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치코

 

듀오링고를 시작했습니다.

연속 학습 일수가 24일이 되었고 사파이어 리그에 머물고 있으며 3위권 진입 횟수는 3번이고 지금까지 획득한 총 XP는 18,739점입니다.

 

영어 공부를 시작한 계기는, ‘I am a student’ 따위의 문장을 퀴즈로 풀고 있는 걸 공부라고 부를 수 있다면요, 요즘 한창 유행하는 ChatGPT라는 인공지능 챗봇 때문입니다. ChatGPT는 다른 챗봇들과 달리 주고받은 대화와 대화의 문맥을 기억할 수 있으며, 모종의 보고서나 실제로 작동하는 파이썬 코드를 비롯한 인간과 같은 상세하고 논리적인 글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해요. 학생들의 과제를 충분히 대신할 수 있고 의사면허시험이나 MBA 과정마저 통과할 정도의 성능(**)이라고 하니 앞으로 실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가 됩니다.(걱정은 더 되고요.) 어쨌거나 저도 호기심에 말을 걸어봤습니다.

 

고양이와 겨울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어줘

▸ 겨울이 오면서, 고양이는 푸른 눈동자를 갖고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맞으며, 나의 손길을 기다린다.

그는 나의 따뜻한 품에서 겨울의 추위를 막고

그의 깃털처럼 따뜻한 마음을 주어, 나를 기쁘게 한다.

겨울의 길고 푸른 밤, 고양이와 함께

나는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아, 진짜로 시를 쓰네요. 내용은 별로지만.

 

그렇게 며칠을 즐겁게 놀다가 갑자기 ChatGPT의 모국어가 무엇일까 궁금해졌어요. AI도 생각하는 언어로서의 모국어가 있을까? AI의 언어 처리 과정이 사람과 다를 테니 아마 없겠..죠? 하지만 다른 의미로서의 모국어는 분명히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당장 위에 있는 시만 봐도 한국어로 시를 쓴 게 아니라 외국어로 된 시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에 훨씬 가까워 보이니까요. 그렇다면 ChatGPT의 모국어는 영어일까요? 옵콜쓰! 질문을 이해하고 답변을 생성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활용할 텐데, 21세기 기준으로는 철학이건 과학이건 문학이건 간에 영어로 된 자료가 다른 언어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많을 게 확실하니까요. ChatGPT의 작동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언어가 영어라면 그걸 모국어라 부르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 같아요.

 

제가 ChatGPT와 같은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일은, 이번 생에는 아마, 없을 듯합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러한 기술의 파급 효과 속에 살게 될 확률은 높다고 할 수 있어요. 그때 사용자의 언어가 무엇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거예요. 사람처럼 대화하는 AI 기술과 함께 다양한 언어를 자동으로 번역하는 기술 역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죠. 2007년에 구글이 번역 서비스를 공개한 이래 지금은 일상생활이나 여행뿐만 아니라 전문 영역에서도 사용될 만큼 기계 번역의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심지어 사진을 찍기만 해도 거기서 텍스트를 추출해 번역해주는 기능이 휴대폰의 기본 옵션으로 장착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저 역시 영어를 공부한 시간보다 영어와는 겸상도 하지 않은 시간이 훨씬 길었어도, 그래서 머릿속에 들어 있는 영어 단어의 총량이 초등학생보다 더 적은 상황에서도 크게 불편한 걸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용적인 이유로 영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는 확신(물론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이 새로운 신기술의 세계에서도 당연히 유리하기야 하겠지만요)이 생기니까 거꾸로 영어를 공부하고 싶어졌어요. 이를테면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영어로 직접 읽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앞으로 더욱 발달하게 될 기술들이 그 시들은 최대한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번역해줄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제 몸에 축적된 영어로 읽고 싶어졌습니다. 그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욕망이었어요. 번역 너머에 있는 작품의 아름다움을 전문 번역가들이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으니까요. 번역되지 않은 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 아름다움의 판단 대상 자체가 아니었지만 거기에 큰 불만은 없었고요. 그런데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언어의 장벽 없이 자유롭게 모든 작품을 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신기술 너네들, 매끄럽고 유용할진 몰라도 아직 아름답진 않은 것 같아.. 미안하지만 그래 보여.

 

그래서 영어를 공부해야겠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My cat is my family’가 학습 예제로 등장하는 수준에서 아름다움까지 가는 게 살아생전에 가능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름다움을 잊은 채 살아갈 수는 없다는 기개(!) 자체가 중요한 문제니까요.

 

이번 소소한 산-책은 아름다움을 향한 기개를 잃지 않은 자다운 선택이었습니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밤의서점’,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책방에 다녀왔습니다.

 

공간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요소는 다양합니다. 구조일 수도 있고 배치일 수도 있고 색깔일 수도 있습니다. 어떨 땐 기능적인 요소나 세월의 흔적이 아름다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죠. 그런데 서점은 건물 자체가 독특하고 매력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공간에 아름다움을 부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필 책이라서 그런데요. 원활한 쇼핑을 위한 고객의 동선과 시선을 고려하면서 책을 아름답게 진열하는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잠깐 눈을 감고 서점 공간의 이미지를 떠올려볼까요. 벽을 따라 책장이 둘려 있고 책장에는 책이 빼곡히 혹은 듬성듬성 혹은 불규칙적으로 꽂혀 있습니다. 그리고 책장과 책장이 마주 보는 사이에 있는 너른 공간, 대개는 서점의 중앙부에 해당하는 곳에 테이블이 자리하고 그 위에 또 책이 여러 방식으로 진열되어 있습니다. 책장의 높이, 테이블의 디자인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아마도 이 풍경은 교보문고에서부터 동네책방까지 대부분의 서점에 해당할 거예요.

