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묘는 아시다시피 ‘작은 고양이’고요. 오후의 소묘에서 고양이 실장을 맡고 있는 이치코의 글을 전합니다. 고양이 얘기만 합니다.
[이치코의 코스묘스] ⑬ 뜻밖의 여정
일상이란 물과 닮은 것 같아요. 물은 자신을 넉넉히 품어주는 곳에서는 마치 멈춘 것처럼 잔잔하게 흐르다가도 울퉁불퉁하거나 좁은 길을 만나면 갑자기 요동쳐 아껴두었던 에너지를 한껏 발산하곤 해요. 차분하고 단조로운 일상은 물이 고요히 흐르는 모습과 닮은 것 같아요. 최대한 힘을 아끼며 멈춘 듯한 시간을 조용히 밀어내며 흘러가죠. 반면에 다양한 환경에 접촉하며 변화가 잦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깊은 곳에 숨겨둔 에너지까지 끌어와야 해요. 마치 격랑의 먼 배후에 태풍의 힘이 있는 것처럼요. 사람마다 어떤 일상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느 ...
[이치코의 코스묘스] ⑫ 이치코의 코스묘스
치코는 말이에요. 떡잎부터 남달랐던 왕발 이치코 선생 #왕발 꼬맹이 치코는 덩치에 비해 커다란 발이 인상적이었어요. 집에 데려왔을 때, 병원에서 말끔히 치료를 받고 살이 좀 올랐다고는 해도 길에서 아픈 동안 말랐던 흔적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었어요. 얼굴은 여전히 갸름했고 이등신 몸매의 아랫쪽 역시 매끈한 편이었어요. 조금은 왜소해 보일 만큼요. 그런데 유독 발이 눈에 띄었어요. 마치 코끼리 발이라도 갖다 붙인 듯 낯설고 비현실적이었어요. 어릴 때 발이 크면 나중에 크게 자란다는 데… 진짜로 크게 자랐어요. 몸무게가 8k ...
[이치코의 코스묘스] ⑪ 보내는 마음
아직, 식구가 된 건 아니었어요. 치코의 상태를 보고 앞뒤 가릴 새도 없이 덥석 집어 들었지만 치료를 해서 살려야겠다는(저대로 두면 죽겠다는) 생각이었지 길에서 구조해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요. 우선 제가 집에 고양이를 더 들인다는 걸 전혀 고려하지 않던 때였어요. 이미 삼삼이와 모카, 둘이나 있었기에 충분하다고 여겼어요. 한편으론 둘만 해도 많다, 라는 생각마저 간간이 하기도 했고요. 게다가 모카가 1차 접종을 한 다음 날이 치코를 발견한 날이었거든요. 모카가 집에 온 지 한 달도 안 된 터라 다시 아깽 ...
[이치코의 코스묘스] ⑩ 화려한 시절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너무나도 유명한 <안나 카레니나>(윤새라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11)의 첫 문장이에요. 얼마나 유명하냐면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를 비롯해서요, 저 문장만은 알고 있으며 심지어 외우기까지 할 정도예요. 첫 문장이 유명한 문학작품의 순위를 논할 때 늘 윗줄 높은 곳에 이름을 올리는 작품이죠. 저는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톨스토이가 왜 행복과 불행이 드러나는 모습에 대해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
[이치코의 코스묘스] ⑨ 오래된 미래
혼돈의 카오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두 번이나 캐리어에 넣는 걸 실패한 터라 세 번째 시도에서는 정말 인정사정 안 보고 모카를 힘껏 붙들었어요. 모카가 다치지 않을까 걱정할 겨를이 없었어요. 지난번의 실패 이후로 일주일간 무럭무럭 자란 모카의 발버둥이 얼마나 강한지 제 힘이 부칠 지경이었거든요. 모카를 겨우 캐리어에 넣은 다음에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제 몸통으로 캐리어를 덮어 누르고 있어야만 했어요. 그다음에 더듬거리며 지퍼를 찾아서 마치 모비 딕과 사투를 벌이는 선원들처럼 조금씩 조금씩 하지만 끈질기게 지퍼를 채워나갔어요. 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