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소묘: 레터] 2021년 첫 편지 ‘얼굴들’
연말연시의 어느 오후,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한 중년 남성이 앉았습니다. 역을 출발하자마자 울리는 전화벨 소리. 그가 전화를 받아요. 큰 목소리, 경상도 억양. 자리를 옮길까 고민하는 사이 그의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오랜마➚이다. 어어, 집에 가는 길~ 오늘 일찍 마➚칬제. 아이고, 당분간 내리가기 어렵지 않겠➚나. 거도 난리났대➚. 니도 단디해라. 내? 내 그렇지 뭐. 가방 맨드는 거 계속하고 있➚다➘. 작년에 좀 잘돼➚가➘ 올해 거래처 솎고 할라캤드만 지금은 뭐 혼자 해도 널널하➚네 ...
[소소한 산-책] 서울, 작업책방 ‘ㅆ-ㅁ’
12월 25일. 대청소를 하고 신간 그림책 <눈의 시>를 역자 두 분과 디자이너께 부치고 나니 날이 어둑해졌어요. 집으로 곧장 들어오지 않고 망원으로 향했습니다. 좋아하는 디저트 가게에서 마카롱을 사고, 그날도 열었다는 작은 책방으로 발을 옮겼어요. 북적이는 시장통에서 골목 하나만 돌아 들어가면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로 바뀌어요. 작은 불빛을 따라가니, 소박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먼저 인사를 건네는 작업책방 ‘ㅆ-ㅁ’(이하 씀)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글을 ...
[이치코의 코스묘스] 원래 그런 게 어딨나요?
꼬박 열두 달이 지났네요. 작년 2월의 첫 편지 ‘생기’에 실렸던, 오후의 소묘의 로고가 된 히루 사진을 넣은 글을 시작으로 해서 어느새 열두 번째 편지에 담을 이야기까지 왔어요. 연재가 길어지다 보니 도대체 무슨 말을 했던가, 가물거릴 때가 많아졌지만 제 출생의 비밀(?)에 관해 말씀드렸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어요. 저는 말이에요, 어떻게 보자면 식상한 환경에서 태어났어요. 경상도 어느 시골이 고향인 남자이고요, 태어나 보니 증조할아버지도 장남, 할아버지도 장남, 아버지도 장남이었고 저도 장남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