 고양이와 함께 살고 계신다면 살며시 물어보세요. 아니라고 대답하는 고양이는 아마 없을걸요 :)

 

삼삼아 그치?

 

어쨌거나, 고양이가 아홉 번의 여행을 자유로이 떠날 수 있다고 해도 우리가 동행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번밖에 없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사람도 여러 번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그 여행 모두를 각자의 고양이와 함께하고 싶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인간의 목숨이 아홉이라는 속담은 없으니까요. 고양이의 아홉 여행 중 오직 한 번,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는 그게 전부예요. 그렇지만 저는 운이 아주 좋은 편이에요. 제가 여섯 개의 목숨으로 여섯 번의 여행을 할 수는 없지만 한 번의 기회에 여섯 고양이와 더불어 동행할 수 있었으니까요. 히루가 한 번의 여행을 마치고 떠나는 걸 함께했고 지금은 삼삼이, 모카, 치코, 미노, 오즈 각자의 여행에 동행이 되어 살아가고 있어요.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고양이가 많아지는 일이란 어쩌면 인생을 여러 번 사는 일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은 생각 말이에요. 이렇게 묻고 싶을 수도 있어요. 한 번에 여섯 고양이라니, 너무 많은 건 아닌가요? 그럼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죠. 놉! 왜냐면요, 잘 들어 보세요.

 

<아홉 번째 여행> | 신현아 글・그림

 

한창 드럼을 배우던 때가 있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 3년 동안 레슨을 받았어요. 대개의 악기 레슨이 그렇듯이 1:1 수업이었던 터라 레슨 시간에는 수업 내용 말고도 많은 얘기들이 오갔어요. 각자의 살아가는 이야기부터 음악에 관한 일반적인 이야기까지 다양한 주제였어요.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한 박’에 관한 얘기였어요. 박beat은 음악에서 리듬이 구성되는 최소 단위를 말해요. 일정한 단위 길이로 반복되는 박과 박 사이의 간격이 음악의 빠르기tempo를 결정하죠. 그리고 이 박을 일정한 개수로 묶으면 박자가 생기게 돼요. 2박자, 3박자, 4박자처럼 말이에요. 다시 반복되는 박자의 틀 안에서 박을 나누거나 더해서 생기는 음의 길이 변화를 통해 표현되는 최종 결과가 리듬이 되고요.

 

드럼으로 예를 들자면, 가장 익숙한 드럼 소리 중 하나인 ‘쿵-따-쿵쿵따-’는 1박의 길이를 가진 소리 3개와 1/2박 길이를 가진 소리 2개로 이루어진 4박자 리듬이에요. 똑같은 4박자에 거의 비슷한 소리로 구성되어 있지만 (심지어 글자로 된 걸 봐도 헷갈리는) ‘쿵-따쿵-쿵따-’는 또 다른 리듬이에요. 사실은 ‘따’ 하나와 ‘쿵’ 하나의 길이가 변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그대로인데 실제로 들어보면 전혀 다른 소리로 들려요. 신기할 만큼요. 드럼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땐 이 개념이 그 신기함만큼이나 환장할 노릇이었어요. 소리(박) 하나하나를 쫓아다니느라 리듬은커녕 박자의 개념마저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처음엔 ‘쿵-쿵-쿵-쿵…’, ‘따-따-따-따…’ 하나의 소리를 일정한 간격tempo으로 낼 수 있도록 연습하는 게 전부였어요. 메트로놈 소리에 맞춰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하나의 박만 반복해야 했어요.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한 박자를 이어서 연주할 수 있게 되고 또 한참의 시간을 누적하고 나서야 리듬을 익히고 노래에 맞춰 연주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Photo by Marius Masalar on Unsplash

 

