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코의 코스묘스] ⑥ 잃어버린 시간

삼삼이를 위해 열어두었던 현관문이 닫혔어요. 이제 골목을 방황하며 쌓였던 고난의 흔적을 지워야 했죠. 먼저 목욕을 시켰어요. 어딜 어떻게 보아도 예쁜 삼삼이지만 길냥이 생활로 인해 꼬질꼬질해진 상태였거든요. 고양이를 모시는 게 처음인 데다 아깽이가 아닌 성묘를 집에 들이자마자 씻긴다는 건, 아휴,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네요. 게다가 삼삼이의 성격은 또 얼마나 까칠한지. 난리, 세상에 그런 난리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혈투를 벌였어요. 돌이켜 보면 삼삼이는 길냥이 생활을 경험한 것치고는 깨끗한 편이었어요. 몸에 흰 부분이 많아서 어 ...

[이치코의 코스묘스] ⑤ 굴러온 돌

느닷없지만 운명 같았던 첫 만남 , 서로를 탐색하며 친밀감을 쌓던 시간, 함께 살기로 결정했던 다짐. 얼핏 인간의 사랑과 연애와 결혼에 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건 저와 삼삼이의 이야기예요. 삼삼이는 제 발로 절 찾아왔어요. 저와 삼삼이는 한참 동안 각자의 생활을 유지하며 우정을 쌓아갔어요. 삼삼이와 함께 살기로 결심했을 때, 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정서적 성장을 경험했어요. 길에서 집으로 생활의 공간이 바뀌었던 삼삼이만큼이나 저도 큰 변화를 겪었어요. 그전까진 제가 좀 엉망이었거든요. 자연이나 동물, 환경보호에 관해 생각하며 ...

[소묘의 산-책] 서울, 땡스북스 / 유어마인드

  2월에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산책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곳을 찾았는데, 그러고 보니 공통점이 많은 두 곳이네요. 동네서점 혹은 독립서점 1세대이기도 하고, 각각 한 번의 이사를 거쳐 새로운 장소에 소담히 자리하고 있죠. 땡스북스와 유어마인드입니다 :-)   이전에는 층고가 높고 환하고 개방적인 느낌이었던 두 서점이 좀 더 아늑하고 책에 집중하기에 좋은 분위기로 바뀐 후 발걸음을 더 자주 하게 됐어요. 공간만이 아니라 큐레이션이나 전시 같은 운영도 함께 변화한 것 같고요.   /   땡스북스에서는 2월 25일 비올레타 로피즈 ...

[이치코의 코스묘스] ④ 각자의 자리

우리에겐 누구나 각자의 자리가 있어요. 그렇지만 모두가 똑같은 자리를 가진 건 아니에요. 왜인지, 언제부터인지 알 순 없지만 자리에는 높낮이가 정해져 있었어요. 높은 자리는 더 멀리 더 많은 풍경을 볼 수 있겠죠. 아마 낮은 자리의 풍경보단 좋은 풍경일 거예요. 높은 자리의 사람들은 말할 거예요. 각자의 높이까지 올라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때론 치열한 경쟁을 뚫기 위해 어떤 각오를 했는지에 관해서 말이에요. 맞아요. 높은 자리에서 보이는 풍경이 그렇게나 좋은 것이라면 아무 대가 없이 그저 주어질 리는 없죠. &nbs ...

[이치코의 코스묘스] ③ 기쁨의 크기

기쁨의 크기는 어떻게 정해질까요? 우리가 기쁨을 누리는 순간에 크기가 얼마인지 알 수 있을까요? 정해진 답은 없겠지만, 저는 제대로 알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기쁨의 에너지는 휘발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거든요. 기쁨은 내 안에서 출발해 세상으로 향하는 에너지 발산의 과정이에요. 물질적으로 축적되지 않아요. 다만 에너지가 흘러 넘쳤던 시간의 지속에 대한, 나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의 풍경에 대한 기억으로만 남을 뿐이죠. 우리의 행복한 추억들은 기쁨의 크기에 관한 기억이 아니에요. 기쁨으로 충만했던 나와 세계의 관계, 그러니까 시간이나 풍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