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치코

 

벌써 2년 가까이 매달 최소 한 군데 이상 동네책방/독립서점을 찾아다니고 있는데, 특정 책방이 아니라 서점에 관한 (개인적이고 사소한) 얘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마침 이번 달이 [월간소묘: 레터]의 연말정산 특집이 아니겠어요? 이때다 싶었어요. 지금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참, 서점에 관한 ‘옛날’이야기예요:) 대체 어느 옛날까지 가려고 그러나 하실 수도 있는데, 신체의 물리적 마모가 저와 비슷한 세대라면 그렇게까지 까마득한 시절은 아닐 거예요. 물론 누군가에겐 깜짝 놀랄 만큼의 과거일 수도 있을 테지만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세계는 아니리라 생각해요. ‘그런 시절이 있었지’와 ‘그땐 그랬다더라’ 혹은 ‘그랬을 수도 있겠네’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뭐라고! 진짜? 어떻게 그랬대?’는 아니길 바라면서, 서점에 관한, 옛날이야기를 시작할게요.

 

공식적이건 비공식적이건 글을 쓸 때 ‘대학’이란 공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에요. 대표적인 단어로 ‘학번’이 있어요. 굳이 학번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나이, 세대, 위계 등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면 의식적으로 안 쓰려고 하는 거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일종의 훈련된 습관 때문이에요. 저는 대학을 들어간 일이 우연한 기회에 사회적 혜택을 받은 것이라 생각해 왔어요.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는 건 알아요. 지금은 대학이 뽑으려는 신입생의 숫자보다 대학에 들어가려는 학생의 숫자가 적어서,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는 시대니까요. 2000년대 후반에는 대학진학률이 80% 넘게 치솟기도 했으니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을 보면 당연히 대학생이라고 여기는 분위기이기도 하고요.(2010년대 후반에는 오히려 70% 근처로 떨어졌다고 하네요.) 대학생이란 지위가 사회적 혜택이라는 말에 갸웃하실 수 있어요.

 

 

그런데 제가 대학을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대학진학률이 30%대에 걸쳐 있던 시기였어요. 대학을 다니는 동안 대학생이 아닌 또래를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그중엔 오랜 동네 친구들도 있었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과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의 사회적 위치가 다른 높낮이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훨씬 더 많은 인생의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도 경험할 수 있었어요. 그런 것들을 의식하기 시작하자 주변이 달라 보였어요. 이를테면 신입사원 모집 공고에 적혀 있는 ‘대졸 이상 지원 가능’이란 말이 당연하게 보이지 않더라고요. 전 그저 운이 좋아서 두뇌 구조가 입시를 위한 시험에 효율적으로 세팅된 상태로, 또 다행히도 등록금은 낼 수 있을 정도의 집에 태어났을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누군가 그 몇 가지 운과 기회가 없었다는 이유로 신입사원 모집에 응모조차 못 한다는 게 이상했어요. ‘열심히 공부했다는 얘기니까…’로 시작하는 어떤 반론이 있을 수도 있긴 한데요. 그러면 응모 자격을 ‘주 7일, 하루 10시간 이상 공부한 자에 한함’이라고 하든가요. 아무튼 제게 대학이란 곳은 거기에 진입하지 못한 이들에 대한 차별이 동시에 떠오르는 곳이라 언급하기 조심스러운 공간이었어요.(대학진학률이 높은 지금이 더 편한 세상이라거나 평등한 세상이라는 얘기는 절대 아니에요. 한국은 여전히 입시지옥이란 말이 비유가 아니라 생생한 현실로서 아이들의 생명을 갉아먹는 곳이니까요.)

 

대학생 시절의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사족이 붙어버렸네요. 이번엔 대학 얘길 안 할 수가 없어요. 서점 얘길 하려면, 적어도 제게는 그때가 가장 중요했던 시기이기 때문이에요. 아니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서점에 관한 기억이 없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아요. 보통 이렇게 서점을 다니는 얘기나 책 얘기 쓰시는 분들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릴 때부터 책에 파묻혀…’ 혹은 ‘책만 있으면 행복했던…’ 혹은 ‘친구보다 책이 좋았던…’ 같은 미담(?)이 제게는 없어요. 오히려 정반대였어요. 집에 책이 하나도 없었어요. 부모님은 책을 전혀 읽지 않는 분들이셨어요. 그래도 자식들 읽으라고 무슨 무슨 전집 같은 걸 사줄 만도 한데 전혀 그러지 않으셨어요. 참, 냉정하신 분들이네요. 낱권 동화책 하나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초등학생 때 학년이 바뀌어 새 교과서를 받을 때면 들뜨고 신나서 받자마자 통째로 다 읽곤 했던 기억이 있는 걸로 봐서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던 것 같은데 책 좀 넉넉하게 사주지, 어쩌면 그때 책을 못 가졌던 게 한이 맺혀가지고 지금 이렇게 책 만드는 일을, 아이고 인생이란 참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청소년 시절의 서점에 관한 기억이라곤 중학교 때 학교 앞에 있던 문방구를 겸한 서점이 전부예요. 중학교 2학년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세계문학에 관심이 생겨서 <부활>이니 <주홍글씨>니 하는 책들을 찾아 읽은 적이 있어요.(중2병…?) 길어봤자 몇 달 정도의 호기심이었겠지만 학교를 마치고 그 서점에 들러서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며 문고본이 꽂힌 책장을 서성거리던 장면이 (참고서를 살 때를 제외하곤) 서점에 관한 유일한 기억이에요. 마산에는 1955년에 개업해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라고 하는 (지금도 영업 중인) ‘학문당’을 비롯해 ‘문화문고’, ‘학원사’ 등의 지역서점이 있었지만 저랑은 상관이 없었죠. 학문당과 문화문고는 마산의 제일 번화가였던 어시장-창동 라인에 있었으니 안 가볼 수가 없었을 텐데도 거의 기억나는 게 없어요. 정말 책이랑은 담을 쌓은 10대 시절이었어요.

