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치코

 

더블링(Doubling).

명사인지 형용사인지 헷갈리는 이 단어가 어느 순간부터 뉴스에서 보이기 시작했어요. 오미크론 변이의 등장 이후에 일일 확진자 수가 (일정 시간 간격으로) 두 배가 되는 현상을 말하려는 것 같은데 굳이 저 생소한 단어를 써야 했을까 싶어요. 이를테면 “1주 간격으로 더블링(2배로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추세다.” 같은 표현은 ‘1주 간격으로 두 배씩 증가하는 추세다.’라고 하면 훨씬 간결하고 명확해 보이는데 굳이 괄호로 쳐서 설명까지 해 가며 낯선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게 더 전문적으로 보이기 때문일까요? ‘더블링’이란 단어가 포함된 전문용어가 있긴 했어요. ‘배가시간’(Doubling time)이라고 해서 무언가 두 배가 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의 개념이 인구, 경제성장률, 세포 배양 등을 계산하고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것 같더라고요.(표준국어대사전에는 “증식 원자로에서 연료의 양을 두 배로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라고 되어 있지만 그보다는 넓은 의미로 활용되는 것 같았어요.) 그렇긴 해도 ‘더블링’이란 단어만 편리하게 가져다가 마치 전문용어처럼 사용하는 건 전혀 전문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외려 없어 보인다고나 할까요. 어떻게든 자극적인 신조어를 만들어보려는 천박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러네요.

 

어쨌거나 부쩍 어수선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차근차근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면 경미한 증상으로 끝날 확률이 높고 이전에 비해 사망률이 확연히 줄어들었다고는 해도 눈에 보이는 숫자의 크기에 압도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2월은 아주 가까운 곳에 산책을 다녀왔어요. 집에서 버스로 대여섯 정류장이면 갈 수 있는, 직선거리 2km 남짓이라 여차하면 걸어서도 갈 수 있는 책방이에요. 제가 사는 곳과 행정구역상으로 같은 구에 속해 있으니 말 그대로 동네책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번 달 ‘소소한 산-책’은 서울시 은평구에 자리한 책방 시나브로예요.

 

 

책방의 인스타그램을 보았을 때 이름부터 반가웠어요. “littlebylittlebook” 이름이 아니라 아이디인가요. 아무튼 오후의 소묘little cat와 돌림자(?)가 같아서 묘한 친근감이 들었어요. 그리고 생각했죠. 서점이 작은가?

네, 작더라고요. 지금까지 다녀본 서점 중에서 가장 작은 규모였어요.(무인책방이나 팝업 매장 등은 제외하고요.) 공간의 크기도, 진열된 책의 종수도 정말 작고 아담한 책방이었어요. 책을 한 권 한 권 모두 살펴본다는 기분으로 구경을 했는데도 책방을 다 둘러보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어요. 책방에 들어서고 얼마 안 있어 대표님께서 차를 한 잔 내어주셨는데 테이크아웃 컵에 담긴 차가 아직 따끈따끈할 때 책방을 나왔으니까요.

동네서점에 관해 말할 때 ‘크다’나 ‘작다’는 표현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다지 중요한 의미를 담지 못해요. 교보문고나 반스앤노블, 기노쿠니야라면 얘기가 좀 다를 거예요. 그곳은 규모가 곧 경쟁력이기도 하니까요. 동네서점이란 말의 대칭으로 읍내서점이나 전국서점이 아니라 대형서점이란 단어가 사용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거예요. 장서의 규모가 커질수록 만족도가 함께 증가하는 곳, 거기에 가면 웬만한 책은 다 있을 거라는 신뢰를 주는 곳이 대형서점이라고 생각해요. 장서의 규모가 커지려면 당연히 공간의 규모도 커져야 할 테고요. 동네서점에서 발견의 무한성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Peter Korn이 쓴 <목공 기초>란 책을 사기 위해 무턱대고 동네서점에 가면 안 되는 것처럼요. 하지만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가서 그 책을 찾는다면? 있어야죠. 있어야 해요. (실제로 있어요!) 웬만한 책은 다 있을 거라는 믿음에 부합하는 게 대형서점의 존재 이유,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이니까요.

