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치코

 

1907년부터 1927년까지 미국 스미스소니언 연구소의 간사(스티븐 제이 굴드에 의하면 ‘보스를 뜻하는 그들의 직함’)를 지냈던 찰스 두리틀 월컷은 1909년에 캐나다 로키산맥 고지대에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화석 중 하나인 버제스 셰일 동물상을 발견했어요. 이 사건을 스티븐 제이 굴드는 <여덟 마리 새끼 돼지>에서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어요.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결정적인 캄브리아기 대폭발 직후의 동물상을 발견한 것이다. 부드러운 해부 구조들이 보기 드물게 잘 보존되어 있어 동물상이 완벽하게 드러난 화석들이었다. (…) 월컷은 그 멋진 화석들을 너무나 심각하게 잘못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는 버제스 종들을 하나하나 현대의 동물군에 쑤셔 넣었다. (…) 그에 따르면 버제스 동물들은 성공적인 후대 계통들의 선조로서, 단순하고 원시적인 소집합이었다. 생명은 원시적인 단순함에서 시작하여 점점 더 나은 방향으로 굽힘 없이, 예측 가능하게 진행한다는 시각이었다.

(…) 그러나 지난 20년간 해리 휘링턴과 그 학생들이 수행해온 세련되고 종합적인 재수집, 재조사 때문에 월컷의 해석은 완전히 뒤집혔다. 알고 보니 버제스 동물상의 다양성은 (종 개수가 아니라 해부학적 설계의 다채로움 면에서) 현생 생물들을 모두 합친 것을 능가했다. 생명의 역사는 점진적 진보와 확장의 이야기가 아니라 격감과 제한적 생존의 이야기였다(물론 곤충 같은 소수의 승자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성공의 이야기였다). 게다가 버제스의 생존자들이 왜 우세하게 되었는지 딱히 증거가 없다. (…) 이 초기의 격감은 민첩하고 강인한 자가 승리한 경주라기보다 대규모 복권에 가까웠다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

 

A page of Walcott’s field notebook, depicting some familiar
fossils from the Phyllopod bed [사진 : 위키피디아(영문)]

 

스티븐 제이 굴드는 해당 책의 열다섯 번째 에세이 ‘월컷과 접촉하다’에서 위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찰스 두리틀 월컷이 그 중요한 화석들을 왜 그렇게 철저히 오독했는지에 관해 설명(과 동시에 변호)하고 있어요. 그에 따르면 첫 번째 이유는 월컷이 행정 업무로 미칠 듯이 바빴기 때문에 버제스 동물들을 제대로 연구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었어요. 어느 정도로 바빴는지에 대한 일화를 월컷이 은행에 제출한 ‘사무치는 문서’를 통해 보여주고 있어요.

“귀하가 요구한 공술서를 이렇게 보냅니다. 나는 찰스 D. 월컷이라고 서명해왔습니다만, 앞으로는 이니셜만 쓰겠습니다. 서명할 문서와 편지가 너무 많은지라 알파벳을 일일이 적을 시간도 없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월컷이 뿌리 깊은 전통주의자였고 생명의 역사가 예측 가능한 진보의 길을 따름으로써 인간 지성의 등장이라는 운명적 정점에 도달한다는 견해를 맹렬히 추종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어요. 따라서 그에게 버제스 동물들은 “(진화라는 매커니즘의) 대규모 복권 추첨에 앞서 최대한 다양하게 분화한 상태”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진보하고 발산하는 생명의 역사에 등장한 제한적 형태의 원시 선조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어요. 즉, 월컷의 입장에서는 “인류의 선조가 운 좋은 생존자들 축에 끼었다는 해석을 할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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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은 21세기가 시작된 이래 가장 역사적인 한 해였을 거예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전 세계 금융위기가 촉발되면서, 20세기 후반부에 태동한 신자유주의의 종착역이자 완성형으로 여겨졌던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성찰.. 잠깐만요. 이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닌데. 2007년 12월 19일,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ㅂ.. 아, 이것도 아닌데. 2007년 6월 29일에 아이폰이 처음으로 세상에 소개되었어요. 네, 이게 맞겠네요. 2007년은 스티브 잡스가 성공한 기업인에서 범접 불가능한 혁신의 상징으로 업그레이드된 해였어요.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1985년에 쫓겨났다가 1997년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이 나오기 전에 이미 아이팟과 아이튠즈 뮤직스토어 등으로 혁신적인 사업가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어요. 하지만 아이폰이 없었다면 죽은 지 10년이 지나서까지 혁신이라는 단어 자체와 동일시되는, 일종의 신화적 존재로 회자되지는 못했을 거예요. 아이폰은 아이팟(+아이튠즈 뮤직스토어)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게 세상을 바꿔놨으니까요. 그리고 2007년 11월에, 아이폰만큼은 아니지만 한동안 이슈를 몰고 다녔던 기기가 또 출시되었어요. 아마존이 출시한 전자책 단말기 킨들은 전자책을 읽을 수 있는 최초의 기기도 아니었고 (아마도) 최고의 기기도 아니었어요. 게다가 전자제품 전문 글로벌 기업인 소니를 포함한 여러 회사가 이미 실패한 분야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존의 행보에 대해 많은 사람이 주목했고 킨들은 보란 듯이 성공을 거두었죠.