드럼 선생님이 말한 ‘한 박’ 이야기는 음악 이론에서 말하는 한 박이 아니라 연주자의 호흡과 인식 범위에 관한 것이었어요. 3년 동안 드럼을 배우며 여러 곡을 연주하고 때론 쉽지 않은 리듬과 연주 스킬도 조금씩 익히긴 했지만, 저에게 한 박은 여전히 음악 이론에서 말하는 그 한 박이었어요. 명쾌하게 구분되는 하나의 소리. 노래 한 곡을 연주하는 것도 그 하나의 소리를 어떻게든 끊기지 않게 이어 붙여서 결국엔 악보의 마지막 마디에 도달하는 일이었어요. 음악이란 결국 수많은 쿵-과 따-의 변형과 조합이며 그걸 얼마나 능수능란하게 다루느냐가 실력을 결정하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저뿐만 아니라 남들도 그런 줄 알았어요. 전문 연주자는 그렇게 낱개의 박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연결하는 일에 뛰어난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라 생각했죠.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요. ‘쿵-따-쿵쿵따-’가 마치 쿵-이나 따-처럼 하나의 인식 단위 즉, 한 박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연주 경력이 오래되고 실력이 쌓이게 되면 한 박을 다루는 호흡이 조금씩 길어진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순간이 되면 보통 사람이 한 박, 그러니까 소리 하나를 인식하듯이 악보의 한 마디나 두 마디를 하나의 단위로 인식되고 그 호흡이 4마디, 8마디, 16마디로 갈수록 길어진다고 했어요. 그러다가 정말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면 노래 한 곡이 통째로 한 박처럼 느껴지게 되기도 한다고요.(물론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고는 했어요) 실감하기 힘든 말이었지만 한편으론 이해가 되기도 했어요. 간혹 TV 프로그램에 연주자들이 나와 노래를 몇 번만 듣고도 그대로 따라서 연주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걸 보면서, 사실은 방송을 위해서 따로 연습을 해왔을 거야, 라고 생각하곤 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우리가 박수를 짝- 한 번 치듯이 노래 한 곡이 쿵- 한 번에 머릿속에 저장될 수도 있다니, 제가 알지 못했던 놀라운 세계였어요.

 

1, 2, 3, 4, 5, 많지 않음⋯

 

고양이가 늘어가는 일도 한 박의 호흡의 길어지는 일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놀라운 세계인 것 역시 마찬가지이고요. 처음에 고양이와 관계를 형성할 때는 고양이 한 마리의 특징을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이 아이는 왜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인가?!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물음표와 느낌표가 뒤섞인 혼돈의 세계에 내던져진 기분이에요. 드럼을 처음 배울 때 쿵- 소리 하나를 쫒아가는 것이 힘든 것처럼 말이죠. 그러다가 고양이가 둘이 되면 마음에 여유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해요. 고양이 한 마리가 아니라 고양이라는 개념에서 문제(?)에 접근을 하게 된다고나 할까요. 쿵- 다음에 따-가 나올 것인가, 쿵-이 한 번 더 나올 것인가를 예상할 수 있는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셋이 되고 넷이 되고 다섯이 되고 나면, 아무런 근거는 없지만, 왠지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것 같이 느끼게 돼요. ‘쿵-따-쿵쿵따-’가 자연스럽게 하나의 쿵-처럼 인식되는 일 같다고나 할까요. 고양이 1, 2, 3, 4, 5가 아니라 그냥 우리 ‘고양이’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려요.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하는 일과 고양이 다섯 마리와 함께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거예요.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고양이가 몇 마리예요? 라고 물어봤을 때 다섯이에요, 라는 대답이 돌아와도 어머나! 라며 놀라거나 어이쿠 저런.. 하며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는 말이죠. 물론 숫자가 무한정 늘어날 수는 없어요. 고양이의 삶이 적절한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물리적 조건이란 게 있으니까요. 화장실을 몇 개나 놓을 수 있는지, 고양이들이 각자의 휴식 공간을 가질 여유가 있는지, 여럿이 동시에 활동을 해도 괜찮을 만큼의 동선이 확보되는지 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현실적 요구사항이에요. 반드시 적정 수준의 환경을 갖춰야 할 반려인의 의무이기도 하고요. 그런 조건이 충족되는 한에서라면 고양이의 숫자는 큰 의미가 없어요. 그 숫자 얼마가 되더라도 그냥 우리집 고양이, 라는 하나의 인식 단위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고양이를 반려하는 일에 관계된 모든 것이 그런 건 아니에요. 절대로 하나의 인식 단위로 통합되지 못하고 고양이의 수만큼 정직하게 비례해서 감당해야만 하는 일들도 있어요. 그건 바로, 아픔과 이별의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이에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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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 코스묘스의 오묘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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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 잃어버린 시간에 관하여, 김삼삼

④ 각자의 자리   |   ⑤ 굴러온 돌   |   ⑥ 잃어버린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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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2,

길어질 게 뻔한 변명(1)   |   길어질 게 뻔한 변명(2)   |   길어질게 뻔한 변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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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교감 사이에 어중간하게(1)   |   공감과 교감 사이에 어중간하게(2) 

고양이의 버킷리스트 

떨림이 멈추지 않는 세계에서(1)   |   떨림이 멈추지 않는 세계에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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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isode 7. 고양이, 장소, 환대, 시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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