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식구가 된 건 아니었어요.

치코의 상태를 보고 앞뒤 가릴 새도 없이 덥석 집어 들었지만 치료를 해서 살려야겠다는(저대로 두면 죽겠다는) 생각이었지 길에서 구조해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요. 우선 제가 집에 고양이를 더 들인다는 걸 전혀 고려하지 않던 때였어요. 이미 삼삼이와 모카, 둘이나 있었기에 충분하다고 여겼어요. 한편으론 둘만 해도 많다, 라는 생각마저 간간이 하기도 했고요. 게다가 모카가 1차 접종을 한 다음 날이 치코를 발견한 날이었거든요. 모카가 집에 온 지 한 달도 안 된 터라 다시 아깽이를 집에 들인다는 건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죠. 아무튼 치코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그 녀석이 ‘식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다만 작은 목숨 하나를 살렸다는 안도감이 있을 뿐이었어요.

 

다음 이유가 결정적이었는데요, 바로 치코의 엄마 때문이었어요. 치코를 발견하고 번쩍 들어 안았을 때 곁에 있던 치코의 엄마는 갑자기 발길을 돌려 어디론가 가버렸어요. 놀랬나? 겁을 먹은 걸까? 조금 이상하긴 했어요. 길에서 살아가는 생명이라고 해도 제 새끼를 지키려는 의지는 강하다고 알고 있었거든요. 인터넷에 그런 영상이 떠돌곤 하잖아요. 이를테면 이런 장면 말이에요. 오리 한 마리가 사람들 곁을 초조하게 맴돌며 계속 울고 있어요. 그리고 영상에 나오는 사람들(보통은 경찰관들이더라고요)이 분주하게 뭔가를 하고 있어요. 알고 보니 새끼 오리들이 하수구에 떨어져 갇혀버린 상황인 거예요. 사람들이 맨홀에 빠진 새끼 오리를 구하는 내내 어미는 주위를 지키고 있죠. 마치 도움을 청하는 듯 계속 울어대면서요. 영상의 마지막에 구조된 새끼 오리들은 종종걸음으로 어미를 따라 유유히 사라지죠. 아마 한 번쯤은 보셨을 거예요. 치코를 품에 안았을 때 딱히 그런 장면을 예상했던 건 아니었지만 치코 엄마의 행동이 의아하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한편으론 혹시 아이가 아프다는 걸 알아서 나한테 살려달라고 맡기는 걸까,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새끼 오리 구하기!

 

치코를 발견한 곳은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의 한 골목길이었어요. 홍대와 합정, 망원의 상권이 지척인 도심이기는 하지만 주로 빌라와 작은 빌딩이 들어선 조용한 곳이었어요. 번잡스럽진 않아도 사람의 발길이 적진 않은 곳이라 오래된 단독주택을 헐어 상업용 건물을 짓는 공사가 늘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했어요. 치코를 구한 장소도 그랬고요. 치코의 엄마가 발길을 돌려 향한 곳은 바로 옆에 있던 공사장이었어요. 저는 치코 엄마의 행동까지 신경 쓸 정도로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얼른 치코를 안고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어요. 그런데 얼마 안 가 치코의 엄마가 다시 나타났어요. 게다가 혼자가 아니었어요. 아마도 공사장에서 느긋하게 낮잠을 청하고 있었을, 동네 고양이를 다 불러온 것만 같았어요. 무리를 지어 등장한 서교동의 길냥이들이 저를 계속 따라오며 시위를 하기 시작했어요. 막 구호를 외치기도 했어요. “치코를 데려가지 마라!” “당장 아이를 내려놓아라!” 시위대의 선두에는 치코의 엄마가 있었고요. 짝짓기가 끝나고 나면 보통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수고양이 치코 아빠마저 그날은 대열의 어딘가에서 부모 노릇을 하려 애썼는지도 모르겠네요.

 

치코 엄마와 치코(저 상태로 벽에다 얼굴을 문지르고 있었어요..😭)

 

고양이와 함께 살기 전, 그러니까 개나 고양이처럼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마저 무서워하던 시절에도 고양이가 저를 공격할 거란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어요. 개들이 무섭기는 했죠. 덩치가 아무리 작은 녀석이라도 종종 사람을 보고 요란하게 짖어대곤 하니까요. 그래도 동물의 세계에선 몸의 크기가 곧 힘의 우열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게 된 뒤로 웬만한 몸집의 개가 아닌 이상은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지는 않았어요. 하물며 고양이야 오죽하겠어요. 그 조그만 덩치로 말이에요. 심지어 녀석들은 사람들 앞에 잘 마주서지도 않으니까요. 그리고 삼삼이와 함께 살기 시작한 뒤로는 어떤 고양이라도 저의 영원한 친구였어요. 위협의 근처도 못 가는 작고 보드라운 천사들이었죠. 하지만 치코를 구조하던 그날은 달랐어요. 달빛마저 숨어버린 그믐날 첩첩산중에서 호랑이와 마주친 것 같았어요. 난생처음 고양이에게 습격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살짝, 쫄았어요. 치코의 엄마와 무리가 제 앞을 막아섰다면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이미 살리겠다고 안아 든 아이를 다시 내려놓을 순 없으니 어떻게든 길을 지나가야 하는데, 제 새끼를 내놓으라고 동네 친구들을 다 데려와 길을 막고 버티고 선 치코의 엄마를 넘어갈 방법도 마땅치 않았을 테니까요. 만약 그랬다면 저는 조용히 스마트폰을 열어 ‘ㅋㅋㅇ T’ 앱을 실행한 다음 택시를 불렀을지도 모르겠네요.