 

킨들이 시장에서 흥행하는 걸 보면서 어떤 이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어요. (그때만 해도) 아마존과 직접 경쟁해야 했던(혹은 경쟁하는 것처럼 보였던) 미국의 대형서점들은 불안에 빠질 여유도 없었을 거예요. 공포에 질려 몸서리치고 있었을 테니까요. 불길함에 휩싸였던 건 출판계 사람들이었어요. 전자책 전용 단말기가 무서운 속도로 팔려나가고 출판시장에서 전자책의 매출 점유율이 가파르게 치솟는 걸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예요. “이제 (종이)책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아니나 다를까 전자책의 희망찬 미래와 종이책의 우울한 종말에 관한 얘기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어요. 한국에도 <책은 죽었다>(2008년), <전자책의 충격>(2010년) 등의 책이 나오며 출판의 미래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졌어요. 그 시기에 종이책이 언젠가는 사라지고 책은 결국 전자책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았어요. 시대적 상황에 꼭 맞는 얘기였고 어쩌면 듣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았던 얘기였고 무엇보다 자극적인 얘기여서 논란의 중심이 되곤 했죠. 그 이야기들이 난무하던 시절엔, 정말 종이책이 사라질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Kindle – First generation [사진 : 위키피디아(영문)]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종이책은 아직 멀쩡하고 당분간은 사라질 것 같지도 않아요. 사람들이 더 이상 종이책을 찾지 않고 전자책으로 책을 소비하는 세상을 만나는 일도 없을 것 같고요. 차라리 아무도 (종이책이건 전자책이건) 책을 읽지 않는 세계라면, 그건 또 모르겠네요. 지난 10여 년의 시간을 지나며 전자책을 보는 사람도 많아지고 전자책으로 출간되는 책의 종수도 획기적으로 늘어났어요. 출판시장에서 전자책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10% 전후가 될 정도로 높아지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한때 희망적으로 예측했던 것에 비하면 초라한 형편인 게 사실이에요. 왜 그럴까요? 그런데 방금 했던 이야기들은 모두 틀린 말들이에요.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요. 전자책 시장은 절대로 초라하지 않으며, 전자책 매출이 종이책 매출을 합한 것만큼 성장했고, 종이책 대신 전자책을 소비하는 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어요. 대체 무슨 일인가요?

 

