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코의 코스묘스] 선물 같은 시간

“이렇게 날이 무덥기 전의 일입니다만 나는 이번 여름에 고양이를 잃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매일을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고양이와 시간을 보내세요. 병원에서 느닷없이 그런 조언을 받고 돌아와 보름도 되지 않아 겪은 일입니다. ”   <채널예스> 100호 특집에 실린 황정은 선생님의 글*을 읽다가 이 문단에서 더 나가지 못하고 한참을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떻게 견디고 계실까? 보탤 수 있는 말이 없었습니다. 다만 함께했던 그 15년 동안 사람도 고양이도 행복했으리라 믿어볼 따름입니다.   * ...

[가정식 책방] 오늘은 대목

글: 정한샘   큰 명절이다.* 퍼지고 있는 바이러스로 인해 민족 대이동은 없을 것이다. 대부분 이미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영화가 나오는 화면을 틀어놓고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한 채 무료한 연휴를 보내지 않으려나. 그렇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명절 당일만 쉬고 명절 다음날에는 문을 열어야겠다. 요즘은 세배도 원격으로 하고, 세뱃돈도 온라인 송금으로 받는 시대가 아닌가. 그러니 넉넉해진 마음으로 책방에 와서 책을 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 심심한데 책방이나 갈까? 보내주신 용돈으로 책을 사는 게 어떠니? 거 참 책 ...

[소소한 산-책] 서울, 조이책방 (조용한 이야기 책방 다방)

글: 이치코   영화 <오펜하이머>가 CG 없이 핵폭발 장면을 재현했다는 얘기가 들리길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진짜 핵폭발을 일으킨 걸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라면.. 아니지, 아무리 놀란 감독이라고 해도 그럴 리는 없겠죠. 또 이런 말도 있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영화에 등장하는 과학자들 이름과 관계를 공부(?)하고 가야 재밌게 볼 수 있다, 핵폭탄 개발이나 양자역학에 관한 기본적인 과학 지식을 알고 가야 한다 등등.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무슨 이런 바보들 ...

[가정식 책방] 밤과 밤

글: 정한샘   어렸을 때 엄마는 자주 밤을 삶았다. 이 작업은 주로 해가 진 후 방 안에서 이루어졌다. 삶은 밤의 두꺼운 겉껍질을 까는 건 나와 언니의 몫이었다. 푹 삶은 밤의 겉껍질은 두껍긴 해도 전혀 딱딱하지 않아, 갈라져 있는 뾰족한 끝을 잡고 엄마가 미리 내어둔 칼집 방향을 따라 아래로 죽 당기면 쉽게 벗겨졌다. 벗긴 밤을 엄마 앞에 놓인 나무 도마 위에 쌓아 놓으면 엄마는 작은 칼로 속껍질을 벗겨 양푼에 담았다. 양푼 안에 밤이 수북하게 모이면 숟가락을 세워 밤을 써는 것처럼 부순 후 꾹꾹 눌러 으깨는 작업이 이 ...

[이치코의 코스묘스] 치코의 일기

나는 치코다. 봉산육묘 중 귀여움(!)을 담당하고 있는 고양이 치코, 그러니까 이것은 본인등판이다.   본인등판!   대봉이 형아가 책을 냈다고 해서 읽어봤다. 형아는 나랑 많이 닮았다. 사실 외모는 오즈가 더 닮긴 했지만 나는 형아랑 운명적으로다가 통하는 게 있는 것 같다. 그 뭐더라, 소울 메이트? 우리는 둘 다 집안의 기둥이다. 아니 집안 그 자체다. 여러 인간들이 봉산아랫집에 놀러, 실제로는 우리 육묘 얼굴이라도 한번 볼까 싶어서 찾아오지만 결과는 뻔하다. 어차피 나밖에 못 본다. 미노, 오즈, 시월이는 말할 것도 없고 모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