 

다행히도 치코의 엄마가 길을 막아서지는 않고 뒤를 따라오며 시위를 했기에 저는 발걸음을 재촉해 병원으로 향할 수 있었어요. 얼마를 갔을까요, 한참을 가다가 뒤를 돌아봤을 때 치코의 엄마가 더는 보이지 않았어요.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자 그만 체념하고 따라오기를 포기한 건지 제 걸음이 너무 빨라 쫓아오다 지친 건지는 모르겠어요. 아무튼 그렇게 멀어진 치코의 엄마를 뒤로하고 병원으로 향하며 생각했어요. 이 아이를 치료하고 나면 꼭 엄마에게 다시 데려다줘야겠다, 라고요. 그러면 아이가 다시 길에서 살아가야 할 처지가 되겠지만 그것도 어쩌면 제 운명일지 모르니까요. 비록 들리진 않았겠지만 치코의 엄마에게 약속을 했어요. “아픈 것만 치료하고 얼른 데려올게. 조금만 기다려주렴. 꼭 다시 만나게 해줄게.”

 

이렇게 말끔히 낫긴 했지만…

 

병원에 도착해서 접수를 하려니 이름이 필요했어요. 이번에는 삼삼이 때와 달리 병원 진료를 위해 고양이의 이름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워낙 급박하게 구조해서 데려오느라 이름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이름을 생각해내기 위해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찬찬히 들여다보았어요. 거기엔 얼굴이 다 짓무른 채 콧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서교동 아기 고양이 A’가 있었어요. 그렇게 아이를 보며 머뭇거리는 사이 번쩍 생각나는 이름이 있었어요. 치즈(옐로 태비)에 코를 찔찔 흘리는 아이, 치즈에 코 찔찔이, 치즈코찔, 치코! 저기, 아이 이름은 ‘치코’로 할게요. 이름의 기원치고 민망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치코는 그렇게 치코가 되었어요. 그런데 치코의 진찰 결과가 좋지는 않았어요. 허피스 상태가 심해서 간단한 주사 처치나 약물로 될 일은 아니고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어라, 얼른 엄마한테 다시 데려다줘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방법이 없었어요. 게다가 병원에서 말한 입원 기간이 짧지도 않았어요. 문득 치코의 엄마가 치코를 까먹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고양이들 기억력도 좋지 않다던데…

 

2016년 6월 24일에 치코를 병원에 맡기고 엿새 뒤인 6월 29일에 다시 데리러 갔어요. 치코는 말끔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어요. 눈가에 아직 불그스름한 자국이 남아 있고 콧물이 덜 마른 듯 코가 촉촉하게 젖어 있긴 했어요. 그래도 예전의 꾀죄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어요. 짓물렀던 자국은 깨끗하게 사라졌고 통통하게 살이 올라 제법 동글동글해져 있었어요. 이제 이 녀석을 다시 서교동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엄마한테 돌려보내면 되는 거였어요. 그렇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날벼락 같은 얘길 들었어요. 정말 예상치도 못한 일, 병원에 있는 동안 사람 손을 너무 타버려서 다시 길에 돌려놓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이었어요. 고작 5박 6일 동안 치코의 개냥이 유전자가 발현해버렸던 것이었어요. 입원실에서 치코를 데리고 나왔는데 난리도 아니었어요. 제가 마치 제 어미라도 되는 양 부비고 치대며 얼마나 애교를 부리는지 말이에요. 할 수 없이 치코를 데리고 집으로 왔어요. 어쩌면 치코의 엄마는 아직 치코를 보낼 마음의 준비가 안 됐을지도 모르는데.. 여전히 돌아오길 기다릴지 모르는데.. 꼭 다시 데려오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으니까요.

 

여긴 어딜까?(괜히 조심스러운 척😊)

 

그래도 아직, 식구가 된 건 아니었어요.

