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소묘: 레터] 2월의 편지 ‘걸음걸음’

2022-03-11T16:48:33+09:002021-02-28|

  “걸어가는 사람이 바늘이고 걸어가는 길이 실이라면,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입니다. 보행은 찢어짐에 맞서는 저항입니다.” -리베카 솔닛, <걷기의 인문학>   몸은 녹슨 기계 같고 바깥은 산화를 촉진하는 위협적 환경같이 느껴지는 때, 찢어진 것은 무엇일까. 갈수록 묵직하고 크게 다가오는 물음을 앞에 두고 작은 것들을 생각합니다. 나의 한 걸음, 한 걸음을요. &nb ...

[조용함을 듣는 일] 물결이 내는 소리

2023-05-27T18:59:32+09:002021-01-30|

1월 어느 날, 김혜영이 김혜영을 인터뷰하다.   김¯ 매일 아침에 아주 짧은 명상을 하잖아요. 저건 그냥 더 자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짧게요. 그때 무슨 생각을 하나요? 혜영¯ 원래 명상은 자신의 코끝 숨결에 집중하는 거라고 하잖아요. 저는 아마추어라서 그런지 잘 안되더라고요. 대부분 오늘은 또 무엇을 해야 죄책감이 덜해질까 생각해요.   김¯ 죄책감으로 시작하는 하루인가요? 혜영¯ 네. 대부분 어제 ...

[소소한 산-책] 서울, 번역가의 서재

2021-09-05T20:23:27+09:002021-01-30|

  손님이 직접 구입한 책을 들고 있는 사진이 SNS 계정에 꾸준히 올라오는 서점이 있습니다. 오후의 소묘 책도 종종 등장한 터라 그 사이 내적 친밀감이 생긴 ‘번역가의 서재’인데요. 한적한 주택가를 걷다 적벽돌 건물 2층 유리창 너머로 따듯한 조명과 서가가 보이자 벌써 아늑한 기분이 듭니다. 계단 몇 개를 올라 문을 열고는 조용한 책방에서 그만 탄성을 내지를 뻔했어요. 입구 오른편 카운터의 전면서가에 놓 ...

[이치코의 코스묘스] 공감과 교감 사이에 어중간하게(1)

2021-02-01T17:59:15+09:002021-01-25|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얘길 나누다가 오후의 소묘에 관해 설명해야 할 일이 있었어요. 어떤 책을 만들고 있는지, 지금까지 몇 권이 출간되었는지, 책이 어느 정도 팔리는지 등에 대한 간단한 얘기였어요. 친구가 책에, 특히나 그림책엔 별 관심이 없어서 자세하게 설명할 만한 건 없었어요. 그저 대화의 중간에 안부처럼 몇 마디가 오갔을 뿐이고 ‘올해는 에세이 책들도 내보려고 해.’라며 얘기를 마칠 참이었죠. ...

[월간소묘: 레터] 2021년 첫 편지 ‘얼굴들’

2022-03-11T16:49:12+09:002021-01-25|

  연말연시의 어느 오후,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한 중년 남성이 앉았습니다. 역을 출발하자마자 울리는 전화벨 소리. 그가 전화를 받아요. 큰 목소리, 경상도 억양. 자리를 옮길까 고민하는 사이 그의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오랜마➚이다. 어어, 집에 가는 길~ 오늘 일찍 마➚칬제. 아이고, 당분간 내리가기 어렵지 않겠➚나. 거도 난리났대➚. 니도 단디해라. 내? 내 그렇지 뭐. 가방 맨드는 거 계속하고 있 ...

[소소한 산-책] 서울, 작업책방 ‘ㅆ-ㅁ’

2021-09-05T20:23:33+09:002021-01-3|

12월 25일. 대청소를 하고 신간 그림책 <눈의 시>를 역자 두 분과 디자이너께 부치고 나니 날이 어둑해졌어요. 집으로 곧장 들어오지 않고 망원으로 향했습니다. 좋아하는 디저트 가게에서 마카롱을 사고, 그날도 열었다는 작은 책방으로 발을 옮겼어요. 북적이는 시장통에서 골목 하나만 돌아 들어가면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로 바뀌어요. 작은 불빛을 따라가니, 소박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먼저 인사를 건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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