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소묘: 레터] 11월의 편지, 작은 도망
벌써 연말이네요. 11월부터 이곳저곳에서 캐롤이 들리고 크리스마스 장식이 한창입니다. 날은 이렇게나 포근한데 말이에요. 좋은데 걱정… 다음 주엔 그래도(?) 부쩍 추워진다지요. 모두 월동 준비 단단히 하시길 바라요. 이달의 ‘소소한 리-뷰’에서는 스산하고도 따듯한 전시를 소개합니다. 12월 20일까지 더현대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유코 히구치 특별전: 비밀의 숲> 전시인데요. 무려 고양이 그림이 1,000점 넘게 있으니 우리 소묘 레터 구 ...
[소소한 리-뷰] 유코 히구치 특별展: 비밀의 숲
글루미 웬즈데이. 지난 수요일은 종일 울적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너무 언빌리버블한 사건이라 충격이 더 컸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머리 위에 떠다니는 물음표를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정치공학이니 선거전략이니 하는 걸 따지기 전에, 유에스에이 피플은 불과 몇 년 전 일을 새카맣게 잊어버린 걸까요. 투표용지의 그쪽으로 손가락이 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전 세계의 인민들이 그놈은 안 된다고 악을 쓰며 반대하는데도 굳이 그래야만 했을까요.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
[월간소묘: 레터] 10월의 편지, 힙hip하지는 못해도
저는 신기가 있습니다.(응?) 며칠 전 새벽이었어요. 거실 창가 쪽 작은 조명만 켜놓은 집에서 그 조명 아래 책장 앞을 서성였습니다. 문득 이제는 읽어야겠다고 떠오른 책을 찾기 위해서였어요. 읽은 이들 대다수가 저에게 힘들 거라고 겁을 주었던 바로 그 책, <채식주의자>를 책장에 꽂아둔 지 근 10년 만에 꺼내어 소파로 가져갔습니다. 어째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저에게도 갑작스러운 일이었는데요. 그게 다 노벨문학상 수상의 계시였던 게 ...
[소소한 리-뷰] “강물이 위로 흐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 부산국제영화제
글: 이치코 집으로 가는 버스였습니다. 습관처럼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죠. SNS에 올라온 이야기들을 건성으로 훑고 있는 눈은 초점이 흐렸고, 부지런히 화면을 밀어 올리는 손가락만 마치 기계처럼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눈에 띄거나 관심이 가는 소식은 보이지 않습니다. 간혹 있다고 해도 피곤에 지친 몸을 간신히 지탱하기에도 벅한 퇴근길에는 놓치기 십상입니다. 시간을 꼬깃꼬깃 잘 접어서 집에 빨리 도착하는 일이 중요할 뿐이지 접힌 시간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니 ...
[월간소묘: 레터] 9월의 편지, 여름의 기억
언제부터 가을일까요? 이실장은 단호하게 9월부터라고 합니다. 저는 첫째 고양이 삼삼이 이불 속 제 품으로 파고들 때예요. 그게 참 신기하게도 거의 매년 9월 첫날이었는데요. 올해는 아직입니다. 늘 곁에 붙어 자긴 하지만 아직 이불 안으로 들어오진 않았거든요. 가을 어서 와…. 그렇다고 지금이 여름이라는 건 아닙니다. 제 여름의 끝은 마지막 복숭아 한 입이에요. 그 일은 엊그제 벌어졌고요. 그러니 제게 이날들은 여름과 가을 사이, 여기서 저기로 넘어가는 언덕의 계절. 지금 여러분의 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