 

그러다 대학생이 되었고, 대학생이 되었다고 해서 그때까지 안 읽던 책을 갑자기 열심히 읽게 될 리는 만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대학이란 공간은 중고등학생 시절에 비해 훨씬 책과 가까운 생활 환경이었어요. 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나 하려고 해도 선배들이 왜 그렇게 책을 읽히려고 애를 쓰는지, 토론이며 세미나 같은 자리가 왜 그렇게 많은지, 게다가 공대생한테 왜 철학 어쩌고저쩌고하는 책을 읽으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조금씩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책 읽는 분위기와 함께 책을 선물하는 문화도 처음 경험해 봤어요. 선배들에게 받은 생일선물은 거의 책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해보기도 했고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하루에 한 번은 서점에 꼭 들러야만 했어요. 책을 사기 위해서는 아니고 심지어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지만 학교 앞 서점에 가지 않으면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 수가 없었거든요. 그때의 서점은 지금의 인터넷, 카카오톡보다 더 중요한 정보의 바다였어요. 대부분이 누가 어디서 술을 마시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긴 했지만 말이에요.

 

Photo by Ranurte on Unsplash

 

대학을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대중화된 실시간 통신 수단이라고는 (유선)전화가 전부였어요. 삐삐가 보편화된 건 후배를 두어 번 정도 받고 난 다음이었어요. 동아리방이나 학생회실에는 학교에서 배정해준 전화가 있었고 누군가를 찾거나 소식을 전하려고 할 때는 전화기가 놓여 있는 그 공간을 거쳐야만 했죠.(휴대폰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계속 그랬던 것 같아요. 삐삐도 결국 전화를 받기 위한 호출 행위일 뿐이니까요.) 그런데 그런 통신 행위도 학교라는 공간을 벗어나면 무용지물이었어요. 단골 술집이나 당구장에 전화를 해서 누구 있나요, 라고 물어볼 수는 있었지만 학교처럼 폐쇄된 공간이 아니었기에 서로의 연락이 닿기는 어려웠어요. 하지만 필요가 발명을 만든다고 했나요. 에너지 넘치는 대학생들은 학교 바깥에서도 서로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어렵지 않게 구축했던 것 같아요. 학교의 과사무실이나 학생회관에 있던, 코르크 판에 메모지를 압정으로 꽂아서 각종 소식을 공유하던 게시판을 학교 밖에도 설치하는 거였어요.(이미 유구한 전통이 되어 이어지고 있던 문화였죠.) 그런데 게시판이 설치된 장소가 하필이면 서점이었어요. 전국의 모든 대학이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가 아는 범위에선 많은 대학이 그랬던 것 같아요. 누가 어디서 술을 마시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반드시 서점에 들를 수밖에 없었어요. 서점 앞 게시판에 나를 불러주는 모임(술자리)이 하나도 없다, 그런 날이면 그냥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가 책 구경을 하는 날도 많았던 것 같아요. 새로 들어온 책 없나요? 사장님한테 묻기도 하고 아는 얼굴을 만나면 인사와 안부를 나누기도 하면서요. 그렇게 서점과 친해지게 되었고 교보문고나 종로서적 같은 큰 서점도 종종 다니게 되었죠.

 

당시 대학교 앞에서 일종의 사랑방 노릇을 하던 서점들이 어쩌면 지금 유행하고 있는 동네책방/독립서점의 전신이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대학교 앞에 있는 모든 서점들이 그랬던 건 아닐 테고요. 그중에서도 인문사회과학서점이라고 불렸거나 그와 비슷한 역할을 했던 서점이 따로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서점에서 가장 핵심적인 건 주고객인 대학생들의 관심사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커뮤니티가 형성되느냐 하는 것이었어요. 대학가의 서점이 ‘인문사회과학서점’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었던 건 시대적 상황의 반영이었다고 봐요. 90년대 중반에 들어 몰락하기 전까지 학생운동은 한국의 사회운동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었고, 학생운동이 대학 내에서 자신의 세력을 넓히거나 투쟁의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게 바로 ‘책’이었으니까요.(의식화! 조직화!) 한때 사회과학 서적의 전성기라고 불렸던 시절도 있었다고 해요. 사회과학 서적이라면 종이에 잉크만 발라놔도 순식간에 5,000부는 팔렸다는 전설 같은 얘기도 있고요. (독해가 엉망이었을 순 있지만) 아무튼 많이 읽고 (대부분은 선배들의 일방적인 주입식 학습이었을 테지만) 많이 토론하고 많이 마시고(?) 하던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저는 그 시기를 직접 경험하지 못했어요. 제가 대학에 들어갔을 땐 이미 학생운동이 쇠락할 만큼 쇠락한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이념과 투쟁의 치열함은 사라졌다고 해도 그 문화의 찌꺼기(?)들은 여전히 대학가를 휘어잡고 있었어요. 그중엔 커뮤니티의 중요한 매개로서의 책과 서점이 있었고요. 이를테면 “우리 세미나 할까?”, “책 한 권 사줄까?” 같은 다정함(?) 말이에요.

