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삼이를 위해 열어두었던 현관문이 닫혔어요. 이제 골목을 방황하며 쌓였던 고난의 흔적을 지워야 했죠. 먼저 목욕을 시켰어요. 어딜 어떻게 보아도 예쁜 삼삼이지만 길냥이 생활로 인해 꼬질꼬질해진 상태였거든요. 고양이를 모시는 게 처음인 데다 아깽이가 아닌 성묘를 집에 들이자마자 씻긴다는 건, 아휴,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네요. 게다가 삼삼이의 성격은 또 얼마나 까칠한지. 난리, 세상에 그런 난리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혈투를 벌였어요. 돌이켜 보면 삼삼이는 길냥이 생활을 경험한 것치고는 깨끗한 편이었어요. 몸에 흰 부분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얼룩덜룩해 보이고 발에 거무스름하게 때가 타긴 했지만 털 상태가 전체적으로 뽀송뽀송했거든요. 지금이야 그게 비교적 건강한 상태를 나타내는 신체적 표식이란 걸 알지만 그땐 고양이의 그루밍 습성을 전혀 모르던 때라 하얀 털에 거뭇거뭇한 얼룩만 보고 무작정 씻겨야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어쩌면 따뜻하게 데운 수건으로 차근차근 닦아만 줬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해요. 그럼 삼삼이도 편하고 저도 편했을 텐데 말이에요. 왜 그렇게 피칠갑을… 안타까운 일이었어요.

 

목욕만 했을 뿐인데 이쁨 폭발!

 

다음은 병원을 데려가는 일이었어요. 목욕에 비하면야 식은 죽 먹기라고 할 수 있죠. 삼삼이를 캐리어에 넣어서 집 근처 동물병원으로 데려갔어요. 진료을 받기 위해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접수를 하려는데 직원이 이름을 묻더군요. 저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어요. “삼식이예요.” 순간 직원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는 걸 느꼈어요. 잠깐의 머뭇거림, 그리고 이어지는 말. “얘는 여자아이인데 삼식이는 좀…” 사실 이 말을 듣기 전까지는 삼삼이의 성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저에게 고양이는 그냥 고양이였지 암고양이, 수코양이라는 개념이 없었거든요. 삼식이라는 이름도 삼삼이의 거친 성격 때문에 부르기 시작한 이름이지 딱히 숫놈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동물병원의 직원이 많이 당황했을 것 같아요. 삼색 고양이를 남자 이름인 ‘삼식이’라고 당차게 부르는 이 인간은 대체 뭘까 싶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당황한 건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삼삼이를 캐리어에서 꺼내서 제가 안고만 있었는데 어떻게 암놈인지 숫놈인지 알 수가 있지? 엉덩이라도 까봐야 아는 것 아닌가? 무슨 말인가 싶어 어리둥절하는 사이 직원이 다시 물었어요. “어떡할까요?” 고양이 관상학이란 게 있어 얼굴만 딱 보면 성별을 알아내는 비법이 있는 건지, 삼삼이의 몸 어딘가에 공작의 화려한 깃털처럼 성별 호르몬 작용으로 인한 고유한 무늬가 – 얼굴의 선명한 선글라스 무늬가 늘 수상쩍긴 했어요 – 있는 건지 종잡기 힘들었지만 병원 직원의 말이니 믿는 수밖에요. “저기 그러시면, 삼.. 삼.. 삼삼이로 해주세요.” 삼삼이의 이름은 그렇게 대충 지어졌어요. 그렇지만 머릴 싸매고 고민했어도 더 좋은 이름을 찾았을 것 같진 않아요. 삼삼이는 국어사전에 설명된 뜻 그대로 ‘명실상부’한 존재니까요. 이름과 실상이 서로 꼭 맞는, 누가 봐도 삼삼이 그 자체인 우리 김삼삼 선생님.