 

동네서점에서 중요한 건 책이 얼마큼 있는지, 공간이 어느 정도 넓은지가 아니라 ‘어떤’ 책이 ‘어떻게’ 진열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동네서점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의 기준이 되는 건 책방의 취향, 색깔, 지향 같은 것들이 아닐까 싶어요. 만약 친밀감과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면 그저 동네에 있던 책방이 ‘최애’(동네)책방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또 시간이 쌓이면 성실한 고객이자 든든한 동무로서 책방의 온갖 일상을 함께하는 사이로 나아가겠죠. 얼마나 흐뭇한 광경인가요. 작아도 충분히, 어쩌면 작기 때문에 더 도드라지게 아름다울 수 있는 곳, 그게 바로 동네책방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책방 시나브로는 문을 연 지 얼마 안 되었어요. 인스타그램 게시물로 2021년 11월 9일에 개업떡도 돌리고 하셨다는 걸 봐서 딱 석 달 정도 됐겠네요. 그래서인지 책방의 소개글과 책방의 모습이 거의 일치했어요. 책방을 처음 시작할 때 주인장의 관심사에 따라 특정 분야(혹은 키워드, 주제 등등)의 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서점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사실 이게 어려운 일이에요. 자신이 다루려던 분야는 아니지만 너무 마음에 들고 좋은 책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게다가 그 책이 시장에서 잘 팔리는 책이라 책방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자꾸 찾게 된다면요. 책을 팔아야 책방이 유지되는데 뻔히 잘 팔릴 만한 책을 들이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목공 전문 책방을 표방하고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아무튼 시리즈>나 유명 출판사의 문학전집이 매대 어딘가에 진열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적인 상황일 거예요. 하지만 책방 시나브로는 딱 책방의 소개글에 맞는 책들과 소품으로만 채워져 있었어요.

 

책방 시나브로

은평독립서점🌿자연, 어른동화를 중심으로 여행, 커피 등 취향을 담은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판매합니다. 이곳에서 시나브로- 자신만의 취향을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책방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평대에는 여행과 식물과 커피에 관한 책들이 가지런히 놓였고 왼쪽 벽엔 수목원(Arboretum)이란 제목으로 여러 나무의 세밀화가 그려진 A2 정도 사이즈의 포스터가 붙어 있어요. 그리고 책방 곳곳에 놓여진 식물들이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었어요. 출입문과 마주한 벽에는 손으로 쓴 소개글과 보태니컬 포장이 인상적인 비밀책 책장이 있고 바로 옆에 키는 작지만 무성하고 단단하게 자태를 뽐내는 고무나무가 있었어요. 이 고무나무를 제외한 나머지 식물들은 최대한 책방 손님의 동선과 시선을 방해하지 않는 곳에, 하지만 존재감을 숨기지는 않으며 책방이 작은 정원으로 느껴질 만큼 적절한 자리에 놓여 있었어요.

 

저는 그중에서도 책방의 정면 통유리 쪽에 매달려 있는, 역시나 작고 아담한 박쥐난이 무척이나 반가웠어요. 오후의 소묘 사무실에 있는 박쥐난이 생각났거든요. 밤새 추위에 맞서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아침에 출근하면 하염없이 줄기가 꺾여 있는 아이예요. 난방을 시작해 온기가 돌고도 한참이나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시무룩하다가 퇴근할 때가 되어서야 겨우 고개를 들죠. 그러다 밤이 되고 아침이면 다시 털썩 주저앉고. 책방 시나브로의 박쥐난은 다행히 줄기를 한껏 펴고 있었어요. 그 모양이 어찌나 기특하던지 하마터면 (박쥐난에게) 열렬한 인사를 건넬 뻔했어요.
고무나무 옆으로 단촐하게 자리한 책방 대표님 책상의 뒤쪽 벽, 책방에서 아마도 가장 잘 보이는 책장에는 (아마도 어른동화일) 그림책이 표지가 보이게 진열되어 있었어요. 책장이 두 개나 되고 면적으로도 책방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거로 보아 책방 대표님께서 그림책을 좋아하시는 분이란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어요.(그림책 읽기 모임도 운영하고 계시고요!)

 

 

지금까지 책이 진열된 세 개의 공간(네 개의 평대와 책장)을 소개했는데요. 이렇게 책방의 매대와 서가를 꼼꼼하게 소개한 적은 처음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하나밖에 안 남았네요 :) 말씀드렸다시피 작은 공간이니까요. 중앙 평대와 맞닿아 수목원 포스터의 오른쪽에 위치한 책장은 책방에서 유일하게 책등이 보이게 책이 진열된 공간이었어요. 책장에는 당연히 자연, 여행, 커피에 관한 책 그리고 (아마도 책방 대표님의) 취향을 담은 책들이 꽂혀 있었고요. 그런데 제일 위 칸에 꽂힌 세 권의 책이 눈을 사로잡았어요. <태평양을 막는 제방들>, <케이크와 맥주>, <여름> 이렇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세 권 꽂혀 있더라고요. 여러 서점을 다니면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아예 없는 경우(문학을 전혀 취급하지 않는 경우)는 봤어도 딱 세 권만 있는 서점은 처음 본 것 같아요. 소소한 산-책은 가능하면 은밀하게 다녀간다는 원칙을 깨고 대표님께 인터뷰를 청할 뻔했어요. 저 세 권 꽂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금까지도 궁금하네요. 역시 물어볼걸 그랬나요. 아, 그것참.