 

동네서점, 동네책방이란 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10여 년 전이었던 것 같아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지역서점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했고 2010년대가 되어서는 이대로 가다간 대형서점체인과 온라인서점 빼고는 중소형서점, 그러니까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서점이 모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질 대로 커진 상황이었어요. 그러면서 동네서점, 동네책방이란 말이 일종의 당위와 과거에 대한 향수를 동시에 지닌 채로 호명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지금의 기준으로 동네책방이라고 부를 만한 서점은 극히 드물었어요. 시장 상황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어요. 2014년에, 신간과 구간 구분 없이 모든 책에 대해 10%의 가격 할인과 5%의 경제적 이익 제공을 할인의 상한선으로 정한 현행 도서정가제가 등장하면서 동네책방이 조금씩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어요. 동네책방이란 말이 처음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 저는 도서정가제 문제와는 별개로 미래에 부정적이었어요. 한국에 동네란 개념이 없는데 어떻게 동네책방이 존재할 수 있냐는 입장이었어요. 과거의 기억으로, 책과 서점이 커뮤니티의 매개 역할을 하던 경험으로 그렇게 판단했던 것 같아요. 커뮤니티 혹은 커뮤니티의 목적성이 존재해야 매개도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제가 잘못 생각했어요. 어떤 경우엔 외부의 매개를 통해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발전될 수도 있다는 걸 몰랐어요. 책을 통해 아무 연관 없던 사람들이 모이고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책방 북스피리언스

 

‘소소한 산-책’을 연재하면서 여러 서점에 발걸음을 했어요. 각 서점들은 입지 조건과 규모도 다르고 지향하는 바도 다르고 책을 고르고 진열하는 방식도 모두 달랐어요. 하지만 모든 서점에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건 사람들의 관계가 형성되는 공간이란 것이었어요. 밀접하게 만나는 모임일 수도 있고 느슨한 사이일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흐릿하기만 하고 모양이 없어 보이는 때도 있지만 모든 동네책방에는 사람들 사이의 연결이 존재하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이건 동네책방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모이는 이마트나 다이소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에요. 책이 있는 공간이라고 해서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는 건 아니란 걸 대형서점이나 기존의 지역서점을 보면 알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 새로운 연결은 온전히 동네책방이란 공간의 힘이란 생각이 들어요. 옛날 대학가의 서점에 학생들이 모였던 게 서점의 입지나 장서 규모가 아니라 입구에 조그맣게 붙어 있는 게시판 때문이었던 것처럼, 동네책방이 사람들을 모으고 연결하는 것 역시 어떤 비법이 있을 거예요. 저는 사랑, 네? 책에 대한 사랑, 뭐라고요? 이 공간에 내가 좋아하는 책을 꽉꽉 눌러 담아 채우고 싶다는 주인장의 책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책이 아니라 특정한 책에 대한 편협된(!) 사랑이 만들어낸 책방의 압축된 공기가 바로 사람을 모으고 연결하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큐레이션이라고 불러도 무방하겠지만 그건 너무 기능적인 표현 같아서 뜬금없는 줄 알지만 사랑이라고 표현해봤어요.(그렇다고 기존의 서점이 책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에요. 어떨 땐 좁고 깊은 애정이 더 큰 힘을 발휘할 때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을 뿐이에요.)

 

코로나로 인해 어수선하긴 하지만 그래도 곧 연말 분위기가 온 동네를 뒤덮기 시작할 거예요. 사랑이란 말이 넘쳐나겠죠. 연인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인류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거기다 책에 대한 사랑을 더해 보면 어떨까요? 가까운 곳에 동네책방이 있는데 아직 못 가봤다면 미루지 말고 방문해보세요.(단골 책방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좋아하는 책이 있고 결이 맞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 연말엔 동네책방에서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랑을 느껴보세요! 기왕이면 책도 잔뜩 구입하시고요:)

 

 

 

* ‘소소한 산-책’ 코너에서 독자 투고를 받습니다. 제 걸음이 미처 닿지 못한 곳들의 이야기도 전하고 싶어요. 분량 제한은 없습니다. 짧아도 좋고요. 자유롭게 여러분의 산-책 이야기 들려주세요. 해당 메일(letter@sewmew.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된 분께는 오후의 소묘에서 준비한 굿즈와 신간을 보내드립니다. 소중한 원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소소한 산-책’은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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