 

어딜 보아도, 어떻게 보아도, 삼삼이는 삼삼이니까

 

삼삼이의 집안 생활은 순조로웠어요. 이미 놀다 가기 시작한 지 한참 된 터라 크게 낯설어 하지 않았어요. 가끔 밖에 나가고픈 눈치가 있긴 했지만 문을 열어달라고 울어대거나 보채는 일은 없었어요. 몇 차례 병원을 다니며 기본적인 검진과 접종도 무사히 마쳤어요. 귀에 진드기도 없었고 구내염의 흔적도 없었고 배 속에 기생충도 전혀 없었어요. 다만 한쪽 송곳니 끝이 살짝 깨져 있었는데 길에서 싸움이 벌어져 생긴 상처인지 다른 이유로 인해 상하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었어요. 그래도 당장 생활에 큰 불편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라고 했고 그것 말고는 길고양이치고 꽤나 건강한 편이었어요. 치아의 상태로 봤을 때 두세 살 정도 되어 보인다고 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고 했어요. 나이야 아무렴 어떨까 싶었지만 세 살보다는 두 살이 나아보여서 2012년을 삼삼이의 탄신일로 정했어요. 날짜는 말해 무엇하겠어요, 당연히 3월 3일이죠. 저희 집 최대 명절인 ‘삼삼절’은 그렇게 시작되었어요.

 

삼삼이와 함께 살면서 고양이에 대한 제 지식은 나날이 늘어가기 시작했어요. 먕이의 귀 끝이 잘려 있었던 게 TNR의 표식이란 것도 알게 되었죠. 삼삼이는 양쪽 귀 끝이 뾰족하게 멀쩡했으니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선 중성화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죠. 6월 말에는 이사를 가야 했고 이미 봄날의 화창함이 절정을 넘겨 짙푸른 계절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삼삼이의 회복시간을 생각하면 서둘러야 했어요. 수술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았어요. 수술이란 단어가 주는 근원적 두려움이 있긴 했지만 길에서 집으로 정착하는 모든 고양이가 하는 수술이니까 별일 없으리라 생각했죠. 아프지 않게 수술 잘 끝내고 얼른 보자, 인사를 하며 삼삼이를 병원에 맡기고 나왔어요. 이 통과의례가 끝나면 삼삼이와 행복하게 사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어요.

 

“병원 간다고? ㅇㅋ!”

 

그런데 수술이 끝나려면 시간이 한참 남았을 때 병원에서 전화가 왔어요. 다행히 나쁜 소식은 아니었어요. 다만 언뜻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얘기였어요. “수술을 하려고 털을 깎았더니 배에 이미 수술 자국이 있어서 연락을 드렸어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아무래도 예전에 중성화수술을 받은 것 같아요.” 치밀한 각본으로 전개되는 드라마의 스토리를 몰입해 따라가고 있는데, 알고 보니 중간에 빼먹은 에피소드가 한 편 있었다는 걸 깨달은 기분이었어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있지만 어떤 상황인지 이해할 수는 없었어요. “그럼 수술은 안 해도 되는 건가요?” “글쎄요, 수술 자국이 있다고는 해도 중성화가 되었는지 알 수는 없어서요. 정확하게 확인하려면 다시 배를 열어보는 방법뿐이에요.” 정황상 중성화수술을 한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그 수술이 제대로 된 것인지는 겉보기만으로 알 수 없다는 말이었어요. 병원에서는 어떡하실 거냐고, 마치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마취가 깨기 전에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심지어 화를 내며) 다그쳐 물었지만 저에겐 외길이었어요. 단지 이전 수술의 성공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멀쩡한 몸에 다시 칼을 댈 순 없으니까요. “그러면 수술은 안 할게요.”

 

삼삼아, 한 잔 하고 기분 풀자 (삼삼이의 접힌 뱃살이 드러난 사진이 하필, 이것뿐이네요)

 

삼삼이는 애꿎은 면도 자국과 마취의 몽롱함만 얻은 채 다시 집에 왔어요. 분홍빛 맨살을 드러낸 삼삼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금세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저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삼삼이의 잃어버린 시간이 계속 생각나 미안하고 미안하고 또 미안했어요. 태어난 이후 있었던 모든 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어요. 어떤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장기적 기억을 형성하는 건 생후 3년이 지나면서부터라고 해요. 그래서 3세 이전의 일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3세~7세 사이에 있었던 일도 아주 일부만 기억한다고 해요. 만약 누군가 3세 이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진짜 기억이 아니라 나중에 여러 경로를 통해 외부에서 유입된 조작된 기억일 가능성이 높아요. 물론 청소년기나 어른이 되고 난 뒤의 일이라고 해서 모든 걸 기억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생후 3년 정도의 시기는 아예 기억으로 형성되지도 않은 없어진 시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없어진 그 시간을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부르지는 않아요. 비록 내 기억으로 남지는 못했더라도 그 시기를 기억하는 다른 누군가가 내 주변에 있기 때문이에요. 내 기억의 빈 자리가 타인의 말과 기억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삶은 공백 없이 연속적인 하나의 완전체가 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만약 어떤 사건으로 인해 삶의 연속성이 깨지고 기억의 공백을 계속 자각하며 살아야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두세 살 아이였을 때 세상에 홀로 남겨져 고아원에 보내지거나 낯선 곳으로 입양을 가게 된다면 말이에요.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그 맘을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잃어버린 시간이란 복구할 수 없는 비극을 말해요. 이미 사라진 사회적 관계망을 되살린다는 건 불가능하죠. 어릴 때 해외로 입양을 갔던 사람이 실낱 같은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한 끝에 극적으로 고국의 친부모와 상봉하는 일화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불가능이 가능으로 전복되는 충격. 유실되고 무너졌던 한 인간의 세계가 복원되는, 마치 종교적 기적과도 같은 사건이 주는 경외심이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기적이란 지극히 예외적 사건일 따름이죠. 대부분의 잃어버린 시간은 그저 좇을 수만 있을 뿐 영원히 복원할 수 없는 채로 남게 마련이에요. 무지개가 시작되는 곳을 찾아 아무리 열심히 달려가더라도 결코 닿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에요.