그 이유는 제가, 서명을 할 때 알파벳을 다 적고 거기다 한자를 또박또박 서예로 써도 될 만큼 한가한 사람이지만, 월컷이 그랬던 것처럼 뿌리 깊은 전통주의자의 태도를 견지했기 때문이에요. 자고로 종이책에서 시작하는 것이 출판이라는 고리타분한 생각으로 현실을 해석했기 때문에, 2020년에 벌써 6000억 원대의 규모에 이르렀다는 웹소설과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북미에서까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K)웹툰을 출판시장으로 분류하지 않았어요. 웹툰과 웹소설의 시장 규모를 합치면 (거의 확실하게) 일반 단행본 출판을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통적인 출판에서의 종이책-전자책 얘기를 했던 거예요. 웹소설, 웹툰 같은 새로운 콘텐츠 생산-소비방식까지 출판의 범주에 포함하면 전세는 이미 역전된 지 오래되었어요.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어요. 지구 생명체가 수십억 년의 세월에 걸쳐 진화해 왔다는 것이 역사적, 과학적으로 엄밀한 사실인 것처럼, 책은 곧 종이책이라는 개념이 적어도 저에게는 충분히 진실에 가까운 사실인 걸요. 저는 종이책이 더 좋아요. 구식이란 걸 알지만 종이책을 만드는 출판에 더 애정을 느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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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이 사라진다는 말은 미래에 대한 예상이기도 하지만 이미 발생한 사건이기도 해요. 출판 만화를 기준으로 하면 한국의 창작 만화책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우리가 만화책이라고 부르는 창작물은 크게 세 가지 경로를 통해 콘텐츠가 생산되고 유통되어 왔어요. 시기적으로 첫 번째는 소위 ‘만화방’이라고 불리는 대본소 시장을 겨냥한 만화책이었어요. 동명의 영화로도 나올 만큼 유명했던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같은 경우 대본소용 만화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다음에야 서점용 만화책으로 제작되어 판매되었어요.(어느 기사에 따르면 대본소 만화를 최초로 서점에서 판매한 것도 이현세 씨였다고 해요.) 그러니까 당시엔 만화책의 주요 유통 경로가 서점이 아니라 대본소였던 셈이죠. 1990년대 이전에 만화책의 추억을 간직한 분들이라면 대부분 여기에 해당할 거예요. 두 번째는 1980년대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해 90년대에 황금기를 구가했던 만화잡지였어요. 잡지에 연재된 만화들이 단행본으로 묶여 나오는 전형적인 일본식 콘텐츠 생산 방식이었죠. 대본소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었지만 서점에서도 만화책이 진열되고 팔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 시기에 한국에 소개되기 시작한 일본의 코믹스가 바로 세 번째에 해당하고 지금은 만화책 시장의 주류가 되어 있어요. 조그만 동네에도 몇 개씩이나 있었던 대본소는 더 이상 찾기 힘들어졌고 만화책은 주로 서점을 통해 유통되고 있어요. 첫 번째와 두 번째 사례와 다른 게 있다면 온라인 서점이건 오프라인 서점이건 일본 코믹스가 아닌 만화책은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이렇게 일본 코믹스가 만화책 시장의 주요 콘텐츠로 자리 잡는 동안 국내 창작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약간의 예외(독립출판의 성격이 강한 일부 작품과 <열혈강호> 같은 작품)들이 있긴 하겠지만 거칠게 요약하자면 국내 만화 작가들은 모두 웹툰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어요. 저항도 있었고 좌절도 있었고 대안적 시도들도 있었지만 결국은 그렇게 되었어요. 지금 웹툰 플랫폼 안에는 오래전 대본소 시절에 만화를 그리던 작가부터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리는 것으로 경력을 쌓기 시작한 작가들까지 전부 모여 있어요. 작품의 주제도 다르고 그림 스타일도 다르고 심지에 창작에 임하는 태도까지 제각각인 사람들이죠. 하지만 그들 모두에겐 공통점이 있어요. 웹툰 플랫폼 밖에서 (그 안이라고 해서 안락한 삶이 보장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전업 작가의 삶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에요. 이것이 아마도, 한국 만화계의 현실일 거예요. 물론 국내 작가의 (웹툰으로 연재된) 만화책들이 꾸준히 출간되고 서점의 베스트셀러(심지어 만화 분야가 아니라 종합 순위)에도 종종 오르는 걸 볼 수 있지만, 그건 만화책이 아니라 웹툰의 굿즈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해요. 만화책은 이제 있으면서도 없는 매체가 되어버렸어요.

 

만화책이 좋은데…!

 

그러면 아직 (종이책으로 시작하는) 만화책 콘텐츠를 왕성하게 생산하고 있는 일본의 사정은 어떨까요? 지금의 상황, 그러니까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보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계속 만화책을 사서 모으고 신간을 기다리고 할 수 있을 만큼 유지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잘은 모르지만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일본 역시 디지털 플랫폼으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는 대세인 듯하더라고요. 일본 특유의 아날로그 취향(이를테면 여전히 도장과 팩스를 열렬히 사랑하며 심지어 일부 은행에서는 아직도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한다든지…) 때문에 한국처럼 급격하지 않을 순 있지만 그래도 만화 잡지와 만화책의 시장 규모가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보였어요. 만약 일본마저 디지털 플랫폼이 대세가 된다면 한국은 어떻게 될까요? 여전히 어떤 (웹툰) 작품들은 특별판, 한정판의 형식으로 (종이) 만화책으로 만들어지겠지만 그 책이 만화책의 전부가 되겠죠. 북새통문고의 서가를 꽉 채웠던 것 같은 만화책을 더는 만날 수 없게 되지 않을까요?

 

북새통문고가 사라진 것을 보았을 때, 멀쩡히 영업하고 있는 서점을 자꾸 없어졌다고 해서 죄송스럽지만 저에겐 이미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라, 아쉬움이 컸던 건 만화의 미래에 대한 우울한 전망 탓이었던 것 같아요. 자주 다니던 서점 하나가 없어진 거랑은 조금 달랐어요. 서점이야 또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오프라인 지역서점이 다 문을 닫고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만 남을 거라고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 도서정가제라는 시스템(2014년 개정안, 발행 후 18개월이 지난 도서도 할인 10%, 기타 경제적 이익 5%로 제한)이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자 전국에 수많은 (기존의 지역서점과는 다른) 독립서점과 동네책방이 활발하게 등장한 것처럼 말이에요. 북새통문고에 대한 아쉬움은 만화책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온전히 포개지는 감정이었어요. 이제는 만화책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대형 오프라인 매장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걸 직감했어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만화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요. 디지털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게 되었다고 음악을 즐기는 문화적 행위가 크게 변했다고 볼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그 세상에 금세 익숙해질 거예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만화책이 없는 세상이라니.. 역시 조금은 슬프네요.

북새통문고 덕분에 만화책을 구경하고 고르고 모으는 일이 얼마나 두근거리고 즐거웠는지.. 그동안 고마웠어요. 잘 가요, 안녕.(아직 영업한다니까 그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