치코의 엄마는 치코를 (제게) 보낼 마음이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전 치코를 (다른 곳으로) 보내려는 마음이었어요. 집에 와서 삼삼이와 (이제 막 1차 접종을 마친 묘생 3개월차) 모카를 보니까 역시 셋은 안 되겠더라고요. 둘 이상의 고양이는 제 능력 밖의 일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임보를 하며 치코의 첫 번째 접종을 위해 (두 번째 접종을 위해 모카도 함께) 병원에 다녀온 날부터 입양을 보내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를 했어요. SNS에 입양 안내를 올리고 몇몇 지인들의 SNS에 올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어요. 이제 곧 입양을 보내면 섭섭하고 아쉬워서 어쩌나 걱정까지 하면서 말이에요. 제 손으로 목숨을 구한 첫 아이인 데다 그사이 같이 지내며 정이 많이 들었거든요. 삼삼이, 모카, 치코 셋이 잘 어울리기도 했고요. 특히 모카와 치코는 마치 한배에서 나온 동기처럼 티격태격 잘 지냈어요. 치코를 보내고 나면 마음이 많이 허전할 것 같았어요. 그때는 정말로, 금세 입양이 될 줄 알았어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죠. 전혀 몰랐어요. 구조한 고양이를 입양 보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게다가 고양이의 무늬에 따라 입양의 선호도가 달라지기도 한다는 냉정한 현실을 말이에요.

 

히루까지 포함한 동기 다섯이 공방에서 입양을 기다리며 뒹굴던 시절, 카오스 아이와 턱시도 두 녀석이 먼저 입양이 되고 히루와 또 다른 치즈 아이만 남게 되었을 땐 그저 우연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치코를 보내려고 했을 때 치즈 아이의 입양이 가장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사람들이 제일 덜 찾는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길고양이 중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무늬라 그런 게 아닐까 추측할 따름이고 아직도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따지고 보면, 아깽이를 놓고 봤을 때 치즈 아이들이 제일 밋밋하기는 한 것 같아요. (완전히 검거나 흰 길냥이는 드물기 때문에 제외하고) 삼색 아이들의 화려함이나 고등어 아이들의 치명적인 귀여움, 카오스나 턱시도 아이들이 풍기는 오묘한 끌림이 없긴 하죠. 치즈 아이들은 뭐랄까, 분명 예쁘고 귀엽긴 해요. 그런데 세상의 모든 아깽이는 다 예쁘고 귀엽잖아요. 결국 (느낌표도 없이 마침표로 끝나는) ‘어머, 아기 고양이네.’ 정도의 느낌이랄까요. 심장을 부숴버릴 만큼 어필하기엔 조금 모자란 게 사실인 것 같기도 해요. 그리 따지면 사람들이 덜 선호하는 게 한편으론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지만.. 제 기준은 조금 달랐어요!

 

 

심장에 무리무리무리..!

 

아마 히루가 치즈였기 때문일 거예요. 제가 처음 만난 아깽이, 어떻게 이런 존재가 세상에 있을 수 있는지 매일 감탄하며 성장을 지켜보았던 아이, 채 다 자라기도 전에 별이 되어 제 마음속엔 늘 아기인 채로 남아 있는 고양이. 제가 치즈 아이들에게 유독 마음을 더 뺏기는 건 그래서일 거예요. 그러니까 치코는, 비록 보내려는 마음이긴 했어도, 그것과 상관없이 제 영혼을 송두리째 뒤흔들 만큼 아찔한 매력 덩어리였어요. 대체 왜 입양이 안 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현실은 제 생각과 달랐어요. 입양 문의가 전혀, 하나도 없었어요. 상심한 채 두 번째 접종을 하고 세 번째 접종까지 마치며 시간은 흘러갔어요.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할 시기도 점점 다가오고 있었죠. 언제까지 보내려는 마음으로 지낼 순 없었어요. 결심을 해야 할 시간이었어요.

 

치코는 그렇게, 식구가 되었어요.

치코의 엄마는 치코를 보내는 마음을 겪어야 했지만 저는 다행히 보내려는 마음에서 멈췄어요. 치코를 보내는 마음이라니, 이젠 상상하기도 힘든 끔찍함이에요. 치코의 엄마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제가 치코를 보내려 했던 순간들이 겹쳐 미안함이 커지네요. 그나저나 치코는 자신을 두고 왔다 갔다 한 마음이 이렇게나 많았다는 걸 알기나 할까요? 아마 모를 거예요. 이치코니까요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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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 코스묘스의 오묘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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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 잃어버린 시간에 관하여, 김삼삼

④ 각자의 자리   |   ⑤ 굴러온 돌   |   ⑥ 잃어버린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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⑯ 소리치는 일   |   ⑰ 총체적 난국   |   ⑱ 엔드게임 and..

시즌 2,

길어질 게 뻔한 변명(1)   |   길어질 게 뻔한 변명(2)   |   길어질게 뻔한 변명(3) 

원래 그런 게 어딨나요? 

공감과 교감 사이에 어중간하게(1)   |   공감과 교감 사이에 어중간하게(2) 

고양이의 버킷리스트 

떨림이 멈추지 않는 세계에서(1)   |   떨림이 멈추지 않는 세계에서(2) 

시즌 1, Again

• Episode 7. 고양이, 장소, 환대, 시월이

⑲ 1, 2, 3, 4, 5, 6, 북적북적   |   ⑳ 혁명의 선봉   |   ㉑ 앙시앵 레짐    |   ㉒ 우정과 환대      

시즌 2,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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