 

어쩌다 길에 나오게 되었을까?

 

잃어버린 시간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이 아니라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계에 관한 것이에요. 그렇게 보면 길에서 살다가 인간의 삶으로 들어온 모든 고양이는 잃어버린 시간을 가지고 있는 셈이에요. 길에서 보냈던 기간이 얼마가 되었건 인간과 접촉하면서 이전 세계와 단절하고 새로운 기억의 세계로 편입되는 거니까요. 고양이가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기억을 어떻게 유지하는지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기 때문에 고양이의 잃어버린 시간이란 사실 인간이 대신해서 느끼는 상실감 혹은 미안함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이란 책에는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와 동료 의사인 알베르토 그라나도가 오토바이를 타고 떠났던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해요. 그들이 어떻게 나병 환자가 모여 사는 마을에 가게 되었는지 거기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여행이 체 게바라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추적하며 ‘감정이입’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데 유독 눈에 띄는 문장이 하나 있었어요. “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 하고, 그다음엔 상상해야만 한다.” 고양이의 잃어버린 시간에 관한 감정이 바로 그런 감정이입이라 생각해요. 늘 고양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걸 배우고 고양이의 마음를 상상하려고 노력해야만 닿을 수 있는 슬픔의 세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삼삼이는 저를 만나기 전에 어떻게 살았을까요? 길 위의 존재가 되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 시간을 생각하면 너무 막막하고 답답해요. 어떨 땐 삼삼이가 혹시 인간에게 버려진 게 아닐까 싶어 미안함과 슬픔이 한없이 밀려와 견디기 힘들어요. 그런가 하면 그저 우연한 사고로 삼삼이를 잃어버리고 한참을 애통해했을 누군가가 있는 건 아닐까 싶어 안쓰러울 때도 있고요. 저는 과거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다시 살아본다고 해서 뭔가 대단한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결국은 또 지금이랑 비슷하고 말겠죠. 지루하고 하찮을 게 뻔한 인생을 한 번 더 산다는 건 사실 끔찍한 고문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철두철미한 평소의 신념에도 불구하고 만약 삼삼이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을 수만 있다면, 삼삼이의 아깽이 시절을 볼 수만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보잘것없는 인생을 다시 살아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중에 삼삼이에게 잃어버린 시간의 추억을 호들갑스럽게 말해줄 수 있다면요. “삼삼아, 네가 아기였을 때 어땠냐면 말야…….”

 

_

두 번째 에피소드, 마침.

 

 

 

‘이치코의 코스묘스’는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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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 코스묘스의 오묘한 시작

Episode 1. 한낮의 작고 짙은 온기를 닮은 고양이, 오히루

① 반짝이는 삶   |   ② 막연한 기다림   |   ③ 기쁨의 크기

Episode 2. 잃어버린 시간에 관하여, 김삼삼

④ 각자의 자리   |   ⑤ 굴러온 돌   |   ⑥ 잃어버린 시간

Episode 3. 미래에서 온 카오스, 강모카

⑦ 빈 책상   |   ⑧ 혼돈의 카오스   |   ⑨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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⑯ 소리치는 일   |   ⑰ 총체적 난국   |   ⑱ 엔드게임 and..

시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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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교감 사이에 어중간하게(1)   |   공감과 교감 사이에 어중간하게(2) 

고양이의 버킷리스트 

떨림이 멈추지 않는 세계에서(1)   |   떨림이 멈추지 않는 세계에서(2) 

시즌 1,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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