 

이렇듯 서점의 공간 구성과 배치가 비슷비슷한 이유는 책장 때문입니다. 책장이란 게 그 생김새부터가 왠지 뒷면을 벽에 딱 붙이라고 만든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래서 일단 책장을 벽에다 타닥타닥 붙여서 책을 진열하고 나면 남아 있는 공간에는 테이블이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거기에 또 책장을 넣으면 공간이 얼마나 답답해지겠어요. 시선과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높이라면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테이블 높이밖에 안 되는 책장을 책장이라 부르긴 애매하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파격적인 공간 배치를 위해 두 가지를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책장을 없앴다. 삑- 안 됩니다. 책장의 그 엄청난 수납력 없이는 서점이란 공간이 (거의)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테이블 매대를 없앤다. 오호, 그럴싸한데요. 하지만 어떻게? 밤의서점에서 테이블 매대가 없는 서점의 정답 같은 풍경을 보고 왔습니다.(테이블 매대가 없다고 해서 책 표지가 보이게 진열하는 공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어요. 비어 있는 벽에 선반과 작은 테이블을 두어 콘셉트에 맞는 추천 책을 책방 주인장의 코멘트와 함께 가지런히 진열하고 있었습니다.)

 

밤의서점에 있는 책장은 벽에 등을 붙이고 있지 않습니다. 옆구리를 벽에 붙인 채 모든 책장이 출입문 정면을 향해 있어요. 가운데 통로를 사이에 두고 왼쪽에 하나 오른쪽에 두 개가 있습니다. 거기에 한 칸 높이의 선반이 천장에 붙어 양쪽 책장 위를 가로지르고 있어서 책장 사이의 통로가 마치 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총 세 줄의 책장으로 만들어진 벽과 문이 평행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앞뒤로 길쭉한 서점이 사등분된 칸으로 이루어져 있는 셈이죠. 아마도 이러한 배치 때문에, 출입문을 열고 서점에 들어갔을 때 은밀한 초대장을 들고 비밀의 공간을 방문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 칸에서 잠시 숨을 고릅니다. 초대장을 보낸 이가 누군지,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됩니다. 책장에 놓인 책들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게 되네요. 한 권 한 권 찬찬히 구경하다 보니 조금씩 긴장이 풀리고 다음 칸으로 넘어갈 용기가 생깁니다. 한 칸 깊이 들어가자 비밀의 실마리가 흐릿하게나마 느껴집니다. 역시 책장으로 시선을 돌려 책을 구경합니다. 첫 번째 칸과는 다른 종류의 책들이 보입니다. 이쪽은 국내소설일까? 여긴 인문 분야 같은걸?

 

이제 공간의 절반을 보았으니 조금 더 대담해집니다. 다음 칸으로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머뭇거리지 않고 실행에 옮깁니다. 세 번째 칸에서는 또 다른 책들이 손님을 반겨줍니다. 책장마다 자기 색깔을 가지고 알록달록하게 책을 품고 있습니다. 어느덧 마지막 칸, 그제서야 책방의 전체 공간이 머릿속에 하나의 지도가 되어 펼쳐집니다. 몸을 돌려 지나온 문들을 바라봅니다. 세 줄의 책장과 세 칸의 공간 너머로 인적 드문 골목길이 보이네요. 이 마지막 공간에는 뭐가 있을지 놓치지 않으려고 다시 책장을 탐색합니다. 아, 이곳에 중요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군요. 마지막 칸 안쪽 책장에는 포장지에 싸여 무슨 책인지 알 수 없는 책들이 가지런하게 꽂혀 있습니다. 왼쪽에는 달마다 두 권을 선정해 한 세트로 판매하는 ‘나이츠픽’이, 오른쪽에는 책등에 동그랗게 작가의 태어난 날짜가 붙어 있는 ‘생일문고’가 진열되어 있습니다. 둘 다 블라인드 북이라 무슨 책인지 알 수는 없네요. 초대장에 힌트가 숨겨져 있었으려나..

 

마지막 칸까지 보고 나서 아쉬운 마음에 처음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책장 사이의 문을 또다시 천천히 지나갑니다. 한 칸 한 칸, 아까 못 보고 놓쳤던 책들을 찾으며 둘러봅니다. 그러다 문득 이 마법 같은 공간에서 나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저 책장을 벽에 붙이지 않고 나란히 세웠을 뿐인데 어떻게 이런 느낌을 줄 수 있는지. 이렇게 아름답고 신비로울 수 있는지. 네 개인 듯 하나인 듯 알쏭달쏭하게 조립된 공간, 각각 분절된 것 같으면서도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공간, 그 속에 스며들어 운명을 함께하고픈 공간. 해리 포터가 9와 3/4 플랫폼에 들어섰을 때, 호그와트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요?

 

겨울의 길고 푸른 밤, 밤의서점과 함께

나는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Thank you, GPT!

 

영업시간은 밤 9시까지.

퇴근 후 모험을 떠나고 싶으시다면 밤의서점으로.

초대장은 이미 모두에게 발송 완료.

 

 

 

 

밤의서점

 

 

 

 

 

* ‘소소한 산-책’ 코너에서 독자 투고를 받습니다. 제 걸음이 미처 닿지 못한 곳들의 이야기도 전하고 싶어요. 분량 제한은 없습니다. 짧아도 좋고요. 자유롭게 여러분의 산-책 이야기 들려주세요. 해당 메일(letter@sewmew.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된 분께는 오후의 소묘에서 준비한 굿즈와 신간을 보내드립니다. 소중한 원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소소한 산-책’은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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