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소묘: 레터] 4월의 편지, 사랑의 모양
두어 달 전엔 무엇을 보든 ‘구름’과 ‘우울’이라는 단어가 와서 박히더니 이제는 ‘꽃’과 ‘사랑’이 그렇습니다. 모니카 바렌고의 <구름의 나날>을 펴내고 한 달 만에 <사랑의 모양>을 내놓게 되었는데요. 구름에 파묻힌 여자로부터 이름 모를 하얀 꽃에 빠져든 여자로(어쩌면 한 여자일지도 모르지만요), 책 속 주인공을 따라 제 존재가 변모하고 구심점이 되는 단어가 달라져요. 저는 이제 사랑 채집자가 되었고, 사월엔 사랑의 여러 모양을 전합니다.   ...
[소소한 산-책] 고양, 플라뇌즈
글: 이치코 “어디 사세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거예요. 자기 동네의 생활 반경에서 (근방에 거주할 것이라 예상되는) 누군가를 우연히 만난 경우라면 “아, xxx 2차에 살아요.”, “xxx사거리 아시죠? 거기서 xx동 방향이에요.” 등으로 대답하는 게 맞을 거예요. 동네의 구체적인 장소를 기준으로 위치를 설명해도 상대방이 알아들을 테니까요. 반면 제주도에 여행 가서 오래전 연락이 끊긴 친구를 만났다면 “지금 광주 살아.”, “서울에 있지, 뭐.”, “합천이라고, 해 ...
[월간소묘: 레터] 3월의 편지, 구름의 나날
늘 쉽게 쓰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만큼 유달리 운을 떼기조차 어려웠던 적이 있었나 싶어요. 하기 싫은 일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미루는 못된 습관이 있는데, 특히 보도자료 쓰기가 그렇답니다. 그런데 이번엔 마감일 전에 완성을 하고 말았어요. 전에 없던 일이지요. 레터 쓰기가 얼마나 싫었으면… 아니, 그러니까 그간 너무나 거대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오후의 소묘의 모토는 ‘일상의 작고 짙은 온기를 전한다’입니다만, 일상은 흔들린 지 오래고 어떤 곳에 ...
[조용함을 듣는 일] 에필로그
일주일째 내 몸에 딱 맞는 간이침대 위에서 아침과 밤을 맞았다. 새해 첫 달부터 작은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한 엄마의 곁을 지키는 중이었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따님이 어머님을 정말 좋아하나 봐요라고 하셔서 머쓱하게 웃었다. 평일과 주말할 것 없이 붙어 있으니 할 일 없는 철부지 같아 보이려나 생각했다. 하루에 한 번 가습기 물을 채우거나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의 식사를 대신 옮겨드리는 작은 일들을 했다. 조용하고 따듯한 온도의 병실이 꽤 안정적이어서 아침에는 엄마보다 더 늦게 일어나고 밤에는 누구보다 ...
[이치코의 코스묘스] 혁명의 선봉
시월이가 다시 오면서 봉산아랫집엔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어요. 우선 고양이들의 화장실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했어요. 오묘(五猫)까지만 해도 두 개의 화장실을 하루에 한두 번 치우는 걸로 충분했어요. 화장실 세 개로 하루에 한 번만 치우기도 했었지만 아이들이 작은 화장실을 잘 가지 않는 것 같아서 큰 것 두 개만 남겨놓았어요. 기왕이면 깨끗한 환경을 유지해주고 싶어서 두 개의 화장실을 하루에 두 번 치우는 걸 원칙으로 정하긴 했지만 한 번만 치우더라도 그다지 문제는 없었어요. 그런데 시월이가 오고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