 

책방 시나브로를 방문하러 기왕에 오셨다면 근처에 있는 ‘구산동 도서관마을’에도 한번 들러보세요. 2016년에 대한민국 공공건축상(국무총리상)과 서울특별시 건축상(리모델링/대상)을 받은 도서관인데요. 보통의 건축 과정에서 볼 수 있는 ‘부지 선정→기존 건물의 철거→신규 건물’이라는 단계로 도서관을 지은 게 아니라 기존의 주택건물과 골목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으로 지었다고 해요.(“주민들의 요구로 시작된 프로젝트로 은평구가 10개의 필지를 매입하여 그중 3동의 건물을 남기고 기존의 도시조직을 그대로 살려 리모델링하였다.” – 서울시 건축상 심사평 중에서.) 그래서인지 저 역시 도서관마을에 처음 갔을 때 건물의 독특한 구조와 동선, 내부 인테리어 등에 감탄하며 즐겁게 구경했던 것 같아요. 게다가 건축물만 특이한 게 아니었어요. 사업의 기획 단계부터 예산 확보, 시설 조성과 운영에 이르기까지 전 단계에 지역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만들어 낸 결과물이어서 이용자 만족도와 시설의 활용도가 아주 높은 공간이라고 하더라고요. 책방 시나브로에서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거리니까 꼭 방문해 보세요.

 

﹅ 책방 시나브로 instagram.com/littlebylittlebook/

﹅ 구산동 도서관 마을 gsvlib.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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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묘의 산-책

이치코 실장이 꼼꼼하게 소개한 매대와 서가 중 비밀책 책장만 제외하고 세 곳에서 한 권씩 골랐습니다. 여행과 식물과 커피에 관한 책들이 가지런히 놓인 평대에서 <레몬 편지>를, 그림책 전면 서가에서는 까미유 주르디가 그린 <숨바꼭질!>을, 마지막으로 책등이 보이는 취향의 책장에서 <체리토마토파이>를.

 

<체리토마토파이>에는 ‘사랑스러운 잔 할머니의 체리토마토파이를 닮은 일기를 읽으며 그녀의 삶을 함께 걸어봐요. 우리의 일상 또한 소중하고 따뜻해집니다’라는 소개글이 적힌 메모가 붙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언제나 각별한 단어여서 책을 집어들고 뒤표지를 살폈어요. 그리고 이 문구에 책을 사기로 결심합니다. ‘아흔 번째 봄을 맞던 날, 잔은 일기를 쓰기로 결심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날짜를 펼쳐봐요.

2월 13일

… 다시 말해, 나는 갈수록 좋아지고 있고 물랭까지 가볍게 차를 몰고 나갔다 와도 끄떡없다. …

 

<숨바꼭질!>의 부제는 ‘베르메유 숲의 보일락 말락 추격전’입니다. <베르메유의 숲>을 보셨나요? <베르메유의 숲>의 부제는 ‘이상한 오후의 핑크빛 소풍’이고, 색감이 아름답고 그림이 아주 아기자기한, 마냥 따듯하지만은 않지만 어쨌든 핑크빛인 귀엽고 이상한 이야기예요. <베르메유의 숲>에 반한 작가 까미유 주르디가 그림을 그렸고 <베르메유의 숲>에 등장했던 중요한 조연(?) 누크가 이번엔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또 다른 주인공 바르톡과 베르메유의 숲에서 숨바꼭질을, 아니 추격전을 벌이는데요. 이번에도 귀엽고 이상하고 재밌고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펼쳐지네요.

 

<레몬 편지>에는 본문 속 문장이 붙어 있었어요. 문장을 따라 16쪽을 펼치자 <분홍 레몬>이라는 책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 있고요. 그러니까 작고 얇은 이 소책자는 ‘레몬’이 등장하는 책들을 소개하는 책이었어요. 독립출판물인가 보다 했는데 그림책과 문학을 펴내는 ‘바다는기다란섬’ 출판사의 소설 <레몬철 만드는 법 / 핑거라임>의 크라우드 펀딩 사은품으로 기획된 책자라고 해요. 지금은 동네책방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고요. 기획이 재밌어 구입했는데, 읽으려고 다시 펼쳤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첫 레몬 편지의 책이 오후의 소묘에서 앞으로 출간할 그림책이었어요. 제목은 <레몬 타르트와 홍차와 별들>. 레몬에 끌렸던 것에는 이유가 있었네요.

 

 

 

 

‘소소한 산-책’은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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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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